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80화 (80/204)

제 80화 : 당장 내게 싸움을 걸어라.

어군(魚君)은 참치 전문 일식집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6월인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데 어군의 참치는 결코 냉동이 없기 때문이다.

채호와 매일은행장 최진철이 마주 앉아 소주잔을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불콰한 얼굴인데 최진철 매일은행장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지금 꿈속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한다니까요. 백두호 선수 이름을 내 세워 판매한 정기적금이 어제로 백만 계좌를 넘겼습니다.”

대회도 놀라운 흥행을 이어가지만 스폰십으로 참여한 기업들의 가치도 쑥쑥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선두에 매일은행이 있었다.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은행 주가까지 뛰어 올해 연말로 2년 임기가 끝나는 최진철의 연임 가능성이 거의 백퍼센트라는 것이 금융계의 시선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대표님.”

채호는 손을 내저었다.

“은행장님의 과감한 결단이 아니었으면 오늘이 없었을 것입니다. 나야말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소주잔을 들어 건배했다.

쨍!

잔을 부딪치고 단번에 비운 채호는 젓가락으로 선홍빛 감도는 참치살 한 점에 와사비를 올려 먹으려다 멈칫했다.

탁자 위에 올려진 핸드폰이 울렸기 때문이다.

지이잉!

꿈틀!

‘어르신.’

액정에 발신자의 이름이 나타났다.

수미다.

“은행장님 잠깐.”

채호는 양해를 구하고 한쪽으로 돌아앉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예! 어르신”

빈 잔에 술을 채우던 최진철이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 채호를 바라보았다.

‘어르신.’

호칭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다.

사장님이란 호칭이 대중화되어버린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함부로 꺼내 사용하지 못한 단어가 바로 어르신이다.

그런면에서 어르신은 사장, 회장, 대표 그 어떤 직분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다.

“예! 예!”

궁금해진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젊은 사업가 이채호가 자세를 낮추며 전화를 받는 어르신이란 사람은 누구일까.

흘긋!

그때 채호가 슬쩍 최진철의 눈치를 살핀다.

미안하다는 사인이다.

하지만 최진철은 노련했다.

평범한 전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재빨리 이 자리를 비켜나는 것이 오늘 밤 비즈니스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일이다.

“이런!”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최진철이 화들짝 놀라며 시계를 본다.

“맙소사!”

재빨리 일어나 걸어둔 양복상의를 걸치더니 다급한 눈으로 채호를 바라본다.

채호가 송화기를 손으로 막으며 바라보자 최진철이 빠르게 말했다.

“이래서 나이 들면 주책이라는 말을 듣나 봅니다. 김인호 기획총괄상무 부친상을 다녀오기로 했는데 이런.”

채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떡하죠. 나 때문에.”

“아닙니다. 통화하세요. 제가 내일 전화 드리겠습니다.”

재빨리 넥타이를 반듯하게 만지며 방을 나갔다.

탁!

방문이 닫히자 채호도 자세를 바로 편다.

“전혀 안 되는 것입니까?”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네. 자주 전화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통화가 안되는군. 그래서 혹시나 우리 이대표와는 오늘 연락이 있었나 하고 연락한걸세.”

“오늘은 전화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제는 짧지만 잠깐 통화를 했고, 알겠습니다. 제가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전화를 내린 채호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황석희는 수미의 분신이다.

그의 행동이 곧 수미의 뜻이고 의지이다.

수미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수미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오른팔이 황석희다.

그런 황석희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조수미가 어떤 여자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철갑 배포의 여자다.

주르륵!

채호는 빈잔에 소주를 따르더니 단번에 마신다.

“으음!”

직원들은 대회 진행으로 눈코 뜰새가 없다.

설혹 하던 일을 중단 시키고 황석희 수소문에 동원한다고 해도 썩 기대할 만한 실력을 보여줄 역량은 갖고 있지 않다.

황석희가 사는 세계는 이른바 뒷골목이다.

그곳은 그곳만의 룰이 있고 자신들만의 법과 질서가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다.

