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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50화 (50/204)

제 50화 : 물이 되게. 친구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채호와 예수가 내렸다.

둘은 로비를 가로질러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대표님!”

채호 옆으로 붙은 예수가 서류봉투 하나를 건넨다.

“다음 미팅 관련 자료입니다. 숙지하시면 도움 될 겁니다.”

“고마워요.”

채호는 손만 뻗어 봉투를 받았다.

“두호군은?”

예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일차는 무난하게 통과했습니다. 부상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좋군요.”

채호는 옅은 미소를 띄었다.

두 사람은 회전문 바깥으로 나왔다.

화악!

바깥으로 나온 예수의 눈이 커졌는데 저만치 정장을 입은 준모가 서 있었다.

준모 뒤쪽으로 검정색 벤츠가 보인다.

다가오는 채호와 예수를 발견한 준모가 재빨리 차 뒷문을 열었다.

예수는 채호를 돌아보았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는 질문이다.

“당분간 저의 외부 스케줄은 양 매니저랑 다니겠습니다. 예수씨는 대회 진행에 손을 더하세

요.”

바쁜 예수를 배려한 채호의 조치였다.

사실 예상을 뛰어넘는 열기다.

이번 대회 1라운드 티저 영상이 공개되면서 팬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필린이 개최한 PRIDE-K에 대한 뜨거운 논쟁과 댓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예수는 문을 열고 있는 준모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평소와 달리 옷차림이 단정했다.

하지만 옥의 티가 여럿 보인다.

진한 다크 계열의 정장에 노란색 나비 넥타이.

왼쪽 가슴에 꽂힌 하얀 행커치프.

하얀색 수갑을 낀 채 부담스러운 미소를 짓고있는 준모였다.

예수는 한숨을 내쉬며 준모에게 손을 뻗었다.

“하나만 하세요.”

“예?”

그러더니 행커치프를 툭 하고 뽑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다.

준모는 아쉬운 듯 손이 들썩들썩 한다.

예수는 채호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채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회가 더욱 중요하니까요. 현장에서 내린 판단은 다 존중하겠습니다.”

“그래도 대표님...”

이 얘기는 그만하자는 듯 채호가 훽 하니 몸을 돌려 차로 걸어갔다.

준모는 재빨리 앞서나가 뒷자리의 문을 열어주었다.

탁!

“준모씨.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주셔야 해요!”

준모가 가슴을 탁탁 치며 결의에 가득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부모님을 모시듯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포부 넘치는 대답에 예수는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준모는 살짝 웃음을 짓고 재빨리 차를 돌아 운전석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채호는 봉투에서 꺼낸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운전석에 앉은 준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로?”

“아, 여의도 매일은행 본점으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부우웅!

채호를 태운 차가 건물을 떠났고 잠시 사라지는 차량을 보고 있던 예수는 몸을 돌렸다.

차는 작은 다리를 건너 여의도로 진입했다.

준모는 룸미러로 힐끔 채호를 쳐다보았다.

회사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채호는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두호와는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의 두호는 창밖을 보며 가끔 사색에 잠긴다.

깊은 고민에 쌓인 사람인 듯 했다가도 가끔은 맑은 웃음으로 상대를 편하게 해준다.

그에 반해 채호는 틈이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의 모습이었다.

“대표님. 오 분 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 후 채호는 읽고 있던 서류를 가지런히 챙겨 봉투에 넣었다.

서류를 옆자리에 내려놓은 채호가 룸미러로 준모를 바라 보았다.

“두호 형님이랑은 어때요?”

별일 없이 잘 지내냐는 말이다.

히죽!

준모는 약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갈수록 닮고 싶은 분이죠. 대한민국은 두호 형님 보유국이라는 걸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준모의 입담이 맘에 드는 듯 채호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좋네요. 일 차는 통과 했다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혹시 이번 미션의 소식을 듣지 못했을 준모가 걱정할까봐 알려준 것이다.

한번 열린 준모의 입은 닫힐 줄 몰랐다.

