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25화 (125/204)

제 125화 : 절대 두 팔은 떨어트리지 마라.

두호는 메디컬 테스트를 마치고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예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메디컬 테스트 마지막 닥터 상담은 선수 본인만 입장할 수 있어 밖에서 대기한 것이다.

“닥터가 뭐라고 해요?”

“손목에 신경을 쓰라고 하는데.”

의사들의 공통적인 자문은 똑같았다.

두호의 왼 손목.

원래 두호의 자살기도로 인하여 그의 손목은 일반인들보다 약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거듭되는 경기와 연습의 강행군으로 그의 손목은 언제든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예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호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두호는 손목을 들어보이며 싱긋 웃는다.

“괜찮습니다.”

부상 없는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무위(武威)로써 우뚝 서려고 하는 장수에겐 상처란 훈장이다.

이 깊게 새겨진 상처는 언젠간 자신을 더욱 빛내줄 것이다.

복도를 나와 로비로 들어섰다.

기자들은 더 많아졌다.

그만큼 이번 대회가 싱가폴은 물론 동남아 격투기 팬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라는 걸 의미한다고 봐야 했다.

멈칫!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본다.

‘뭐지.’

하나 같이 놀라는 시선들이다.

그때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싱가폴 스포츠 유선채널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포드탱. 이번 경기 논타이틀이 아닌 타이틀 매치로 변환을 요구. 자신의 실력을 모두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예수가 깜짝 놀란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

논타이틀전과 타이틀 경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두호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프로경기 단 1전도 없이 챔피언에 도전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뭘 그렇게 놀랍니까?”

“대표님!”

채호가 걸어온다.

예수는 다급히 물었다.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채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싱긋 웃는다.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뜻이다.

대표가 그러니 당연히 예수는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아주 잠깐 사이에 어떤 놀라운 비즈니스가 양측 사이에 이뤄진 것이 분명했다.

“자신 있어요?”

두호가 덤덤하게 웃었다.

“물론.”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프레이저 스트리트 클럽 야외 무대에서 계체량이 시작되었다.

-킹 챔피언쉽 미들급 잠정 챔피언 백두호 선수입니다.

두호가 단상 위로 올라오며 윗도리를 벗어던진다.

드러난 몸은 군살 하나 없다.

칼로 깎아 놓은 것 같은 균형 잡힌 근육들을 보며 탄성이 흘러나온다.

-191.1 lb(파운드) 로 백두호 선수 계체량 통과했습니다.

두호가 체중계 위에서 한 손을 살짝 들어 올린다.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터져나왔고 곧 카메라 플래쉬가 단상 위로 쏟아진다.

-챔피언 마오뜨 포드탱 선수가 입장합니다.

포드탱이 단상 위로 올라서 옷을 벗었다.

그리고 쿵쿵 거리며 체중계로 올라간다.

-191.5 lb 로 마오뜨 포드탱 선수 계체량 통과하였습니다.

포드탱에게도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포드탱은 마구잡이로 백두호를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두들겨 부수고 싶다는 표정이다.

와우!

역시 포드탱!

기자들과 팬들이 소리쳤다.

포드탱 선수의 타이틀전 변환에 비판의 여론도 흘러나오고 이 매치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도 많았지만 이것 또한 흥행으로 인한 작은 잡음으로 정리되었다.

척!

처억!

두 선수가 서로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 자세를 잡는다.

“어이 한국놈, 사자를 만나면 도망가는 게 지혜야.”

자신이 사자이며 지금이라도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우린 좀 멍청해서 사자든 호랑이든 가리지 않고 그냥 붙습니다. 포 아저씨.”

포드탱의 표정이 씨벌개졌다.

“이 자식이!”

슉!

기습적으로 날아온 스트레이트.

스윽!

두호는 상체를 젖혀 피해냈다.

와아아!

그냥 지금 해라.

사람들은 당장 싸우라고 열광했다.

미들급의 거대한 폭풍이 불길 바랬던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듯 벌써부터 폭발직전이다.

그때 조나단 왕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분리시켜 놓았다.

마이크를 포드탱에게 건네주자 포드탱이 마이크를 휙 잡아챈다.

“내일 경찰차 불러놔. 저 애송이 죽여버리고 바로 자수할 거니까.”

포드탱은 거친 마이크웍(mic wok스테이지 위에서 말 솜씨 실력)을 보여준 뒤 조나단 왕에게 마이크를 던져주었다.

“넌 내 손에 꼭 죽는다.”

