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10화 (110/204)

제 110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네 사람은 원장실에 앉았다.

황성태는 커피포트의 물을 올리고 세 사람을 대접하기 위한 차를 준비했다.

예수는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촐한 듯 보이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방과 은은하게 맡아지는 차 향이 이곳을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봅니까. 난 하나도 볼 것 없는데.”

준모가 열심히 둘러보는 예수를 향해 물었다.

예수는 대답대신 두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호씨는 여길 어떻게 아세요?”

“형이 과거에 신세 진 곳입니다.”

두호가 형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예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호씨 형이 있었어요?”

두호는 대답 없이 그저 미소지을 뿐이었다.

“차들 들어요.”

각자의 앞에 놓인 잔에 황성태가 옅은 분홍빛 녹차를 따라주었다.

“땀 좀 흘렸더군.”

이번 PRIDE-K 의 결승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제가 아직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황성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국은 딛고 일어섰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어떠한 가르침보다 큰 걸 해낸걸세.”

“감사합니다.”

간단한 근황이 오고 갔다.

두호는 슬그머니 예수와 준모를 바라보았다.

황성태와 긴밀히 할 말이 있는 듯 하자 예수가 이를 눈치챘다.

준모를 바라보며 고개짓을 하였다.

그녀는 싱긋 미소 지으며 황성태에게 인사하였다.

“저랑 준모씨는 성당 구경 좀 하겠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어리둥절한 준모의 팔을 끌며 예수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쭈욱!

두호는 소리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쭤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두호는 자신의 가방에서 칼 한 자루를 꺼냈다.

-달그락

황성태는 눈을 좁히며 칼을 바라보았다.

비티아즈였다.

“뭔 칼인가?”

“얼마전...”

두호는 수미의 파전 집을 나서며 괴한에게 습격당했음을 알려주었다.

황성태는 팔짱을 끼며 두호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황성태는 칼을 잡아 들어보았다.

완벽한 무게중심과 날카롭게 벼려진 칼은 러시아가 자랑할만한 무기였다.

두호는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혹시 비티아즈를 사용하는 단체가 있습니까?”

“흠...”

황성태는 두호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네가 이렇게 관심가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엄연한 스포츠 선수이다.

이런 일은 필린과 경찰이 공조하여 해결할 일이다.

그런데 파고드는 두호의 행동이 궁금하다.

“도혁이 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호의 말에 황성태는 눈을 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질문이라면 나보다 다른 사람한테 듣는 게 좋겠구만.”

두호는 무슨 말인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덜컹!

그 순간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래진이었다.

황성태의 맞은편에 앉은 두호를 보며 래진이 헤벌쭉 웃는다.

스윽!

래진은 손을 내밀었다.

“이야. 귀한분을 이런 누추한 곳에서 보다니요.”

두호의 이마는 더욱 찡그려 졌고 황성태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어째서 래진이 황성태를 알고 있으며 또 여기에 있는가.

래진은 자신이 내민 악수를 받지 않는 두호를 보며 머쓱한 듯 머리를 매만진다.

“자네한테 소개시켜주려 했네.”

저쪽은 용병이고 자신은 운동선수다.

싸움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엄연히 음지와 양지로 나뉘어져 있다.

저쪽은 승부 자체가 중요하지만 자신들은 승패를 추구한다.

결과도 다르다.

용병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마지막 결말이라면 스포츠는 쓰러뜨리는 것에 히팅 포인트가 있다.

비슷한 듯 하지만 분명히 다른데 그런 용병을 왜 소개시켜주려 하는 것일까.

“래진이, 도혁이 동생이라네.”

래진은 화들짝 놀라며 두호와 황성태를 바라보았다.

“도혁이에게 동생이 있었단 말입니까?”

황성태가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다면 래진은 자신이 직접 활동할 때의 스승이다.

기본기를 가르친 사람과 실전을 가르친 사람.

“친형은 아니지만 아주 친하게 지낸 동생입니다.”

두호는 나직하게 말했다.

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악수를 내밀었다.

“과거 직상 상사였다. 이렇게 보니 반갑구만.”

