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16화 (116/204)

제 116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래진은 술병을 옆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중동이나 아프리카가 아니다. 분단국가지만 이곳처럼 평화로운 곳을 찾기가 힘들지.”

사내들은 신중해진다.

“9mm 이하 권총. 나이프 한 자루. 이 이상의 무기는 사용을 금한다.”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는 총소리 한 발만 나더라도 패닉에 빠지며 그 근처 경찰과 군대로 신고가 접수될 것이다.

“방탄복은 직접 교전때만 입을 거야. 밖에서는 이목이 집중될 테니까. 작전은 밤에만 시행한다.”

영철이 손을 든다.

말하라는 듯 래진이 고개를 까닥한다,

“시체는 어떻게 합니까.”

“왠만한 건 우리가 치우기로 하지.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여기 현지 청소 업체랑 연계할 거야. 그럼 정비 마치고 10분 안에 밖으로 집결한다. 빨리 챙겨 나가자고.”

사내들은 각자의 무기를 찾으러 흩어졌다.

래진은 자신들이 즐겨 사용하는 총기를 찾는 사내들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멈췄다고?”

래진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장소는?”

-강원도 정선입니다.

“오 케이.”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보스.

래진이 전화를 끊었다.

***

검은 천막이 쳐져 있다.

그 앞으로 긴 의자가 놓여 있고 두호가 앉아 있다

책상 위에는 마이크가 세워져 있으며 맞은편 아래에는 스텝들이 카메라 설치와 중계 화면을 모니터링하기 바쁘다.

그리고 너머에 오십여 명의 사내들이 노트북을 펼쳐 놓고 앉아 있었다.

“이번 포드탱 선수와 담화가 끝나면 기자회견을 열겁니다. PRIDE-K 이후 국내에서는 제일 볼만한 게임일 테니까요.”

예수가 두호의 옆에 와 살짝 자세를 낮춘다.

“순서는 똑같습니까?”

“네. 대회 때랑은 똑같지만 중간에 두분이서 독대하는 상황이 있을거에요. 매치 자체가 흥행요소이기도 하니 굳이 자극적으로 하지는 않으셔도 된다는 게 저희 입장입니다. 염두에 두세요.”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예수는 물병의 뚜껑을 따주고 내려간다.

두호는 물을 마셨다.

“방송 시작합니다!”

기자들은 모두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린다.

설치된 스크린에서 상대 선수와 킹 챔피언쉽에 메인 MC가 등장했다.

양국에서 모두 열리는 화상 기자회견인 것이다.

이윽고 먼저 두호의 경기 화면이 보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두호는 PRIDE-K의 경기 화면이 전부였다.

그것 말고는 누군가와 경기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에 반해 포드탱은 거의가 챔피언전 화면들로 경기 이력에서부터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둘 사이의 커리어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포드탱 선수 챔피언으로서 백두호 선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진행자가 묻는다.

아무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포드탱이 헛웃음을 짓는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장난하십니까?”

“네에?”

“킹 챔피언쉽에서 미들급 선수만 60명이 넘어갑니다. 근데 한국 변방에서 서커스 매치 우승한 선수 하나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저랑 붙는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포드탱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챔피언은 아무랑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이 매치는 킹 챔피언쉽에 모든 선수들을 모욕하는 경기인 셈이죠.”

사실 포드탱의 입장 역시 이해가 되었다.

자신 역시 데뷔 이후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며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지금의 위치를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겠는가.

그러나 그런 과정도 없이 단순히 흥행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이런 매치의 도구로 사용하니 속에 천불이 나는 것이다.

방송만 아니었다면 쌍욕을 박을듯한 그의 표정이었다.

진행자가 미소 지으며 이내 두호가 있는 곳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럼 이번에는 백두호 선수에게 묻겠습니다. 이번 포드탱 선수를 상대하시게 됐는데 어떤 기분 이신가요?”

