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화 : 물이 되게 친구여.
“계속 말해 봐.”
어머니의 목소리는 좀 더 차분해졌다.
그때 밖에 있던 아버지가 시원한 물 한잔을 가져다 놓았고 어머니는 단숨에 마신다.
“해도 되는 거니?”
두호의 눈이 빛난다.
어머니는 지금 아들 직장으로서의 가치를 묻는 것이었다.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과연 괜찮을지 알고 싶은 것이다.
설명을 잘해야 한다.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끄집어 어머니를 위로할 마음은 없다.
“저 앞 태권도 관장님만큼 벌어요.”
평소 어머니가 가장 부러워하는 젊은 사람중 한 명이 길 건너 태권도 관장이다.
잊을 만하면 저기 태권도 도장에는 뭔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니, 이 근처 아이들은 전부 다니는 것 같다면서 아이들 태우고 다니는 도장 차량이 석 대나 된다고 했다.
급기야 어머니가 피식 웃어 버린다.
자신을 이해시키는데 태권도 관장에 비교하는 것보다 더 분명한 설명은 없다.
“복싱 선수들보다 사후 건강도 좋고, 요새 사람들이 호신술 겸해서 많이 배우는 운동이기에 코치로도 먹고 살만 합니다. 챔피언만 되면 억대연봉은 일도 아니구요.”
어머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과는 많이 편해진 표정이지만 여전히 시선은 흔들린다.
속 한번 썩인 적 없는 아들이지만 운동과 관련해서는 지워지지 않을 아픔이 적지 않다.
우직한 저 성격.
아버지를 닮은 건지 아파도 말을 않고 좋아도 웃지 않는다.
도무지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괜찮겠니?”
성공 따위를 묻는 게 아니다.
그 일을 하면 정말로 행복할지를 묻는 것이다.
두호는 어머니의 질문에 고민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예!”
“하긴!”
두호는 어머니의 다음 말을 알고 있다.
네가 좋아한다면 어떻게 엄마가 막겠니.
어휴 무슨 돈벌이가 그렇게 피를 보면서 한다니 라고 말이다.
두호는 굳은 의지를 품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선물로 주신 이 값진 재능을 가지고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순간 울컥했다.
물려줄 것 하나 없을 테지만 자신에게 재능을 선물해주었다고 했다.
이 얼마나 부모를 위한 값진 찬사인가.
어머니는 이미 허락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까.
다만 자기 자식이 차가운 현실을 잘 견딜 수 있을지를 매일 걱정한다.
하지만 이제 걱정은 없다.
저런 의지와 생각을 가진 아이라면 무엇이라도 잘 견뎌낼 테니까.
“그럼 됐다. 나가봐.”
“네. 알겠습니다.”
두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어머니는 나가는 두호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제발. 저 아이가 꾸는 꿈에 저 아이도 포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였다.
그리고 보통 일찍 철이 든 아이는 자신보다 가정을 먼저 생각한다.
자신의 행복이 아닌 가정의 불행을 떨쳐내고자 저 아이가 발악하는 것 같아 속이 쓰리다.
자신을 챙기지 않아 망가져 버리질 않길 바라는 것이다.
* * *
늦은 시간 두호가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가 떠나고 두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로등이 빛나는 주택가 골목은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길 눈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대낮도 아닌 어두운 밤 중이어서인지 무척 헷갈린다.
어린이집 간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우유 배달점이 있다.
이 근처가 틀림없다.
채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준모와 같이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긴히 준모가 해줘야 할 일이 생겼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백두호의 전화라면 자다가도 받을 준모다.
주변을 잘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시안 연립 2층이라고 했는데.’
골목을 돌고 헤매다 연립주택을 발견한 두호의 눈이 빛난다.
재빨리 다가가자 입구에 시안연립이라고 쓰인 낡은 간판이 벽에 붙어 있다.
2층의 불은 깜깜히 꺼져있었다.
늦은 시간이긴 했어도 아직 10시가 안 되었다.
벨을 몇 번 눌러보고 문을 쾅쾅 두들겨 보았지만 그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몇 번 더 누르다 반응이 없이 내려왔다.
“누구여?”
일 층 문이 열리며 노인 한 명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바라본다.
“윗집 총각 찾어?”
노인을 발견한 두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네. 어르신.”
“뭔 일이 나긴 했나보구만. 아까 구급차 와서 위층 사람 실어갔어.”
“네에?”
두호는 깜짝 놀랐다.
“어느 병원으로?”
“나야 모르지. 요 근처 큰 병원은 주안대병원 밖에 없어. 그리로 가봐.”
두호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혹시 몰라 걸어가면서 번호를 눌렀지만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야간 원무과는 문이 닫혀있다.
두호는 응급실을 찾아갔다.
119 한 대가 도착하더니 문이 열리고 피범벅이 된 환자가 들것에 실려 내렸다.
이동 들것은 신속하게 응급실 안으로 사라졌고 두호는 입구 접수처에 앉은 남자 직원에게 다가갔다.
“혹시 양준모라고 있습니까? 환자인지 보호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응급 환자인가요?”
“119에 실려 온 것으로 압니다.”
직원은 컴퓨터로 입퇴원 기록과 응급실 내원 기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찾던 직원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네. 왔습니다. 환자분 양성아. 보호자 분 양준모. 응급실로 내원하셨네요. 들어가 보세요.”
두호는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양성아.
사실 준모의 가족에 대해 거의 아는 바는 없다.
몇 번 묻긴 했지만 그때마다 준모가 대충 뭉기며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자세히 묻지 않았다.
두호는 조심스럽게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고, 환자분 정신 차리라는 간호사 목소리가 차갑게 울린다.