“네. 감사합니다.”

“일단 다들 앉지.”

래진이 자리에 앉자 황성태가 찻잔 하나를 새로 들고 왔다.

래진의 앞에 잔을 놓고 차를 따르려하자 잽싸게 손을 저었다.

“어우. 저는 차 싫습니다.”

래진이 생각하는 황성태의 녹차는 이맛도 저맛도 아닌 이상한 물이다.

마셔도 어떤 느낌이 없다.

“두 분은 어떻게 아는 사인지?”

두호가 묻자 황성태는 깊은 눈으로 래진을 바라보았다.

“쉽게 가도 될 듯 싶네. 도혁이도 알고 있으니.”

편하게 래진이 네가 말해 주어라는 뜻이다.

“네... 그럼.”

래진은 팔짱을 끼었다.

“나는 자네 형인 도혁이 몸담고 있던 옐로우 맘바의 3대 보스이고. 이분이 1대 보스이시다.”

두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황성태를 바라보았다.

“네에에에!”

두호는 소스라쳤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가장 궁금했던 황성태의 과거.

젊어서 한때 주먹하나 믿고 세상을 떠돌았다.

고수를 찾아 때리고 무너뜨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들었다.

하지만 엘로우맘바의 초대 보스라니.

“어렵게 생각할 것 없네. 그냥 나도 사람이었고 종교에 몸 담기 전까지는 자네들 말처럼 화끈하게 인생 경험했으니.”

황성태는 느릿하게 찻잔을 들어 마신다.

두호는 눈만 깜빡거렸는데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래진도 습격을 받았고 두호도 하마터면 위험해질 뻔했다.

“분쟁지역에서도 아닌 곳에, 더구나 치안 하나는 분명한 대한민국에서 총과 칼로 가차없이 공격했다는 것이 도무지 짐작이 안됩니다.”

황성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병일을 하다보면 왕왕 의뢰인의 안전을 위해 화(禍)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이나 개인을 미리 공격하여 제거해버리는 수법이 있긴하다.

하지만 남미나 중동, 아프리카처럼 분쟁지역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노골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건 뭔지 몰라도 골치 아픈 일임에는 분명했다.

툭툭!

래진은 벙거지 모자를 벗어 툭툭 털었는데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것에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과거 훈련하던 뒷산 공터에 두호와 래진이 나타났다.

울창한 풀숲에서 매미가 울어댄다.

“도혁이가 동생이 있단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래진이 무척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친동생은 아니라고 말했잖습니까.”

“도혁이도 알고 저분도 아는 것이 조금 의아하긴 합니다만.”

래진은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들이 걸어온 쪽을 가리켰다.

황성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스으으!

래진이 느닷없이 달려들었다.

전혀 대비하지 않았고 거리까지 가까웠다.

슉!

눈이 쫓기 힘든 속도로 날아오는 펀치.

두호는 어깨로 흘리듯이 받아내고는 카운터를 날린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상대의 공격의 수를 줄여놓는 것이 최선책.

그러나 두호의 공격 역시 래진이 허리를 숙여 피해낸 다음 두호의 복부를 때린다.

-쾅

유례없는 정타를 허용한 두호.

래진의 표정에는 살기가 가득해졌다.

두호는 자신의 배를 툭툭 털며 이번에는 먼저 래진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허리춤에서 칼을 빼드는 래진.

두호의 눈이 빛난다.

정말 죽일 생각인지 망설임 없이 칼은 자신의 목을 향해 들어온다.

두호는 래진의 손목을 잡아채며 칼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그리고 턱을 부수려는 듯 맹렬한 속도로 던져진 어퍼컷.

래진은 물 흐르듯이 몸을 핑그르르 한 바퀴 돌린다.

두호의 어퍼컷을 피해내며 날아드는 엘보우.

손목을 쥔 팔을 놓으며 그대로 엘보우를 가드해냈다.

이윽고 래진의 가슴을 뻥하니 차버리며 거리를 벌렸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원래 엘리트 스포츠좀 해본 놈들은 전쟁터에서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 왜인 줄 알아?”