팟!

갑자기 채호의 눈이 빛났다.

한 사람이 있다.

재빨리 핸드폰을 검색하더니 한 사람에게서 멈췄다.

‘양준모’

채호는 재빨리 번호를 눌렀다.

* * *

준모는 전화를 받으며 차 문을 열었다.

채호로부터 상황 설명을 전해 들은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보고는 대표님께 직접 드리면 되겠습니까?”

“조금 서둘러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의 안테나들이 살벌하게 살아있으니까요. 금방 알아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운전석에 앉은 준모는 안전벨트를 맸다.

“흐흠!”

시동을 걸고 잠시 길게 숨을 내쉰다.

황석희라는 사람 보통내기가 아니다.

몇 번 그를 만났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태건보다 더 기분 나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향해 욕을 한다거나 인상을 쓴 적은 없다.

그냥 바라보는 눈길이 꼭 호랑이 같았다.

“어디부터 쑤시지.”

이마를 찡그리며 잠시 생각을 하던 준모는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어이 주명. 너 모로해피캐피탈에서...”

준모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게 아니고 전 모영파에서 생활한 사람중에 아는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냐?”

준모는 재빠르게 자신의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땡큐.”

전화를 끊은 준모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고 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 * *

황석희가 사내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바닥에 머리를 박은 사내는 축 늘어져 버렸고 황석희는 몸을 바로 세웠다.

휘청!

조금 전부터 몸이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자꾸 땅이 흔들리고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이 체력소모에 이은 과다출혈이 가져오는 현상이다.

투툭!

이미 피가 떨어지고 항상 깨끗하게 차려입던 셔츠는 피로 물들었다.

학학!

황석희는 거친 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수를 포함한 부하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물어볼 여유를 주지 않고 사내들은 덤벼든다.

쉬이익!

어두운 달빛 아래 은빛 섬광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건 회칼이다.

칼 바람 소리는 언제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어쩌면 그런 것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회칼을 선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석희는 벼락처럼 떨어지는 칼을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싸악!

분명히 피했다고 여겼는데 오른쪽 어깨 부분이 뜨금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상대의 칼을 피하며 번개처럼 휘두른 쇠파이프에 놈의 대갈통이 깨졌어야 한다.

그런데 칼은 피하지 못했고 대갈통은 가격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동작이 느려진 것이다.

푸욱!

쇠파이프를 휘두르느라 앞으로 쏠린 몸의 중심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사내의 칼이 이번에는 수평으로 들어와 복부를 찔렀다.

“후욱!”

비명을 흘리며 휘청거릴 때 등짝이 불에 지진 듯 후끈했다.

뻐어억!

보지 않아도 야구방망이 하나가 자신의 등에 박힌 것이다.

우왁!

충격으로 피를 한 모금 토해내며 고개를 돌렸는데 한 사내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 있다.

몸은 느려졌으나 두뇌회전은 그대로다.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지(死地)에 갇혔다.

이럴 때는 한 가지 뿐이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다.

여럿을 함께 상대하려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오직 한 명씩 정리해가는 것이 최선이다.

빙글!

뒤를 돌아본 건 어떤 놈인지 알고 싶기도 했지만 앞에서 칼을 쥐고 있는 사내를 유인하려는 동작이었다.

쉭!

바람을 가르며 칼이 등을 향해 온다.

홱!

거의 같은 순간 번개처럼 돌아선 황석희의 쇠파이프가 파고드는 사내의 왼쪽 얼굴을 칼로 베듯 후려쳤다.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타격부위 모두 정확히 계산한 곳에 맞았다.

퍼억!

둔탁한 소리다.

사내의 왼쪽 머리가 통째 주저 앉으며 쓰러진다.

빠악!

그러나 뒤에서 오는 야구방망이는 피하지 못했다.

처처척!

앞으로 넘어질 듯 했지만 쇠파이프를 지팡이 삼아 간신히 버틴다.

