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00화 (100/204)

제 100화 : 단단하게 받아쳐라.

경기 시작 종소리가 울렸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쪽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차분히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악!

싹!

한 걸음씩 다가간다.

다가갔다 잠깐 물러서고, 또 다시 접근했다 슬며시 뒤로 빠지는 두 사람의 동작에 탁현의 눈이 빛난다.

자신조차 처음보는 두 사람의 거리 싸움.

걸음은 공격의 첨병이고 방어의 기본이다.

상대가 다가오는 걸음을 보고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물러서거나 아니면 역습을 가하기 위해 옆으로 발걸음을 뗀다.

‘정말 수준이 높은 두 사람이구나.’

탁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쉭!

일준이 기습적으로 딥킥을 밀어넣는다.

순간 두호는 빠르게 이동하여 일준의 사각으로 들어가 주먹을 뻗었다.

퍽!

빠아악!

바디와 안면을 정확히 파고드는 전광석화와 같은 주먹이다.

그리고 스르르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난다.

정확한 주먹이었는데도 일준은 웃었다.

두호의 공격에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다.

“씨발. 그때 겨우 이거 맞고 쓰러졌다 이거지?”

일준이 파고든다.

두호의 주먹은 이제 우습다는 듯.

쇄액!

일준의 주먹이 작렬하듯 뻗어온다.

아무리 약물 사용을 감안한다고 해도 3년 전과는 전혀 달라진 주먹 속도다.

두호는 가드를 잠그며 틈을 노린다.

벼락같이 일준의 빈틈으로 주먹을 뻗는다.

상당한 힘이 실린 두호의 주먹이 찍혔지만 여전히 일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주먹은 이제 전혀 경계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 보였다.

“으음!

지켜보던 탁현이 입술을 문다.

준모는 무슨 일이냐는 듯 돌아보았는데 탁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몸으로 밀겠다는 의도 같은데..”

기술의 정교함에서 일준은 두호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일준은 지금 약물로 인해 맷집과 방어력이 최고조에 올라와있다.

맷집이 좋다는 건 상대의 주먹을 포함한 여타 공격에 몸이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탄탄한 몸을 믿고 일준은 두 대 맞고 한 대 때린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빠악!

일준은 두호의 주먹을 맞고서도 그냥 밀고 들어와 버렸다.

너무 무지막지하게 다가오니 두호는 뒷걸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두호는 코너로 몰리며 가드를 바짝 세웠다.

일준이 가드채로 부숴버릴 생각인 듯 거친 러시안 훅을 날렸다.

팟!

두호의 눈이 빛난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뒤 편 케이지를 발로 밀며 일준을 파고든다.

슥!

일준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이마를 스치듯 지나가고 두호의 주먹이 파열음을 낸다.

뻐억!

슈퍼맨 펀치.

점프를 하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펀치를 날린 것이다.

일준에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중심이 기우뚱 해진다.

두호는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일준을 쫓아간다.

퍽!

퍼퍽!

따라 들어가며 더블 잽에 이은 오른 주먹이 연신 일준의 몸에 적중한다.

그리고 일준의 바디에 왼주먹을 꽂는다.

-쾅

보통 사람이라면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꾸라질 위력이었다.

일준은 확실히 타격을 받은 듯 비틀거렸지만 금세 중심을 잡는다.

두호의 눈이 좁혀진다.

어깨와 승모 그리고 목까지 이어지는 일준의 근육들.

자신 역시 끝없는 단련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의 일준과는 차이가 있었다.

-땡.

1라운드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고 서로 굳은 표정으로 코너로 돌아간다.

수미가 황성태를 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떻게 보세요?”

황성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는다.

“두호 걸음이 서툴군. 어디 불편한가?”

수미는 깜짝 놀랐다.

채호로부터 모영배의 급습을 받고 약간 다쳤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전혀 다쳤다는 걸 느끼지 못할 만큼 움직임이 가벼운데 황성태는 금방 알아차린 것이다.

“땀 좀 빼야 할 것 같구만.”

태건이 홱 고개를 돌려 황성태를 바라본다.

태건 역시 일준의 기이한 맷집을 주목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두호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공격을 욱여넣어야 될지 모를 만큼 일준은 강한 스트랭스(strength. 내구도)를 갖고 있다.

황성태는 그런 몸을 눕히기 위해서는 더욱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야말로 앉아서 모든 걸 훤히 읽고 있다.

태건은 황성태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과연 누굴까.

