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화 : 당장 나에게 싸움을 걸어라.
작은 테이블을 사이로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두호와 요리사복 같은 특이한 흰 옷을 입고 있는 직원.
공식적인 스폰쉽 계약을 앞둔 두 사람의 표정은 상반됐다.
왜 자신들을 선택하는지 이해 못하는듯한 표정의 직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두호의 선택은 굉장히 의외였다.
한빛제빵.
스포츠 협찬사는 대체로 비슷하다.
운동과 관련된 브랜드 이거나 열정과 도전을 기업 이미지로 삼는 회사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두호의 선택은 제빵업계였다.
그것도 대기업 제과 브랜드가 아닌 작은 프랜차이즈 수준의 한빛 제빵.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인 두호의 선택은 왜 자신들일까.
두호는 의아한 눈빛으로 직원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약 안 하십니까? 혹시 제가 마음에 안드시는...”
직원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그럴리가요! 그저 두호씨랑 일하게 되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직원은 당황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방에서 계약의 서류를 꺼내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다이닝 테이블 위에 계약 서류를 올려놓자 이내 카메라의 셔터음이 쏟아진다.
-찰칵
-찰칵
직원은 계약서 한 장을 두호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품 안에서 만년필을 하나 꺼내 두호에게 건네주었다.
두호는 빙긋 웃으며 만년필을 건네받았고 곧바로 계약서에 싸인했다.
직원은 여전히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호에게 조심스레 질문하였다.
“두호씨. 혹시 뭐 하나만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편하게 하세요.”
“저희를 선택하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두호씨 스폰서 제안 목록엔 매일은행도 있고, 한대모터스도 있던데요.”
광고 모델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제품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얼굴이다.
그러므로 영향력을 포함하여 근래의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을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현재 대한민국 대기업들에게 두호는 포섭 대상 1순위이다.
다른 선수들이라면 눈이 돌아갈 만한 기업들이 즐비했다.
자본은 물론 인지도부터가 지금의 한빛 제빵과는 너무나 차이 나는 기업들.
두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싱긋 웃었다.
“거기 소보루빵이 맛있어서요.”
“네?”
직원은 두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빤하게 바라보았다.
빵이 맛있어서라니.
자신이 들어본 계약 이유 중 제일 허술했다.
두호는 그런 직원의 반응이 재밌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성길 사장님이라고 계십니까?”
“네! 지금은 저희 대표님이십니다.”
두호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분입니다.”
“맞죠. 되게 좋으신 분입니다. 김성길 대표님과 인연이 있으십니까?”
두호는 대답 없이 싱긋 웃기만 했다.
한빛 제빵.
‘잘 지내실런지.’
두호가 아닌 도혁의 어린 시절.
보육원 아이들이 후원 품목중에 가장 좋아하던 것이 있었다.
지금은 한빛 제빵으로 불리지만 원래 이름은 ‘한빛이네 빵 마을.’ 이라는 곳에서 후원하는 빵이었다.
보육원에서 함께 지내던 형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이 김한빛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현 한빛 제빵 대표인 김성길이었다.
보육원 애들이랑 놀지 말아라라고 매몰차게 말 한마디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당일 팔고 남은 빵을 그대로 보육원으로 가져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팔고 남은빵이 아니더라도 그는 자주 보육원 아이들에게 빵을 가져다 주었다.
두호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이의 친구들이 먹을 빵이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비싼값을 책정할 수가 없더이다. 많이 먹고 훌륭하게 커서 가난한 아이들을 기껍게 받아주는 그런 어른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한빛 제빵은 지금도 여러 보육원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맛있는 빵을 선물한다고 한다.
기업의 이익을 건전하게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멋진 기업.
자신이 원하는 바와 기업의 이미지가 맞으니 두호는 망설임 없이 한빛제빵을 선택했다.
계약서의 가운데 두 사람 모두 싸인을 하고 한 장씩 나눠가졌다.
두호가 직원을 보며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앞으로 빵은 무료인가요?”
“네. 저희가 트럭으로 싣고 오겠습니다.”
두호는 직원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빙긋 웃었다.
두 사람은 사인한 계약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류를 들고 카메라를 향해 빙긋 웃었다.
“잘해봐요.”
“네!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백두호 선수!”
그렇게 두호와 한빛제빵의 스폰쉽이 체결되었다.
한빛제빵의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고 난 후 예수와 준모가 두호에게 다가왔다.
예수는 두호의 계약 서류를 넘겨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두호가 서류를 넘겨주자 예수가 가볍게 계약 내용을 살폈다.
딱히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예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두호씨 이제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해볼까요?”
두호와 예수가 출발하려하자 준모가 단호한 표정으로 막아섰다.
무슨 일이냐는 듯 준모를 바라보자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형님. 정말 아마추어처럼 이러실 겁니까?”
“뭐가?”
준모가 손을 뻗었다.
-툭.
-툭.
셔츠의 목부분 단추를 두 개 풀어헤쳤다.
준모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두호를 바라본 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이야 신성한 비즈니스니까 이해한다지만 기자회견은 아니죠. 애들 기 좀 죽여놓을라면 두 개 정도는 풀어야 합니다.”
