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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07화 (107/204)

제 8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우리 형님에게 자신 없는 일은 없습니다.”

준모가 끼어들어 힘차게 대답했고 모두가 큰 소리로 웃었다.

채호는 잔을 들었다.

“들죠!”

직원들 모두 채워진 잔을 비웠다.

두호는 잔을 비우는 직원들을 스윽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채호는 키를 잡은 선장이다.

어떤 지시나 의도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각자의 자리를 충분히 채우고 메워 나간다.

채호도 뛰어나지만 직원들 역시 격렬하게 움직인다.

* * *

두호가 택시를 잡기 위해서 골목을 내려갔다.

늦은 시간의 주택가 골목은 조용했다.

즐거운 시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었고 주인공인 자신이 빠진다는 것이 찬물을 끼얹는 것이 될 수도 있었지만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나온 것이다.

부모님.

앞으로는 최대한 같은 공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뒤바뀐 운명에 언제까지 끌려다닐 수는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 부모님이다.

아무것도 필요없이 오로지 아들이 되어야 한다.

아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팔짱을 끼어 버렸다.

예전의 두호였다면 소스라쳤을 것이다.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다가온 것도 모자라 팔짱까지 끼었다면 충분히 등줄기에 땀이 흐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육감까지 무기력하게 만들고 팔짱을 낄 능력은 딱 한 명만 갖고 있다.

“오셨습니까.”

“와. 이제는 놀라지도 않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조금은 섭섭한 듯 무는 눈을 좁혔다.

“오실 때가 됐으니까요. 오신다고도 했고.”

무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길가에 있는 작은 공원을 가르켰다.

“잠시 좀 앉자구.”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달도 떴고 좋다.”

무는 중천에 떠 있는 둥근 달을 흘긋 올려다보았다.

“다친데는 좀 어때?”

“무리만 하지 않으면 괜찮답니다.”

“그래. 총도 맞아 봤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칼이 더 아픕니다.”

무가 몰랐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로?”

“네. 총알은 박히면 가만 있지만 칼은 움직이잖습니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듯 무는 놀란 표정이었다.

두호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하실 말씀이 있어서 오신 것 아닙니까.‘

무는 표정을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

“흠. 맞아. 결산을 한번 해볼까.”

두호는 처음으로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엄연히 PRIDE-K의 일도 중요하지만 모든 일의 발단인 무와의 약속이 더욱 중요하다.

무는 잠시 눈을 감고 팔짱을 꼈다.

“많이도 다쳤구나.”

두호는 괜찮다는 표정이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더욱이 사건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

백두호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하여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결과는 의도로 판단하고, 파장은 시작점을 봐야하는 법이지.”

무는 두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내가 보기엔 최선을 다했고 멋지게 해내줬어.”

“감사합니다.”

“악인들끼리 싸운 것이니 너의 죄는 아니고. 어린 친구들과 절벽 앞에 서 있던 어른들이 너로 인해 용기를 얻었으니 칭찬하지 않을수가 없구나.”

무는 흡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발걸음이 멈출 때가 아닌 것은 알지?”

“네.”

“이곳이 지옥이라 생각될지라도 끝없이 걸어가. 내가 해줄 말은 이것뿐이야.”

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너의 일이 남았구나.”

무는 두호가 복수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두호는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사뭇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일 역시 지혜롭게 해낼 것이라고 믿어. 그럼 또 봐.”

일어나서 기지개를 하듯 팔을 핀 무가 어김없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두호를 바라보았다.

“잘 해봐.”

무는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두호에게 벌어질 일들을 직감한 듯 보였다.

무는 어둠과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았다.

두호는 잠시 자리에 앉아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얻은 큰 영향력.

이것을 져버리지 않고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휴.”

작은 한숨을 내쉰 두호였다.

아직 그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 * *

“예 이모. 잘 먹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박래진이 포장마차를 나서며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였다.

명동 입구에 있는 포장마차.

그가 한국에 오면 항상 들리는 단골집이었다.

꼼장어와 닭발.

거기에 소주 한잔 곁들이면 신선이 부러울 게 없는 그였다.

“꺼억.”

커다란 트림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명동 거리를 걸어갔다.

취한 사람처럼 걸음 걸이가 흐느적거렸는데 구경 나온 사람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올려다보며 가끔은 웃기도 했다.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걷던 그가 우뚝 멈췄다.

“그렇게 티가 나면 모른 척 하고 싶어도 모른 체 할 수가 없잖아.”

그 순간 자판기 뒤에서 한 사내가 튀어나온다.

엄청난 속도로 파고드는 군용 나이프.

뒷골목 사내들과는 격이 다른 안정된 자세였다.

래진이 허리를 젖혀 칼을 피해낸 다음 달려드는 상대에 손목을 물 흐르듯이 잡아챈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칼을 쥔 손을 내려치자 상대의 칼이 툭하니 떨어진다.

그러나 사내 역시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곧바로 래진의 복부를 노리며 킥이 날아간다.

래진의 눈이 빛난다.

상대의 킥을 받아내며 상대의 허리춤을 잡아챈다.

그리고는 번쩍 들어 땅바닥에 내리꽂는다.

“억!”

뒤이어 망설임없이 상대의 목을 잡아채 비틀어버린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제압되버린 사내.

래진은 무덤덤하게 사내를 바라보다 이내 옆에 떨어진 칼을 집어든다.

‘비티아즈(Vityaz).’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에서 지급되는 기본 장비이다.

