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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53화 (53/204)

제 53화 : 물이 되게. 친구여.

두호도 가보고 싶은 듯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냥 주저 앉았다.

벌떼처럼 몰려 있어 지금 가도 정확한 내용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미션인데. 안 보세요?”

두호 역시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찍 본다고 판이 바뀌지는 않는다.

“조금 뒤에 보죠.”

두호가 남은 식사를 마저 하기 위해 수저를 들었고 예수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급하게 주머니를 뒤졌다.

“두호 씨. 나 여기 직원인거 잊었어요?”

“네?”

예수는 뒤이어 자신의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반듯하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두호에게 건넸다.

기둥에 붙은 벽보와 같은 내용의 종이였다.

“자 여기.”

두호는 싱긋 웃으며 그 종이를 건네 받았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종이를 펼쳐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2라운드 미션명

자신이 상대했던 예선 프로와의 단판 매치인데 3분 3라운드의 MMA의 규정이다.

종이에 던져진 두호의 시선은 어떤 움직임도 없다.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민하는 표정의 두호를 보며 예수가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

스윽!

“어차피 오늘 숙소 들어가면 관련 자료를 넘겨줄텐데. 궁금하시면 미리 말 좀 해줄께요.”

“네. 배경을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는 싱긋 웃으며 헛기침으로 목을 풀었다.

“으흠!”

스타일과 전력으로만 상대를 분석하는 것은 하수다.

그의 습관, 성격, 운영방식 등등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통하여 전략을 만들어야 빈틈이 없다.

예수는 자신의 식판을 앞으로 살짝 밀며 말을 이어나갔다.

“두호씨가 예선전에서 붙었던 선수의 이름은 도경욱. 이번 PRIDE-K에서 정혁씨를 제외하고 가장 뛰어난 실력자입니다.”

‘도경욱.’

두호는 그의 모습을 회상했다.

“나이는 올해로 28살. 중국 단체인 군룬에서 활동하는 웰터급 파이터입니다. 장차 챔피언이 될 잠정 챔피언이라 평가되는 슈퍼 루키죠.”

두호의 머릿속에 스치듯 스파링 초반부가 떠올랐다.

‘타격 감은 확실히 좋았지.’

가장 인상적인 면이었다.

타격 실력에 대한 감은 노력으로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상대에게도 감을 느낀다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다.

단순히 상대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계획까지 감지해내는 능력.

도경욱은 확실히 그 감이 빼어난 선수였다.

“킥복싱과 공격형 주짓수를 베이스로 장기 운영을 하는 스타일이죠. 굉장히 올드스쿨 하지만 완성도 자체가 이미 한국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라 해외 진출도 가능했습니다.”

씨익!

갑자기 두호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마지막 종합룰로 경기를 할 때 경욱은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두호는 그가 흥분한 이유를 납득했다.

‘평소 같으면 깔려도 쉽게 스윕(그라운드 상황에서 상대와의 포지션 위치를 바꾸는 기술) 할 수 있었다 이거구나.’

그때 두호를 넘기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종합룰의 오픈핑거글러브와 달리 복싱 글러브는 그라운드에서의 능력이 대폭 줄어든다.

복싱글러브를 끼고 있었으니 자신의 주무기를 봉인해놓고 싸운 것과 다름이 없었던 상황.

‘으으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잠깐 맛보기로 진행됐던 내용을 가지고 도경욱을 판단해서는 위험하다.

이제야말로 바늘 끝만한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자면 모든 걸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고맙습니다. 예수님.”

“별 것도 아닌데.”

예수는 밥을 먹는둥 마는 둥 했다.

닭가슴살을 젓가락으로 콕 질러보며 인상을 찌푸리는데 단단히 심통이 난 듯했다.

“에이. 안 먹을래.”

예수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봐요 두호씨. 아참.”

다시 식판을 내려놓은 예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두호에게 내민다.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네?”

두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건넨 핸드폰을 받아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고는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예수가 핸드폰을 받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세요. 별 이유 아니어도 좋고.”

예수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윙크했다.

두호의 핸드폰이 울린다.

화면 잠금 위로 ‘제 번호에요.’ 라는 문자 한 통이 떠올랐다.

“진짜 갈게요. 내일 봐요 안녕.”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버리는 예수.

두호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그리고 자신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가 걸어간 곳을 뒤따라 걸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 도경욱이 보고 있었다.

굴욕 같은 지난 경기가 생각나는 듯 언짢은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백두호.’

어금니를 깨물며 그 또한 식판을 들고 걷는다.

* * *

명동 시계방 골목 앞으로 회색 봉고차 하나가 주차되어 있다.

-쾅쾅

창밖에서 내리는 빗발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가게의 주인들은 진열해놓은 물건을 비닐로 뒤집어 씌우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부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밤새 퍼붓겠는데요.”

“참. 아침 일기예보에서 본 거랑은 다르네. 거진 태풍이구만.”

황석희는 차 창문을 톡하니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맺힌 빗방울이 또르륵 떨어진다.

예정보다 많은 비로 인하여 계획의 차질이 생겼다.

잠복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봐야한다.

하지만 거세게 퍼붓는 비에 시야가 좁아졌다.

차에 가까이 붙어 지나가는 사람 외에 얼굴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우산을 쓴 사람까지 섞이니 더욱 힘들어졌다.

“으음!”

황석희의 입술을 비집고 작은 신음이 나왔다.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 앉는 것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지만 더 이상 신음을 내지는 않았다.

“철수를 해야하나.”

그 순간 누군가가 차 문을 훽하니 열고 들어왔다.