두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그리고 입을 닫는다.

사실 뚜렷하게 할 말이 없었다.

“논 타이틀 매치이니 순서를 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친선매치에 감정은 더욱 섞을 필요는 없고.”

포드탱을 점잖게 자극한다.

씨익!

화면이 포드탱을 잡았는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죽여달라고 사정을 하는구만. 애송이 새끼가.”

“미스터 포드탱, 사람을 죽여 본 적 있으십니까?”

두호의 역공이다.

항상 부드럽고 점잖기만 하던 두호가 사람죽여 본 적 있냐고 묻자 포드탱이 멈칫했다.

“킬러는 떠들지 않고 죽이지.”

히죽!

두호는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한쪽으로 꺾어놨다.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다는 행동이다.

벌떡!

포드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집어 들고 욕을 퍼부으려 했다.

현지 진행자는 재빨리 사인을 보냈고 화면은 꺼졌다.

파팟!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조명이 들어온다.

“백두호 선수! 이 매치의 성격이 친선경기가 아니었습니까?”

“만약 포드탱 선수를 이기신다면 킹 챔피언쉽에 정식적으로 챔피언 자리를 요구할 것입니까?”

두호는 그만하자는 듯 손을 들어 사인을 보내고 일어나 돌아섰다.

“이길 자신은 있습니까? 상대가 너무 강하잖아요.”

“한국선수로서 자존심을 걸었다고 봐도 될까요?

채호가 질문을 던진 기자를 살짝 쳐다본다.

이윽고 두호는 회견장에서 사라졌다.

“형님. 너무 자극적인 표현 아니었습니까?”

사람 죽여 본 적 있느냐는 질문은 확실히 훗날 파장을 몰고 오긴 했다.

“머리 좀 굴렸어.”

“네?”

“너무 조용하면 파리들이 달려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파리가 달려들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얼마 전부터 블랙러프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자신을 노렸다.

-사람 죽여 본 적이 있냐.

-킬러는 떠들지 않고 죽인다.

그건 경고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살인 통첩이다.

난 격투기 시장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내 삶의 평화를 깨뜨리지 마라.

“래진 선배?”

“바쁜가 봅니다. 뭔가 벌어지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두호는 핸드랩을 감기 시작했다.

훈련을 이길 상대는 없다.

오직 훈련인 것이다.

***

별빛이 쏟아진다.

재개발이 멈춘 뒤 폐허로 남아버린 동네 한가운데 허름한 공장 하나가 있었다.

얼마전까지 이 동네 경제력의 한 축이었던 인쇄소였다.

버리고 간 기계와 종이부스러기들이 굴러다니는 곳에 삼십여 명의 사내들이 모여있다.

하나같이 검은 항공점퍼에 안으로는 두꺼운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며 작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콰앙

두꺼운 인쇄소 철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사내들은 반사적으로 바닥에 놓아둔 총기들을 잡았다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피범벅이 된 사내.

얼마 전 래진에게 붙잡혔다 풀려난 사내였다.

퍼어억!

사내는 몇 걸음 더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서 엎어졌다.

“이 새끼 꼴이 왜 이래.”

“눈 떠봐!”

방탄조끼를 입은 사내중 한 명이 엎어진 사내를 반쯤 일으켜 앉혔다.

“정신 차려. 무슨 일인데?”

사내는 더듬거리며 래진과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당한 건 당한 것이고, 얘기인 즉, 현재 박래진이 혼자 있다는 것 아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래진만 잡으면 끝나는 게임, 수고 했어.”

탕!

사내에게 권총 한 발을 먹인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되지. 널 잊지 않으마.”

그리고 우두머리는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박래진이 잡으러 간다.”

피육!

바람소리였다.

그런데 박래진이 잡으로 간다며 소리친 우두머리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흩어져!”

누군가 소리쳤다.

귀를 후벼파는 듯한 소음기 소리가 콩 볶듯 쏟아졌다.

