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20화 (120/204)

제 120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뜨랑크가 기우뚱하더니 바닥에 팔을 짚고 쓰러졌다.

일어나기 위해 인상을 쓰지만 충격에 자꾸 무너져 내린다.

타격으로 인한 다운이기 때문에 채수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1! 2!”

바닥을 짚고 엎드려 있던 뜨랑크가 눈을 좁혔다.

‘뭐...뭔데?’

두호의 킥은 분명히 가드 위를 때렸다.

하지만 가드 안으로 파고드는 충격은 직접 맞은 것처럼 머리 뒷부분 후두부가 흔들거린다.

“으후후!”

뜨랑크는 거친 숨을 쉬며 천천히 일어선다.

카운트는 7~8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카운트를 최대한 이용하여 회복시간을 벌고 자신의 멘탈을 가다듬는 것이다.

스파링에서도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는 뜨랑크는 베테랑이었다.

몸을 일으킨 뜨랑크는 두호를 바라보았는데 처음보다는 어느정도 몸이 안정된 눈빛이다.

“괜찮으십니까?”

“진행하시죠.”

“오케이 파이트!”

다시 두 사람은 자세를 잡았다.

‘체구의 부족함을 무게중심으로 극복해내는 타입이라.’

이런 경우의 파훼법은 하나다.

‘무게 중심을 내가 유도해야겠지.’

순식간에 두호를 향해 쇄도하는 뜨랑크.

두호의 눈이 빛난다.

슬쩍 보아도 뜨랑크의 기어가 바뀌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한 번씩 주고받았으니 이제부터가 진짜다.

퍼퍽!

두호는 달려드는 뜨랑크의 헐거운 가드 위로 원투를 때려 넣으며 뒤로 한 발자국 빠진다.

하지만 뜨랑크는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파아악!

덤프 트럭 하나가 밀고 들어오는 듯하다.

순식간에 두호를 케이지에 밀어 붙인다.

두호는 한쪽 어깨를 빼내어 주먹을 휘둘러보지만 뜨랑크의 어깨에 막힌다.

두호는 재빨리 자세를 바꿨다.

한 손을 내린 크랩가드(양발의 무게중심을 정확하게 분산한 채. 한쪽 팔을 내리고 다른 팔은 턱에 붙인 자세).

인파이팅 상황에서 큰 펀치를 골라내겠다는 계산이다.

체급적 불리함을 자신의 반사신경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이다.

뜨랑크는 살짝 비웃는다.

‘흥. 낙무아이한테 크랩가드는 밥이지.’

시커멓게 뻗어오는 뜨랑크의 손.

두호는 재빨리 앞 손 방향으로 고개를 더킹했다.

파괴력이 강한 뒷 손보다는 차라리 짧은 거리에서 나오는 앞 손을 맞겠다는 생각이다.

뜨랑크의 손이 두호의 이마를 지나 어깨를 타고 넘어간다.

뒷목을 잡아채는 뜨랑크.

무에타이의 꽃.

빰 클린치다(양팔로 상대의 목을 잡아채. 무게중심을 방해하며 공격하는 기술).

푸욱!

거침없는 뜨랑크의 니킥이 두호에게 틀어박힌다.

내로라하는 태건의 것도 맞아봤지만 뜨랑크의 빰클린치는 위력을 달리했다.

뜨랑크가 허벅지를 노리는 듯 하여 그쪽 방어체계를 갖추면 어느새 옆구리를 파고든다.

몸을 틀어 막아내려 하면 이번에는 전혀 상상 못한 목을 사정없이 흔들어 무게중심을 무너뜨려 버린다.

정상급 낙무아이가 보여주는 지옥같은 클린치에 채수의 눈이 찡그려진다.

‘정말 하이클래스구나.’

두호는 이를 악물고 몸을 바싹 붙인다.

니킥이 무서워 몸을 뒤로 뺀다면 오히려 더욱 강하게 맞는다.

그것을 알기에 바싹 몸을 붙이는 것이다.

두호가 크게 고개를 숙여 위빙(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윗몸을 앞으로 숙이고 머리와 윗몸을 좌우로 흔드는 기술)을 한다.

킥복싱에서 위빙은 좋은 판단이 아니다.

상체 공격만이 허용된 복싱과 달리 고개가 떨어지면 킥에 맞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호는 악수(惡手)임을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위빙으로 빠져나온다.

파아!

