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01화 (101/204)

제 101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두호는 몸을 바로 세웠다.

“하아.”

입을 벌리고 토하듯 숨을 내쉬었다.

백두호를 외치는 소리가 귓가를 윙윙 울리고, 자신을 끌어안고 형님을 외치는 준모, 그리고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 주는 탁현.

그러고 보니 혼자 이긴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 백두호를 탄생시킨 것이다.

“두호씨 우승입니다.”

얼굴을 닦던 탁현이 와락 끌어 안았다.

스윽!

두호가 탁현을 밀어낸다.

케이지의 출구로 걸어가는 두호를 한 사내가 막아선다.

완전히 심판의 선언이 끝나기 전까지 선수는 케이지 밖으로 벗어나면 안된다.

두호가 손을 뻗어 사내를 옆으로 밀친다.

사내는 난감한 시선으로 VIP석에 앉은 채호를 바라보았는데 가만 웃는다.

스윽!

사내는 길을 터주었다.

관객들이 그에게 손을 뻗는다.

어떻게 손바닥 터치라도 한 번 하고 싶은 몸부림이고 백두호란 선수를 향한 열렬한 지지였다.

두호는 걸어갔고 카메라가 바짝 달라 붙는다.

갑자기 관중석으로 들어간 두호는 부모님 앞에 걸음을 세웠다.

어머니는 이미 소리없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년 전처럼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끌어안았다.

* * *

때로는 침묵처럼 숨막히는 고문도 없다.

출발해서부터 태건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회사 직급으로는 자신이 위에 있지만 태건은 자신보다 한 배분 높은 선배다.

황석희가 떠나고 없는 지금 누가 뭐라고 해도 넘버2인 것이다.

탁!

경수는 숨막히는 공간을 잠시 흔들어 보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컨트리 기타 소리와 맑은 음색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시골 길이여, 날 집으로 데려다주오

To the place I belong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죽은 사람처럼 앞만 보고 앉아 있던 태건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다.

“왜 그러십니까?”

경수가 묻는다.

‘West Virginia, mountain mama

웨스트 버지니아, 엄마와 같은 산

Take me home, country roads

날 집으로 데려다주오, 시골길 이여.‘

어디서 배웠는지 모른다.

아주 가끔 소주를 한 잔 하면 졸음이 오는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린다.

가사도 모르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더욱 알지 못한다.

그런데 들을수록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All my memories gather 'round her

내 기억들은 전부 그녀에 관한 것뿐

Miner's lady, stranger to blue water

광부의 아내, 맑은 물은 본 적이 없지.‘

술이 취해 뱉은 헛소리인지, 언뜻 누구를 욕하는 소리 같기도 한 노래를 들으며 물었다.

“갈 곳 있냐?”

황석희는 못 들은 체 계속 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가 갈 곳이 어디 있겠어.”

부우웅!

차는 빠르게 달려갔고 태건은 속으로 따라 불렀다.

’Dark and dusty, painted on the sky

어둠과 먼지로 물든 하늘

Misty taste of moonshine, teardrop in my eye

안개 자욱한 달빛, 눈물이 고여있네.’

차는 어두운 터널 안으로 빨려들었다.

* * *

전마수와 오도동은 오늘도 포카칩을 열심히 먹는다.

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종일 차 안에 있는 것이었다.

지루한 하루 하루를 과자를 먹으며 보낸다.

심심하다고 술을 마실 수는 없다.

근무중 음주는 아구창 날아가는 지름길이다.

오늘도 두 사람은 포카칩 스무 봉지를 뒷좌석에 쌓아놓고 세 봉지째 먹고 있었다.

끼이익!

차 문은 조금 열어 놓고 과자를 먹는데 승용차 한 대가 맞은편 담벼락에 멈췄다.

이 골목에 자신의 주인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차가 멈춘다고 해서 이상할 건 전혀 없다.

다만 워낙 부자 동네이다 보니 낯선 차량이, 그것도 외제차가 아닌 국산차가 나타나면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좌우 문이 열리며 두 사내가 내렸다.

둘 모두 건장한 체격에 정장을 차려 입었는데 천천히 걸어온다.

“뭐하는 놈이지.”

전마수가 눈을 좁히고 바라보다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사람이다.”

“그 사람?”

짧은 스포츠 머리에 유난히 얼굴이 창백한 사내.

누군가는 그의 그런 안색을 보고 백인 혼혈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뱉었으나 어쨌든 핏기 없는 얼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조...조태건!”

두 사내는 과자봉지를 팽개치고 차에서 내렸다.

삭!

