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7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경기 끝! 백두호 선수가 킹 챔피언쉽 미들급에 새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두호가 케이지 바닥에 피를 한 움큼 뱉으며 씨익 미소 짓는다.
그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래진이 맥주를 벌컥 들이키더니 옷 소매로 슬쩍 입을 닦는다.
“이야. 도혁이 동생 잘 치네!”
옆에서 같이 티비를 바라보던 영철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요. 도혁 선배가 좀 가르쳤나?”
“저게 가르쳐서 될 것 같냐?”
래진이 슬쩍 미소 지으며 말한다.
사실 영철 역시 알고 있었다.
기술과 체력은 가르칠 수도 훈련을 통해 보완할 수도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자신을 단련하니까.
하지만 타고난 기질은 후천적으로 만들 수 없다.
‘하긴 저러니까 동생이겠지?’
자신이 아는 김도혁은 아무렇게나 친분을 맺는 사람이 아니다.
인정과 존경이 담긴 관계에서 진짜 유대가 생긴다고 그가 누누이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래진은 농구 3점슛을 하듯 맥주캔을 티비 옆 쓰레기통에 던져넣는다.
“이놈들을 어찌할까.”
영철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넓은 사무실 안은 지옥과 같았다.
피칠갑을 한 체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사내들.
그리고 그 시체들을 아무렇지 않게 번쩍들어 한쪽으로 옮기는 옐로우 맘바의 팀원들.
이런 상황을 뒤에 두고도 아무렇지 않게 티비를 감상한 두 사람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래진이 시선을 돌리니 벽면을 바라보고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내쉬는 사내들이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긴다.
-딱!
시체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세던 옐로우 맘바 사내 한 명이 고개를 돌려 래진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니 손가락을 하늘로 향해 빙빙 돌린다.
팀 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벽을 보던 사내들의 뒷목을 거칠게 끌어 방향을 돌려 앉혔다.
“윽.”
래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얼마전에 그림자 캔 놈들 누구야?”
수미의 부하 직원인 영욱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래진은 이제 용병들의 그림자 캐기가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자신들도 역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사내들은 래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말 안 하면 후회할 텐데?”
래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영철을 보며 어깨를 툭 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영철에게 일처리를 맡긴다는 의미였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흔들며 머릿수를 센다.
“4명이면 3명은 죽어도 괜찮다는 얘기잖아.”
영철이 책상에 올려놓았던 권총을 집어 들어 장전한다.
-철컥.
이윽고 총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맨 왼쪽의 사내 앞에 선다.
“신체 부위 중 두 개씩 달린 게 뭘 의미하는 줄 알아?”
사내는 애써 영철의 말을 무시하려는 듯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에 영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하나씩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단 말이야.”
망설임 없이 꿇어앉은 사내의 무릎을 겨냥한다.
-푸슉.
탄이 무릎을 그대로 관통했다.
사내는 고통을 못 이겨 악다구니를 질러대지만 아쉽게도 손발이 묶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아악!”
영철은 다시 동굴 안에 있는 듯 깊은 목소리로 묻는다.
“누구인지. 왜인지. 그것만 말하면 돼.”
그리고 보란 듯이 사내의 눈앞에서 권총을 다시 장전한다.
사내가 그 모습에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덜컹.
문이 열리며 래진이 밖으로 걸어나온다.
“이런 곳에 캠프를 차리다니. 머리는 좋네.”
아직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은 신축 아파트였다.
야외 복도 난간에 팔을 걸쳐 선 래진.
안쪽 상황과는 달리 평화로운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래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YMB 2012이다.”
수화기 너머로 얇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델타 캡틴 유수영입니다.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 래진이 불을 붙인다.
“후우. 맡긴 일은.”
잠시 전화기 너머가 분주해졌다.
래진이 잠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자 이윽고 수화기에서 다시 델타 캡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하마 계좌 자체는 열었습니다. 하지만 퍼즐 맞추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송금자의 이름은 나왔지만 그것과 같은 시간 출금된 계좌를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였다.
“송금자 이름은?”
-윈스턴입니다.
잠시 말을 잃은 래진.
근래의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벌어진다.
아직 이 일들의 연결고리는 찾을 수가 없지만 본능이 말해주고 있다.
두 사건은 하나의 문제에서 시작되었음을.
래진이 머리가 지끈 아프다는 듯 뒷목을 주무르며 눈을 감는다.
“일단 알았다. 퍼즐 맞추고 연락줘.”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래진이 품 안으로 핸드폰을 집어넣다 자신의 옷 소매 끝에 시선이 고정된다.
아마도 사무실에서의 교전 중 묻은 피로 보인다.
잠시 말 없이 옷 소매를 지켜보는 래진.
‘이런 상황이 얼마만인지.’
자신 역시 현장에서 손을 뗀지가 10년은 다 되어간다.
원래 이런 임무는 브라보가 맡아야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뉴 브라보는 미완성이다.
그렇기에 찰리와 함께 이곳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문득 한 사람이 그립다.
사망했다고 보고는 들었지만 사실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도혁이 살아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다 늙은 형님 고생하는 게 보기 좋냐 이 자식아.”
복도 난간에 팔을 걸친 체 옛 생각에 잠기는 래진이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인생의 변하지 않는 진리다.
특히나 용병업계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큰 기회를 찾기 때문에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일의 위험은 너무나 크다.
소말리아는 현재 정부군과 반군이 치열하게 내전중인 곳이다.
