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화 : 물이 되게 친구여
-휘리릭.
로비의 회전문이 돌아가며 두호가 걸어나왔다.
두호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올려다 봤다.
근래에 흐린 날씨가 많더니 오늘 쾌청하다.
누군가 불쑥 나타나며 방긋 미소지었다.
“형님 뜨거운 아침입니다!”
준모는 싱글벙글이다.
이제는 직원들의 단체복이 제법 잘 어울리는 게 보기 좋았다.
“이게 얼마만의 외출이십니까.”
자신이 외출하는 듯 좋다면서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방송이 나가고 두호를 향한 팬들과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 프로를 압도하는 실력.
- 한국 격투기계를 접수할 괴물 신인의 등장.
- 그는 세계 무대를 원하는 듯하다.
팬들과 모든 언론의 총평은 두호의 대한 찬사로 가득찼다.
하지만 화려한 실력 뒤에 묻혀 있던 한 안타까운 청춘의 그림자까지 소개되면서 더욱 팬들의 지지는 끓어 올랐다.
간혹 두호의 팬이라며 호텔의 주소로 팬들이 선물까지 보내왔다.
다른 선수들에게 보내온 선물 역시 있었지만 두호의 선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몇 가지 미션이 더 진행되었고 최종 16명이 선정 되었다.
곧 시작될 토너먼트.
이제 살아남은 선수들은 우승까지 몇 발자국 남지 않아 다들 개인 훈련에 열중이었다.
피식!
두호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준모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겉만 번지르한 자가용을 세워놓고 문까지 열어 놓았다.
멈칫!
차에 오르려던 두호의 눈이 빛난다.
차 유리가 진하게 썬팅이 되어 있었다.
두호가 이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준모는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형님도 이제 유명인이신데 몸가짐에 각별히 신경쓰셔야죠.”
그 말에 두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준모다.
“고맙다.”
준모는 문을 닫아주고 재빨리 운전석에 올랐다.
“형님. 집이죠?”
“아니. 오늘은 소복상회로 가자.”
“역시 형님은 천하제일 효자십니다. 이런 것도 뉴스에 나와야 할텐데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준모는 차 시동을 걸었다.
차가 조용히 호텔을 빠져 나간다.
두호는 유리를 약간 내리고 창밖을 보았다.
막바지 훈련으로 접어들면 감량과 전술 훈련으로 도저히 틈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지금쯤 찾아 뵙는게 맞을 듯 싶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부모님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드릴 생각이었다.
“너는?”
준모 역시 두호가 나간다고 하자 같이 월차를 냈다.
그렇다고 준모의 시간을 뺏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무엇 할 것인지 물은 것이다.
“저도 오랜만에 집에 가봐야겠습니다.”
“오 진짜?”
두호는 의외라는 듯 준모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요새 집에 신경을 너무 못 쓴 것 같아서 하하.”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지?”
“너무 건강합니다.”
준모는 히죽 웃었다.
“아 참, 이번 최종 16강에 들어간 선수들에게는 파이트 머니와 승리 수당이 지급된다고 하던데 아시죠? 얼마나 주려나.”
프로도 아닌 오디션에 참가한 선수에게 파이트머니라니 가히 파격적이다.
거기에 승리수당까지 쥐여준다는 것으로 보아 대회가 예상을 훨씬 웃도는 흥행을 하는 모양이다.
언제가부턴 참가자라는 표현보다 이름을 부르는 횟수가 많아진 것이 이 때문인 듯 했다.
부우웅!
차가 빠르게 달려 사라졌다.
차는 서울로 들어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입구에 멈췄다.
“형님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그래. 고생해라.”
차가 떠나고 가방을 들고 내린 두호는 올레시장이라는 아치형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닌데 무척 낯설다.
아마 PRIDE-K에 지나치게 몰두한 탓이리라.
두호는 시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건너편에 대형마트가 생기며 손님을 다 뺏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타격은 다행히도 별로 없는 듯 했다.
값을 흥정하며 옥신각신하는 사람들.
