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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49화 (49/204)

제 49화 : 끝까지 바라본 주먹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호텔의 회전문을 열고 두호가 로비 안으로 들어왔다.

디퓨저의 비누 향이 가볍게 코끝을 스친다.

뭔가를 찾는 듯 두호는 로비 가운데서 두리번거렸다.

왼쪽 복도쪽으로 작은 팻말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메디칼 룸이라는 글씨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화살표가 지시하는 곳을 따라 가려는데 갑자기 로비가 시끄럽다.

“잠시만요!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필린 직원들이 바퀴가 달린 이동 들것에 사람을 싣고 달려왔다.

드르륵!

바퀴소리가 요란하게 로비를 울렸고 두호는 지나가는 들것을 슬쩍 보았다.

환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덮었지만 핏물이 진하게 배어 난 걸 보면 상처가 깊어 보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상처 부위를 자신의 핸드랩으로 지혈하며 메디컬 룸을 찾는 사내, 다리 하나가 부러진 듯 질질 끌고 가는 사내도 있고, 말 그대로 쌍코피가 터져 훌쩍거리며 가는 사내도 보인다.

두호는 그들 뒤를 따라 걷는다.

“전쟁통이군.”

단 한 번의 미션으로 순식간에 참가자의 절반을 부상자로 만들었다.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복도 한 가운데 두 개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필린의 직원들이 큰소리로 안내를 했다.

“출혈 부상은 왼쪽으로 들어가시고 골절이나 타박 환자들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부상자들은 직원들 지시대로 선택하여 갈라졌다.

두호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무슨 배틀먼스가 이따위 막싸움으로 진행되느냐는 불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린의 입장에서는 철저한 흥행과 실력 두 가지를 노리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1라운드 방식은 없다.

두호 자신이 보기에도 막 싸움이지만 가장 분명한 게임이기도 했다.

두호는 자신의 몸 상태에서는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검진은 어디서 합니까?”

“방 가운데로 가로질러 들어가면 도민영 닥터 방이 따로 있습니다.”

두호는 꾸벅하며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왼쪽 방으로 들어섰다.

피 냄새가 훅 끼친다.

비명소리와 살살 하라는 외침, 심지어는 의료진에게 욕설까지 퍼붓는다.

그나마 의자에 앉아 있는 환자들은 좀 나은 편이다

일부 환자는 이곳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듯 외부 병원으로 이송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멈칫!

두호의 눈이 빛났다.

이 와중에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의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송국 직원들이었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욱하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척!

안쪽으로 한참을 걸어들어 간 두호의 걸음이 멈췄다.

메디컬 팀장 도민영이라고 쓰여진 팻말이 보인다.

“두호씨!”

주민이었다.

주민은 놀란 눈으로 두호를 살핀다.

그러다 표정이 가라앉는 걸 보면 외상이 없음에 일단 안심한 얼굴이지만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어디 다치신거에요?”

두호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조금 불편한 곳이 있어서.”

“어디요.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주민이 두호를 데리고 걸어갔다.

십여 명의 사내들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다지 표정들이 밝지 않은 걸 보면 큰 외상은 보이지 않지만 결과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주민은 이곳 환자들 안내 담당인 듯 찾아온 사내들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두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살피다 전면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발견했는데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금일 오전 7시. 경찰은 150억원 상당의 마약과 불법 약물을 대량 유통한 판매조직을 검거하였다고 밝혔습니다’

화면에는 증거물로 가득 쌓인 마약들과 고개 숙인 체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문득 수미와의 대화가 기억난 두호는 주민에게 물었다.

“격투기에 도핑 스캔들이 많습니까?”

주민이 눈을 가볍게 찌푸린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느냐는 시선이다.

그러다 두호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움직이다 뉴스 화면을 만났다.

화면에서는 리포트 기자의 마약 사건에 대한 자세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주민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많아요. 저런 건 빙산의 일각이죠. 드러나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을 거에요.”

약물 사용은 불법이다.

수 년간 땀 흘리며 얻어온 신체적 기능을 단 기간에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유혹당한다.

도핑(DOPING).

적발되면 선수 생명이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야멸차게 뿌리칠 수 없는 선악과 같은 것이다.

“기록경쟁으로 견주는 타 종목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종목이라 더욱 민감하죠. XFC에서도 매년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약물 검사를 하는 것도 그 이유고.”

주민은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붙이며 말했다.

“각성제 같은?”

주민이 두호를 돌아보았다.

뭘 그렇게까지 궁금해하냐는 시선이었다.

“그냥 궁금합니다.”

두호는 빙긋 웃어 넘긴다.

주민은 눈은 치켜떴다.

“종류는 다양해요. 스테로이드. 트리메타지딘, 하이폭센 등등. 대체로 훈련의 도움이 되고 근육의 퍼포먼스를 괴물같이 만드는 것들이에요.”

용병 시절 간간이 들려오던 약물도 있었다.

그런 종류들 거의가 일반적으로 중증환자의 치료를 돕기 위하여 사용되는 약물이다.

“수법도 다양해요. 자기 피 뽑아서 다시 집어넣는. 그렇게 하면 혈류량이 높아져서 심폐지구력이 좋아진다나 뭐라나.”

두호는 귀를 세우며 들었다.

“범죄수법이 날로 진화되듯 이 바닥 역시 약물 디자이너들이 항상 한 발 앞서있어요. 도핑검사를 피해야 하니까 쟤네도 발전을 멈추지 않는거죠.”

사냥감은 무조건 사냥꾼보다 앞서 간다.

그때 주민의 손에 들린 무전기가 지직 거렸다.