의뢰내용은 소말리아 반군 중앙으로 침투.
그들의 뒷배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암살 임무를 의뢰받은 것이다.
“지원자 있나.”
옐로우 맘바의 모든 직원이 참석하는 대회의.
모두가 업계에서 인정받는 특급 용병이지만 섣불리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암살은 어찌 성공한다쳐도 그곳을 안전하게 탈출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래진 역시 이번 의뢰의 위험성을 알기에 임무 배정을 망설였다.
“대신 이번 의뢰금의 50%를 배당한다.”
자세한 의뢰비용은 모르지만 50%라면 적어도 몇백억은 될 것이다.
순간 몇몇의 얼굴에 고민의 흔적이 보였지만 그래도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살아서 나올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래. 알겠다.”
그 순간 대회의실에 문이 열린다.
임무로 인하여 회의 참석에 늦은 도혁이었다.
“복귀 했습니다.”
더플백을 책상에 툭 내려놓자 래진이 손을 흔들어 반긴다.
도혁은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회의 내용이 띄워져 있는 대형 스크린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도혁.
“제가 하겠습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의뢰를 수락한 그에게 놀란 직원들은 입을 벌린다.
이번엔 도혁이 싱긋 웃으며 직원들을 바라본다.
“같이 갈 사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자원자가 없었지만 도혁이 간다고 하자 하나둘씩 손을 든다.
“둘이 가면 25%씩 먹는 거죠?”
“젠장. 넷이 가면 얼마 안되네. 낄낄.”
그렇게 손을 드는 사람들의 인원을 확인하니 대체로 브라보 팀원이었다.
막연한 신뢰.
업계 최고이자 현 시점 최강의 히트맨인 그와 함께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생각.
래진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브라보팀과 추가 파견 인원 결정해서 보고해,”
“네!”
“회의 끝.”
방금 전의 무거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다시 평소와 같이 편안해진 분위기.
래진이 도혁을 보며 이리오라는 듯 슬쩍 손짓한다.
래진이 가까이 다가온 그의 몸을 천천히 살핀다.
옷 이곳저곳 상처가 제법 있다.
꽤 심한 격전이었는지 흙도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래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툭 친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둘러보는 도혁이었다.
“괜찮습니다.”
“네가 여길 가준다면 나야 안심이긴 하지만.”
래진은 말끝을 흐렸다.
현재 도혁조차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임무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일의 해결 자체도 철두철미해야 언제나 생존이 최우선이다.
옐로우 맘바들의 가치는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가야 합니까?”
“내주 안.”
“내일 저녁에 출발하겠습니다.”
이윽고 도혁은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의 더블백을 챙겨 나가려 했다.
래진은 그 뒷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씁쓸함을 느꼈다.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몸 조심하고.”
“네. 가보겠습니다.”
도혁이 싱긋 미소 짓는다.
감상에 젖어있는 래진.
그 모습을 영철이 발견했지만 굳이 다가가 방해하지 않았다.
언제가부터 래진이 감상적인 순간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유는 모두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에이. 나도 참 쓸데없게...”
래진이 꽁초를 툭 하니 던져버리고 뒤를 돌아본다.
말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는 영철을 보며 래진이 흠칫 놀란다.
“아이 깜짝이야.”
“무슨 고민 있으십니까.”
“없다. 저녁 뭐 먹을까 생각중이었다.”
그 말에 영철이 피식 웃는다.
래진 역시 다시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영철의 어깨를 툭 친다.
“뭐래?”
“바르고프가 한국에 왔답니다.”
“그 백정놈이?”
래진의 이마가 좁혀진다.
유리 바르고프.
러시아 특작부대 SVR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대량 발생시켜 해고당한 인물.
사람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가 한국에 온 것이다.
“우리도 강수를 띄워야겠군.”
래진이 고개를 돌린다.
시커멓게 몰려오는 먹구름을 바라본다.
“태풍이 언제오지?”
얼마전 기상청에서 태풍 소식을 들었지만 날짜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틀 뒤입니다.”
“그날이 디데이다.”
“네. 준비시키겠습니다.”
래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인천공항 8번 GATE가 열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이 두호를 향해 몰려들었다.
“아시아 입식 최강인 포드탱 선수와의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되십니까?”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쉬들 사이로 두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PRIDE-K 때부터 느낀거지만. 정말 적응이 안되는군.’
그의 표정을 읽어낸 탁현과 예수가 한 발 앞서 나선다.
“아직 백두호 선수는 부상으로 인해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저희가 매니지먼트를 통해 추후 일정을 잡을테니. 기자 여러분들께서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두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절뚝 거리며 걷는 그의 겨드랑이에는 목발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포드탱에게 다운이 되었을 때 생긴 정강이 부상이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안정이 필요한 건 사실이기에 두호는 말없이 이동했다.
그렇게 수많은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 팀 코리안 몬스터.
“형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군요. 이 정도면 대선까지도...”
예수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입에 손을 가져다대자 준모가 짐짓 삐친 표정을 짓는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그렇게 툴툴대며 걸어가는 준모의 눈에 무엇인가 들어왔다.
수상한 행색의 사내.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입을 마스크로 가린 그.
그가 페트병 하나를 손에 쥔 체 천천히 다가온다.
일행과 점점 가까워지는 그 순간 준모가 본능적으로 두호에게 뛰어들었다.
“형님! 피하십쇼!”
사내 역시 눈에 독기 가득히 두호에게 달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