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모든 층에서 1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 말은 즉 두호 역시 도망을 치려면 결국 1층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바르고프와 부하들은 그 점을 알아채고 1층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아래층에서부터 위로 조여들어가겠다는 의도.
격실 하나를 진입하여 수색하는 과정이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산전수전 모두 겪은 팀이란 것을 움직임에서 엿 볼 수 있었다.
바르고프가 주머니에서 껌 하나를 꺼낸다.
포장지를 뜯고 입에 털어 넣으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숫자를 줄이려는 시도가 아예 없다고?’
상식적으로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최대한 각개격파를 노리며 소규모 교전을 반복하기.
그게 아니라면 도망치듯 상대를 끌어내서 싸우는 방법이다.
그러나 두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1층을 모두 수색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큰 것 하나를 준비했다는건데.’
하지만 바르고프는 자신의 지나친 기우로 판단을 내렸다.
20살짜리 아이.
징병제 국가에서 군대를 갔다 왔더라도 그만한 전략과 무기가 있을리 만무하다.
‘기껏해야 신체능력이 뛰어난 민간인 수준일텐데.’
1층 중앙에서 다시 집결한 들개들과 용병.
인원수를 확인한 바르고프가 무전기를 집어든다.
“모로코. 메인 서버실 찾았나.”
송신을 보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바르고프가 의아한 표정으로 재차 무전을 보낸다.
“모로코.”
그 순간.
바르고프의 일행들 옆에 위치한 가스 배관이 펑하고 터진다.
싸아아.
하얀색 연기와 쾌쾌한 가스 냄새가 순식간에 멀리 퍼진다.
일행들은 입과 코를 막고 잔기침을 시작했다.
“갑자기 뭐야 이거.”
“노후로 인해 터진거 아니야?”
바르고프 안색이 순간 어두워진다.
설령 자신이 보지 못한 곳에서 총으로 맞춘거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아닌 가스배관을 노렸다.
그렇다는 건 아직 노림수가 남아있다는 얘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3층 천장에 붙어있던 전구가 하나씩 터져나간다.
사내들은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유리 조각들을 보며 당황을 금치 못한다.
전구가 차례대로 터져나가며 냉동창고 안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남은 전구가 터져나가고 냉동창고 내부는 옆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환경이 되었다.
바르고프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이윽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주위에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부하들이 야시경을 착용하기 위해 준비하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바르고프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시경 쓰지마!”
하지만 그의 만류는 늦었다.
조그맣게 들려오는 클립소리.
띡.
그리고 이내 자신의 주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턱.
이윽고 떨어진 물건은 엄청난 굉음과 빛을 뿜어냈다.
바르고프는 황급히 귀를 막으며 몸을 던졌다.
빼앵.
모든 어둠을 밀어내듯 엄청난 빛이 냉동창고 안을 밝히더니 이내 사라졌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사내들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바닥을 기어다닌다.
“으어어.”
“악!”
섬광탄은 살상력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는다면 실명과 난청이 올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다.
바르고프 역시 급하게 계단 뒤로 몸을 던졌어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젠장.’
가스배관으로 주위의 시선을 돌린 다음 자연스럽게 암전 상황을 만들어 야시경 착용을 유도했다.
야시경을 쓴 채로 섬광탄에 노출되면 피해는 더욱 극심해진다.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뺨을 때려 정신을 다잡는 바르고프의 시야가 점점 돌아온다.
슬쩍 계단 옆에서 고개를 빼내 주위를 살펴본 바르고프.
그러나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르고프의 시선이 한곳에 멈춘다.
자신이 들어왔던 정문.
저곳을 열고 나가거나 문만 열면 이곳 내부로 빛이 들어올 것이다.
차분하게 숨을 내뱉는다.
‘하나. 둘, 세엣!’
쏜살같이 정문으로 달려가는 바르고프.
이내 손잡이를 잡고 몸을 던지듯 바깥으로 나오는데 성공한다.
흙바닥을 구르며 곧바로 입구의 벽에 바싹 붙는다.
“후우.”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은 바르고프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든다.
이제 자신이 반격을 해야할 순간이다.
자신이 빠져나온 문에 바짝 붙어 핸드폰을 꺼낸다.
냉동창고 안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반사각으로 비춰본다.
하지만 핸드폰이 내부를 비추자마자 곧바로 날라간다.
탕!
반파가 되어 바닥을 굴러다니는 핸드폰을 보며 바르고프가 침을 삼킨다.
총기 소음과 손목에 오는 느낌으로 보아할 때 권총이다.
권총으로 이렇게 정교한 사격이 가능하다니.
그 순간 냉동창고 안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르고프.”
목소리를 들은 바르고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얼굴 좀 보지.”
한숨을 내쉬며 바르고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망설임 없이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선다.
총을 권총집에 끼워넣으며 바르고프가 내뱉는다.
“진짜 살아 있는줄은 몰랐는데.”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권총을 재장전 하더니 탄알집에 집어넣는다.
이윽고 사내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얼굴을 확인한 바르고프가 어금니를 깨문다.
‘김도혁.’
이윽고 주위 상항을 돌아보았다.
부하들은 이미 주검이 되어있었다.
시체는 머리와 가슴을 제외하고는 모두 깨끗한 것이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졌다.
“죽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솜씨는 여전하군.”
도혁이 손가락을 한 개씩 접는다.
손가락이 5개가 모두 접혔을 때 그를 보며 싱긋 웃는다.