-푸슉

-푸슉

어디서 쏘는지도 확인이 안되는 상황에 산개는 의미가 없었다.

컥!

허걱!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우왕좌왕하는 사내들은 패닉에 빠진다.

쉬익!

사내들은 일단 엄폐물을 찾아 숨었다.

‘뭔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기둥 뒤에 숨어 어둠속 적을 찾으려 눈에 힘을 줘보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건 없다.

“뭘 그러게 두리번거려.”

자신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자신의 목뒤에서 서늘한 촉감이 느껴진다.

총구다.

사내는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린다.

“조끼 벗고, 앞으로 총 던져.”

사내는 자신이 들고 있던 총을 앞으로 던졌고 입고 있던 방탄조끼도 벗어 던진다.

“이제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젠장.”

콰아앙!

폭음과 함께 라이트를 켠 지프 한 대가 들어섰다.

강력한 불빛에 공장 내부가 훤히 드러났고 사로잡힌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자신의 동료들이 거의 다 시체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양안식 야간 투시경을 쓴 사내들이 보인다.

그들은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질질 끌어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이 들고 있는 권총으로 시체의 머리에 확인사살을 하기 시작했다.

-푸슉 푸슉

덜컹!

그때 차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내렸다.

저벅저벅!

강력한 라이트를 등지고 다가오는 사내.

쿵!

사내는 굴러다니는 드럼통 하나를 밀고 오더니 그 위에 걸터 앉는다.

래진이었다.

“사망자 서른세 명, 생포 일곱 명입니다.”

“살려 둬봤자 쓸데도 없을텐데.”

생포하지 말고 모두 죽여버리지 그랬냐는 투다.

래진은 고개를 돌려 머리 뒤에 총구를 달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래진이 담배를 물고 라이터가 없는 듯 주머니를 뒤지자 영철이 천천히 다가와 불을 붙여준다.

후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은 래진이 눈을 크게 떴다.

“오우! 조리킨!”

우두머리의 사내 이름은 조리킨이었다.

“어떻게 알았소. 우리가 여기 있을거라는 걸?”

“상처 입은 개는 주인을 찾아가는 법.”

조리킨의 표정이 굳어진다.

조금 전 철문을 열고 쫓겨 들어온 사내의 뒤를 밟았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래진이 혼자 있다는 정보를 갖고 온 것이 아니라 이들을 여기까지 안내한 꼴이었다.

래진이 담배를 문 채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자동차 라이트가 꺼지고 공장은 어둠 속에 묻혔다.

“긴밀한 얘기를 나누는 데는 어두운 곳이 좋지.”

담뱃불이 선명해지며 래진의 얼굴이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툭!

래진이 담배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드럼통에서 일어섰다.

스윽!

래진이 왼쪽손을 뻗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찰리요원중 한 명이 적외선 투시경을 건네준다.

투시경을 얼굴에 뒤집어쓴 래진이 조리킨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이 어디였더라. 아 맞아. 자란즈였군, 그렇지 않소?”

자란즈는 아프가니스탄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다.

자란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란과의 국경도시의 역할을 하며, 이는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중동을 잇는 중요 무역로인 것이다.

그리고 자란즈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이름 하나가 있다.

황금의 초생달 지대(Golden Crescent)라고 부른다.

파키스탄 이란과 접경지이며 여기서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아편의 90퍼센트가 생산된다.

미군은 탈레반의 군자금줄인 아편 생산을 막기 위해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당시 미군을 대신해 수많은 용병 직원들이 현지인들의 아편 재배를 막기 위해 투입되었다.

그때 옐로우맘바 역시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조리킨은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이다.

“왜 나를 쫓은 건가? 그리고 블랙러프의 궁극적인 목적이 뭐요?”

래진이 물었다.

조리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편한 건 아니다.

막다른 골목이다.

빠져나갈 길은 없다.

그야말로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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