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이재하.
델타팀이 몇 주를 매달려 알아낸 블랙러프의 투자자였다.
외부적으로는 재하철강의 대표이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용병 산업의 유명한 2선 투자자였다.
“쉽게 갑시다 우리. 그쪽도 모양 빠지는 건 싫잖습니까.”
래진은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불리한 것을 인정하기로.
단순히 실력전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곳은 소수정예의 활동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더군다나 한국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적은 숫자를 또 반으로 나누자면 양쪽 전력에 모두 빈틈이 생기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유리한 전쟁터를 선점하는 것이 승리 전술의 핵심이다.
불리함을 딛고 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판을 새롭게 짜기 위해 과감하게 인정하는 것 또한 리더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해외로 무대를 옮겨 2차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옐로우 맘바 팀원 하나가 총구를 가까이 들이대자 이재하가 기겁을 한다.
“어...어디로 가는겁니까!”
“알려주면 뭐하게. 일단 가자고.”
총구를 겨눈 사내가 총을 순식간에 뒤집어 잡는다.
이윽고 권총 손잡이로 이재하의 뒷목을 벼락같이 때린다.
-뻐억
털썩 쓰러진 이재하를 들쳐 업으며 방을 빠져 나간다.
래진이 씨익 웃으며 무전기를 집어든다.
“철수하자. 미국으로 갈거야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저택의 중앙계단을 내려가며 팀원 한 명이 래진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래진을 쳐다본다.
“보스 질문 있습니다.”
“뭐.”
“왜 미국입니까. 중동이나 아프리카처럼 저희가 익숙한 곳으로 이동해야 전투가 편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래진이 팀 원의 반대쪽 어깨에 손을 척하니 올린다.
래진이 담배 하나를 꺼내무니 팀 원이 재빠르게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찌잉
-철컥
불을 붙인 래진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땅 넓지. 총기 합법이지. 적은 인원으로 싸울데 많지. 사람 많지.”
그리고는 알아듣겠냐는 듯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사내에게 보여준다.
“오케이?”
그제야 사내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실력 대 실력의 싸움으로 이끌 수 있는 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어쩌면 소수의 옐로우 맘바가 싸우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아직 래진이 팀원들에게 말하지 않은 계획이 있다.
하지만 그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네. 알겠습니다.”
래진은 천천히 걸어가며 혼잣말을 했다.
“끌려만 가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애송아.”
연기를 내뿜는 그가 씨익 미소짓는다.
이제는 되갚아 줘야 할 시간이다.
***
다음날.
코리안 몬스터 체육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두호는 굳은 표정으로 단상에 설치된 자리에 앉아있었다.
- 백두호씨. 어제 테러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 경찰 발표에 의하면 포드탱 선수의 극심한 팬이 범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백두호 선수와 원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습니다. 해명하십니까?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포드탱과의 일전 그리고 향후 계획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어제의 테러 사건으로 인하여 모든 기자들의 질문은 테러와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기에 두호의 입장에서도 그들에게 대답해줄 말이 없어 답답했다.
자신의 과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기에 예 아니오의 수준의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물을 것도 대답할 것도 시원찮은 질의응답 시간이 두호에겐 피곤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회견을 진행하던 예수의 표정이 밝아졌고 단상 한쪽에 서 있던 채수와 탁현의 표정마저 밝아졌다.
두호는 그들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기자를 바라보았다.
“네. 질문해주시죠.”
한 여성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계 미국인인 듯했다.
“MSPN 소속 줄리아 킴입니다. 이번 포드탱과의 일전으로 프로전적 1전 1승 챔피언이라는 보기 드문 기록을 남기며 아시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얻으셨습니다.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되십니까?”
MSPN.
미국 최대 스포츠 전문 방송국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한 가지 별명이 있다.
XFC의 나팔수.
적극적으로 XFC의 관련 소식을 전하며 언론 마케팅 핵심 역할을 자처한다.
XFC PPV 수익을 나누어 받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언론과 기업의 보기 드문 협력 관계를 보인다.
그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XFC에서 백두호를 유심하게 지켜본다는 의미.
“아시아의 최강이라는 말은 아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호의 말에 줄리아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겸손은 미덕.
이것은 옛말이다.
스포츠선수라는 훌륭한 마케팅 소재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나서서 자신을 홍보 해야하는 시대에서 겸손한 자세는 좋지 않다.
두호는 싱긋 웃었다.
“앞으로도 질 생각은 없습니다.”
몇몇의 기자들은 감탄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백두호 특유의 마이크웍.
겸손한 자세로 얘기하는 듯 하지만 그 안에 자신감을 유연하게 보여준다.
줄리아가 싱긋 웃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킹 챔피언쉽 챔피언들이 XFC에 진출했을 때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백두호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그의 크기와 수준 차이이다.
XFC는 최고의 선수들 중 최강을 가리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의 의도는 따로 있었다.
두호는 그 질문의 속 뜻을 알아챈 듯 빙긋 웃는다.
“포드탱 정도면 대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줄리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답변 감사합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두 가지 였다.
XFC의 진출할 의도가 있느냐.
그리고 XFC에서 크게 한탕 칠 자세가 되어있는가.
적당한 도발성의 질문으로 이 선수의 스타성을 확인.
그리고 답변을 통하여 XFC으로 이적할 것을 기대하는 백두호의 팬들에게 불을 지핀 것이다.
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했어. 저만한 답변이 없었다.”
“두호씨도 가만 보면 참 잘한다니까.”
