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사내가 페트병 안의 액체를 두호에게 휘두르듯 끼얹는다.
휙!
그러나 다행히 한 발 앞서 두호에게 달려든 준모가 그 액체를 대신 맞았다.
“아악!”
준모의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제길.”
사내는 자신의 일이 실패했다는 것을 느끼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탁현과 채수가 다급하게 도망가는 사내의 뒤를 쫓아간다.
“거기서! 이 새끼야!”
두호 역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준모의 상태를 살핀다.
정확하게 뿌리지 못해 많은 양을 맞지 않았지만 접촉 부위에 얕은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예수 씨! 빨리 구급차 불러요.”
“아. 네!”
넋 빠진 표정으로 서있던 예수가 서둘러 전화기를 꺼내 119에 전화를 건다.
두호는 차분하게 주위를 살핀다.
액체는 준모뿐만이 아니라 취재를 나온 기자들에게도 튄 듯 몇 명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멀리서 공항 안쪽에 있던 경비원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두호가 사내가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깨문다.
‘이 새끼들이.’
- 킹 챔피언쉽 새 챔피언 백두호. 인천공항에서 약물 테러 피습.
- 기자 1명 중상. 7명 경미한 부상. 민간인 피해자 1명
- 경찰 조사 착수. 한국도 이제 테러 위험에 노출되나.
탁!
태블릿PC를 닫은 예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술실 입구를 바라보았다.
초록색 빛이 감도는 수술중 문구가 마음을 더 괴롭게 했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덧 시간은 11시를 넘어간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의사는 준모의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화상 부위가 심각해 수술은 불가피 하다고 전해주었다.
예수가 눈치를 보듯 곁눈질로 두호를 살펴본다.
심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두호.
그러던 중 그녀는 복도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탁현과 채수를 발견했다.
전력으로 테러범의 뒤를 쫓았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경찰에게 정식으로 수사 의뢰와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온 그들의 표정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오셨어요? 어떻게 됐나요.”
“수사는 바로 착수 한다더군요. 일단은 CCTV를 기반으로 도주 경로를 쫓고 있습니다.”
“경찰은 두호씨에게 악심을 품은 포드탱 선수의 팬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보통은 경기가 끝난 직후 본국이 아닌 타국에 있을 때 테러를 저지르지만 사내는 두호가 한국에 입국 직후 테러를 저질렀다.
그들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두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탁현이 예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며 두호에게 말했다.
“두호 씨. 피곤하실 텐데 먼저 들어가세요. 여기는 저희가 남아있겠습니다.”
“맞아요! 두호씨도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갈 때는 꼭 택시 타시구요!”
두호는 그들의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예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실 텐데요.”
채수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가장 친하게 지낸 준모 씨인데.”
“일단 저희도 앉아서 기다리죠.”
탁현의 말에 일행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 준모가 무사하기를 바랬다.
병원 밖을 빠져나온 두호.
택시를 타고 가라는 예수의 말과는 달리 걸어서 이동중인 그였다.
하늘에서 비 한 방울이 툭 떨어져 두호의 어깨에 맞는다.
그 한 방울은 금세 장대비가 되었고 하늘에서는 포탄 터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두호.
어딘가 약속이라도 된 듯이 방향을 옮기는데 단 한 번의 망설임이 없었다.
드문드문 보이던 가로등 빛이 이제는 아예 없어졌다.
이윽고 지금은 장사를 하지 않는 폐점상들이 모인 골목이 나타났다.
하늘을 잠시 올려다 보는 그.
평소에 냉정함은 온데 간데 없고 그의 눈은 살기가 가득해져 있었다.
“기어나와. 벌레 새끼들아.”
이윽고 두호의 앞뒤로 사내들이 튀어 나온다.
두호가 슬쩍 앞쪽과 뒤쪽의 인원을 파악한다.
‘앞에 둘. 뒤에 둘.’
사내들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씨익 웃는다.