예수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얼씨구.”
두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가자.”
“으아아아 우리 형님 나가신다! 싹 다 길 터라!”
준모가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앞장 서 기자회견장 방향으로 걸어가자 두호와 예수가 미소를 지으며 뒤따라 걸어갔다.
* * *
기자회견장은 대형 컨벤션룸에 마련되었다.
벌써부터 많은 투숙객들이 이번 PRIDE-K의 기자회견을 보기 위하여 켜켜이 줄을 서 있었다.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들의 판넬을 든 체 기다리는 사람들.
대체로 성별은 격투기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성팬 역시 의외로 많이 보였다.
“와. 사람들 진짜 많다.”
“그러게. 확실히 대세는 대세인가봐.”
긴 줄을 기다리는 사람 숫자가 어림짐작해도 500 여명은 넘어 보였다.
이번 기자회견장은 투숙객들에게만 공개되어 이 기자회견을 위해 호텔 투숙을 결심한 사람들 역시 많았다.
그 순간 한 사내가 등장한다.
일준이었다.
명품 브랜드 ‘G‘ 의 FW 컬렉션 갈색 슈트를 입고 나온 일준.
선글라스를 낀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그의 등장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열광했다.
“정일준! 정일준!”
“엘리게이터! 오늘 화끈하게 부탁한다!”
엘리게이터(Alligator).
혹자는 케이지안 그래플링 상황을 늪으로 표현한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빠져든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다 결국 빠져죽는 늪.
그 늪을 지배하는 악어.
일준의 타고난 그래플링 능력과 준수한 타격 실력으로 언론에서 그의 닉네임을 엘리게이터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준은 몇몇 사진을 원하는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익살스럽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역시나 그의 스타성은 인정해야 했다.
사고를 많이 치긴 하지만 타고난 난놈.
필린의 입장에서 이런 캐릭터의 등장은 나쁘지 않았다.
일준의 입장이 끝나고 곧 한 선수가 등장했다.
태건이었다.
평범한 청바지 차림에 루즈한 흰 셔츠를 입고 나왔다.
역시나 그의 성격답게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태건의 등장에 다시금 팬들은 환호했다.
“돌부처 너만 믿는다!”
“알잖아 어차피 우승은 조태건!”
사람들의 열띤 응원해도 태건은 소가 닭 보듯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그런 반응 역시 재밌는 듯 좋아해 주었다.
그렇게 뒤이어 준훈과 구열 그리고 남은 참가자들이 모두 입장을 마쳤다.
마지막 한 선수가 남았다.
잠시 차분해진 분위기 속 두호가 등장했다.
두호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여타 선수와 차원이 달랐다.
“우오아아아!”
“니가 우리 희망이다! 두호야!”
“보여줘! 코리안 몬스터!”
두호 역시 이런 환호는 처음 받아보기에 어색한 듯 했다.
머쓱한 표정으로 가만있자 예수가 싱긋 웃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팬 분들에게 반응해 주시는 것도 중요해요.”
두호는 이내 정중하게 자세를 잡아 팬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짧은 감사의 말과 함께 기자회견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두호였다.
사람들은 그가 기자회견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두호의 입장을 끝으로 모든 선수들이 기자회견장에 입장했다.
필린의 한 직원이 메가폰을 들고 크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PRIDE-K 기자회견장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한 분씩 입장 부탁드립니다!”
곧 기자회견장의 문이 활짝 열리고 차례대로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 * *
어수선한 분위기 속 미주가 진행석에 섰다.
미주의 등장에 관객들이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미주 누나!”
“사랑해요! 미주 누나!”
기자회견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싱긋 미소지어 준 미주는 곧 자신의 대본을 집어들었다.
차분하게 대본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의 양 옆으로 앉아있는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2층 구조로 각 층의 선수들이 4명씩 앉아 총 8명의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중 몇몇의 선수들은 긴장한 듯 했고 또 몇몇은 굉장히 여유로웠다.
미주는 선수들을 돌아본 뒤 대일에게 시작해도 좋다는 눈짓을 하였다.
대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생방송으로 공개된다.
“자 생방송 시작 카운트 다운 하겠습니다. 3.2.1 슛!”
정적 속 미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미주가 힘 있는 목소리로 멘트를 시작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 2달간의 배틀먼스는 우승자를 골라내기 위한 작업이 아닌 패배자를 골라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지옥같은 배틀먼스의 경쟁을 뚫고 올라온 PRIDE-K 본선 토너먼트 8강 페이스오프!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미주의 시작을 알리는 힘찬 목소리가 울리자 관객들은 환호했고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노명환 대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조용한 곳으로 걸어가며 핸드폰을 꺼낸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하는 노명환 대리였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무언가 일이 단단히 잘 못 된 듯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정말 이럴려고 한 게 아니에요. 저도 자료 받은 내용은 분명히 다른 거였는데요. 이게 이렇게 진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노 대리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트린 노명환 대리였다.
고개를 훽하니 돌리니 채수가 서 있었다.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노명환 대리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