몇 개의 질문을 더 받은 두호가 더 이상의 기자회견은 의미가 없다 판단한 듯 그녀에게 눈짓을 주었다.
예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내를 정리한다.
“네. 오늘 기자회견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추후 취재사항은 메일로 전해주시면 검토 후 답변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짐을 챙겨 자리를 벗어난다.
그들이 빠져나가자 두호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본다.
새로운 연락이 왔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기다리는 소식은 없었다.
예수가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두호에게 다가간다.
“준모씨. 연락 기다리세요?”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이동된 준모는 오늘 아침 병원 1인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로 보아 의식이 돌아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의사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거라고 하시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두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두호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채수와 탁현은 서로 손뼉을 치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방금 전 두호에게 질문을 했던 줄리아와 함께 걸어오는 한 사내.
구렛나룻까지 이어지는 수염을 기른 백인이 손을 내밀며 다가온다.
“두호씨. 반갑습니다.”
예수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크게 놀라했다.
하지만 두호는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악수를 받았다.
“네. 근데 누구시죠?”
백인 사내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꺼낸다.
“XFC 매칭메이커로 일하고 있는 로드 실바입니다.”
XFC의 매칭메이커.
단체의 소속된 수 많은 선수들을 조합하여 경기를 만들어낸다.
그가 매칭한 최고 히트 상품은 XFC 라이트급 챔피언전으로 페이퍼 뷰(PVP) 150만장의 대 기록을 남겼다.
실제적인 경기 일정과 파이트 머니 조율까지 담당하고 있는 로드 실바.
XFC 회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실세였다.
그런 그가 직접 한국으로 백두호를 만나러 온 것이다.
명함을 받은 두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 네. 반갑습니다.”
무미건조한 반응에 실바가 오히려 재밌다는 듯 웃는다.
보통 선수들은 자신을 한 번 만나보려고 로비까지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찾아왔음에도 이렇게 무미건조한 반응은 그에게도 신선할 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킹 챔피언쉽을 떠나 저희 XFC와 함께하시죠.”
이제야 두호의 표정에도 옅은 미소가 띄었다.
그 순간 누군가 다가온다.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채호였다.
넥타이를 살짝 조여메며 은은한 미소를 입에 띄운 채 손을 내민다.
실바 역시 채호를 아는 듯 반가운 표정이었다.
“이채호 대표님이시군요.”
“맞습니다. 실바. 이렇게 한국에서 뵈니 참 반갑네요.”
두호는 이 모든 일이 어느정도 XFC와의 물밑 조율이 있었다는 걸 눈치챘다.
적어도 필린에서 일어나는 일에 채호가 모르는 우연은 없으니까.
두호와 채호 그리고 줄리아와 실바는 회의실로 향했다.
네 사람은 회의실에서 마주 보았다.
채호와 두호.
그리고 줄리아와 실바.
실바가 서류철로 정리된 종이를 꺼내어 두 사람에게 건네준다.
“저희 제시안입니다.”
채호와 두호는 건네받은 서류를 살피니 내용은 이러했다.
- XFC 5경기 출전.
- 랭킹 10위 이후. PPV 수익 15% 분배.
- 랭킹 순위는 언랭크로 시작.
- 3전 경기 승리시 5경기 안에 랭커 매칭 보장.
- 경기당 계약금 20만불. 승리 시 20만불. 서브미션, KO 승리시 추가 수당.
두호가 서류 내용을 확인하는 동안 채호가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서류철을 툭하니 덮고 실바를 지긋이 바라본다.
“아무래도...”
채호가 고개를 젓는다.
“저희 계약은 시기상조 같군요.”
실바와 줄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정도면 아직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은 꿈도 못 꿀 파격적인 조건이다.
채호가 서류를 실바에게 도로 밀어낸다.
“XFC가 배가 많이 불렀는지. 상품을 알아보는 눈이 없어진 건지. 참.”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저은 채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반응에 눈을 좁힌 실바가 의자 등받이에 완전히 기댄다.
이윽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채호에게 말한다.
“그럼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큰 판.”
실바가 의아한 표정으로 채호를 쳐다보자 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레이스 치다 죽어도. 도박의 재미는 즐기게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실바의 표정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큰 판.
스포츠는 관객 유치로 돈을 번다.
지금 두호가 가진 마케팅 파워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절대적인 지지와 더불어 아시아의 전해진 큰 충격.
하지만 두호는 다른 선수들과 차원이 다른 이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궁금증.
과연 이 선수는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킹 챔피언쉽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아니면 느슨해진 XFC 미들급 판도를 흔들어 줄 수 있을까.
모두의 시선이 실바에게 모이는 가운데, 실바의 눈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거물인 자신이 먼 아시아까지 왔는데,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때.
찌이익-
자신이 가져온 제안서를 망설임 없이 찢는 실바.
그 모습에 채호 역시 흠칫했다.
잠시간의 정적 후 실바가 표정을 바꿨다.
“제가 근래에 너무 바빠 이런 안일한 실수를 했군요. 다시 판 짜시죠 대표님.”
이번엔 채호의 표정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지금껏 해온 비즈니스 상대와 달리 직진이다.
직진이라는 말은 시원하다라는 말도 되지만 성에 차지 않으면 바로 곧바로 판을 엎는다.
오히려 원칙적이라는 뜻.
그 자리까지 오를만한 사내였다.
실바는 곧 서류 가방에서 자신의 낡은 수첩을 꺼낸다.
“제시해주시죠.”
채호가 원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아챈 것이다.
채호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