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모영배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엎어졌다.
꼼짝도 않는 모영배를 바라보던 조상무가 중얼 거리듯 말했다.
“간 건 아니겠지.”
조상무는 몸을 돌렸다.
위에 모영배 가방이 있다.
다가가 손으로 들어보자 제법 묵직했다.
지익!
지퍼를 당겨 가방 안을 들여다 보던 조상무 눈이 커진다.
오만원권 다발과 백 달러짜리 묶음도 여러개다.
그리고 현금 사이로 누렇게 보이는 것은 분명 금괴가 분명했다.
찌익!
지퍼를 잠근 조상무는 가방을 어깨에 멨다.
척!
몇 걸음 걸어가던 조상무가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바닥의 모영배를 바라보았다.
“내 인생 20년 꼴아박았으니 너무 섭섭해 하진 마십시오.”
히죽 웃으며 현관이 아닌 뒷문으로 사라졌다.
* * *
푸욱!
어둠속에서 은빛 광채가 번쩍하더니 사내의 옆구리에 박혔다.
사내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면서 몸에 칼을 박아 넣은 경수를 바라본다.
“그만 봐!”
경수는 사내의 몸에서 칼을 뽑았다.
사내는 몇 번 비틀하더니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경수는 왼손으로 이마를 쓸어 넘기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예기치 못한 기습이었다.
본채 현관을 향해 다가가는데 급조 폭발물처럼 다섯 사내가 덮쳐왔다.
앞서가던 경수는 어깨에 칼을 맞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5대2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지만 대낮처럼 활발하게 거리와 감각을 확보할 수는 없었고 몇군데 상처를 입었다.
푸욱!
태건이 다섯 번째 사내를 당겨 끌려오는 사내의 어깨에 칼을 꽂아 넣었다.
칼은 자루까지 깊이 박혔고 사내는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떨었다.
화악!
태건은 박은 칼을 놔두고 사내의 넥타이를 움켜쥐더니 번개처럼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쿠웅!
사내는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파악!
태건이 왼발로 사내의 가슴을 짓누르고 넥타이를 잡아 당긴다.
파다닥!
숨이 막히는지 사내는 두 다리를 떨었으나 태건은 놓지 않았다.
사지를 발버둥 치던 사내가 조용해졌고 태건이 넥타이를 놓고 허리를 세웠다.
태건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다.
다섯 명 모두 쓰러졌다.
휙!
벗어 놓은 정장 상의를 주워 든 태건이 본채 현관 쪽을 노려본다.
“너무 조용한데요.”
바깥에서 그 난리를 쳤는데 집안으로부터 어떤 움직임도 없다.
슥!
태건이 경수 어깨를 바라본다.
경수는 옷을 찢어 겨드랑이와 어깨를 단단히 동여맸다.
“괜찮습니다. 이까짓 것.”
경수는 대수롭잖다는 듯 히죽 웃으며 현관을 향해 다가갔는데 신경을 곤두 세운다.
태건 역시도 사내들로부터 빼앗은 칼을 버리지 않고 만약을 대비해 들고 있었다.
“없습니다.”
아무리 살펴도 인기척은 없다.
“어어!”
현관문을 열던 경수가 놀란다.
잠겨있지 않고 그냥 열렸는데 선뜻 들어서지 않았다.
이중 삼중으로 잠가도 의심할 판인데 어서오라는 듯 훤히 문을 열려 있자 등골이 곤두선다.
‘개수작 같은데’
그러면서 뒤에 있는 태건의 눈치를 살폈다.
태건 또한 이마를 찡그리며 약간 열린 문 틈을 통해 안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없다.
군대라면 부비트랩을 의심해 볼 수도 있지만 조금전 시끄러운 싸움에서도 반응이 없고 문이 열려있다.
스으으!
태건이 문을 열고 앞장서 들어가버린다.
탁!
입구 스위치를 올렸다.
뜻밖에도 불이 켜졌고 거실이 환해졌다.
“어어어!”
경수가 소스라친다.
거실 소파와 탁자사이 바닥으로 모영배가 엎어져 있었다.
태건도 다가와 바라보는데 몹시 놀란 얼굴이었다.
탁!
타탁!
경수는 재빨리 온 집안에 불을 환이 켠 뒤 수색에 나섰다.
한참을 내려다 보던 태건이 소파에 앉아 엎어진 모영배의 경동맥에 손을 댄다.
맥이 뛰는 것이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기절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이잉!
주머니속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는데 처음 보는 번호였다.
곧 아침이 밝아올 이 시간에 스팸이 걸려올 리는 없다.
“네.”
“조상현입니다.”
태건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구?”
“모회장 밑에서 일하는 조상현이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태건의 찌푸려진 이마가 펴진다.
조상현.
조상무로 불리며 모영배의 오른팔이자 책사다.
태건의 눈이 좁혀지며 상황파악에 애를 쓴다.
그리고 한 순간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 듯 입을 열었다.
“뭐요?”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태건은 듣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 전화를 했을 터이니 잠시 들어주는 것이 좋다.
“내가 선물을 놓고 나왔는데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태건의 시선이 모영배에게 멎는다.
자신이 모영배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습니까? 앞으로 수미 어르신과 얽힐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수미가 하는 일에 방해를 하고 덤비지 않겠다는 뜻이다.
즉, 모영배를 넘겨줄테니 그만 화해하자는 의미였다.
그때 2층까지 완전히 수색하고 내려온 경수가 아무도 없다는 듯 양손을 흔들었다.
상대가 종전(終戰)을 제의하고 있다.
종전 제의가 진심임을 전달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모영배를 넘겨주는 것이다.
“싫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고.”
싸움을 굳이 피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언제든지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생각할 여유를 주겠다는 듯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누굽니까?”
“조상현!”
