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52화 (52/204)

제 52화 : 물이 되게. 친구여.

채호는 들어 올 때 안내를 했던 두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멈추고 세 사람은 내렸다.

딸칵!

차 안에 있던 준모가 채호를 발견하고 문을 열고 나온다.

차량 가까이 다가온 채호는 두 사내와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은행장님께 좋은 시간이었다고 전해 주시죠.”

“감사합니다 대표님!”

딸칵!

준모가 뒷문을 열어주고 채호가 차에 올랐다.

재빨리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오른 준모는 시동을 걸고 곧장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준모는 흘긋 백미러를 통해 사내들을 봤는데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이며 흘러내리는 물을 닦는다.

“파주로 갑니까?”

준모는 룸미러를 보며 묻는다.

“아뇨. 한군데 더 들릴 곳이 있습니다.”

차는 도로로 들어섰다.

“강서 경찰서로 갑시다.”

움찔!

준모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준모의 안색이 굳었다.

차는 폭우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채호는 약간 피곤한 모습으로 상체를 의자에 붙인 채 눈을 감았다.

3년 전 강남 삼성동.

당시 강서 마약2팀장 노장철은 마약 유통책 곽현도를 쫓고 있었다.

“거기 서!”

노장철은 죽을힘을 다해 쫓았지만 쫓기는 용의자 또한 멈출 리는 없다.

더욱이 인도에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많아 총도 함부로 발포할 수가 없었다.

타아앙!

급기야 공포탄을 쏘았지만 주위 행인들만 움찔 놀랐을 뿐 용의자는 더욱 빨라졌다.

“개새끼!”

노장철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약사범들처럼 지독한 놈들도 없다.

경찰에게도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놈들이다.

“이런 씨발!”

학창시절 달리기 선수라도 한 듯 곽현도와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진다.

이대로 놓친다면 지난 5개월 동안에 진행되던 수사가 물거품이 된다.

“꺄악!”

달려가는 곽현도와 부딪친 여자가 꽈당하고 넘어졌다.

곽현도는 손에 사시미 칼을 들고 마구 휘두르며 행인들을 위협했다.

“비켜.”

번득이는 회칼에 행인들은 놀라 소릴 지르며 길을 튼다.

곽현도는 급하게 방향을 바꿔 좁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쳐죽일!”

갑자기 눈앞에서 곽현도가 사라진 것이다.

노장철은 더욱 거품을 물고 달려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화아악!

골목으로 들어선 곽현도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 정장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학학학!

노장철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다가갔다.

곽현도 손에 들렸던 회칼은 저만치 나가 떨어졌고 어딜 어떻게 맞았는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끙끙 앓고 있었다.

“아이 새끼야. 좀 곱게 가자니까.”

노장철은 수갑을 꺼내 들었다.

“곽현도 널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철컥!

노장철은 곽현도에게 수갑을 채운 뒤 허리를 펴고 사내를 돌아보았다.

사내는 회색계열의 정장을 한 말쑥한 차림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일단 저와 같이 가시죠.”

“아닙니다. 전 괜찮아요.”

“용감한 시민입니다. 큰 일을 하셨어요.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강남경찰서 노장철 팀장이라고 합니다. 그럼 나중에 참고인 조사로 연락 드릴 수 있으니 연락처 좀 부탁드립니다.”

노장철은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사내는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

사내는 곧장 몸을 돌렸다.

노장철은 사내에게 받은 명함을 확인했다.

“필린의 이채호 대표라...”

강서 경찰서.

경찰서 주차장으로 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

경찰서 앞마당 주차장에 차가 멈추고 준모가 재빨리 우산을 들고 내려 뒷문을 열어준다.

차에서 내린 채호에게 우산을 씌워 경찰서 로비까지 데려다 준 준모는 재빨리 인사를 했다.

“다녀 오십시오.”

평소와 달리 채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채호는 다소 놀란 시선으로 차에 탑승하는 준모를 바라본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채호는 안으로 걸어 사라졌다.

한편 운전석에 앉은 준모의 표정이 굳어있다.

‘정말 숨만 쉬어도 불쾌한 곳이군.’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종족들이 경찰이다.

‘경찰은 무조건 나쁘다.’

는 것이 준모의 생각이다.

일단 대체로 재수가 없다.