재빨리 차고 있는 회칼을 뽑아들었다.

태건이 이마를 찌푸렸다.

“오긴 제대로 왔나보군.”

그러면서 울창한 숲에 가려진 왼쪽의 저택을 흘긋 바라보았다.

“죽는다!”

전마수가 더듬거리며 태건을 향해 직선으로 찔러갔다.

타!

태건이 찔러 들어오는 전마수의 오른손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엎어치기를 했다.

쿵!

태건은 어깨 위를 한 바퀴 돌아 길바닥에 팽개쳐진 전마수의 오른팔을 사정없이 비틀었다.

우두둑!

어깨뼈가 완전히 돌아갔고 손에 있는 회칼을 빼앗아 사내의 허벅지를 깊숙하게 찌른다.

푸우욱!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찔러 주는거야.”

태건은 뽑아 든 칼날에 묻은 피를 사내의 바지에 닦고 일어났다.

저택 지하 주차장을 향해 몇 걸음 가더니 되돌아와 묻는다.

“번호!”

태건의 손에 쥐어진 칼 끝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다.

“345 우물정 다시 345 우물 정.”

탁!

고맙다는 듯 전마수의 뺨을 칼로 살짝 때리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가져간다.

대문이 없다.

오직 주차장을 통해서만 출입한다.

번호를 누르자 주차장 셔터가 올라가고 태건과 경수가 들어선다.

입구 센서가 작동한 듯 불이 환하게 켜졌다.

주차장에는 모두 다섯 대의 승용차가 있었다.

두 대는 벤츠이고 한 대는 롤스로이스, 나머지 두 대는 국산 승용차다.

태건의 시선이 국산 승용차에 멎는다.

국산 승용차를 모영배 부하들 것으로 판단한다면 많게는 열 명, 적게는 여섯 일곱 명이다.

안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입구 오른쪽에 빨간 벽돌로 지어진 조그마한 단층 건물이 있었다.

경호원들로 불리는 모영배 수하들의 대기하는 휴게실인데 입구에서 두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정일준이 깨졌더만.”

키 작은 사내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원래 계산대로라면 깨지면 안되잖아?”

“안되지!”

옆에 쥐색 정장을 한 사내가 대답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이수미 그 할망구가 후원하는 PRIDE-K를 뒤엎어 버린다는 계획이 부서졌는데.”

“글쎄!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회장님도 아니...”

쥐색 정장의 사내가 말을 맺지 못했다.

언제 다가온지도 모르게 눈 앞에 태건과 경수가 서 있다.

뒤늦게 두 사람을 발견한 키 작은 사내 역시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린다.

파악!

경수가 그대로 몸을 날려 키 작은 사내의 얼굴에 니킥을 박는다.

같은 순간 태건도 쥐색 양복의 사내의 낭심을 구둣발로 찍었다.

“꺽!”

치명적인 급소다.

사내는 짧은 비명을 흘리며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절했다.

덜컹!

태건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 명의 사내가 장기를 두고, 나머지 두 명은 지켜보고 있는데 내기인 듯 한쪽에 오만원권 두 장이 포개져 있었다.

구경을 하고 있던 문쪽 가까운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가 소스라친다.

“허억!”

빠악!

태건이 입구 책상 위에 있는 재떨이를 던졌다.

두꺼운 유리재털이에 맞은 사내가 나동그라졌고 태건의 몸이 날아간다.

장기를 두고 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나 재빨리 차고 있던 칼을 뽑으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어느새 면전으로 다가선 태건의 칼이 복부에 박힌다.

촥!

찌르는 것도 부족하다는 듯 태건은 칼을 한 바퀴 돌린다.

“으악!”

그때 비명소리가 울렸다.

경수가 한 사내를 벽에 밀어 붙이고 연거푸 칼을 먹이고 있었는데 태건은 마지막 남은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는 구석으로 몰렸는데 손에 회칼을 들었지만 온 몸을 떨고 있었다.

“회장님 계신가?”

태건이 물었다.

“아...아니 지금 집에 없습니다.”

쾅!

경수가 문을 발로 차며 나갔다.

확인해보려는 것이다.

툭!

태건이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던지듯 버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스윽!

담배 한 개비를 권한다.

사내는 주춤거리며 받지 않았는데 마른 침을 삼키는 듯 목젖을 위아래로 훑었다.

탁!

사내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더니 조심스럽게 담배를 받았다.

딸칵!

태건은 불까지 붙여주고 자신도 붙인다.

후우!

길게 연기를 내 뿜은 태건은 몸을 돌려 입구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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