“조상무 그새끼!”
경수가 버럭 소리친다.
* * *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두호와 어머니는 차에서 내렸다.
준모는 주차를 위해 안쪽으로 사라졌고 어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며 무척 놀란 얼굴이다.
두호가 큰 병원을 가자고 했을 때 적당한 종합병원이나 가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말로만 듣던 서울대 병원이다.
누군가 서울대는 못갔지만 서울대 병원은 가봤다더니 자신이 그짝이다.
“가시죠!”
두호가 앞장서 걸어가자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때 두호를 향해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는데 채호와 예수였다.
채호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두호와 어머니에게 다가온다.
“어머니. 필린 대표 이채호입니다.”
두호가 채호를 가리켰다.
“아, 네!”
어머니는 토끼 눈을 했다.
이번 PRIDE-K를 보면서 필린이란 회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오늘 병원 검사 받으시고 저희와 같이 식사 하시죠.”
어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옆에 선 예수를 발견했다.
예수가 재빨리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두호씨 매니저 진예수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라는 것에 놀라고 미모가 뛰어나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못생긴 곳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미인이 두호의 매니저라니 어머니는 마른 침을 삼켰다.
“많이 부족한 녀석인데 가...감사합니다.”
채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챔피언이 부족하다니요. 저희가 오히려 두호씨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채호가 말은 했으나 어머니 눈은 예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 하겠습니다. 어머님 가시죠.”
두호는 자신을 돌아보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진 매니저가 알아서 할거에요. 걱정말고 따라가세요.”
잠시 머쓱한 표정을 한 어머니는 예수와 같이 진료과를 향해 걸어갔다.
한참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채호가 물었다.
“형님은 검진 안받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속이 아픈 것도 아닌데.”
대회를 치루면서 크고 작은 상처가 아직 있다.
거의가 외부 타격과 충격으로 만들어진 타박상이다.
옆구리 역시 경기 끝난 직후 곧바로 치료를 받았다.
“어디가세요?”
채호가 따라나서며 묻는다.
“찾아 볼 사람이 있어.”
두호는 병원내 편의점에 들어가 여러 가지 과일을 챙겨 담았다.
바구니에 과일을 담은 두호는 계산대로 다가갔다.
카드를 내민 두호를 발견한 여직원의 눈이 커졌다.
“백두호 선수? 맞죠?
두호가 빙긋 웃었다.
직원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나요?”
머뭇거리는 두호를 등 뒤에 서 있던 채호가 툭 건드린다.
“그러세요!”
직원이 핸드폰을 들고 계산대 밖으로 나와 두호와 얼굴을 붙이다시피 하며 사진을 찍었다.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여직원은 계산을 끝내고 나가는 두호를 향해 말했다.
“행운을 빌어요 코리아 몬스터!”
편의점 바깥으로 나오자 채호가 씨익 웃는다.
“유명인사는 다르네요.”
피식!
두호는 웃고 만다.
그때 맞은편에서 준모가 다가왔다.
“어머님은요?”
“예수 매니저가 모시고 갔다.”
“그럼 지하 1층에 카페 있던데 그곳으로 갈까요?”
그러다 두호 손에 들린 과일 봉지를 발견한다.
“그건 또 뭡니까?”
두호는 과일 봉지들을 준모에게 건넸다.
“왜 이걸?”
“동생 얼굴 좀 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들여다 봐야지.”
준모의 눈이 커졌다.
“거...거긴 안가도 되는데.”
준모의 목소리가 떨린다.
두호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조심스럽게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선 준모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4인실이다.
“성아야. 오빠왔어.”
준모가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침대에 앉아 책을 읽던 양성아가 돌아보았다.
“오빠!”
준모가 서둘러 과일들을 보호자 침대 위에 올리고 말했다.
“여기는 내가 모시는 형님. 이쪽은 필린 대표님이셔.”
양성아는 물끄러미 두호와 채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침상에서 내려와 두 사람 앞에 섰다.
아픈 환자가 갑자기 내려와 서자 두호는 눈을 크게 떴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도움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호에게 시선이 고정한다.
“저희 오빠 사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호는 빙긋 웃었다.
“원래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아직은 수술 대기중입니다.”
성아는 다시 침대로 올라갔다.
두호와 채호는 이것저것 물었고 성아는 공손히 대답했다.
* * *
책상 위에 켜진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두 개의 대바늘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짜는가.
돋보기안경을 끼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어떤 정결한 의식을 행하는 듯 엄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투툭!
두 개의 대바늘이 교차하며 실은 촘촘하게 엉켜 단단한 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끼익!
문득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타난 사람은 태건이었다.
그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뜨개질에 한참인 수미를 바라보았다.
언뜻 쉐터 같기도 하고 겨울 조끼를 짜는 듯 보인다.
수미는 절대 자신이 입기 위한 뜨개질은 하지 않는다.
“밤새 하신 겁니까.”
수미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피곤 한 듯 안경을 위로 밀어 올렸고 그제야 태건을 발견한 듯 마른 미소를 짓는다.
“늙으니 잠이 없어지는구만.”
태건이 길게 숨을 내쉰다.
어디 잠이 없어서 밤을 새웠을까.
황석희를 잃은 이후 부하들의 소식에 민감한 그녀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더욱 위험한 사냥을 나갔으니 마음이 심란할 것이었다.
“모 회장님을 모셔왔습니다.”
뚝!
수미의 뜨개질이 멈춘다.
고개를 들어 다시 태건을 바라보더니 실과 바늘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곳으로 데려오겠습니다.”
태건이 몸을 돌려 다시 나가려하자 수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냐.”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수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손님을 안방에서 맞을까. 귀한 손님 오셨으니 나가봐야지.”
수미는 겉옷을 몸에 두르고는 신발을 신었다.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