아무런 죄도 없는데 수갑을 채우고 눈을 부라리며 반말 찍찍 해댄다.

언젠가 길을 가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뛴 적이 있었다.

경찰만 보면 숨이 가빠지고 뛰고 싶어졌다.

“에이 대표님도 참. 여긴 뭐하러 온거야.”

준모는 계속 투덜거리며 경찰을 잘근잘근 씹었다.

채호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입구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형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전 이채호라는 사람입니다. 노장철 팀장님을 뵙기로 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쪽으로부터 큰 소리로 누군가 불렀다.

“이 대표님!”

노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일하던 형사들이 팀장이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이 누군가 싶은 듯 바라본다.

“어서 오십시오. 비 많이 오죠?”

“조금 오네요.”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뒤쪽으로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겨갔다.

“요즘 PRIDE-K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엄청나던데요. 스포츠 신문은 그렇다 쳐도 일반 신문들까지 대서특필 정도가 아니라 중계하듯 돌아가는 상황을 보도하더군요.”

채호는 빙긋 웃었다.

“다행히 상황이 좋게 가고 있습니다.”

“필린이 하면 특별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바쁜 줄 알지만 드릴 얘기가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노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쪽에 있는 철제 캐비닛을 열더니 파일 한 개를 가지고 왔다.

파일을 열어 사진 한 장을 꺼내더니 탁자 위로 올렸다.

채호는 사진속 남자를 보았지만 모르는 인물이다.

“요즘 뉴스 보십니까? 요 며칠 계속 나가고 있는 건인데요.”

“마약 뉴스를 말하는 겁니까?”

“네.”

노팀장은 서류를 넘기며 다른 사진 한 장도 떼어냈다.

“며칠전 검거된 자들의 사진입니다.”

채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직 노팀장의 말뜻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마약류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헤로인이나 코카인. 펜타닐 등등. 수요가 확실하니 공급량 역시 많죠. 그런데...”

서류 몇 장을 더 뒤적이며 한 장을 더 떼어냈다.

주사기 하나와 약물병 하나가 담긴 철제 하드케이스가 나왔다.

채호의 눈빛이 빛난다.

과거 용병시절 비슷한 물건을 본 적이 있었다.

“이번에 국내에 처음 들어온 약이 있습니다 ”

채호는 사진을 더욱 자세히 바라보았다.

노장철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성분표를 아무리 살펴도 일반적인 불법 합성약물이라는 것 말고는 해외에서도 보고 된 사례가 없더군요.”

“그럼 신약이라는 것입니까?”

노장철이 눈을 빛냈다.

“그렇게 보입니다. 조금 전 과학수사연구원에서 성분 분석에 대한 답변이 왔습니다. 압수한 약물이 기존의 근육지구력 강화 약물인 EPO와 테스토스테론 주사보다 효과가 두 배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EPO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모두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에 일으키도록 만들고 우리 몸의 단백질 성분이 분해되지 않도록 하여 근육을 강하게 키운다. 사이클의 전설 렌스 암스트롱이 복용하여 그가 쌓은 모든 영광과 명예가 휴짓조각이 되었고, 압도적인 레슬링 실력으로 UFC 웰터급 챔피언을 다섯 차례 방어하고 있는 카마루 우스만도 이 약물 복용설에 휘말려 있다.

찌푸려졌던 채호의 눈썹이 파도를 치듯 꿈틀거린다.

노팀장은 염려된다는 표정으로 채호를 바라보았다.

불법 약물은 스포츠 업계에서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유독 약물 밀반입이 심해지는 때가 있다.

바로 큰 대회를 앞둔 시점인데 지금 PRIDE-K가 열리고 있다.

“필린의 이번 대회와는 상관이 없길 바라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건 존재하니까요. 혹시 몰라 이렇게 대표님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세상일은 모른다.

특히 채호가 하는 일에는 수 많은 경쟁업체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이번 PRIDE-K가 망하기를 원한다.

상대의 불행의 나의 행복인 것이 오늘의 세상 아닌가.

채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거짓말 같이 비가 그쳤다.

준모는 답답한 맘에 담배를 한 개비 피울 생각으로 주차장 한쪽 흡연구역으로 걸어갔다.

딸칵!