“알고 있었네. 김도혁이 동생이라고?”
“진짜 겁나게 반갑다. 흐흐.”
두호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네 명. 모두 권총.’
두호의 예상대로 사내는 권총 한 자루를 꺼내 머리를 긁적인다.
“당신 형한테 받을 빚이 있어서. 그쪽에 청구해야겠어.”
“지옥에서 김도혁이가 속상하겠구만.”
사내들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비아냥 거린다.
두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한국에서 권총. 그것도 앞뒤로 포위해오는 꼴이라니.”
일직선 상에서 권총은 서로를 맞출 수도 있기에 좋은 전술이 아니다.
“오늘 인천공항에서 생긴 일. 너네 소행이냐.”
두호의 말에 미소를 짓고 있던 사내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몇 시간 전에 테러를 당할 뻔한 그.
심지어 다시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받는 상황인데 어떻게 침착할 수 있을까.
두호가 앞뒤를 슬쩍 바라보더니 손짓한다.
“시작하자. 나도 궁금한 게 많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낀 사내들.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윽고 한마디의 신호도 없었지만 그들은 동시에 두호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푸슉푸슉!
두호는 번개같이 자신의 옆 골목으로 몸을 던진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두호를 보며 사내들이 소리친다.
“잡아!”
당황한 사내들이 다급하게 그 뒤를 쫓는다.
그가 사라진 골목으로 꺾어 들어간다.
그 순간.
오히려 두호가 불쑥 튀어나와 그들을 덮쳤다.
다리가 불편하니 자신의 거리로 사내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 자식이!”
급하게 권총을 겨누지만 이미 깊숙이 파고 들어온 두호.
손등으로 그의 손목을 후려치자 권총이 떨어진다.
탁!
이윽고 물 흐르듯 상대의 무게중심을 살짝 틀어 반대편에서 접근하던 사내들에게 메치듯 던진다.
쾅!
다가오던 사내들이 날라 온 사내에 맞아 뒤로 벌러덩 쓰러진다.
“죽어 이 새끼야!”
두호의 머리를 겨냥하는 남은 사내.
그러나 한 바퀴를 빙글 도는 두호.
그로 인해 총알은 애꿎은 벽을 맞추게 되었다.
푸슉!
몸을 돌린 원심력을 이용해 팔꿈치로 사내의 턱을 갈긴다.
교과서 같은 백스핀 블로우.
사내가 의식을 잃고 허물어지자 두호가 땅바닥을 한 바퀴 굴러 떨어트린 권총을 줍는다.
이윽고 쓰러지는 사내의 앞 무릎과 어깨의 총알을 한 발씩 박아넣는다.
푸슉푸슉!
살상은 없이 무장해체만 시킨 것.
허둥지둥 일어난 사내들이 다시 권총을 두호에게 겨눈다.
푸슉푸슉!
그러나 두호는 재빠르게 벽 뒤로 몸을 숨겨 총알을 피해냈다.
사내들은 처음처럼 무리하지 않았다.
방심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듯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신중히 두호에게 다가선다.
벽을 겨냥한 체 각을 좁히며 천천히 진입하는 사내들.
이윽고 맨 앞에 선 사내가 훽 하니 벽을 향해 뛰어 들어간다.
슈욱!
벽 뒤에서 다시 튀어나온 두호가 그의 팔을 위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반대 손에 든 권총으로 사내가 아닌 하늘을 겨냥하여 격발한다.
팅팅!
그러자 건물 외벽에 설치된 오래된 실외기가 한 사내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콰과광!
한 사내가 실외기에 깔려 축 늘어졌다.
두호는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곧바로 붙잡은 사내의 손목을 꺾어 발등과 어깨를 향해 격발했다.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진 그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이런 싸움이 가능한 사람이 또 있다고?’
전략 전술.
임기응변과 완벽한 신체능력.