“저는 형님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형님의 상대를 걱정합니다. 혹시 죽지는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맞는 말입니다.”

“형님 주먹 잘못 맞으면 죽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어설프게 살아있기라도 한다면...”

둘은 유쾌한 얼굴로 얘기를 나눴고 그 사이 차는 매일은행 본점 앞에 도착했다.

멈칫!

준모의 눈이 빛난다.

얘기를 하고 있던 정장 차림의 두 남자가 차가 도착하자 재빨리 다가왔다.

준모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채호가 제지했다.

“준모씨는 차에 있어요.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전화 할테니.”

“알겠습니다. 대표님!”

딸칵!

채호는 문을 열고 나왔다.

두 남자가 깊숙하게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채호 대표님!”

이채호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서로가 악수를 나누며 건물 안으로 사라졌고 준모는 답답한 듯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준모의 고개가 한쪽에서 멈췄다.

건물 오른쪽으로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준모는 지체없이 그곳으로 걸어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켰다.

딸칵!

불을 붙인 준모는 길게 담배를 빨아 들였다.

툭!

뭔가 머리로 떨어졌다.

준모는 곧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어!”

빗방울이었다.

준모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짙은 먹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까지 내려와 있다.

금방이라도 한바탕 쏟아부을 기세다.

* * *

파주에도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제법 장대비가 쏟아졌다.

로비로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지금 이곳에 나와있는 선수들은 모두 탈락자 선정 매치 대상자들이다.

단 한 번의 경기로 운명이 결정된다.

밴드를 이용하여 굳어버린 몸을 푸는 사람, 차분하게 눈을 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두꺼운 건물 기둥을 안은 채 레슬링 태클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두호는 2층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부분이 회복을 위해 관람을 포기했다.

어렵지 않게 1라운드를 통과 했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

저들 중에는 대진운이 나빠 무너진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상대쯤은 워밍업 하듯 패대길 칠 실력이지만 단지 대진운이 나빠서 저기에 서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두호의 눈이 빛을 발했다.

쏟아진 빗속이지만 낯익은 사내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자신과 대결을 벌인 구열이었다.

자신이 이겼다고 하여 구열의 실력이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구열의 주먹도 나름 매서웠지만 놀라운 건 맷집이었다.

물론 매 앞에 장사는 없다.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큰 공격을 여러번 허용한다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열은 특별했다.

강한 펀치를 맞고서도 금방 중심을 회복하는 걸 보아 체력 또한 매우 뛰어나다.

더군다나 쓰러지는 순간에도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1등과 2등은 백지 한 장이다.

절대 실력이 형편없어 무너진 참가자들이 아니기에 관심을 갖고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이이잉

사이렌이 울렸다.

탈락자 선정 매치의 시작을 알리는 집합 소리다.

한 무리의 직원들이 로비의 단상을 향해 걸어온다.

순간 로비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

맨 앞에는 채수가 있었다.

참가자들 모두 긴장한 얼굴로 단상으로 올라가는 채수를 쳐다보았다.

단상에 올라간 채수는 참가자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긴급 이송과 포기의사를 밝힌 사람을 제외하고 총 46명이다.

채수는 들고 있던 메가폰을 들었다.

“탈락자 선정 매치, 이른바 패자 부활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또 어떤 식일까.

1라운드 때처럼 이번에도 공으로 대상을 결정하는 방식일까.

하지만 공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자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1라운드 방식은 아니다.

“좌측을 보세요. 뭐가 있습니까?”

참가자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잔디밭이 이어졌고 멀리 연못이 보인다.

주위로 수양버들이 가지를 흐드러지게 늘어뜨리고 있으며 오른쪽 3시 방향으로는 호텔 로고가 조각된 흰색의 거대한 탑이 서 있었다.

마땅히 저것이다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참가자들이 수근거리며 채수를 돌아보았다.

“저기가 오늘 탈락자 선정 매치의 링입니다.”