맛집이라고 불리는 분식집 앞에서 꺄르르 웃는 학생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소한 일상을 바라보니 마음이 다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탁!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헤치며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턱하니 잡았다.
두호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과일가게 정우홍 사장이었다.
“역시 두호 맞구나!”
우홍은 두호를 보고 큰소리로 웃었다.
“우홧홧홧! 올레시장의 자랑 백두호!”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격투기 스타 백두호 선수가 여길 다 온거야?”
큰 목소리로 떠는 호들갑에 사람들 시선이 하나둘 모였다.
그리고 시장 사람들의 얼굴들이 환해졌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은 지금 알기 시작했다.
“백두호 진짜 맞네!”
“코리안 몬스터다!”
코리안 몬스터.
판 자체를 뒤흔드는 새로운 스타의 등장.
언론은 두호의 뛰어난 상품성을 완성 시켜줄 상업적 호칭이 필요함을 느꼈다.
물론 필린과 어느 정도 의견을 맞춘 것이겠지만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과 그 모든 것을 이행할 신체 능력은 몬스터라는 닉네임에 매우 어울렸다.
경기의 흐름을 유연하게 이용하는 지능.
마지막 프로선수를 상대로 자극적인 피니쉬를 선보이는 스타성.
한국 격투기 시장의 늪을 헤치고 올라온 새로운 슈퍼스타.
‘KOREAN MONSTER’
그렇게 두호는 코리아 몬스터가 되었다.
“여기 한번 봐주세요!”
“같이 사진 한 번 찍으면 안되나요!?”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에 두호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우홍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굉장히 친한 듯 어깨동무까지 했다.
“점심은 먹었어?”
“네. 부모님 가게에 계시죠?”
“아버지는 계실텐데 어머님은 안 보이시던데? 가서 봐봐.”
우홍은 두호에게 얼른 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여기저기서 핸드폰 사진찍는 소리가 콩 볶듯 터지며 두호는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부 학생 몇은 두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들을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시위하듯 서로 어깨동무를 하여 두호의 이름을 연호했다.
“백두호! 백두호!”
이 주변의 아이들에게 백두호라는 의미는 상당하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따뜻한 밥 한 끼와 다정한 말 한마디가 전부인 형편의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 아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호는 그런 아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포기하지 않는 법.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믿고 나아가는 법.
이 아이들에게 두호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닌 가난한 청춘들에 희망이 되어있는 것이다.
두호 역시 그런 마음을 아는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만치 소복상회가 보인다.
가게 앞에는 많은 건어물들이 이름표와 같이 진열되어 있고 아버지는 가게 안에서 평소처럼 신문을 보고 있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에 손님이라고 판단한 듯 신문을 놓고 일어선다.
“네. 뭐 드릴까요?”
아버지가 놀란다.
손님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활짝 웃는다.
두호가 약간 멋쩍은 듯 살짝 웃었다.
“저 왔어요.”
“어서 오너라!”
환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두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밥은 먹었고?”
“네.”
“얼굴 좋아졌구나.”
두호의 시선이 아버지의 어깨 너머 벽면에 꽂힌다.
건어물을 보관하는 대형 수산냉장고 전면이 오려 붙힌 신문으로 가득했다.
하나 같이 두호와 관련한 기사들이었다.
기사에 등장한 것마다 오려놓으셨는지 오려놓은 신문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미친 듯이 들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
익숙하지 않는 일이기에 아버지는 당황스러운 듯 자꾸 마른 침을 삼켰다.
“여기가 백두호씨 가게에요?”
“와. 건어물 가게 하시는구나!”
아버지는 두호를 돌아보았다.
내성적인 아들이 이런 과한 관심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이다.
두호는 가방을 툭하니 던져놓고 진열대 앞에 선다.
“물건 좋습니다. 구경해보세요.”
두호의 말에 아버지는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물 들어올 때 노저으랬잖아요.”
인기 좋을 때 건어물 가게 홍보라도 하자는 것이다.
건어물 가게 하는 아버지가 부끄러울 법도 한데 한 번을 그런 티가 없었다.