-주민 코치님. 회의 시작 10분 전입니다-

주민은 깜빡한 듯 자신의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들어가 계세요. 민영 닥터한테는 제가 가면서 말해 놓을게요.”

주민은 싱긋 웃으며 걸어갔다.

메디컬 팀장의 방이지만 별 특이한 것은 없었다.

컴퓨터가 올라와 있는 책상과 베드 하나가 전부였다.

두호는 방안을 둘러보다 한곳에 시선을 멈췄다.

책상 위에 작은 사진 하나가 놓여있는데 쉰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각모자를 쓴 민영이 보인다.

졸업식 날 부모님과 찍은 사진인 듯 했다.

“많이 기다리셨죠?”

민영이 급히 들어서고 있었다.

민영은 가운을 벗어 옷 걸이에 걸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미안해요. 참가자 한 분을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 하느라...”

“많이 다친 모양이죠?”

민영은 한숨을 쉬었다.

“벌써 두 명이 대회 아웃이어서 마음이 안 좋네요. 열심히 준비하셨을 텐데.”

민영은 키보드를 쳐서 꺼진 컴퓨터 화면을 켰다.

“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갈비뼈 쪽이 조금 결리는 듯 합니다.”

“잠시만 볼게요.”

민영은 두호의 옷 위로 갈비뼈 부분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음!”

민영의 손가락이 어느 한 부분을 누르자 두호의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늘 미션으로 다친거 아니죠?”

두호는 눈을 찌푸렸다.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붓기가 조금 적어서요. 방금전 입은 부상이면 더 부어있어야 하는데. 자세히 보게 옷 좀 벗으시겠어요?”

두호는 상의를 탈의했다.

움찔!

자상(刺傷)이 가득한 그의 몸을 보며 민영이 놀란다.

‘도대체 이 상처들은 뭐지’

조금은 당황한 듯 흉터들을 보더니 두호의 몸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를 다시 누르고 매만지던 민영이 입을 열어 말했다

“외관상은 괜찮은데. 혹시 모르니까 X-RAY 한 번 찍어볼게요. 다른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네.”

민영은 조심스레 두호의 몸상태를 더 살펴보았다.

방금전의 경기로 인하여 여기저기 부은 곳이 많아 보였지만 큰 이상은 아니었다.

민영은 밝게 미소지으며 두호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다행히도 다른 곳에 눈에 띄는 부상은 없어요. X-RAY 촬영하고 다시 볼게요.”

벗어둔 두호의 옷을 민영이 집어들어 다시 건넸다.

* * *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면면이 필린의 간부들이다.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는데 썩 밝은 표정들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탁!

주민이 보던 서류를 덮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2라운드 미션에 큰 차질이 생겼다.

부상자만 42명.

필린도 부상자가 많이 나올 것을 당연히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숫자였다.

몇은 선수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렇다고 방향을 틀 수는 없잖습니까?”

PRIDE-K 메인 PD 송대일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미 1라운드 끝났을 뿐인데 대회를 참관하고 있는 방송사 취재진들은 잔뜩 흥분했다.

흥미와 오락, 그리고 실전이 리얼하게 그려졌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당장 오늘 밤 뉴스 화면으로 나가면 수많은 격투기 팬들이 관심을 가질 건 자명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계속 이 분위기로 나가야 한다는 송대일의 주장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0명중에 42명이 말이 되는 수치입니까?”

주민은 안된다고 말한다.

이미 몇몇 선수들의 부상 정도가 선을 넘었다.

만약 이런 식의 라운드가 계속 진행된다면 사망자가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회의는 좀체 끝날 줄 몰랐다.

방송국 측과 컨디셔닝 메디컬 파트 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어느 쪽도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점차 목소리가 커졌고 감정 섞인 의견들이 터져 나온다.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채호와 예수가 들어섰는데 직원들이 일어서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채호는 흔들림 없는 정장 차림으로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대표님!”

주민이 상황보고를 하려 하자 채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미 들었습니다. 부상자만 42명이라고?”

주민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 한 장을 채호에게 건네주었다.

참가자들 부상 정도에 관한 차트였다.

“이미 벌어진 경기야 어쩔 수 없지만 탈락자 선정 방식까지 이런 식이면 안 됩니다. 이미 탈락과 다름없는 몸 상태인데 잔류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그러자 송대일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 인정사정 없는거에요. 급하게 세운 계획으로 촬영했다가 방송 퀄리티라도 떨어지면 주 코치님이 책임지실거에요?”

또 다시 주민과 송대일의 입씨름이 시작되었다.

채호는 두 사람의 입씨름을 가만 지켜보고 있었다.

채호가 있으므로 거친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든다.

스윽!

한참을 듣고 있던 채호가 넥타이를 당겨 느슨하게 풀었다.

“부상 심한 몇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계획대로 하시죠.”

주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채호를 만류했다.

“안됩니다. 대표님 재고해주시죠.”

채호의 고개가 주민에게로 돌아갔다.

주민을 바라보는 채호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다.

탁!

주민은 당황하며 손에 들린 볼펜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주 코치.”

“네.”

건네받은 서류를 옆으로 살짝 치워놓은 채호가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이 대회에 참가하라고 등 떠민 사람 아무도 없어.”

채호는 회의장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 도장을 찍듯 바라보던 채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관은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만 쓰는거야. 그리고 그 왕관은 무거워 보여야 하는거지.”

경쟁을 만만하게 만들어 챔피언의 의미를 우습게 만들지 말란 뜻이다.

지독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사람에게 향하는 박수 소리는 작아져선 안된다.

회의장에 정적이 흘렀다.

예수가 채호에게 다가왔다.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대표님.”

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민을 바라보았다.

“내 말 알겠어요. 주민씨?”

“네...”

채호는 예수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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