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15화 (115/204)

제 115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그는 용병이 아닌 운동선수 아냐. 요즘은 용병들이 격투기 산업에까지 관여하는 건가?”

“잘 모릅니다. 그냥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사내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걸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래진의 이마가 찌푸려지고 의자 끝에 걸친 엉덩이를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깊숙이 앉는다.

래진의 눈에서 섬광이 피어났다.

뭔가 느낌이 온다.

툭!

래진은 사내를 매달아 놓은 밧줄을 끊었다.

퍼억!

사내는 사정없이 떨어졌다.

래진은 묶인 손과 발을 모두 풀어주었고 이내 머리를 툭하니 쳤다.

“박래진이도 변했군. 적을 살려 보낼 때가 있다니...안가?”

사내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피를 윗도리를 벗어 막고 비틀거리며 멀어져 간다.

‘도망치는 개는 가장 먼저 주인을 찾아간다’

래진은 핸드폰을 꺼내고 번호를 눌렀다.

“택배 출발했어. 잘 지켜봐.”

전화를 끊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문다.

‘비가 오려나.’

동쪽으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한참을 서서 담배를 피우던 래진이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물끄러미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는데 이마를 찡그렸다 펴고, 눈썹을 오므리더니, 이번에는 어금니를 물며 한숨을 뱉는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한 듯 번호 하나를 길게 눌렀다.

“YMB 2012, 지금부터 명령 하달한다.”

래진은 누가 엿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을 반복해서 했다.

***

달랑 조끼 하나 걸치고 두호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입에 실리콘 마스크가 달려있다.

또한 몸에는 심박수를 측정하기 위한 기구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는데 이름하여 무동력 트레드밀(treadmill).

일반적인 런닝머신이 아닌 자신이 직접 발로 밀듯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일 분 더! 다리 더 올리고!”

탁현의 거친 음성에 두호는 이를 악물었다.

예수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훈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두호가 입고 있는 것은 중량조끼 10KG이다.

일반인들은 맨몸으로 달려도 힘들 테지만 심폐능력의 한계를 측정하기 위하여 중량조끼를 착용한 것이다.

더군다나 실리콘 마스크가 호흡을 방해한다.

일반인들은 10분을 못 버틸 훈련을 지금 두호는 30분째 이어가고 있었다.

탁현은 스톱워치와 트레드밀 전광판에 나타나는 수치를 번갈아가며 확인하고 있었다.

“그만!”

이내 두호는 고개를 축 떨어트리며 마스크를 벗어던진다.

웬만해서는 힘든 내색을 않는 두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바닥으로 내려서는 두호가 잠시 휘청했다.

주민이 두호에게 다가가 기구들을 떼어내고 조끼를 벗긴다.

그리고 커다란 수건으로 두호의 땀을 닦았다.

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체크리스트의 두호 기록을 살폈다.

“수치상으로는 확실히 괜찮습니다. 체력적인 부분은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체력은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 관리는 잘 해야 합니다.”

벌러덩!

두호는 끝내 바닥에 누워버렸다.

주민은 황급하게 두호의 다리와 허리부분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최대치를 끌어내야 하는 훈련은 몸의 무리를 수반한다.

주민은 두호의 부상방지를 관리하는 사람이기에 그 역시 구슬땀을 흘리며 두호의 몸을 풀어주고 있었다.

채수가 슬쩍 다가와 탁현의 체크리스트를 살펴본다.

“어때?”

탁현이 피식 웃는다.

“이 정도 체력이면 격투기가 아니라 철인 3종을 나가야지.”

“그 정도야?”

채수 역시 밝게 미소 짓는다.

어느 분야에 운동이든 심폐활량과 체력이 좋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이점이다.

모든 기술은 체력 위에 쌓는 법.

극한의 상황을 더욱 수월하게 견뎌내는 것이야 말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두호의 신체 능력은 프로들 중에서도 탑 클래스다.

‘저런 신체 능력과 지능. 그리고 기술이 완성된다면 아마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파이터가 되겠지.’

