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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31화 (131/204)

제 131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XFC 첫 데뷔전은 15위권 선수와 매칭. 승리시 다음 매치는 무조건 윗 랭킹 선수와 붙여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게임 일정은 부상이 없을 시 3개월에 한 번.”

돈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채호가 말한것들은 XFC의 입장에서 참 많은걸 포기해야 했다.

결국 매칭을 성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건은 두 가지다.

명분과 흥행성.

아무리 타 단체 챔피언이지만 프로전적 1전의 선수를 랭커 선수와 붙여야 한다는 점이 그의 맘에 걸렸다.

실바가 눈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른다.

“이유나 들어보죠.”

“첫째. 5경기 동안 랭커 선수가 아닌 언랭크(랭킹 순위에 없는 선수)와 붙으면 이긴다 할지라도 두호군의 이미지가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란 실로 단순한다.

지금은 증명을 통해 아시아 최강자의 이미지를 굳혀가는 두호.

그러나 그가 XFC에 진출하여 언랭크 선수들과 싸움을 계속한다면 그의 최강이란 이미지는 점점 옅어질 것이다.

채호는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XFC 입장에서 두호 형님은 사용하기 까다로운 조커지.’

PRIDE-K와 포드탱과의 일전으로 캐릭터는 유명해졌지만 이것이 운인지 실력인지 가늠할 데이터가 너무나 적다.

그에 반해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높아졌으니 거품으로 판별날 경우 XFC가 감당해야 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하여 언랭크 선수들과 매치를 통해 그의 덩치를 줄인 다음 천천히 자신의 장기말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채호가 넥타이를 슬쩍 푼다.

“대신. 첫 경기의 계약금과 승리 수당은 포기하겠습니다.”

채호의 제안에 실바의 눈이 좁혀진다.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받는다.

이런 요구를 제시하는 채호 역시 알고 있다.

결국 두호는 다른 곳이 아닌 최고의 무대 XFC에서 증명을 해야 의미가 있다.

노련하게 그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만한 문제는 치우고 서로 윈윈을 하자는 이야기였다.

“설령 첫 경기에 진다 하더라도. 아시아권의 관심이 집중 될테니 PPV는 엄청날 겁니다.”

“대신 승리시 무조건 윗 랭크 선수와 붙여달라?”

“그렇죠.”

한 경기를 이긴다고 반드시 랭크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 전적과 경기 내용 그리고 XFC의 근속 년수 이런 것을 모두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바는 잠시 고민하는 듯 줄리아와 눈빛을 교환한다.

줄리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실바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뭡니까.”

“재미있는 경기를 해야 합니다. 이런 계약 조건을 걸었는데 재미없게 판정으로 이기면 결국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되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판정은 소위 침대게임(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경기 시간 동안 그래플링으로만 싸우는 것)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그래플러의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경기는 스트라이커들보다 움직임이 덜하고 비교적 보는 맛이 떨어지니까.

그 순간 두호가 슬쩍 손을 든다.

실바가 말하라는 듯 손짓한다.

“대신...”

두호가 채호를 보며 싱긋 웃어보인다.

“1라운드 KO 시. 다음 경기는 무조건 10위 권 이내 선수와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실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제안을 걸었다는건 자신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저 남자의 발언은 객기인가 자신감인가.

실바가 무리하지 말라는 듯 그를 진정시키려했다.

“지금 미들급 랭킹 상황을 알고 그런 말씀 하시는 겁니까?”

기본적으로 어느 단체던 제일 선수층이 두껍고 경쟁이 심한 체급은 웰터급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균적인 성인 남성의 몸무게가 웰터급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혹자는 그곳에서의 경쟁이 지옥같아 헬터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시점 XFC에서 가장 박터지는 체급은 미들급이다.

지난 3년간 유일하게 단 한 번도 바뀌지 않는 미들급 챔프의 자리.

그를 이긴다면 XFC에 관심과 대중들의 열렬한 후원을 모두 받게 되니 수많은 도전자들이 덤벼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굳건했다.

그렇기에 다음 챔피언 도전 자격을 얻기 위해 선수들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곳이다.

두호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증명은 제가 제일 잘하는 겁니다.”

회의실에 문이 열리고 네 사람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번 주 안으로 새로 계약서를 작성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바.”

두 사람은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눴고 실바의 내민 손이 두호에게 향한다.

두호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실바.

“제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의 능력 때문이죠.”

두호가 내민 손을 받으며 묻는다.

“뭐죠?”

“인재를 알아보는 눈. 아마 이 문화의 전설이 된 사람들은 모두 두호씨 같이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실바가 곧바로 몸을 돌린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띄어져 있었다.

백두호라는 칼의 손잡이를 잡았으니 어떻게 휘두를까 고민하는 그.

벌써부터 재밌어 죽겠다는 듯 입꼬리가 가만있지 못한다.

줄리아가 그런 실바의 뒤를 바짝 따라 붙는다.

두 사람이 체육관을 빠져나가자 쏜살같이 코치진들이 다가온다.

“어떻게 됐습니까?”

“계약은 바로 하는 겁니까?”

채호는 코치진들을 진정시킨다.

“자 침착하고. 일단은 첫 경기는 15위권 선수로 매칭이 될겁니다.”

코치진들은 자신의 일인냥 너무나 기뻐했다.

그들 역시 진정으로 두호의 성공과 탄탄대로를 기대하는 이들이니까.

“그렇지!”

“두호씨가 아니면 누가 XFC를 가.”

그 모습을 본 두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한다.

“다 코치진 여러분들 덕입니다.”

채호가 박수를 치며 코치진들과 팀 코리안 몬스터를 집중시킨다.

