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19화 (119/204)

제 119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방문이 열리고 음식이 들어왔다.

기본 반찬들과 함께 양꼬치가 접시에 담겨져 나온다.

가운데 화로에 숯불이 얹혀진다.

직원은 꼬치 몇 개를 집어들어 숯불에 올려놓고는 방을 빠져나간다.

“좋은 시간 되세요!”

슥!

두호는 젓가락으로 밑반찬을 집어먹었다.

영철은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음식 나오면 밑반찬부터 먹는 것도’

도혁은 습관처럼 식당에 앉으면 밑반찬부터 먹는다.

어쩔 때는 메인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밑반찬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동생 맞네.’

영철은 올려진 꼬치를 이리저리 돌린다.

“체중 경기일텐데 이렇게 먹어도 됩니까?”

“괜찮습니다. 오히려 전 체급을 키워야 하거든요.”

오 하는 표정을 지으며 영철이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거라 생각하십니까.”

블랙러프와 옐로우 맘바의 향후 이어질 전쟁의 추세를 묻는 것이다.

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자신을 포함해 주위 사람들 상당수가 블랙러프의 공격을 받았다.

흘러가는 상황은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 추후 또다시 있을지도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가 수월하다

“큰 싸움이 날 것은 자명한데.”

쓱!

꼬치를 쥐고 젓가락으로 양고기 한 토막을 뽑더니 소스에 찍어 씹는다.

“블랙러프를 움직이고 있는 배후를 잡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일명 그림자 캐기.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거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때는 배후, 즉 의뢰인을 노리기도 한다.

용병업체들은 직접 일을 받아 돈을 벌기도 하지만 거대 투자자의 배후를 노려 돈줄을 끊는 것이다.

“미안하군. 어쩌다 자네까지 판에 끌려들어와.”

두호는 가볍게 웃었다.

“그럴수도 있죠.”

“원한다면 경호를 붙여주겠네.”

“제가 직접 노려지는 경우가 더 생긴다는 겁니까?”

“단정 지을수는 없지만 자네에게 당한 사람도 있으니. 확실하게 주위부터 다지고가는 게 이 바닥 룰이니까.”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영철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본다.

자신이 직접 공격 받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평온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무슨.”

두호는 사이다를 컵에 가득 따라 비웠다.

영철과 래진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두호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몸조심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날 보자고 했을까’

채호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전화로 말해도 될 일이다.

‘전화로 말하는 것과 대면으로 전달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아랫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두호는 버스 정류소에 멈췄다.

‘지금의 이 무자비한 전쟁이 나 때문에 일어나는 건 아닐까’

물론 증거도 근거도 없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예감이 든다.

‘죽었고, 그 바닥 떠난 지가 언제인데.’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미소를 지으며 버스에 올랐다.

부우우!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정류소를 떠난다.

훈련의 강도는 갈수록 높아진다.

단지 옛날과 차이라면 이제 몸이 혹독한 훈련에 녹아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3시간에 걸친 에어바이크 훈련이 끝난 후 두호가 자리에 앉자 준모가 슬며시 다가온다.

“형님. 어서 드세요!”

자신이 손수 뚜껑까지 열어 이온음료를 건네준다.

차를 선물해준 이후 더욱 충성을 다하는 준모였다.

하지만 무엇인가 우물쭈물하는 것이 티가 난다.

두호가 음료를 벌컥 마신 다음 입을 닦는다.

“할 말 있으면 해?”

“그 혹시...이제 저희는 필린의 마케팅 팀이랑 엮이는 일 없습니까?”

“왜?”

“아닙니다. 그냥 요새 허전하기도 해서요.”

공식적으로 이제 필린의 매니지먼트 팀을 제외하고는 엮일 일이 많이 없다.

필린의 소속이지만 행보자체는 독단적인 팀이기에 필린의 영향보다는 타 격투단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하지만 두호는 준모의 속뜻을 눈치챈 듯 헛웃음을 짓는다.

“왜 맘에 드는 사람있어?”

준모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젓는다.

“아니 그럴리가요. 저는 형님밖에 모릅니다.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날랍니다. 형님한테 시집이나 가서 인생 좀 피게요.”