두호를 향해 소리치며 단상을 내려갔다.

포드탱! 포드탱!

싱가폴 현지 팬들이 더욱 날뛰며 소릴 질렀다.

***

-아. 상위 포지션을 접수하는 콴덴 선수! 최구열 선수 위기입니다-

구열의 위로 올라타 강한 파운딩을 때리는 콴덴이었다.

-쾅쾅

아래에 깔린 구열이 손을 교차하듯 모아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이미 눈가에는 긴 상처로 인하여 피가 흐른다.

때리든 맞든 눈을 떠야 하는데 흘러내리는 피로 어렵다.

구열이 바닥의 반동을 이용하여 허리를 튕겼다.

잠시 틈이 생긴다.

벼락같이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 했지만 콴덴은 재빨리 그를 따라가 그의 등을 잡았다.

콴덴의 교과서 같은 바디트라이앵글(상대의 등 뒤를 잡은체 하체로 몸을 휘감는 자세).

-지옥의 바디 트라이 앵글입니다. 이거 최구열 선수 힘들겠는데요!

등 뒤가 붙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열의 얼굴로 다시 파운딩이 날아온다.

훅훅!

구열은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그때 콴텐의 눈이 빛났다.

자신의 파운딩을 방어하느라 구열의 양팔이 벌어짐을 본 것이다.

주저 없이 목으로 향하는 손.

백초크.

목이 붙잡힌 구열의 얼굴은 더욱 새빨개 졌다.

상대의 손목을 붙여잡고 겨우 버티지만 점점 호흡이 불편해져 온다.

‘이런 젠장...’

힘들게 얻은 기회다.

기회를 놓치면 누구든 성공한 삶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구열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른다.

파팟!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옆으로 한 바퀴를 구른다.

배를 땅에 붙이는데 성공한 구열이 안간힘을 쓰며 일어선다.

땅을 지지대 삼아 한 발씩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그를 보며 콴덴은 당황했다.

‘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초크를 당한채로 일어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단단한 의지와 그 의지를 뒷받침해줄 신체가 있어야 한다.

결국 일어서는 구열이 강하게 점프를 하듯 뒤로 누웠다.

-쾅

“억!”

땅에 슬램이 꽂히듯 떨어진 콴덴이 단발의 신음을 흘린다.

구열은 자신의 다리와 팔이 자유로워 졌음을 알았다.

휙!

번개같이 몸을 돌려 주먹을 날린다.

빠아악!

크게 한 방을 허용한 콴덴이 뒤로 벌러덩 쓰러진다.

그의 위로 쓰러지듯 올라간 구열이 이번엔 역으로 파운딩을 날린다.

한 방.

두 방.

세 방째부터는 축 늘어진 콴덴을 보며 심판이 달려든다.

구열을 일으켜 세우고 경기가 끝났다는 듯 손을 좌우로 뻗는다.

-최구열 선수의 TKO 승리! 불리한 상황을 이렇게 뒤집었습니다!

사람들의 휘파람을 불며 멋진 승리를 얻어낸 그에게 열광한다.

두호의 대기실도 구열의 승리에 기뻐하는 중이었다.

“그렇지!”

“구열씨 미쳤어. 제대로 미쳤다고!”

코리안 몬스터 팀원들 모두가 소릴 지른다.

불행을 숙명처럼 안고 성장한 청년.

인간의 의지에 따라 어떻게 굴레처럼 씌워진 불행을 걷어 차버리고 일어설 수 있는지 직접 몸으로 보여준 구열이다.

덜컹!

그때 두호의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팀 코리안 몬스터 입장하겠습니다!”

준모가 거친 목소리로 기합을 넣는다.

“아자자! 코리안 몬스터 가즈아아자!”

대기실 안에 모든 팀원들이 일어섰고 저마다 두호를 위한 기합과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간다!”

“렛츠고 몬스터!”

두호를 필두로 코리안 몬스터팀 전원이 복도를 향했다.

두호가 태극기를 상의에 두르고 걸어간다.

Here we go, here we go (시작해, 시작해.)

It's my turn to make history (이건 역사를 만드는 시간이야.)

그의 등장에 싱가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큰 소리로 박수를 치며 응원한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그들의 큰 목소리가 두호의 귀에 들린다.

한국 스포츠 채널 KIG 해설진 역시 흥분한 듯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한국의 몬스터. 한국을 점령한 이후 그는 이제 아시아의 패권을 다투기 위하여 케이지 위에 올라왔습니다.