“한 5년 만이군. 눈은 왜 그렇게 된 거야.”
과거 바르고프를 봤을 때는 눈의 흉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왜 종적을 감췄지?”
바르고프의 말에 도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게 궁금하면 안되지.”
바르고프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왜 한국에 있는지가 중요한 거지.”
그 말을 들은 바르고프가 씨익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뜬금없이 예나 지금이나 도혁의 칼 같은 언행은 똑같단 생각이 든다.
“그 전에 대답을 먼저 해줬으면 좋겠네. 이 모든건 자네의 독단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뱀 둥지의 오더인가.”
바르고프의 말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이것이 만약 옐로우 맘바의 오더라면 자신은 해줄 말이 없다.
어찌됐건 자신의 모든 행동이 그들에게 보고될 테니까.
하지만 인간 김도혁의 독단적 행동이라면 다르다.
“내 동생의 민원이다.”
그 말을 들은 바르고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사내는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그 자가 정말 자네 동생이었다니.”
“자 이제 내 질문.”
도혁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블랙러프는 왜 두호를 노리고. 옐로우 맘바를 공격하는 거지.”
“자네는 자네 조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도혁이 눈을 찌푸렸다.
바르고프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자네가 업계에서 사라진 모술의 낮 이후로. 수많은 용병업체가 사라졌다. 왜인지 알아?”
두호는 직감적으로 생각이 난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바르고프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니들 뱀 새끼들이 너를 공격한 흉수 찾겠다고. 이곳저곳 다 들쑤시고 다녔다. 네가 죽었다는건 그들에게 최고의 핑계였겠지.”
바르고프가 자신의 목까지 잠겨진 셔츠를 벗어 목 아래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왼쪽 눈을 짚어 보인다.
아무래도 옐로우 맘바에게 당한 상처인 듯 싶었다.
“정상에서 굴린 작은 눈덩이는 산 아래에서는 산사태가 되기 마련이야.”
결국 블랙러프는 옐로우 맘바에게 밀려난 용병업체들의 생존과 복수를 위해 생겨난 것이다.
도혁이 착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본 기념으로 선물 하나 주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바르고프.
푸슉.
그 순간 바르고프의 손을 총알이 꿰뚫고 지나간다.
손을 부여잡은 채 쓰러지는 바르고프.
“으윽...”
“오른쪽 포켓으로 손이 가는 것은 매너가 아니지.”
주 병기와 보조 병기는 언제나 자신의 주 손을 기준으로 장착한다.
그렇기에 주 손 주머니에는 언제나 무기를 포함한 군 장비가 있고 여타 물건은 보조 손 주머니에 넣어지기 마련이다.
바르고프는 그를 방심하게 한 다음 기습을 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그가 씨익 미소지으며 도혁을 올려다본다.
“우리야 돈이 먼저인 놈들이고. 명분을 쥐는 놈들은 따로 있어.”
도혁이 권총을 겨눠 바르고프를 겨냥한다.
바르고프는 그런 도혁의 반응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포그스컬스. 그놈들은 멈추지 않을 거야. 기대해 김도혁.”
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탕.
축 늘어진 바르고프를 쳐다보는 도혁.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복잡함이 가득했다.
***
늦은 밤.
예수가 홀로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광화문에 위치한 에프타워 레스토랑.
두호를 기다리는 그녀의 표정에는 약간의 즐거움이 엿보였다.
짤랑.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며 두호가 들어선다.
직원이 안내를 하러 두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예약 하셨나요?”
멀리서 창가쪽에 앉은 예수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가르킨다.
“네. 저기 일행이 있습니다.”
직원은 밝은 미소와 함께 그를 예수가 있는 자리로 두호를 안내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두호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이하는 예수였다.
“아니에요. 저도 얼마 안 기다렸어요.”
그러자 직원이 농담조로 두호에게 귓속말을 한다.
“30분 정도 기다리셨습니다.”
“아 정말요?”
두호가 미안한 표정으로 예수를 쳐다보자 그녀가 질색하며 손사레를 친다.
“아니에요! 직원분이 괜히 장난치신거에요.”
그러자 직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짓는다.
“맞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코리안 몬스터.”
예수는 직원이 멀어지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오. 이제 진짜 전국민이 다 알아보네요.”
두호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왜 그러세요.”
“푸핫. 아직도 적응이 안되세요?”
“네. 아직도 좀...”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두호.
그가 무언가를 찾는 듯 하자 예수가 물어보았다.
“뭐 찾으세요?”
“메뉴판이 없네요?”
예수가 고개를 저으며 두호를 바라본다.
“역시 아직 어리시네요.”
두호가 왜 그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이런데는 바로 코스요리로 준비해주거든요. 많이 먹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두호는 고개를 저으며 손짓했다.
“아닙니다. 제가 살게요.”
“두호씨보단 못하겠지만 저도 꽤 벌거든요?”
그녀의 말에 두호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 모습에 예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두호를 쏘아본다.
“와 챔피언이라고 이제 서민 무시하나요?”
“저 PRIDE-K가 인정한 진짜 서민입니다.”
두호가 농담을 던지자 예수가 피식 웃는다.
그러더니 예수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
그녀가 두호의 잔에 물을 따라주며 슬쩍 두호의 눈치를 본다.
“두호씨.”
“네.”
“요새 괜찮으세요?”
두호는 왜 그러냐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의미가 담긴 말일까.
예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제가 두호씨를 본 시간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는 정확히 알겠어요.”
예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요즘이 가장 위험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