‘러시아 산이라면.’

래진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긴다.

“블랙러프가 여기까지 따라왔다. 이 말이지.”

옐로우 맘바의 경쟁 용병업체.

블랙러프.

과거 도혁이 죽었던 ‘모술의 낮’ 이후로 어느새 옐로우맘바를 바짝 뒤쫓는 용병업체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목숨을 노린 적은 래진 역시 처음이었다.

눈이 좁혀진 채 어둠 속을 바라보는 래진이었다.

* * *

두호는 택시에서 내렸다.

탁!

문이 닫히고 잠시 사라지는 택시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두호가 도착한 이곳은 집이 아니었다.

백평파전 앞이다.

가게를 마무리 하려는 듯 낯익은 직원들이 간판을 치우고 가게 앞을 쓸고 있었다.

한 직원이 멀리서 걸어오는 두호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어서오세요. 백두호님.”

두호는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저희야. 항상 잘 지내죠. 별일 없죠. 근데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어르신을 좀 뵈려고 왔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지금 계십니다.”

두호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또 하나의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실에 들어선 두호는 놀란 표정을 했다.

단순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가구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환한 베이지색 톤으로 바뀌었다.

“부고장이 먼저 날아 올 줄 알았다.”

수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두호는 가볍게 허리를 숙인 뒤 다가갔다.

두호가 챔피언이 됐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혹시나 하며 전화를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에 은근히 섭섭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내 기분도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이모.”

두호가 실내 인테리어들을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무뚝뚝한 네 기분이 다 좋아진 걸 보니 잘 바꾼 모양이구나.”

“금고업도 완전히 마무리 하셨다는데 이제 뭐 하실 겁니까?”

“이 늙은이 굶어죽을까 염려되는 모양이구나. 네가 하는 격투기에 숟가락 좀 올려볼까 한다.”

두호는 눈썹을 찌푸렸다.

수미는 이미 PRIDE-K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이왕 판을 벌렸으니 제대로 한번 해봐야 할 것 아니냐.”

그때 태건이 쟁반에 커피 두 잔을 담아 왔다.

“오셨군요?”

“몸은 회복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두호씨.”

“감사합니다.”

태건은 두 사람 앞에 커피 잔을 놓고 나갔다.

“웬 커피입니까?”

항상 녹차만 마시는 수미다.

“차도 편식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커피도 마시기로 했다는 뜻이었다.

두호는 가볍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잔을 내린 두호는 수미 옆으로 놓인 서류를 슬쩍 보았는데 눈 나쁜 수미를 배려한 것인지 글씨가 큼지막했다.

외국인 이름들이다.

“해외 개인 투자자들 목록일세.”

수미가 해외에까지 손을 뻗고 있는 줄 몰랐다.

놀라는 두호를 보며 수미가 웃었다.

“박래진에게 부탁했지.”

박래진 입국 소식은 들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이 그럼!’

고개를 갸웃했다.

단순히 수미의 사업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서만 들어왔을까.

박래진은 장사꾼이면서도 용병이다.

“한 번 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 봐.”

수미는 흔쾌히 서류를 건네주었다.

두호는 서류를 훑었는데 낯익은 이름도 보인다.

과거 옐로우 맘바 시절 경호를 했던 남미의 거물들도 있고, 치타를 포함한 아프리카 맹수를 밀매하는 거물 중계인과 중동의 부호들이다.

팟!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윈스턴’

자신의 마지막 임무.

자신의 팀원들을 몰살시켰던 그날의 임무 의뢰자였다.

‘왜 저러지’

갑자기 두호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두호가 누군가에게 이만한 적의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탁!

두호는 서류를 덮고 슬쩍 일어나더니 커피를 단숨에 비웠다.

“또 오겠습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왜 그러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수미는 걸어나가는 두호를 가만 바라보았다.

바깥으로 빠져나온 두호는 몇몇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갔다.

택시를 부르지 않고 백평산 언덕을 내려갔다.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건조하며 짜게 느껴지는 모랫바람.

끊임없이 들리는 총성.

하나둘 사라지는 자신의 동료들.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두호였다.

‘한번 알아봐야겠구나.’

아름드리 굴참나무 옆을 지나는 순간 관자노리에 무엇인가가 닿았다.

차가운 촉감.

총구다.

“떨건 없네. 몇 가지 질문에 대답만 해주면 난 이곳에 없는 사람이 되니까.”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냉랭했다.

두호는 정면을 보며 꼼짝하지 않았다.

“박래진 알지?”

두호는 입을 다물었다.

“질문에 답해줬으면 좋겠는데. 박래진이 너와 같은 건물에서 만났는데 무슨 일이었어?”

두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아직도 관자노리에 총을 겨누나.”

푹!

사내는 비웃듯이 권총을 더욱 찔렀다.

“뭐? 다시 말해봐?”

홱!

두호는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사내는 깜짝 놀라며 방아쇠를 당겼다.

-푸슉.

그러나 애석하게도 소음기를 빠져 나온 총알은 두호의 머리카락을 스치듯 빗나가 버렸다.

퍽!

뻐억!

두호는 빙글 돌아 사내의 손목을 위로 젖히며 허벅지 안쪽을 차버렸다.

뚝!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사내는 휘청거렸다.

두호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번개처럼 사내의 손목을 거머쥐더니 비틀었다.

툭!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리며 골목 담벼락으로 세게 부딪쳤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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