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화 : 물이 되게 친구여
최구열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두호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반갑습니다.”
자신이 이긴 상대를 만나면 마음이 복잡하다.
미안한 감정은 아니지만 썩 즐거운 시선으로 상대를 볼 수는 없다.
간단한 인사가 전부였고 둘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두 사람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드르릉!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갔다.
각자의 층수를 누르고 조금 떨어져 서 있는 두 사람.
몇 번 흘긋거리던 구열이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저 그 혹시...”
두호는 무슨 일이냐는 듯 구열을 바라보았다.
구열이 잠시 망설이더니 입술을 다물어 버린다.
그리고 민망한 듯 어설프게 웃었다.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참기로 한 모양이다.
“아닙니다. 훈련 잘 하세요.”
“구열씨도 파이팅 하십시오.”
구열이 먼저 내렸다.
문이 다시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구열이나 자신 모두 서로에게 경쟁자이고 우승으로 가는데 앞을 막는 걸림돌들이다.
그렇다고 내가 우승을 해야겠으니 양보할 마음은 없냐는 따위의 질문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닐 것이다.
그때 처음 만났을 뿐인데 너무 강력한 기억이 되어있는 사내.
실력도 실력이지만 구열에게는 누구도 갖지 못한 능력이 있었다.
두호 자신도 당황했던 서슬 퍼런 의지였다.
절대 평범하게 살아온 사내는 아님이 분명했다.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구열,
구열은 화장실 앞 거울에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아이 씨.”
그의 머릿속은 한 가지 고민때문에 복잡했다.
물어볼걸.
아니다 너 같으면 알려주겠냐.
괜히 물어봐서 면박이라도 당하면 그것 나름대로 또 괴로울 일이다.
사실 얼마전부터 슬럼프에 봉착한 구열이었다.
구열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니 이렇게 제법 좋은 기회가 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노력은 하나씩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부턴가 조금씩 패배의식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압도적인 재능 앞에 자신의 재능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죽을 듯이 노력해도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
그래서 두호의 앞에서 고민했던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를 물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에휴.”
구열은 얼굴을 감싸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 * *
선수마다 훈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몸으로 계속 부딪혀 가며 하나하나씩 깨달아가는가 하면 어떤 선수는 경기 영상을 통해 상대의 단점을 분석하고, 누군가는 비슷한 선수를 데려다 끊임없는 스파링으로 실력을 끌어 올린다.
그러나 두호의 훈련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두호의 훈련장을 찾아온 주민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두호는 지금 쉐도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반복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상대를 앞에 둔 쉐도잉이어야 한다.
상대를 어떻게 제압해 나갈건지, 어떠한 움직임을 이끌어내려 하는 건지가 빠졌다.
목적에 맞지 않는 쉐도잉이다.
이제 막 격투기를 시작한 선수가 기본기를 다지기 위한 용도로 하는 쉐도잉으로 보일 뿐이다.
경기가 당장 코 앞인 선수가 해야 할 훈련은 아닌 것이다.
그때 훈련장 문이 열리며 채수가 한 무리의 사내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중 가운데 있는 사람의 분위기는 실로 압권이었다.
주민이 손을 흔들며 채수를 반겼다.
“어 왔어? 모두들 오셨구나 안녕하세요!”
주민은 곧장 미소를 띄운 채 가운데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역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았다.
두호는 잠시 훈련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채수가 덩치 좋은 사내를 두호에게 데리고 왔다.
“이 친구는 J-2에서 미들급 챔피언인 기타기시 나오입니다.”
채수는 자신이 데려온 사내를 소개했다.
J-2.
일본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단체.
일본은 한국보다 스포츠에서 신인과 유망주를 발굴하는 것이 훨씬 뛰어나다.
취미와 선수반을 모두 책임질 수 있는 인프라가 존재 하다보니 종목을 막론하고 재능있는 실력자들이 쏟아진다.
나오는 격투기 분야 실력자들 사이에서 무려 6번의 챔피언 방어전을 성공한 일본이 자랑하는 격투기 천재였다.
채수가 이런 엄청난 사람을 한국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계약대로 하면 되죠?”
“네 그렇습니다.”
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민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살을 지푸렸다.
“풀 스파링. 3분 5라운드씩. 6시간 동안.”
“네에엣!?”
스파링에는 다양한 강도가 있다.
가볍게 쉐도잉으로만 주고받는 강도부터 실전과 다름없이 진행하는 스파링.
두호가 나오에게 주문한 것은 실전적인 수준의 스파링이었다.
나오가 환복을 위하여 탈의실로 들어가자 그의 매니저가 두호에게 다가온다.
“두호군.”
“네.”
“본인에게도 정말 중요한 경기겠지만, 우리 선수 역시 중요한 때에요.”
부상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는 말이다.
두들겨 때려 생기는 부상이 아니라 버팅을 포함한 경기 외적인 이유로 생기는 것을 뜻했다.
모든 선수들에게도 부상방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챔피언에겐 이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다.
그렇기에 챔피언들은 부상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사실 이런 미스 매치는 업계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 데뷔도 못한 선수를 챔피언이 훈련을 도와주기 위해 한국을 온다는 것.
아무리 같은 단체전 챔피언인 채수의 부탁과 스파링 의뢰비를 들였다지만 급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오는 달랐다.