탁현이 두호의 벌겋게 부어있는 귀를 보았다.

아무리 단단하게 가드를 했다 하더라도 귀 자체에 쌓이는 데미지는 줄일 수가 없었다.

“약물로 목욕을 하고 나왔구만.”

달아오는 두호의 귀를 보며 준모가 씹어뱉듯 일준의 코너를 노려본다.

약물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능력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서두르면 안되요.”

탁현이 속삭이듯 말했다.

“차분하게 끌어가다 기회가 왔을 때 모든 것을 쏟아 넣어야 합니다. 평소의 일준이 아닌 이상 한두 방 갖고는 데미지 주지 못해요. 다친 곳은?”

“발이 조금 무거운 것 빼면 괜찮습니다.”

탁현은 웃었다.

늘 이런 사람이었다.

한 번이라도 불합리하다 불리하다 불평할 수도 있을텐데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타개할 방법만을 찾는다.

몇일 전 3년 전 경기에서 왜 졌냐고 어느 기자가 두호에게 물어보았다.

불법 로비와 승부조작 그리고 약물 사용설이 지배적인 여론을 더욱 자극하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실력이 없어서 졌죠.”

그게 백두호였다.

“넌 오늘 우리 형님한테 뒤졌어.”

준모의 눈이 살벌하게 타오른다.

-땡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유효타는 두호가 많다.

그러나 일준은 계속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일준의 눈이 하얗게 빛난다.

약물이 가져오는 광기다.

툭!

두호의 이마에서 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케이지에 붙은 클린치 상황에서 버팅이 일어난 것이다.

“좆 같더라고. 노력을 하면 뭐든지 된다는데. 난 안되더라? 그렇다고 내가 대충 노력했냐고? 아니 죽을 각오로 연습하고 훈련했거든.”

고개를 숙이며 파고드는 일준은 살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오늘 케이지 걸어 내려갈 마음 없다. 최소한 네 놈과 같이 죽을거다.”

빠악!

두호가 붙잡고 있는 일준의 팔을 아래로 내리며 번개처럼 관자노리에 엘보우를 꽂아 넣었다.

일준의 관자노리에서 피가 흐른다.

“어떠냐? 백두호 그때와 지금의 내가?”

옅은 미소를 띄운 두호가 일준을 바라보며 답한다.

“아버지 품에 비빈 것이 노력이라고 생각하냐? 하긴 누가 그랬지. 돈도 실력이라고, 그런데 우리 같은 개돼지들은 스스로 몸부림치며 싸우는 것을 노력이라고 하거든.”

“그래서? 아버지 힘을 빌리는 건 훈련이나 노력이 아니다? 흐흐! 웃기는 새끼.”

꽉!

일준은 거의 흰자위만 있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두호를 공격했다.

두호 또한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빠악!

푹!

빠아각!

퍼퍼!

처음에는 칼 맞은 상처를 의식해 실리적인 경기 운영을 생각했다.

탁현도 그렇게 하길 주문했다.

그러나 조금 전 생각을 바꾼다.

2등까지는 전략이 먹히고, 잔꾀가 통한다.

그러나 1등은 오로지 실력 말고 그 어떤 것도 영향을 줄 수 없다.

‘결국은 한 점으로 모인다. 그 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먼저 닿게 되어있지. 그게 정점이라는거다.’

황성태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두 사람은 치고 박고 뜯고 찢었다.

피가 낭자하고 관중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실로 엄청난 혈투입니다! 왕좌는 이렇게 차지하는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

방송국 중계진도 목소리를 키운다.

자신들이 선수라도 된 듯 자리에서까지 일어나 외쳤다.

-무자비한 난타전입니다. 두 선수 모두 오함마 같은 주먹을 상대의 몸통에 꽂아 넣습니다-

탁!

어머니는 끝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듯 허리를 숙이더니 급기야 흐느낀다.

‘두호야.’

괜히 왔다 싶다.

사실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남편은 물론 주위 상인들까지 천리길도 아니라며 등을 떠밀었다.

“여보!”

아버지는 어머니 등을 쓰다듬는다.

몸도 정상이지 않은 사람을 괜히 데리고 왔다 싶다.

스윽!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더니 이를 문다.

“봐야지. 내 아들의 피가 얼마나 빨간지.”

다부진 표정으로 케이지를 보았다.

2라운드 3라운드가 넘어갔다.