그만큼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고개가 자유로워진 두호가 오버핸드훅을 휘둘렀다.

뜨랑크는 가볍게 피해내고 다시 두호의 뒷목으로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때앵.

채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갈라놓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거친 숨을 내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직 투쟁심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한참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이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한다.

“역시 몬스터네요. 운동신경이 장난 아닙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뜨랑크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케이지에서 내려왔고 두호는 케이지에 기대어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눈을 감고 조금 전 스파링을 복기한다.

배움은 예습이 아닌 복습에서 나온다.

자신의 대처에 점수를 매겨가며 더 좋은 수를 찾기 위해 쓴다.

그 모습을 보며 채수가 미소를 지었다.

‘저 철두철미함이 진짜 재능이겠지’

채수는 두호 옆에 주저 앉았다.

“어땠습니까?”

두호가 묻는다.

“확실히 월드클래스네요.”

일본 나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파이팅 스타일이다.

나오가 부드러운 채찍 같다면 뜨랑크는 찍어 누르는 도끼 같다.

두호는 상반된 두 사람의 스타일에 자신의 움직임을 비교하고 있었다.

“특유의 원거리 단타 압박과 초 근거리에서 나오는 빰 클린치. 전형적인 낙무아이들의 타격 대처입니다.”

채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가 파훼법을 알려드릴 수 있지만 그렇다면 두호씨에게 도움이 안되죠. 직접 생각해보세요. 두호씨라면 가능할 겁니다.”

두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지 밖으로 나가는 채수를 바라보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지만 두호씨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채수의 말처럼 되지 않는다.

나오와 같은 부드러운 선수가 아닌 저런 투박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를 상대할 방법이 뭘까.

밑으로 내려온 뜨랑크의 표정은 덤덤했다.

코치가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며 물었다.

“왜 이렇게 흥분을 한거야.”

전력은 아니었지만 뜨랑크는 분명히 스파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쏟았다.

뜨랑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분위기가 묘해서.”

그것이 뭔지 모른다.

단지 싸한 느낌이 들더니 욱하며 감정이 치솟았다.

경기는 차갑게 끌어가는 쪽이 이긴다.

내용은 몰라도 분위기는 자신이 밀린 셈이다.

“뭐야. 너 왜 이래?”

코치는 약간 부어있는 뜨랑크의 옆 머리를 발견했다.

툭 건드리자 아픈 듯 뜨랑크의 눈이 찌푸려진다.

“자식 무리했구만, 기다려.”

코치는 의료용품을 챙겨오기 위해 서둘러 뛰어갔다.

뜨랑크는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가드 위를 때렸는데 붓다니.’

뒷골까지 덜렁거린 듯한 충격이었다.

뜨랑크는 케이지 안에서 눈을 감은 채 앉아있는 두호를 바라본다.

두호의 스파링 파트너로 오기전 나오에게 연락을 했었다.

자신의 커리어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스파링이라고 해도 피하는 것이 좋기에 나오에게 물어본 것이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못 이길 테니까. 지금이라도 이겨놓는 게 좋을 거야’

처음엔 장난기 많은 그의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상대해본 느낌으로는 그저 농담이 아닌 것이다.

첫 상대에서 첫 라운드만에 템포와 노림수가 따라온다.

저런 눈은 단순히 운동을 열심히 해온 것으로는 얻을 수가 없다.

‘도대체 저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온 거지’

뜨랑크가 깊은 눈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으랏차!

탁현이 기지개를 켜며 체육관 밖으로 빠져나온다.

피곤하다.

두호와 포드탱의 경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하루가 체육관에서 시작해서 체육관으로 끝난다.

“으자자.”

다시 한 번 어깨를 한껏 들어올리며 몸을 푸는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어깨를 빙빙 돌리며 주위를 돌아보던 탁현이 멈칫했다.

뜨랑크의 세컨으로 들어왔었던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는 것 같더니 타고 온 차량 뒤로 걸어갔다.

‘저 사람 뭐하는 거야.’

탁현은 조심스럽게 걸어가 바로 옆에 주차된 다른 차량으로 붙어 다가갔다.

그때 전화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확인했습니다. 여기 주소가...”

탁현이 조금 더 몸을 가깝게 붙였다.

“네. 상주하는 직원들은 총 10명이 안되는 것 같구요. 특이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직원입니다.”

사내는 직급이 높은 사람과 얘기하는 듯 연신 조심스러워 보였다.