두호의 입장 따위는 생각도 않는 준모였다.

“있으면 말해. 내가 물어봐줄게.”

“에이. 진짜 아니라니까요...!”

그 순간 체육관의 문이 확 열어젖히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맨 앞에는 채수가 미소짓고 있었다.

“자 이쪽으로 서시고. 코리안 몬스터팀 다 모일게요!”

체육관 사람들이 채수를 중심으로 다가섰다.

채수가 헛기침 한 번으로 목을 가다듬고 자신들이 데려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서구식 마스크에 당당한 체격, 특히 눈썹들이 진했는데 두호는 한눈에 동남아인 임을 짐작했다.

“우리 상대는 정통파 낙무아이인 포드탱이죠. 포드탱의 전략분석을 도와주실 스파링 파트너 몇 분을 초빙했습니다.”

채수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선수를 가리켰다.

“이분은 태국의 룸피니 우승자 낙무아이인 뜨랑크 선수입니다.”

뜨랑크가 양손을 가드를 하듯 모은 채 모두에게 고개숙여 인사했다.

주민이 슬쩍 탁현에게 묻는다.

“룸피니가 뭐야? 처음 듣는데?”

“태국 현지 무에타이 대회입니다.”

태국에는 수많은 무에타이 대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유명하고 정통성있는 대회를 꼽으라면 두 가지가 존재한다.

룸피니와 라자담넌.

두 대회 모두 국가 단위로 열리는 대회이다.

룸피니는 태국 육군 주최 그리고 라자담넌은 태국 왕실 주최이다.

포드탱은 왕실 주최 대회 챔피언.

뜨랑크는 육군 주최 대회 챔피언.

포드탱과 태국에서 1,2등을 다투는 무에타이 선수인 셈이다.

나머지는 그의 세컨들이다.

뜨랑크가 두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는데 두호 또한 환한 표정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두호는 따뜻한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

“자 곧바로 스파링 준비하겠습니다!”

양쪽 모두 스파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 사이 탁현이 채수에게 다가온다.

“너무 큰 것 아니야?”

미들급 보다는 라이트 헤비에 가까울 정도로 거대한 선수이다.

얼핏보면 미스매치로 보일 정도였다.

채수는 고개를 젓는다.

“킹 챔피언쉽 미들급은 모두 포드탱의 파워에 눌렸어. 저 정도 체급은 몸으로 받아줘야지.”

두호의 방어력의 증진과 포드탱의 파워를 대비하기 위한 셈이었다.

“아무리 그래플링으로 싸움을 건다 해도. 결국은 타격을 섞어야 해.”

일리가 있다는 듯 탁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호와 뜨랑크가 마주 보는 사이로 채수가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킥복싱 입식룰이 진행되는 사각링이 아닌 케이지였다.

케이지 안에서의 경기는 처음인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뜨랑크였다.

“입식룰로 하겠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니 전력의 80~90% 정도는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장비는 정강이와 헤드기어만 착용하겠습니다. 준비 됐으면 코너!”

두호와 뜨랑크는 모두 각자의 자리로 걸어갔다.

채수가 경기시간 타이머를 맞추는 탁현을 바라보며 확인한다,

“시작할게. 녹화 되고 있죠?”

주민은 팔을 머리 위로 동그랗게 말았다.

준비됐다는 사인이다.

“자 파이트!”

채수의 손이 거침없이 내려간다.

-때앵!

두 사람이 천천히 거리를 조여간다.

여전히 미소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가오는 뜨랑크.

두호는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나더니 옆으로도 움직인다.

거리를 맞추려는 것인데 쉽지 않다.

휙!

뜨랑크의 발이 눈앞에서 사라지듯 날아온다.

두호가 움찔하듯 팔을 귀 옆으로 갖다댄다.

-쾅

두호의 발 한쪽이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파워였다.

이어지는 완벽한 단타 압박.

-뻐억!

무에타이 특유의 묵직한 단발성 하이킥은 가드 위로 막았는데도 팔이 울릴만큼 강력했다.

