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35화 (135/204)

제 135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마닐라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서...

마닐라 공항에 8번 게이트 유리문이 열리며 두호가 걸어 나왔다.

선글라스를 손가락으로 살짝 내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의외로 그렇게 덥진 않네.’

비행기에서 확인한 마닐라 기온은 24도.

자신이 기억하던 동남아의 날씨와 사뭇 달라 다행이라 생각하는 두호였다.

공항의 안내된 길을 따라 쭉 이동하니 멀리 공항주차장과 파라솔 아래 택시기사들이 모인 것이 보였다.

여행객을 발견하자 택시기사들이 곧바로 그들에게 달라붙어 호객 행위를 시작한다.

두호가 그 인파를 지나쳐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멀리 요금소 앞에 까무잡잡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블루투스 선풍기를 얼굴에 비추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아아.”

두호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맹혁씨.”

맹혁이라고 불린 사내가 신기해하며 반갑게 악수를 내민다.

“와. 한 번에 알아보시네요. 역시 격투기 선수라 눈썰미가 좋으신가.”

맹혁.

과거 옐로우 맘바 델타팀 소속이었지만 독립해서 동남아 정보상과 오퍼상을 겸업하고 있었다.

채호와는 동갑으로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두호 역시 얼굴이 기억에 남아있기에 한 번에 알아본 것이다.

‘피부는 좀 탔지만. 옛날 얼굴은 남아있네.’

두호가 싱긋 웃으며 그가 내민 악수를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채호한테 연락 받았습니다. 김도혁 선배의 동생이라던데...”

“네.”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맹혁.

채호와는 달리 굉장히 유쾌한 사내였다.

“그 선배 진짜 전설이죠. 인물 좋고 의리 좋고.”

자신을 못 알아보는 그가 하는 말이 괜히 멋쩍은 두호였다.

맹혁이 그의 캐리어를 대신 들어주며 고갯짓했다.

“일단은 제 사무실로 가서 자세한 얘기 나누시죠.”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맹혁을 따라 그의 차가 주차된 곳으로 이동했다,

짐을 실은 두 사람이 차에 탑승하자 곧장 출발했다.

맹혁은 두호를 힐끔 쳐다보았다.

“날씨가 꽤 선선하죠?”

“네.”

“오늘이 좀 신기한 날이네요. 9월에 이렇게까지 선선하기가 힘들거든요.”

차는 곧 공항을 벗어나 마닐라 시내로 들어왔다.

길거리에는 수 많은 노점상들이 나와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럿 보았다.

두호는 천천히 창문 밖을 바라본다.

자신이 가보지 못한 나라가 더 적을 정도로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임무를 다녔다.

그가 나라마다 느끼는 한 가지의 생각이 있다.

많은 곳이 변했어도 그 도시가 풍기는 느낌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도 느낌은 그대로네.’

사람이 많은 마닐라 시내를 벗어나자 맹혁이 운전석과 조수석의 창문을 살짝 열었다.

창문으로 더운 바람이 들어온다.

“저희 사무실은 메우카이얀(Meycauayan)에 있습니다.”

맹혁이 자신의 사무실이 왜 메우카이얀에 있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도 두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근처에 공장들이 많다.

대외적으로 오퍼상의 일을 진행하기엔 유리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두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 풍경을 감상하자 맹혁이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제가 김도혁 선배한테 빚이 있습니다.”

두호 역시 처음 듣는 소리인 듯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옅은 미소를 띄우며 두호를 슬쩍 쳐다보았다.

“제가 오퍼상 일을 하기 전 용병 생활을 좀 했었습니다. 작전 중 부상으로 낙오됐는데. 형님이 소속되신 팀원들이 구하러 왔거든요. 그때 목숨을 건졌습니다.”

두호는 이제야 기억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알래스카였나.’

너무나 과거의 기억이라 어렴풋이 기억은 난다.

테러조직을 추적하던 델타팀이 함정에 빠졌었다.

브라보팀이 구조를 위해 알래스카로 파견됐고 설산의 갇혀있던 그를 브라보가 구출해주었다.

“이곳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힘 닿는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차는 막힘없이 빠르게 메우카이얀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컨테이너가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뒤에 큰 공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맹혁이 공장을 향해 걸어가자 두호가 천천히 뒤를 따르며 컨테이너 안을 쳐다보았다.

얼핏 보아도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돈을 일일이 세가며 히히덕거린다.

어느덧 공장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

“과거 가죽 가공 공장이었는데. 지금은 뭐...”

맹혁이 굳게 닫힌 공장의 철문을 힘껏 밀었다.

-끼이익

3m는 되어 보이는 큰 철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공장 안을 쳐다본 두호는 눈을 찌푸렸다.

최소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도박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던 사설 도박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텍사스 홀덤부터 시작해 세븐 카드까지 종류는 끝도 없었고 테이블마다 딜러들이 서 있었다.

두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밖에 있는 컨테이너는 전당포로군,’

두 사람은 테이블들을 지나쳐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거 좀 걸었다고 땀이 나네.”

리모컨으로 에어컨의 전원을 킨 맹혁이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네.”

두호가 자리에 앉자 소파 옆 냉장고에서 매실 음료 하나를 꺼내 두호에게 건네주었다.

“일단은 채호에게 대충 얘기는 들었는데...”

맹혁이 두호의 맞은편에 앉아 등을 기댔다.

“일단 궁금하신 점을 먼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두호가 이곳에 온 이유를 먼저 듣자는 이야기다.

두호가 채호에게 받은 서류를 맹혁에게 건네주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 봉투를 열어본 맹혁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 잘 조사했네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맹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매실음료 병 뚜껑을 열어 벌컥 들이킨다.