“자 그럼. 일단 채수와 주민 코치는 훈련 일정과 스파링 파트너 조율해주시고. 탁현씨가 상대 전략 분석을 부탁드립니다.”

“네.”

채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체육관 안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거의 다 왔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깊게 동의했다.

어쩌면 자신들은 격투 스포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을 함께하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백두호 선수의 보조가 아닙니다. 우리는 팀 코리안 몬스터입니다.”

운동선수만이 경기를 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경기 시간은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 휴식시간.

그 30초.

그때가 이들의 경기 시간이다.

채호의 말에 결의가 가득찬 팀 코리안 몬스터.

채호가 거칠게 소리친다.

“세상을 놀라게 해줍시다. 팀 코리안 몬스터!”

모두들 합창하듯 크게 소리친다.

“화이팅!”

채호와 두호가 체육관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미팅을 끝내고 재활 훈련을 시작하려던 채호가 잠시 할 얘기가 있다고 두호를 부른 것이다.

채호는 아무 말 없이 따라오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디 가시는지 안 궁금하세요?”

두호는 뭘 그런걸 물어보냐는 듯이 바라본다.

“너가 가자고 하니까 나온거지.”

그의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채호가 피식 웃는다.

가만 보면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일엔 신기할 정도로 무관심한 두호였다.

두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 텅 빈 공터로 들어간다.

체육관 근처에 위치한 공영 주차장.

그러나 주위에 그렇다 할 상권이 없어 언제나 텅텅 빈 곳이다.

여전히 주차장은 한산했고 멀리 세워진 SUV 한 대만이 있었다.

두호는 본능적으로 저곳에 주차된 차가 자신의 볼일임을 알아챘다.

“너 차야?”

“아 빌린 겁니다. 물건이 워낙 많아서.”

채호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한다.

“제 차 다치면 그렇잖아요.”

“얼씨구.”

두 사람은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으며 차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채호는 운전석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곧장 트렁크로 향했다.

국산차 모델 중 트렁크가 굉장히 커 패밀리카로 많이 애용되는 차량이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된 듯 아직도 키를 꽂아야 입구를 열 수가 있었다.

두호가 궁금한 표정으로 그의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차 트렁크가 열린다.

내용물을 확인한 두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단종된 것은 같은 회사의 상위 넘버로 바꾸었구요. 다른 장비들은 모두 형님이 쓰시던 것과 동일 모델입니다.”

채호는 그가 편히 볼 수 있게 한쪽으로 비켜서 주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진열된 총기류와 장비.

두호가 총기를 유심하게 살피는 모습을 보며 채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형님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지금 형님의 가치는...”

두호가 채호의 어깨를 툭 하니 쳤다.

“절대 걸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마.”

더 이상의 걱정은 그저 잔소리 밖에 되지 않음을 안다.

채호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구한거야?”

“형님 그 박태일씨라고 기억나세요? 텍사스 문화 좋아하시고 구렛나룻 있으신.”

“아 기억나. 근데 왜?”

“지금 그분이 옐로우 맘바 한국지부 책임자입니다. 보급과 물자 품목을 맡아서 일 보고 있습니다.”

처음 채호가 박태일을 찾아갔을 때 그는 굉장히 반가워했다.

옐로우 맘바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구 브라보.

그중 살아남은 유일한 사내.

처음에는 무기를 받으러 온 채호를 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채호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생각이 들어 선뜻 무기를 내어준 것이다.

두호가 손을 뻗어 HK416 (독일의 H&K 사에서 제작한 카빈형 돌격소총)을 빠른 속도로 조립한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그 조립속도에 채호는 감탄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리고 채호는 묘하게 신나있는 듯한 두호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완전히 현역이네.’

사실 그럴것이 도혁의 몸이 아닌 두호로 생활한지는 불과 1년이 채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솜씨 자체가 변할 일이 만무하다.

“영점이랑 파츠 장착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총기를 조립하여 한쪽 구석에 세워둔 그는 신기한 표정으로 물건 하나를 집어들었다.

재질과 규격으로 보면 방탄복이었지만 그렇기엔 너무나 얇았다.

“방탄복이지?”

“아 네. 신형이랍니다. 전투형이 아닌 방첩형 임무에서 사용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입으시는 옷 안에 입으랍니다.”

두호는 과거보다 더욱 발전한 기술력에 크게 감탄한 표정이었다.

무게도 가벼웠고 신축성도 있어 움직임에 불편을 주지 않을 듯 싶었다.

“좋네.”

두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장비를 확인하고는 한쪽으로 비켜선다.

“네. 탄약은 충분하게 챙겨놨으니 나중에 챙겨보시고...”

채호가 트렁크의 문을 닫아 키로 잠근다.

그 다음 키를 두호에게 건넸다.

“이 차도 그대로 사용하십시오.”

키를 내밀던 채호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형님. 근데.”

“어.”

“면허는 있으세요?”

“어?”

두호가 잠시 말없이 채호를 바라본다.

***

바르고프가 복잡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들개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성과를 우선시 한다.

쌓아올린 전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높은 연봉과 권력을 갖게된다.

들개의 인원수는 총 30명.

요즘 같이 큰 건수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번 한국행 같은 중요 임무는 서로 맡길 원한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왔음에도 본부에 그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투자자까지 래진에게 납치된 상황이니 더욱 실망이 커진 상황이다.

이를 깨무는 바르고프.

들개 한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온다.

“준비 됐습니다. 위치도 곧 파악될 겁니다.”

“그래. 우리도 다시 돌려줘야지.”

바르고프가 지긋이 사진 한 장을 쳐다본다.

백두호.

그가 이번 타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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