“저녁에는 모두 퇴근하고 개인 훈련이 남는다네요. 제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탁현은 뜨랑크측에서 매니지먼트랑 통화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다음 말이 이마를 찡그리게 했다.

“콘커단(คนขอทาน 거지)이 싱가폴 들어가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콘커단!’

탁현의 이미가 더욱 찌푸려졌고 통화를 끝낸 사내는 재빨리 체육관으로 사라졌다.

***

인천공항.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제 467편기 4번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입국장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앞에는 마중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고 관광가이드로 보이는 사람들 십여 명이 러시아어로 관광사 이름을 적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시모노스키.”

“오오! 미스터 박!”

2미터는 됨직한 러시아 사내와 한국 남자가 악수를 나눈다.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중에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일상복 차림에 백인들이다.

구렛나룻도 있고 멋들어진 콧수염을 가진 사내도 있으며 질겅질겅 껌을 씹기도 했다.

보잉 선글라스를 낀 선두 사내가 핸드폰을 꺼낸다.

숫자가 잘 보이지 않는 듯 안경을 벗었는데 한쪽 눈이 흰자위 뿐이다.

그러더니 번호 하나를 눌렀다.

하지만 통화중이었고 사내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안경을 바로 했다.

“나라는 좁아터졌던데 사람은 많군.”

선글라스 사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거진 숲이 맹수들이 살아가기에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팔자수염을 한 사내가 빙긋 웃었다.

“빙고!”

일행이 공항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을 때 누군가 부른다.

“바르고프씨.”

선글라스 사내가 고개를 돌린다.

조리킨이었다.

“당신이 안내견이야?”

선글라스 사내, 바르고프가 히죽 웃는다.

조리킨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초면에 말하는 꼬라지 봐라.’

아무리 자신보다 잘나가는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초면에 반말도 아니고 개 취급한다.

“따라오시죠!”

조리킨은 가볍게 웃는다.

아랫사람은 욕하고 웃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가자고. 파트라슈.”

바르고프가 조리킨의 어깨를 툭 치며 인천공항을 벗어난다.

오랜 시간 차를 달려 바르코프 일행은 산장에 도착했다.

조리킨의 안내를 받아 온 사내들, 이른바 들개는 총 6명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바르코프는 지도를 펼쳤다.

“디지털 시대에 왠 종이 나부랭이냐고?”

조리킨을 보며 웃는다.

“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촤라락!

그때 다른 사내 한 명이 아예 벽에 지도를 펼치더니 압정으로 눌러 걸었다.

지도는 서울이다.

“프로는 실패할 때를 제대로 준비하는 거야. 사실 성공하면 준비할 것도 없지. 하지만 일이 잘못됐을 땐 우리가 죽는 것으로만 끝내야지 어떤 증거물, 즉 전자장비 따위는 아무리 박살내고 깨뜨려도 한 조각만 있으면 물건의 종류를 알아내지. 그리고 우리의 정체와 배후까지도 드러나고, 하지만 종이는 태워버리거나 씹어 삼켜 버리면 끝.”

조리킨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어도 내 뒤가 드러나면 안되는 것이 용병들의 기본 숙지사항이다.

“현재 인원은?”

“내일 저녁중으로 모든 요원이 모일 겁니다. 현재 한국에 잠복해 있는 인원 80명이죠.”

그때 산장의 현관문이 열리고 스노프를 포함해 몇 명의 사내들이 들어섰다.

답답하다며 노루 한 마리 잡아오겠다고 나갔는데 정말로 잡아왔다.

“어!”

스노프는 낯선 사내들을 보며 눈을 빛낸다.

“넌 뭐냐?”

바르코프가 물었다.

스노프 얼굴이 굳어진다.

속에서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지만 한눈에 러시아에서 온 들개들이라는 걸 간파한다.

자신은 조리킨을 지휘할 위치에 있고, 들개들에게 지휘를 받아야 하는 아랫사람이다.

“스노프.”

“모여!”

노루를 한쪽으로 내려놓고 모두가 탁자를 중심으로 앉는다.

“간단히 하지. 지금부터...”

바르코프가 벽에 걸린 서울 지도를 본다.

“뱀 사냥을 시작한다. 조심해 꽤 사나운 뱀이니까. 방심하면 우리가 물려 죽는다.”

“네!”

바르코프는 작전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조리킨은 듣기만 했다.

그런데 얘기가 길어질수록 표정이 굳어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