두호는 구매자들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는 사진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순식간에 진열대 물건이 사라진다.
물론 냉장고와 안쪽 창고에 물건이 있지만 아버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렇게 십 분도 되지 않아 진열대 물건이 팔리긴 처음이다.
“어머니는요?”
두호는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 진열하며 물었다.
“너희 엄마 요새 배에 가스가 좀 차는지 병원 갔다. 올 때 됐는데?”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시장 입구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기 오네.”
어머니는 약 봉투를 한 손에 들고 부지런히 걸어왔다.
진열대에 물건을 새로 놓는 걸 보며 깜짝 놀란다.
“왜 이러니?”
아버지는 아직도 가지 않고 두호를 찍는 가게 앞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들 손에는 소복상회에서 산 건어물 봉지들이 양손 가득 들려 있었다.
“오셨어요?”
“두호야!”
어머니는 안도하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반쯤 입을 열었다가 닫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코트를 벗어 걸어놓고 곧바로 앞치마를 걸쳤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한산해지자 어머니는 헝클어진 진열대 물건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호도 어머니를 도와 같이 정리를 했는데 어느 한순간 두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머니를 바라본다.
마른 오징어포를 보기 좋게 진열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다.
직감적으로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아 차렸다.
또한 그 할 말이 무엇인지도 전혀 짐작 가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두호야!”
꼼꼼하게 물건들을 다듬고 고쳐 놓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바쁘니?”
“아니요.”
오라는 얘기다.
두호는 어머니가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작은 방이 있는 쪽마루에 앉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텔레비젼을 보고 알았다. 시장통 사람들이 말해주기도 했고.”
두호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내 아들 소식을 그런 방법으로 들어야 하니?”
“여보!”
“당신은 빠지세요.”
아버지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듯 잠시 서 있더니 못 이긴 체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두호를 바라보았다.
뭔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머릿속에서 정확히 정리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아들의 미래와 과거가 엮인 선택.
그 선택에서 엄마인 자신이 빠졌다.
자식의 행보를 남의 입으로 전해 들었을 때의 기분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두호와 자신 사이에 큰 벽이 생겼음을 느끼며 눈 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엄마로서 부족하니?”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할 만큼 부족하냐는 의미다.
아들의 삶에 발목을 잡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싶었다.
현실은 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의 꿈과 현실을 조율해주는 역할이다.
두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근데. 어떻게 의논 한 마디도 없어 그렇게 큰 일을 정할 수 있니?”
두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어머니가 느꼈을 섭섭함을 위로할 수가 없다고 느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할 말이 없어 보긴 처음이다.
어머니는 두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몇 개월 전보다 몸은 좋아진 듯 하지만 얼굴에 자잘한 상처가 눈에 띈다.
3년전 복싱을 할 때도 이랬다.
상처를 얻으면서까지 이런 과격한 운동을 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그래서. 지금 하는 게 뭐니?”
아버지나 주위 시장 사람들이 아닌 두호 입으로 직접 설명을 듣고 싶다는 뜻이다.
“한국말로는 종합격투기입니다.”
어머니는 엉덩이를 들었다가 다시 앉는다.
“그건 복싱이랑 다른 거니?”
“네. 더 복합적인 투기 종목이에요.”
사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종합격투기에 관해 어느 정도 설명을 들었다.
복싱과 달리 온 몸을 이용하여 싸우는 종합격투기.
그러나 차분하고 절제된 복싱을 생각했던 어머니의 예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피가 흐르는데도 경기를 멈추지 않는다.
거기에 연못 싸움 편을 보았을 때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어느 군부대가 갯벌에서 뒹구는 건 보았지만 그래도 연못 싸움만은 못했다.
이 폭력적이고 잔혹한 싸움을 보며 도대체 왜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그리고 더욱 자신을 두렵게 만들었던 건 두호와 경욱의 승부였다.
닭장 같은 철장에서 투견처럼 싸우는 두호를 보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내 아들이 왜 저런 곳에서 저런 싸움을 해야 한단 말인가.
왜 내 아들은 저런 싸움이 끊이질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