Won't stop till we're legends (전설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어.)

Won't stop till we're legends (전설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어.)

케이지 앞에 도착한 두호는 심판 앞에 섰다.

심판의 신체 검사가 끝나고 두호는 케이지 안으로 들어섰다.

백두호!

으랏차차차!~

교민과 유학생들이 핏대를 올리며 함성을 쏟아냈다.

두호는 태극기를 둘러메고 우리안의 사자처럼 느릿하게 한 바퀴를 돌았다.

Here we go, here we go (시작해, 시작해.)

It's my turn to make history (이건 역사를 만드는 시간이야.)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포드탱의 입장곡이 들려온다.

진득한 색소폰 소리와 함께 무거운 드럼소리.

어둡지만 유려한 재즈의 운율과 함께 한 사내가 등장한다.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른 채 태국 국기를 등에 메고 걸어나오는 포드탱을 향해 사람들이 소릴 질렀다.

두호 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함성.

배포 약한 선수는 주눅들기 딱 좋은 장내 분위기다.

-챔피언 마오뜨 포드탱입니다! 최강의 스트라이커인 그는 과연 4차 방어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세계가 집중하고 있습니다--

싱가폴 격투기 전문 채널 아나운서가 소릴 질렀다.

와아아아!

포드태애애앵!

포드탱은 팬들의 반응을 더 끌어올리듯 격렬하게 손을 흔든다.

팬들은 그에게 천둥같은 함성을 보내준다.

여긴 포드탱에게 홈구장이다.

자신의 커리어 전성기를 모두 담은 이곳.

밀림의 왕으로 자칭할만한 그의 팬덤이었다.

포드탱이 케이지 안으로 들어왔고 태국 국기를 벗어 세컨에게 건넨다.

두 선수는 케이지 중앙에 모였다.

심판이 룰 설명을 시작했다.

“써밍, 후두부 가격 금지, 사점 니킥 금지.”

포드탱의 시선은 심판이 아닌 두호에게만 고정되어있다.

히죽!

두호를 보며 웃는다.

두호가 마주 웃으며 한마디 한다.

“처다본다고 뭐가 달라지나?”

“뭐어어?”

달려들려는 포드탱을 향해 심판이 눈을 부라렸다.

각자의 코너로 돌아갈 것을 명했고 포드탱이 이를 갈며 돌아선다.

“포드탱 레디?”

어서 하라는 듯 포드탱은 박수를 치며 심판을 부추겼다.

“백두호 레디?”

두호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파이트!”

심판의 손이 거칠게 내려가 경기가 시작된다.

-땡

케이지 중앙으로 가는 두 사람.

터치 글러브를 위하여 두호가 손을 뻗자 포드탱 역시 마주 뻗었다.

바로 그 순간 벼락같은 포드탱의 하이킥이 날아온다.

어쩌면 비매너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선수들이 많이 활용하는 전략이다.

경기 초반 긴장감이 풀려있는 순간을 이용한 큰 공격.

쐐애액!

두호는 고개만 살짝 뒤로 젖혀 피해낸다.

슉!

두호는 잽을 뻗었다.

포드탱의 가드에 막히자 한 발자국을 내밀며 원투를 뻗는다.

이 공격 역시 단단하게 막는 포드탱.

오히려 두호의 공격이 끝나자 벼락같이 재빨리 로우킥을 집어넣는다.

-쾅

한 대의 공격을 허용한 두호가 그를 세게 밀어 거리를 벌렸다.

‘천천히.’

신중해졌다.

두호는 조금씩 거리를 줄이며 접근했다.

어느 정도에서 포드탱의 공격이 나오는 건지 거리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차분하게 한 발자국씩 고개를 흔들며 접근한다.

거리가 가까워오자 포드탱이 하이킥을 날린다.

‘지금!’

두호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 킥을 피해낸 다음 태클을 시도했다.

축발이 된 하체를 잡아 챘으며 그의 하이킥은 두호의 어깨에 얹어졌다.

“으아아!”

두호가 기합과 함께 그를 밀어붙인다.

일순 포드탱의 얼굴에 당황이 엿보인다.

‘무슨 힘이...’

다리가 들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중심을 잡았다.

두호의 어깨를 꽉 붙잡은 체 케이지 벽면에 도착했다.

그 모습을 본 탁현이 감탄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대단하네.”

준모가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우리 형님인데!”

준모가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탁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포드탱.”

“네?”

준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탁현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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