탁현은 경의로운 표정으로 두호를 바라보았다.

이번 경기의 주요 전략에는 체력적 우위가 필수조건이다.

그렇기에 지금 두호의 체력은 기분 좋은 청신호다.

두호가 손을 들어 주민에게 그만해도 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나 좀.”

거의 탈진에 가까운 상황이라 아직 말이 힘든 두호.

주민은 조심스럽게 두호를 일으켜 세워 앉혔다.

예수가 전화기를 집어넣으며 두호에게 다가왔다.

“두호씨. 코치님들.”

모두가 예수에게로 시선이 돌아간다.

두 명의 보강된 코치들이다.

두호는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킹 챔피언쉽 경기 일정 나왔습니다.”

올 것이 왔다는 듯 갑자기 긴장이 흐른다.

“9월 22일. 두호씨 경기 시간은 저녁 10시입니다. 그리고 경기장은 싱가폴 프레이저 스트리트클럽에서 열릴 겁니다.”

주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페이저 스트리트클럽?”

탁현이 싱긋 웃으며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한국 장충 같은 곳이야. 원정 훈련장은 픽스 됐습니까?”

“아니요. 이제 섭외 나서야죠. 필린 측에서 해결해준답니다.”

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트레이닝 캠프를 꾸리지 않는다면 3일 정도 전 미리 입국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시차적응도 해야하고 몸의 컨디션을 일깨우는 웜업 트레이닝도 진행을 해야하기에 훈련장과 숙박을 최우선적으로 해결을 해야한다.

“이번 페이스 오프는 경기 전날이지만 마오뜨 보드탱 선수와 화상연결로 현지 언론이 인터뷰 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두호에게 PRIDE-K처럼 좋은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 그리고 대표님께서 현재 두호씨 몸 상태를 주 단위로 보고 해달라고 하십니다.”

탁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작성한 체크리스트를 예수에게 넘겨주었다.

예수는 꼼꼼히 서류를 살펴보았다.

‘현재 몸무게 87KG...’

계약 체중에는 맞지만 평균 체중으로서는 굉장히 부족하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별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예수가 탁현에게 싱긋 미소 지었다.

“좋아요. 아차! 대표님께서 연락 한 번 달라고 하십니다.”

두호를 향해 말했다.

두호는 여전히 대답할 힘도 없다는 듯 듣기만 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두호는 전화를 걸었다.

“전화하라고?”

-예수님한테 이번 대회 경기 일정 안내는 받으셨죠?

“들었지.”

채호는 앞서 예수를 통해 들었던 내용들을 다시 말하고 있었다.

“알고 있어!”

잠시 채호가 말을 멈췄다.

“말해?”

두호는 채호가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시간을 분 단위, 아니 초 단위로 쪼개어 쓰는 그가 예수가 전달한 내용을 재탕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박래진 보스가 한국으로 철창문을 열었습니다.

두호의 눈썹이 약간 찌푸려진다.

자신은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입은 달리 반응했다.

“어느 뱀으로?”

부대의 특성으로 작전의 성격을 알 수가 있었다.

“찰리입니다.”

잠시 전화기를 들고 있던 두호는 통화를 끊으며 거울 앞에 섰다.

아무말 없이 거울을 바라보는 두호.

찰리는 살인기계들이다.

아프리카의 집요한 사냥꾼 리카온이다.

리카온은 아프리카 맹주중 사냥 성공률이 가장 높은 맹수이다.

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 뭔가 크게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염려되는 것이 있다면 한 가지다.

분위기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용병이란 대리전쟁을 해주는 부류다.

한국에서 누구를 대신해 누구를 죽이는 피의 대리전이 벌어질까.

자신도 모르게 이 피의 강에 끌려들어갈까 염려되는 것이다.

마음은 모르고 담갔다고 해도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뺄 자신은 있다.

그런데 세상일이 어찌 그렇게 쉽게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던가.