조상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같은 바닥에 있기 때문에 스치듯 몇 번 본적이 있고 빼어난 솜씨를 지녔다는 입소문은 익히 들었다.

흔히 소문이라는 것은 부풀려진다.

시작은 참깨지만 나중에는 호박만큼 크다고 알려지는 것이 소문인데 황석희만은 반대다.

수십 마리 늑대들에게 둘러 쌓여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호랑이다.

오히려 내뿜는 기세로 인해 늑대들이 조금씩 주눅 들기 시작했다.

휘익!

조상무는 외투를 벗어 한곳으로 던지고 몇 명 되지 않는 부하들 사이로 걸어갔다.

“나와.”

사내들은 조상무의 말에 머뭇거리다 이내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며 공간을 만든다.

더 이상의 피해는 불필요하다.

이제는 자신의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던지는 감탄이다.

“조상현씨라고 들은 것 같은데?”

황석희의 질문에 조상무가 빙긋 웃었다.

“예.”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오늘 밤 누군가는 내일 아침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바람에 피비린내가 휘몰아친다.

슥!

조상무가 조용히 칼을 뽑아 들었다.

얼마나 손질을 잘했으면 달빛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황석희가 눈을 좁힌다.

‘이건 좀 위험한데.’

파악!

조상무가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쉭!

어느새 면전까지 파고들었는데 칼은 이미 앞가슴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많은 체력이 소진된 황석희에겐 휘두르는 칼 보다 찌르는 것이 더욱 피하기 까다롭다는 것을 조상무는 알고 있다.

황석희도 가만 있지 않았다.

조상무가 달려들 때 쇠파이프가 떨어지고 있었다.

조상무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여 피해냈다.

목표점이 물 흐르듯 바뀌어 황석희의 허벅지를 노린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뒹굴어서라도 피할법 하지만 황석희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조상무에게 더 달라붙었다.

원하는데로 허벅지에 칼을 찌르는데는 성공했지만 황석희의 쇠파이프가 내려쳐진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 언제봐도 괜찮은 전략이다.

어차피 남은 길은 하나다.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된다.

모든 걸 철저히 단순화시켜 한 가지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체력은 더 이상 끌어 올릴 수 없다.

정면충돌!

상대가 닿는다면 자신도 닿을 수 있음을 알기에 허벅지를 내주고 조상무의 머리를 노린 것이다.

퍼억!

푹!

황석희의 공격은 조상무의 어깨로 들어갔고 그의 손에 쥔 칼 역시 생각보다는 얕게 들어갔다.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며 일어난 조상무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뭐 저런 놈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이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황석희의 찢어진 허벅지 옷깃 사이로 피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황석희는 웃었다.

“역시!”

칼 솜씨가 좋다는 뜻이다.

적을 향한 칭찬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정으로 감탄하며 마음으로 뱉어낸 말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계산된 칭찬이다.

조상무는 전자다.

오늘 밤 자신의 목숨이 조상무의 손에 달렸다.

‘딱!’

황석희는 꿀꺽 침을 삼켰다.

‘한 번이다.’

자신의 몸 상태는 이미 만신창이다.

한 번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콱!

다시 한 번 쇠파이프를 강하게 말아쥔다.

자신의 뒤에 쓰러져 있는 저 놈들을 봐서라도.

쿵!

그리고 한 사람이 털썩하고 쓰러졌다.

묵직한 뭔가가 엎어지는 소리다.

조상무는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았다.

한 사내가 땅바닥에 엎어져 있다.

황석희였다.

죽었다.

대호를 사냥한 것이다.

휘청!

조상무는 가까스로 몸을 바로 세운다.

황석희가 조금만 더 체력적으로 강했다면 누운 사람은 자신일 것이다.

콸콸!

왼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어깨로 받아냈기에 망정이지 몸에 힘이 조금 더 남았다면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졌을 것이다.

잠시 꿈쩍도 않는 황석희를 내려다보던 조상무는 벗어 놓은 외투를 향해 걸어갔다.

윗도리를 주워 들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회장님. 사냥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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