-때앵

두호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탁현이 흰 수건으로 그의 이마와 얼굴을 닦아내자 흰 수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닦아낸 핏자국 위로 다시 바셀린을 바르지만 무의미했다.

“경기 그만 합시다. 두호씨.”

얼굴 상처는 괜찮다.

지금 겨우 봉합해 놓은 옆구리 상처가 터져 피가 흐른다.

다행히 얼굴에서 흘러내린 피가 가슴과 복부까지 적셔 사람들 눈에 헷갈릴 뿐이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시선이 간다.

실밥으로 묶어놓은 상처가 충분히 벌어졌고 피는 갈수록 많은 양을 쏟아낸다.

“우리 선수 생활 길게 봅시다.”

두호는 부드럽게 웃었다.

이게 인생이다.

이런 모습이 백두호가 살아왔던 길들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인 것이다.

남들 눈에는 부상당하고 처참하게 뭉개져 보이지만 자신의 눈에는 삶의 일부분으로 보일 뿐이다.

찢어졌던 가난.

그걸 이겨내기 위해 죽을만큼 많은 땀을 흘렸다.

그리고 소복상회 앞에서 벌인 사채업자들과 혈투.

자신은 무력했고 그때마저도 쓰러졌다.

결국 아버지를 때리는 모습에 이성을 잃고 연장을 휘둘렀었다.

그렇게 자신은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싫습니다.”

“형님!”

준모도 그냥 여기서 멈추자고 합세한다.

그만큼 안타까운 모습이다.

다시 4라운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두호는 힘겹게 일어섰다.

3년 만의 재매치.

우승 따윈 관심없다.

자신의 과거를 딛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하수구에서 성장해도 누군가를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뒷배경이 찬란한 상대라도 무너진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싶다.

‘이게 진짜 두호가 걸어가던 가시밭길이구나.’

준모는 의아한 듯 탁현에게 물었다.

“왜 그래플링을 사용하지 않는 거죠?”

그러나 탁현은 자신 역시 답답하다는 듯 표정이 굳어졌다.

타격전보다 상처를 보호하는데는 그래플링이 낫다고 조언했지만 두호가 거절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준과는 타격대 타격으로서 붙는 것이다.

주먹으로 무너뜨려야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복서로서.

타격으로써 이겨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시 시작된 난타전.

일준도 두호의 의도를 아는 듯 그래플링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버버벅!

빡!

쿵!

파뻐억!

케이지 벽도 아니다.

정 중앙에서 두 선수는 주먹을 교환했다.

한편 수미가 조용히 경수와 태건을 부른다.

“경기도 거의 마무리 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태건과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수미는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본 뒤 케이지로 고개를 돌렸다.

빠아악!

두호의 크로스 카운터가 일준의 옆구리에 박히고 이어 곧바로 어퍼컷으로 돌린다.

푸푸우!

일준의 고개가 젖혀지며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 두호야.

두호는 일준의 본능에 가까운 라이트 훅을 피하며 바디와 훅을 찔러넣었다.

일준이 케이지 벽에 사정없이 부딪친다.

-이건 너의 어린시절에 대한 보상이다.

일준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황급히 분위기 반전을 위해 그라운드로 끌고 가려 태클을 걸었다.

그러나 두호가 간단히 피한다.

-그만 슬퍼하고 잠들어라.

두호는 바닥의 일준을 일으켜 세웠다.

누가 보면 다정하게 부축하는 것 같다.

빡!

빠아악!

일준이 섰다 싶은 순간 좌우 훅이 일준의 턱을 찍어버린다.

-너의 모든 것은 이제 내가 지켜내마.

비틀거리는 일준에게 다가가 옆구리에 이은 어퍼컷을 또 한번 작렬시켰고 일준은 저만치 날아가 케이지 벽과 충돌하고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심판은 완전 뻗은 일준인데도 경기 종료를 선언하기가 안타깝다는 듯 잠시 내려다 보았다.

주심이 판단을 머뭇거린다.

좀 더 끌고 가고 싶다.

이건 도대체가 멋지다 못해 황홀한 경기다.

앞으로 몇십 년이 흘러도 이런 엄청난 스포츠 이벤트는 없을 것이다.

결코 경기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제발 오늘 경기가 대한민국 격투기 시장에 폭풍을 몰고 오길 바라며 주심은 손을 저었다.

일준이 의식을 잃은 것이다.

-코리안 몬스터 백두호 선수가 4라운드 혈투 끝의 엘리게이터 정일준 선수를 잡아냅니다-

와아아아!

두호의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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