드럼통을 잘라 만든 재떨이 앞에서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다.

이제야 조금 마음이 진정된다.

이 더럽고 기분 나쁜 경찰서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

“어? 너...”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준모의 표정이 검게 변했다.

“너 양준모 맞지? 문우파에서 있던 놈.”

채호를 배웅하러 나온 노팀장이 알은체를 한다.

준모의 입술이 뒤틀린다.

“형님, 내 나이가 몇인데 놈이라뇨.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하십니까?”

준모가 잇새로 말을 털어내며 인상을 쓴다.

“이야 우리 준모 언제 이렇게 커서. 여긴 왜 온거야. 또 뭐 사고쳤냐?”

“아이 진짜.”

준모는 눈알까지 희번득 거렸다.

굳어 있던 채호의 표정이 잠시 풀어진다.

“우리 양 매니저와 잘 아는 모양이죠?”

“매...매니저?”

노팀장의 눈이 커졌다.

푸푹!

재빨리 담배를 모래속에 꽂아 박은 준모가 돌아섰다.

“대표님 가시죠.”

준모는 채호를 데리고 차량으로 걸어갔다.

“이야 양준모... 매니저를 다 해?”

노장철이 등 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언제까지 굴다리 양아치인 줄 아나.’

준모는 속으로 욕을 뱉어내며 흘긋 채호를 살폈다.

잠시 머뭇거리던 준모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 제가 약간 도덕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거든요. 당시 불법 오락실 단속에 저 새끼가 나와서 두들겨 맞았는데 아오.”

그래서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박장대소할 채호가 약간 입술을 말아 올려 웃고 만다.

준모는 안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며 재빨리 차 문을 열어 주었다.

탁!

준모는 빠르게 운전석에 올라탔고 차는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 * *

두호의 시야에 멀리 식당이 보였다.

원래는 호텔의 뷔페로 사용되는 곳이지만 배틀먼스에서는 컨디셔닝 팀이 관리한다.

생존한 75명부터는 필린에서 제공하는 각종 편의를 이용할 수 있었다.

식단부터 각종 운동 보조제와 엄선된 영양제부터 운동시설을 포함한 호텔의 여러 부대시설까지 복잡한 절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하나둘 사내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었고 두호는 고개를 돌려 멀리서 직원들에게 뭐라고 지시하는 주민을 발견했다.

이번 배틀먼스를 대비한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주민이다.

두호는 식판을 집어들어 배식 칸으로 향했다.

큰 고구마 두 개와 닭가슴살 두덩이 그리고 양상추와 토마토.

오늘 하루 거친 격투를 하고 온 사람답지 않게 절제되고 작은 식단이었다.

한 발씩 옆으로 옮기며 배식을 받은 두호는 구석자리로 향했다.

식판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맞은편에서도 누군가가 의자를 빼고 앉았다.

두호는 눈을 크게 떴다.

뜻밖에도 예수였다.

“혼자 드세요? 심심하게.”

두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1차 통과하신 것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예수는 두호를 향해 작은 소리로 박수를 쳐주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두호는 고구마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런데 예수는 참가 선수들 식단에 맞춘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투덜 거린다.

“우리까지 이런 걸 먹이면 어떡해. 주민 코치님도 진짜 답답한 사람이야.”

그래도 먹어야 하는지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식당은 시끌벅적 했다.

오늘 하루 동안 겪은 배틀먼스에 대한 얘기들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욕설이 들려왔다.

필린의 1차 대회 진행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뭐 이따위가 있냐, 준비해 온 건 써먹지도 못했다는 등 흥분하는 이도 보인다.

멈칫!

떠들던 식당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식당의 문을 열고 직원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등장하는 것은 곧 다음 미션의 시작을 알린다.

차차차!

한 명의 직원이 식당 뒤 벽에 커다란 종이 한 장을 붙였다.

“참가자분들 모두 식사를 마치시고 여기에 붙여놓은 내용을 잘 숙지 하기 바랍니다.”

탁현이 메가폰으로 떠들더니 다시 나갔다.

우당캉!

퍼퍼퍼!

밥 먹을 사내가 어디 있으랴.

앞 다투어 뒤쪽으로 달려간다.

“이건 또 뭐야.”

벽에 붙은 종이를 보던 사내들 표정이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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