“저기라면 설마 연못?”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땅에서는 출렁거리는 연못이 있으니 땀 빼기 딱 좋지 않습니까?”

“이...이자식들 모두 변태 아냐. 무슨 대회가 모두 이따위냐고?”

마치 사내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기 방식에 불만이 있는 분은 언제든지 떠나셔도 됩니다.”

채수가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직원들이 여럿 서 있었다.

“참가 의사가 없으신 분들은 저기 가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 모두 밖으로 나오세요.”

조용했다.

참가자들의 시선은 잠시 천막을 향했다.

이번 경기로 부상이 더욱 악화되면 앞으로 선수생활의 큰 지장이 생긴다.

더군다나 상처 부위에 물이 닿는다면 덧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을 망설이게 하는 것.

자신의 인생에 앞으로 이만한 기회가 올 것인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없다.

더군다나 최종 100명에 들어서도 기회의 문이 이렇게 좁은데 바깥은 어떻겠는가.

망설이는 사이 한 사내가 채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최구열이었다.

그는 각오가 선 듯 채수에게 물었다.

“밖에서 기다리면 됩니까?”

채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열은 묵묵히 비가 쏟아지는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지는 비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한 기억이 스친다.

술만 먹으면 가족을 때리던 아버지.

이렇게 비가 쏟아지던 날에 어머니가 아버지 손에 죽었다.

자신의 인생에 남은 것은 어린 동생하나.

동생의 얼굴이 스친다.

구열은 헛웃음을 지으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였다.

“거 살살 좀 와라. 아프다 나도.”

번쩍!

콰아아아!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리조트를 뒤흔들었다.

구열의 참가 선언을 확인한 사내들은 하나둘 걸음을 옮겼다.

로비 안 사내들도 하나둘씩 바깥으로 걸음을 옮긴다.

“흐흐흐! 마음에 드는군. 정말 화끈해.”

한 사내가 큰 소리로 외치며 입구로 향한다.

“폭우에 천둥 번개라,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그러자 몇몇 사내들이 낄낄 거리며 웃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못 밖에서는 안됩니다. 오직 저 안에서만 승부를 벌여야 합니다.”

“상대는?”

“아무나 잡고 싸우세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사내들은 별 반응 없이 연못으로 향했다.

그중 한 사내를 채수가 막아 세웠다.

“참가자분은 부상이 너무 심해서 안 됩니다.”

머리에 붕대를 맨 참가자.

그러나 그 사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비켜요. 내 인생 책임져 줄 것 아니면.”

그 사내 역시 채호의 만류를 무시하며 문밖으로 나갔다.

채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았다.

“탈락자 선정 매치 46명 전원 참가합니다.”

채수 역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밖으로 향했다.

연못 주위에 모인 46명의 참가자들.

원으로 둘러선 그들 가운데에 채수가 섰다.

하지만 해도 떨어졌고 폭우로 인해 옆 사람의 얼굴조차 확인하기 힘든 상태였다.

그때 짙어가는 어둠을 밀어내는 불빛이 나타났다.

파밧!

파파파밧!

언제 설치했는지 연못 주위로 조명등이 켜졌다.

방송국에서 설치한 야외 조명들이 연못으로 향하며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연못을 향해 걸어갔다.

우비를 입었는데 2라운도 경기를 촬영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캬. 조명 좋고.”

“카메라에 잘 담겨야 할텐데. 낄낄.”

사내들이 비아냥 거리듯 떠든다.

채수가 손을 들었다,

“경기 시간은 무제한. 총 25명이 남을 때까지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셋업!”

“5!”

“4!”

“3”

“2”

“1”

“파이트!”

우와아아아!

가즈아아아!

참가자들이 일제히 연못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모두 집중해!”

“한 사람씩 제대로 포커스 잡아!”

송대일 PD의 목소리가 쩌렁하게 울렸고 수십 대의 카메라들이 달려오는 사내들을 찍는다.

첨벙!

촤아아!

사내들이 연못으로 뛰어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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