응급실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벽에 실려 온 환자들 이름이 적힌 칠판이 보인다.
‘양성아’
6번 침대다.
둘러쳐진 커텐 입구에 걸린 호수를 살피며 걸어갈 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나마 나이가 젊어 버티는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간 이식이 아니면 계속 이렇게 야간 응급으로 실려 오는 일이 잦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간 이식이 끝내 이뤄지지 않으면 병원으로서도 별로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간 이식을 선택한다 하셔도 안 좋은 상황입니다. 결국은 간 기증자를 찾기 전까지 외과적 수술과 약물치료를 번갈아 가며 해야 하는데, 이게 또...참.”
스윽!
그때 앞쪽 커텐이 열리며 마흔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의사가 걸어나왔다.
두호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의사를 돌아보았다.
의사의 다음 말은 필시 돈이 많이 든다는 뜻일 것이다.
두호는 준모와 동생이 있는 6호실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동생이 아프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워낙 대수롭지 않게 얘길 하여 이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간 이식 운운할 걸 보면 중환자인 모양이었다.
두호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등을 돌려 응급실을 걸어 나왔다.
입구 오른쪽으로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은 두호는 어스름한 방범등 아래 있는 벤치에 앉았다.
후루룩!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시커먼 것이 구름이 낀 모양이다.
문득 두호의 코가 벌름 거렸다.
코끝을 파고드는 가느다란 향기가 있었다.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깊은 밤에 날아오는 향기는 두호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했다.
후루룩!
커피를 마시고 한숨을 쉬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쉭쉭!
바람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뒤로 쳐들고 빈 컵을 수직으로 세웠지만 입안으로 들어오는 커피는 없다.
빈 컵을 구겨 앞에 있는 휴지통에 던져 넣고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너무 늦은 시간에 하나...”
두호는 늦은 시간의 전화가 미안한 듯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길게 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 * *
두호는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니 9시 5분.
평소와는 다르게 집 앞 골목이 휑했다.
멀리서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준모의 차였다.
걸어 내려오던 두호를 봤는지 라이트를 몇 번 깜빡이며 차를 한쪽으로 멈춰 세웠다.
문을 열고 내린 준모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형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두호는 싱긋 웃으며 준모의 어깨를 툭 쳤다.
“괜찮아.”
두호는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어깨 뒤로 들춰 메며 뒷자리에 탑승했다.
준모 역시 후다닥 운전석으로 달려가 차에 탑승했다.
룸미러로 급하게 머리를 정리하는 그를 두호가 뻔하니 바라봤다.
자신의 지각으로 인해 두호가 기분이 나쁜 줄 알고 있는 준모는 긴장하고 있었다.
“형님...정말 다시는 이런 일이...”
그러나 두호의 대답은 준모의 예상과는 달랐다.
“머리 내리니까 훨씬 낫네. 앞으로 그렇게 다녀.”
준모는 의아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 네! 앞으로 머리 다리미로 쫙 피고 다니겠습니다.”
준모의 대답에 두호는 빙긋 웃어 보였다.
준모는 천천히 차를 출발했다.
동네를 벗어나자 두호는 어김없이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준모는 어제 두호의 전화를 미처 받지 못한 것이 생각이 났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두 번 찍힌 것이 아닌 걸 보면 자신에게 급한 용무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어제 제가 조금 바빠 전화를 못 받았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별거 아냐. 같이 밥 먹자고.”
“아, 네!”
“동생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갑작스럽게 동생 이름을 묻자 룸미러 속의 준모가 멈칫했다.
“둘이라고 했지?”
“네. 어제 동생 놈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교육적인 차원으로 제가 콱! 기강 한번 잡았습니다. 이 녀석이 오빠 무서운 줄도 모르더라구요.”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룸미러 속의 준모 얼굴이 달아 올랐고 핸들을 잡은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도둑이 제발 저렸을 때 스스로를 덮고 감추기 위해 보이는 과한 몸짓을 그대로 빼닮았다.
척하기가 힘든 일이다.
아닌 척, 괜찮은 척, 별일 없는 척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동생중 누가 아프다고 한 것 같던데 하고 물으려다 두호는 입을 다물었다.
배려와 관심이 잘못되면 상대를 힘들게 만든다.
지금의 준모는 모르는 척 하며 넘어가 주는 것이 편할 것이다.
애써 누르고 있는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 주지도 못할 거면서 들쑤시면 아프기만 할 뿐이다.
“내일 조편성 시작한다는 것 아시죠?”
“연락 받았다.”
부우웅!
차는 골목을 나가 도로에 진입했다.
호텔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이었다.
준모는 몸을 돌린 체 두호를 바라보았다.
주먹을 꽉 쥐며 흔들었다.
“형님! 그럼 고생하십시오. 저는 이따가 이채호 대표님 모시러 가야합니다.”
“그래. 알겠다. 운전 조심해서 해라.”
“네 형님! 점심도 저녁도 맛있게 드십시오!”
두호는 차 문을 열고 내렸고 이내 준모가 탄 차도 금세 출발했다.
로비로 들어선 두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분위기가 다르다.
PRIDE-K 관련 문의를 전속으로 담당하는 데스크가 생겨있었고 필린의 직원들도 대폭 늘어났다.
그것뿐이 아니다.
아침인데 호텔 투숙객들이 밀려든다.
“와.. 백두호다.”
“코리아 몬스터! 우승까지 가즈아아아아!”
두호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그렇게 투숙객들이 넘치는 로비를 지나 PRIDE-K 출전 선수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는 고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선다.
고개를 돌린 두호의 눈이 좁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