두호의 눈이 좁혀진다.

‘뭐지. 분명히 거리가 충분했는데.’

신체조건이 자신보다 월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인하여 이 정도의 거리는 분명히 타격거리가 아니다.

속임수를 쓴 건 아닐테고.

두호의 눈이 뜨랑크의 양 발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뜨랑크는 두호의 눈이 좋다는 걸 알아차렸다.

보통 선수들은 지금처럼 기습 발차기에 맞으면 거의가 무예타이 선수니까 잘 차는 거겠지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두호의 눈은 뭔가를 찾고 있다.

맞지 않을 거리에서 맞았기 때문이다.

뜨랑크는 자신의 수법을 간파하려하는 두호의 표정을 보며 흥미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

‘눈만 좋은게 아니라 눈치도 좋네.’

두호의 걸음이 좀 더 빨라진다.

방금전 엄청난 공격을 보인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는 뜨랑크.

스슥!

뜨랑크는 저지하려는 듯 짧은 로우킥을 날렸지만 두호의 경쾌한 스텝에 허공을 쳤다.

뜨랑크가 당황한 표정이었다.

슈슉!

훅!

두호는 더블잽에 이어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던진다.

팔을 깊게 얼굴을 두르는 롱가드를 하며 뒤로 물러나지만 결국 뒷손은 가드에 꽂힌다.

이후 거리가 멀어지자 상대의 바깥 허벅지를 걷어차는 두호의 로우킥.

-퍼억

자신이 당한 하이킥을 갚아주려는 듯 두호의 오른발이 이번엔 그의 머리를 향한다.

빠른 속도로 날라가는 두호의 하이킥.

이번엔 뜨랑크의 눈이 빛난다.

순식간에 자신의 팔을 뻗어 겨드랑이로 두호의 킥을 받아낸다.

이후 두호를 자신의 품으로 당겨내며 두호의 축발인 왼발을 쓸어찬다.

빡!

몸이 붕 뜨며 바닥으로 떨어진 두호.

-쾅

탁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감탄한 표정을 짓는다.

“미친 잡카 테크닉이네.”

잡카.

잡카는 기본적으로 킥을 손으로 캐치해내는 기술을 뜻한다.

킥을 캐치해 낸 이후 자신의 공격 흐름으로 돌리거나 상대의 공격을 끊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챔피언인 두호에 공격을 읽어내며 하이킥을 순식간에 받아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을 능력.

뛰어난 반사신경에 정확한 타점을 보여주는 뜨랑크였다.

입식룰은 선수 하나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면 코너로 돌아가야 한다.

두호 역시 큰 데미지는 입지 않았기에 금세 일어났다.

그러나 표정은 불편해 보인다.

‘실전이었다면 그대로 상위 포지션을 내준 셈인데.’

무에타이의 파괴력과 그의 농익은 경험이 만들어낸 경지.

두호는 코너로 돌아가 채수에게 진행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를 재개했다.

두 사람은 처음처럼 다시 거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슈웅!

다시 단발성 하이킥을 차보는 뜨랑크.

두호의 반응이 이번에는 달랐다.

단 한 걸음.

단 한 걸음을 옮겼지만 순식간에 거리는 좁혀졌다.

두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역시.’

뜨랑크의 수법을 간파해낸 것이다.

오른발 하이킥을 차기 직전 축발을 더욱 깊게 내민다.

이러면 상대는 자신이 맞지 않아야 할 거리라고 판단했지만 실제로는 타격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는 스텝을 밟은 것이니 맞게 된다.

두호는 그것을 간파해낸 것이다.

뜨랑크의 표정이 굳어진다.

‘벌써?’

한 번 보여줬을 뿐이다.

이해는 하더라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선수는 순식간에 파훼해낸 것이다.

그때,

쉬익!

두호의 발이 뜨랑크의 왼쪽 다리로 날아 들었다.

뜨랑크도 하단 카프킥을 두호의 고정된 다리를 향해 날렸다.

두호의 축발을 비틀어 충격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었다.

날아오르듯 점프하는 두호의 왼발.

-쾅

태권도의 나래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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