“크으. 윈스턴은 동남아의 유일한 군수산업체입니다. 과거 미국 필리핀 전쟁 이후로 여러 군수산업체들이 생겨났지만 모두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쪽으로 흡수되었죠. 하지만 윈스턴은 유일하게 아직 동남아의 본점을 두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맹혁이 입구쪽을 가리킨다.

두호가 시선을 돌리니 필리핀의 전체적인 지도가 보입니다.

“여기서 한 50km 쯤 넘어가면 필리핀 북부의 카바나투안(Cabanatuan City)에 공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두호가 눈을 좁히자 맹혁이 손바닥을 비빈다.

“자 그런데. 중요한게 이게 아니겠죠?”

맹혁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신의 책상 위에서 사진 몇 장을 집어들어 두호에게 건네준다.

아프리카로 추정되는 곳에서 무장한 사내들이 찍힌 사진.

사내가 들고 있는 총을 가르키는 맹혁이었다.

“그 총이 윈스턴에서 만든 윈저63입니다.”

아무 말 없이 사진을 보던 두호가 무엇인가 깨달은 듯 맹혁을 바라본다.

맹혁이 씨익 미소 짓는다.

“제가 원래 윈스턴 간부들의 돈세탁과 비자금 조성을 맡아주었습니다. 하지만 2년 전쯤부터 출처가 알 수 없는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그래서 알아보니 무기 밀매로 버는 돈이더군요.”

군수산업체는 기본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한다.

테러리스트, 해적, 카르텔에게 무기가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국가적인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윈스턴은 위험인자로 분류된 사람들에게도 장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신 역시 일당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어 일찌감치 손을 턴 것이다.

“듣기엔 블랙러프와 윈스턴의 연결고리를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채호가 그럴듯한 이유를 붙힌 것 같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는 해도 명분이 있어야 맹혁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맹혁이 두호가 쥐고 있는 사진을 가르키며 손가락을 돌린다.

“뒷장 보시죠.”

두호가 사진 한 장을 넘기니 정장을 입은 사내 11명이 웃고 있는 사진이 나왔다.

아마도 행사중에 찍힌 듯 모두들 하얀 수갑을 낀 체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님께서 죽기 6개월 전. 윈스턴 내부에서 대대적인 세력다툼이 있었고 그들이 그 시기에 새로 취임 된 이사진입니다. 가운데.”

가운데에 머리가 벗겨진 사내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사람이 물갈이 끝에 대표이사로 취임 된 사내입니다. 이름은 쁘레오.”

“이 자가 리더일 것이다?”

“보통은 기획 주도한 사람이 대표가 되니까요.”

맹혁이 품 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카바나투안 윈스턴 공장지점 근처 카지노인 폴라인에 단골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두호가 사진을 품 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신 건 모두 말씀 주시죠. 저녁 드시기 전 준비 마쳐놓겠습니다.”

“진행비는 모두 제 이름으로 청구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맹혁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은인의 동생에게 돈을 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중에 XFC 진출하시면 초대권 한 장 보내주시죠.”

아직 XFC에 공식적인 계약성사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아 맹혁은 모르는 눈치였다.

“네. 알겠습니다.”

맹혁이 싱긋 웃는다.

“그럼 이제 말씀하시죠.”

두호가 말없이 지도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

카바나투얀에 위치한 대형 카지노 폴라인.

쁘레오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체 걸어나온다.

그러자 카지노 입구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다급하게 달려간다.

폴라인의 지배인이었다.

카지노를 벗어나는 쁘레오에게 달려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벌써 가세요? 아직 12시도 안 됐습니다. 조금 더 놀다가시죠.”

쁘레오가 지배인의 어깨를 툭 하고 친다.

“이 사람아. 시간이 이렇게 됐으니 얼른 집에 가봐야지.”

지배인이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럼 또 찾아주십시오.”

“그래. 또 보지.”

쁘레오가 카지노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입구에 주차된 자신의 차로 다가간다.

직원 하나가 먼저 달려가 뒷문을 열어주었고 쁘레오가 안 주머니에서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건네준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쁘레오는 차에 탑승했다.

그가 차에 타자 운전기사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쁘레오가 탄 차는 한참을 달려 인적이 드문 산길을 넘어가고 있었다.

뒷자석에 앉은 쁘레오가 피곤한 듯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그 순간.

엄청난 배기음을 쏟아내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오토바이 한 대.

부아앙!

“시끄럽게 말이야.”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아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는다.

오토바이는 찢어지는 배기음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스쳐갔다.

“죽으려고 작정했군.”

쁘레오는 빈정거리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덜컹-

그때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차가 거칠게 중앙선을 넘었고 귀를 찢는 클락션이 울린다.

“뭐하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눈을 떴다.

운전기사가 피를 흘리며 핸들에 머리를 쳐박고 있었다.

깨진 차창으로 칼바람을 맞자 정신이 번쩍든다.

‘설마 아까 그 놈이!?’

멀어져가던 오토바이가 돌아보는 것이 쁘레오의 눈에 담긴다.

쾅!

가드레일을 들이 받은 차는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오토바이가 천천히 속도를 줄여 이제는 완전히 멈춰섰다.

감은 눈이 떠지는 쁘레오.

인상을 찡그리며 천천히 주위를 살펴본다.

흙바닥이지만 나무벽이 있는 걸로 보아 간이 오두막 같았다.

손을 들어보지만 포박이 되어있지도 않았다.

자신의 몸을 둘러보아도 크게 다친 곳 역시 없었다.

차분히 상황파악을 위해 주위를 살피는 쁘레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정신 들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훽하니 고개를 돌린다.

의문의 사내가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걸어오며 근처에 의자 하나를 집어든다.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사내는 조금씩 다가온다.

이내 밝은 곳까지 걸어 나온 사내의 얼굴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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