김도혁의 환생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
두호는 마지막 남은 사내를 제압하기 위해서 권총을 겨눴지만 왜인지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골목을 뛰쳐나가니 멀리 사내가 도망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저 사람을 이대로 살려 보낸다면 더욱 큰 위험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두호는 아예 그를 죽일 마음으로 사내를 겨냥했다.
숨을 차분하게 내뱉고 그의 머리를 향해 조준한다.
-푸슉.
방아쇠를 당겼지만 사내는 멀쩡히 골목을 돌아 자리를 벗어난다.
“하.”
두호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그의 손목을 붙잡은 채 하늘로 높게 들어 올린 사람이 있었다.
무였다.
그녀의 표정은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후환을 제거하는 중입니다.”
“사적인 복수를 하려는 게 아니고?”
그 말에 두호가 잠시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안 됩니까?”
오히려 부정하지 않자 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 자식이 오냐오냐 하니까.”
그러나 두호 역시 지지 않고 받아쳤다.
“과거의 일을 매듭짓지 않으면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다칠 겁니다.”
두 사람의 시선은 공중에서 팽팽하게 얽힌다.
천둥이 내려친다.
쾅!
잠시 비가 멈추었다.
***
한 사내가 시가를 문체 책을 읽고 있었다.
쿠바의 뜨거움을 담은 연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사내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한 듯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
베토벤이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
9번 교향곡의 실러의 시가 삽입된 <환희의 송가> 였다.
음악은 듣는 사람의 현재 기분을 표현해준다.
찌르르릉!
그러나 그의 기분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목 책상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로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사내가 이마를 찌푸린다.
찌르르릉!
재떨이 위에 조심히 시가를 내려놓은 체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는 사내.
그가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댄다.
“어.”
-네. 바르고프 입니다.
“말해.”
사냥 실패했습니다. 들개 두 명 포함 세 명 사망입니다.
“뭐?”
사내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이마를 찌푸리며 되물었다.
“끽해야 운동선수인 민간인이잖아.”
-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
그는 천천히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전축과 연결된 진공관 스피커의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근데. 들개 두 마리가 당했다고?”
들개는 SVR 현장요원들 출신으로 구성되어있다.
단순히 정보수집팀이 아닌 정보수집을 위한 수많은 돌발상황까지 제어가 가능한 인력들.
그런 그들이 한낱 운동선수에게 당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들은 무기까지 소지하지 않았는가.
잠시 전화기를 귀에서 뗀 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내.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
“자네가 직접 작업해.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의 표정은 아까와 달리 복잡해 보였다.
일이야 실패할 수 있다.
자신 역시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엎어졌다.
“흠.”
그 순간 누군가가 거칠게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브로(Bro. 형제.)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주머니에 손을 꽂은 체 껄렁거리며 걸어오는 사내는 다름 아닌 알도프 코와르키였다.
더군다나 사내와의 관계가 돈독한 듯 전혀 조심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시가 태우고 있었네.”
이윽고 사내가 피우던 시가를 슬쩍 들어 올려 종류를 확인한 그는 인상을 찌푸린다.
“이게 뭐야. 좋은 것 좀 피우지.”
코와르키의 반응에 사내는 헛웃음을 짓는다.
이내 찬장에서 언더락 잔 하나를 꺼내 술을 고르는 듯 허공에서 손가락이 까딱거린다.
고민끝에 한 병을 집어 든 그는 마개를 따 천천히 술을 따른다.
“시가는 단순한 담배가 아니야. 생산지에 문화와 환경을 상상하며 피우는 거지.”
잔을 집어 든 그는 옆자리에 앉은 코와르키에게 건넨다.
코와르키는 귀를 후비며 사내가 건넨 잔을 받아든다.
“하여간. 없이 산 티를 내요. 그런데...”
따라준 잔을 단숨에 비운 코와르키가 한곳을 가르키며 씨익 웃는다.
“명패 바꿨네?”
명패에는 사내의 이름과 직함이 써져 있었다.
포그 스컬스 대표. 바로크 코와르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