래진은 자신의 칼을 더욱 단단히 쥐어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두호에게 말했다.

“죽이고자 하는 살기가 없거든. 근데 너는 아니야. 온몸에 서늘한 살기가 밤송이처럼 뻗어나오고 있어. 일부러 연출하는 것 같지는 않는데.”

자신에 비해 약간 마른 편이지만 다부지게 올라온 체격.

그야말로 미끈하다.

걸음걸이에서도 힘이나 밸런스가 완전히 수평이 되는 완전한 무도인이자 운동선수의 모습.

그런데 자신의 칼을 간결한 동작으로 피하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칼을 상대해본 사람처럼 말이다.

“너도 블랙러프 끄나풀이냐.”

두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싸악!

래진이 공격 동작을 취한다.

두호도 물러설 수는 없다.

서로가 자세를 낮추고 잠시 마주보았는데 래진은 더 이상 봐줄 마음이 없는지 허리춤에서 다른 칼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이번 건 짧았다.

두호는 이를 물었다.

과거 캡틴 시절 래진의 주무기는 각기 다른 길이의 칼이었다.

서로 다른 거리감의 칼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거리감은 무너진다.

그리고 빈틈을 찾아내 썰어버리는 칼.

이제는 두호 역시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긴장감이 공터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뭐 하는거에요!”

카랑한 목소리의 예수였다.

준모는 어디서 들고 왔는지 오른손에 몽둥이를 쥐고는 두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디 형님한테. 이 거지 새끼가!”

상당히 격앙된 표정의 두 사람이었다.

한 발 늦게 두호의 옆에 선 예수가 래진을 향해 말했다.

“저희 선수한테 무슨 짓이죠?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래진은 자세를 풀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예수와 몽둥이를 거머쥐고서 노려보는 험악한 표정의 준모.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요새 잠을 못자 예민해진 것 같습니다.”

허리춤에 칼을 집어넣은 래진을 보며 예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사람을 죽일 듯 칼까지 뽑아 휘둘러 놓고 별일 아니란 듯 흐지부지 마무리해버린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죠.”

매니저다.

이제는 설혹 두호의 옷깃만 스치고 지나간 사람도 긴장하며 염두해 봐야 한다.

격투기는 분명 스포츠다.

그런데 음지 출신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그쪽과 알게 모르게 교류가 있다.

즉, 래진이 음지쪽 사람이고 두호에게 어떤 목적을 갖고 접근해 왔다고 의심할 수 있었다.

예수의 의심 가득한 시선과 달리 래진은 두호를 슬쩍 보았다.

‘도혁이 동생!’

도혁은 그냥 용병이 아니었다.

래진 자신에게는 친구였고 가장 잊을 수 없는 전우였다.

인간적이며, 또 인간적이었다.

도혁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보름을 자리에 누워 버렸다.

그리고 지금 도혁의 동생이라는 두호의 등장에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온몸을 덮는다.

도혁이 살아 돌아온 것만은 아니어도 동생이라면 도혁의 냄새와 향기를 어느 정도 갖고 있지 않을까.

칼을 들고 공격하는 건 한 사람을 향한 래진만의 인사다.

도혁!

남들처럼 악수를 하며 오랜만의 해후에 서로 감동하고 기뻐하지만 가끔은 예고 없이 도혁을 공격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도혁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공격을 당당하게 맞섰는데 지금 두호가 그러했다.

완전 도혁이다.

얼굴은 다르지만 분위기도, 칼을 피해 움직이는 걸음걸이(步法)도 똑같다.

동생이지만 몸놀림만큼은 완벽한 도혁이다.

“형이 내 얘기는 별로 하지 않은 모양이군. 멋지군. 도혁의 동생.”

래진이 벙거지 모자를 들어 흔들며 돌아섰다.

“갑니다. 건강들 하시고.”

“야 이 개새끼야! 대가리를 확!”

준모가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음에 만나면 디질줄 알아. 싸가지 없는 시벌놈.”

“됐다 준모야.”

준모는 분이 덜풀린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돌아섰다.

예수는 두호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친데는 없으세요?”

두호는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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