그 역시 끝없는 연구와 동기부여를 얻어가며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사내였다.
두호의 경기와 훈련 영상을 시청하자마자 흔쾌히 훈련을 허락했다.
훈련 영상을 처음 본 나오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마 이 친구는 괴물이 될 겁니다.-
자신 역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런 동일한 패턴의 반복 훈련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인가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슬럼프 조짐이다.
이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함을 느꼈다.
두호의 경기 영상에서 길을 찾은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나오는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채수가 나오에게 소리쳤다.
“5분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나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두호 역시 스파링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입식룰로만 적용되는 이번 스파링에서 두호는 단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자유로운 움직임.
지금껏 자신은 철저히 계산되고 확실한 움직임을 보였다.
과거 용병시절의 경험으로 인한 일종의 생존 본능.
공격의 실패는 곧 반격으로 이어지고 그 반격에 목숨을 잃는 것이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다양성을 배제하고 목표물을 확실히 제거할 간단한 동작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 격투기는 아니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인 전쟁터와 달리 몇 번이고 리벤지 매치가 가능한 스포츠이다.
모든 반복적이고 단순한 움직임은 분석이 되며 언젠간 파훼된다.
끝없는 창의력.
예측 불가능한 자유로움.
꿈 같은 영역일 테지만 자신은 그곳에 닿아야 했다.
그래서 나오를 초빙한 것이다.
단순한 얘기지만 챔피언조차 분석하기 힘들어 한다면 성공인 셈이다.
나오가 스트레칭을 마치고 장비를 착용했다.
마주 선 두 사람.
채수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오며 멀리 있는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밖에 문 잠궜지? 촬영 절대 금지다!”
직원이 멀리서 소리쳤다.
“네! 확인했습니다.”
채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의 한 팔씩 붙잡았다.
“두호씨에겐 배움의 기회가. 나오씨에겐 열정의 재점화가 되길 바랍니다.”
두 사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가 빙긋 웃는다.
“잘 부탁드려요. 코리안 몬스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오.”
채수는 타이머를 눌렀고 이내 손을 내렸다.
“파이트!”
두 사람은 결연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 앞에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발전을 이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듯.
* * *
준모는 야외 주차장 옆 흡연실에 앉아 있었다.
두호를 만난 이후로 담배를 끊었었다.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끊은 담배를 다시 손에 쥐었다.
“후.”
한숨 같은 연기를 내뿜으며 그저 멍하게 앉아 있었다.
동생의 투병이 어느덧 5년째로 접어들었다.
희귀병의 치료는 환자 본인에게만 힘든 것이 아니다.
완치를 기대하며 버텨가는 하루하루가 다 돈이다.
한두 푼이 아니다보니 자신 역시 뒷골목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정말 못할 짓 하며 살았구나.”
자신 때문에 성아가 더욱 안 좋아진 것 같아 어젯밤 가슴앓이 하며 잠에 들었다.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도 씨익 웃었는데 동생일은 왜 이리 가슴이 아픈지.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간 이식은 뇌사자 간 기증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기증 대기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그 기간을 아파하며 지낼 동생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땅 바닥에 비벼껐다.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로 걸어가던 그때 준모가 잠시 멈춰섰다.
다시 뒤를 돌아 비벼 끈 담배로 향한다.
담배 꽁초를 집어들어 재떨이 안으로 툭 던져 넣었다.
그 순간 누군가 미소를 지으며 준모에게 다가왔다.
준모는 고개를 들었다.
낯익은 얼굴 하나가 다가오는데 노팀장이었다.
준모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씨발 잰 또 뭐야?”
가뜩이나 심란하다.
“워워. 너무 그러지 마라. 저번엔 내가 미안했다.”
경찰서 앞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날 때 함부로 말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다.
노팀장의 사과에 준모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일이 굉장히 꼬인다. 이번 대회 말이야.”
준모의 눈이 가늘어졌다.
PRIDE-K에 좋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노 팀장은 준모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대회로 인해 바쁘실테니 대표님께 이것만 좀 전해다 줘.”
“전해드리죠.”
“수고하라고!”
노팀장이 몸을 돌렸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준모는 노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커피 한 잔 하고 가시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내기가 미안했다.
그것도 필린을 돕기 위해 중요한 정보를 가져온 사람이다.
노팀장이 빙긋 웃었다.
“나도 바쁜 사람이야. 필린의 매니저라고 들었는데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라고.”
손을 들고 돌아간다.
준모는 걸어가는 노 팀장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한때는 노팀장만 보면 숨기 바빴었다.
잠시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던 준모가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묵묵히 걸어가던 노 팀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준모는 호텔의 내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자식.”
개과천선은 없다.
자신의 경찰 생활 중 유일하게 확신하게 된 하나이다.
재범율이 유독 높은 범죄들이 있다.
특히 폭력배들이나 마약 사범들이 여기에 속한다.
출소하면 새 삶이라도 찾을 것처럼 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연히 보게 된 준모는 달랐다.
어떠한 이유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게 된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 노 팀장이었다.
씨익 미소 짓는 노팀장.
자신의 확신이 틀렸지만 왜인지 기분이 좋은 노 팀장이었다.
“보기 좋네. 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