두호는 까닭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

텍사스의 어느 목장의 마굿간을 옮겨다 놓은 듯한 허름한 바(bar).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쥐어짜는 목소리가 가게를 울리고 구레나룻 가득한 중년의 사내가 바 너머에서 유리잔을 닦고 있었다.

클래식한 흰색 셔츠에 가죽 베스트.

가게부터 옷차림까지 텍사스 문화에 진심인듯한 사내였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살짝 어깨를 흔들기도 하였다.

-짤랑

가게로 십여 명의 사내들이 들어온다.

구레나룻의 사내는 손님들을 향해 밝게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인사도 잠깐 사내는 잔을 닦는 것에 열중이다.

타탁!

사내들이 바에 자리를 잡고 앉고 나서야 구레나룻은 고개를 들었다.

“어어!”

구레나룻의 사내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길게 호흡을 다잡는다.

뛰는 가슴을 진정한 구레나룻의 사내는 바에 앉은 사내들을 살폈는데 눈동자가 흔들린다.

위험해 보이는 사내들.

민머리에 뱀 문신이 있는 사내가 있었고, 덩치가 2미터는 되어보이는 흑인도 있다.

그러나 맨 앞에 있는 사내가 주는 위압감은 가히 걸작이었다.

그중 왼쪽 눈 위로 길게 난 칼자국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어...어떻게?”

전혀 모르는 얼굴은 아닌 모양이다.

눈 위로 칼자국이 난 사내가 손을 내민다.

탁!

그릇을 닦던 구레나룻도 손을 뻗어 마주 잡았다.

“반갑습니다.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걸 보니 내 마음이 다 좋습니다.”

칼자국 사내의 이름은 부영철.

옐로우 맘바 팀 찰리의 캡틴이자 과거 도혁의 동료였던 사내였다.

바에 앉은 사내들 모두 옐로우 맘바 찰리팀이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근데 한국에는 어쩐 일로?”

“철장문 열렸소. 우리 물건을 좀 꺼내갈까 하는데.”

구레나룻의 사내 이름은 박태일이다.

이곳 바는 옐로우 맘바가 아시아권에 설치한 다섯 개의 비밀 아지트중 하나다.

박태일은 과거에는 현장 요원이었지만 부상으로 왼쪽 다리가 불편하게 되어 비밀아지트 관리자로 살아가고 있다.

박태일은 바의 작은 문을 밀고 나와 가게 입구로 걸어갔다.

가게 문을 닫더니 오픈(OPEN)이라고 써진 팻말을 클로즈(CLOSE)라고 갈아 끼웠다.

오늘 장사 종료.

이내 문을 잠근 그는 가게 왼쪽 벽을 밀었다.

그냥 벽인줄 알았는데 쑤욱 들어가며 작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고 또 하나의 손잡이 달린 문을 열자 창고가 나타났다.

탁!

입구에 달린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켰다.

불 켜진 창고 안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다.

술집답게 캔터키주 버번이나 고상한 90도짜리 폴란드 보드카 스피리터스가 담긴 상자는 단 한 개도 볼 수가 없다.

창고 선박과 벽에는 수많은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왔구만.”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래진이 투명한 술병 하나를 들고서 웃는다.

“보스!”

“그것 뭡니까? 맨날 맛있는 건 혼자 드시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음을 쏟아 낼 것 같은 사내들이 래진을 발견하고 금세 흐트러진다.

“오 마이갓, 스피리터스 보드카 96.5.”

“아니 술이라고 그걸 또 드시네.”

래진의 손에 쥐어진 술병은 알콜 도수 96.5도 짜리 스피리터스 보드카였다.

하나 같이 한 술 한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한 모금 달라고 청하지 못했다.

뜨거운 불덩이가 목구멍을 태우며 들어갈 때는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 거린다.

익숙해져 보기 위해 여러번 시도를 했지만 도무지 뜨거워서 마실 수가 없다.

한 입 마신 래진이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캬. 지금부터 쥐 새끼들 사냥을 시작한다.”

찰리 팀원들이 모두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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