“아이참. 다 젖었네.”

어깨의 묻은 빗방울을 손으로 툭툭 털며 사내가 차에 탑승했다.

한 손에는 하얀색 비닐봉지를 든 채 황석희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형님. 옷 벗으십시오.”

황석희는 그의 말에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었다.

안에 받쳐 입은 와이셔츠의 어깨와 등 부분에는 피가 깊게 베어있다.

슥!

와이셔츠까지 벗겨지며 알몸이 드러난다.

부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황석희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병원을 가보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이런 걸로 뭔 병원을 가.”

부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어깨 부분을 손가락으로 콕 하니 찔렀다.

황석희는 찔린 어깨 죽지를 잡으며 움츠러들었다.

“아!”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 형님 허세는, 이러다 몸 다 상하십니다.”

사내는 가지고 온 비닐봉지를 꺼내들었다.

약국에서 사온 파스와 붕대와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꺼내 놓고 황석희 몸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탁!

파스 한 장을 띄어내 어깨에 붙였다.

“살살 좀 해라.”

“오늘은 정말 쉬셨어도 되는 일입니다.”

“직접 내가 나서서 처리하고 제대로 보고 드려야지.”

“그래도 그렇죠.”

황석희는 이마를 찡그렸다.

소독약이 상처를 후비자 쓰린 것이다.

황석희는 최근 몇 번의 싸움으로 인하여 깊은 부상을 입고 있었다.

물론 외상도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는 상처가 많아 한동안 몸조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일이 터져 버린 것이다

팍팍!

팔에 붕대를 감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툭!

붕대의 묶음 부분을 가위로 잘라냈다.

“됐습니다.”

황석희는 대충 몸을 훑었다.

“고맙다.”

벗어두었던 셔츠를 하나씩 입으며 그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사라진다.

“뭣 좀 보여?”

운전석에 앉아 열심히 밖을 살피는 사내에게 묻는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입니다. 비까지 겹쳐서 나타나도 이거 알아보기나 하겠습니까?”

이곳 명동 시계방 골목에는 흥신소와 유사업체들이 집단으로 몰려 있다.

감시를 해야 할 구역이 워낙 길기에 골목 반대편에도 부하들이 잠복하고 있었다.

“큰일이네.”

황석희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차 뒤쪽 골목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우산이 없는 듯 옷 상의를 뒤집어쓴 채 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서둘러 뛰어가던 한 사내가 빗길에 미끄러져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콰당

차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부하들은 낄낄대며 웃었다.

“어휴 진짜 열심히들 산다.”

“세게 넘어졌는데 그냥 가네.”

넘어진 사내를 바라보며 잠시 차 안에 웃음이 돌았다.

파팟!

황석희 눈이 빛난다.

그의 시선은 지금 넘어진 사내를 뒤쫓고 있다.

넘어지고 나서도 벌떡 일어나 걸어가던 사내가 훤히 보이는 맞은편 시계방 골목 입구 건물로 쏙 들어간다.

황석희의 눈이 빛났다.

사내는 건물 현관에서 담배를 물고 옷에 묻은 비를 터는듯했다.

한 사내가 불을 켜 불을 붙이려 하자 얼굴이 환하게 드러난다.

씨익!

황석희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일이야.

수미였다.

“찾았습니다.”

황석희의 말에 부하들이 깜짝 놀란듯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걸리는 사람은 없었다.

- 확실해?

신중을 기하라는 뜻이다.

황석희의 시선이 다시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내에게 멈췄다.

“확실합니다.”

-그래. 몸 조심하고 이따보지.

“염려 마십시오. 곧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황석희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준비하자.”

샤샤샥-

분위기가 달라진 부하들이 일사분란하게 준비해온 우의를 꺼내 입는다.

분주해진 차 안에서도 황석희는 현관 앞 사내들에게 단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담배를 다 피운 사내는 길가로 꽁초를 툭 던지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음은 일찌감치 파악해놨다.

2층 계단에 불이 켜진다.

이윽고 3층, 4층까지 계단의 전등이 들어왔다.

마지막 5층까지 불이 켜짐을 확인한 그는 건물 외벽에 상호명을 살폈다.

‘당신의 걱정을 조사해드립니다. 일사천리.’

황석희는 맞은편 부하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태경 빌딩 5층 일사천리.”

전화는 짧게 끊어졌고 황석희 역시 우의를 꺼내 입었다.

모자까지 뒤집어 쓴 그는 부하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일 시작하자.”

봉고차 안에서 우의를 입은 사내들이 쏟아져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사내들이 태경빌딩 안으로 진입했다.

반대편에서도 우의를 입은 사내들이 뒤따라 들어갔다.

황석희가 우의를 걸친 채 건물을 올려다본다.

이내 5층에서 불이 켜졌다.

슬쩍 주위를 살피던 그는 품에서 칼 한 자루를 꺼내 태경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쿠-콰쾅!

거센 폭우와 천둥소리가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일사천리 앞에 황석희가 도착했다.

두꺼운 철문 하나가 굳게 닫혀있다.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황석희의 콧구멍으로 피 냄새가 훅 끼쳐 들어온다.

철문 도어를 쥐고 돌렸다.

쾅!

빠아악!

문을 열자마자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개새끼들아!”

누군가 고함을 지른다.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칼이 춤추고 살점이 파편이 되어 날아가며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고물상을 옮겨다 놓은 듯 사무실 집기는 부서지고 우그러져 온전한 것이 없었다.

딸칵!

황석희는 문을 걸어 잠궜다.

문밖은 다시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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