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화 : 끝까지 바라본 주먹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차는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사내들은 황석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만 쳐다보고 궁금하면 물어봐라. 이 자식들아.”
그러자 부하들의 질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형님. 이게 뭔 일입니까.”
“갑자기 두 분은 왜 싸우신거에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몰라 그냥 줘 패고 싶게 생겼잖아. 그 새끼가.”
부하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만 봐도 형님만 실컷 맞으신 것 같던데요?”
“패려 했음 패야지. 왜 맞고 옵니까.”
부하의 말에 발끈해 머리통이라도 한 대 후리려 팔 한쪽을 치켜들었다.
하필이면 부상당한 오른팔.
이윽고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오른팔을 움켜잡았다.
“아오 진짜 더럽게 아프네. 조금만 더 했으면 내가 이겼어. 우리 가야 될 시간이라 끝낸거야.”
“그 갈 시간이. 하늘나라 갈 시간은 아니죠?”
부하들의 농담에 결국 황석희 역시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태건이 그와 입사 동기이자 오래된 친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부하들은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굉장히 상반되는 성격의 두 사람.
누구에게나 붙임성이 있는 황석희는 상당히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부하들의 경조사부터 선배들과의 다리 역할을 자처한 그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부하들 사
이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태건은 달랐다.
첫 인상부터 음침하며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것조차 잘 보지 못했다.
황석희와 수미를 제외하고는 대화조차 해본 사람이 없으니까.
“하하하. 담배 있는 사람?”
한 사내가 재빨리 담배 갑에서 한 개비 꺼내 주었다.
담배를 입에 물자 부하가 불을 붙힌다.
후우!
황석희는 차 문을 열고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바람에 뱉어낸 연기가 황석희 얼굴을 덮었다.
15년 전.
“이 쥐새끼들 잡아라!”
“야 튀어!”
술집 사장의 호통과 함께 창문이 깨지며 밖으로 아이들이 튀쳐나왔다.
일곱 명의 아이들 중 맨 앞에 태건과 황석희가 있었다.
황석희가 큰 소리로 외쳤다.
“흩어졌다가 이따가 굴다리에서 봐!”
벌게진 얼굴의 황석희의 품에 양주로 보이는 상자들이 안겨 있었다.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보니 많이 집어봤자 양주 두 상자가 전부였지만 모두들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골목길을 돌아나간 그들 뒤로 창문에서 뒤늦게 사내들이 뛰쳐나왔다.
“어디 갔어. 이 얼루지 새끼들 싹다 잡아오라!”
“예!”
“못 잡아오면 니네 싹다 회쳐버릴줄 알아!”
조선족 말투와 중국어가 간간이 들려왔다.
하지만 쉽게 잡힐 황석희와 태건이 아니었다.
하천(夏川)특별시.
그곳은 모두의 희망을 뺏는 절망의 도시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일 인당 국민소득이 삼만달러를 넘었니 마니 떠들어도 그곳, 거기 만큼은 다른 세상이었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예사였고, 심심찮게 이른바 고독사로 불리는 죽음이 발생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강력범죄가 일어나고 인권이라는 것이 무게를 잃는 곳.
법보다는 당장 목 앞에 닥친 칼이 가까운 곳.
가난은 그들을 두 가지로 만들었다.
무기력하거나, 아니면 잔혹하거나.
다행히도 아이들은 잡힌 사람 없이 굴 다리로 모여들었다.
“나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야 너 왜 한 병 밖에 없냐?”
“오다가 떨어트렸어. 그래도 살아나온 게 어디냐.”
황석희는 가져온 병수를 하나하나 세보더니 이만하면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이 정도면.”
한 아이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황석희를 바라보았다.
“석희야. 내 말 맞지? 소매치기 몇 번 할 건덕지면 그냥 터는 게 낫다니까?”
하지만 황석희는 어딘가 꺼림칙했다.
“근데 이거 너무 위험한거 아니야? 이거 잡히면 진짜 죽는거잖아.”
다른 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어차피 못 먹어도 죽는데 뭔 상관이야. 태건아 내 말 맞지?”
태건은 관심도 없다는 듯 큰 비닐봉지에 양주들을 집어 담기 시작했다.
“몰라. 밥만 먹으면 상관없다.”
그 말을 끝으로 태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닐봉지를 들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석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태건을 따라 나섰다.
“야 같이 가!”
‘씨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부우웅!
조용히 혼잣말을 하는 황석희.
“그래. 난 여기가 어울려.”
황석희는 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크게 소리쳤다.
“얼른 가자. 늦겠다.”
“네!”
차는 빠르게 국도를 달렸다.
* * *
두호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가벼운 쉐도잉과 함께 맨 몸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몸에는 땀이 잔뜩 나 있었다.
최근 자신이 해온 훈련들을 묵묵히 복기하며 감을 일으키는 그였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사실 초보자들에게는 어렵고 심오한 수양이지만 두호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기도 한다.
눈을 감고 거친 숨을 고르며 묵묵히 생각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들을.
지난 몇 개월 동안의 훈련을 복기하며 차분히 머릿속에 녹여내는 그였다.
하지만 명확하게 그려지지가 않는 듯 표정은 굉장히 답답해 보였다.
확실히 이 몸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모양이다.
당장 내일부터 배틀먼스가 시작이다.
그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눈을 뜨고 천천히 핸드폰을 집어들어 확인한 두호였다.
“어.”
-형님. 바쁘십니까?
“말해.”
채호는 잠시 망설이는 듯 말이 없었다.
-형님 집 근처 공원입니다. 잠시 나와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 나갈게.”
두호는 전화를 끊고는 옆에 걸려있던 옷을 걸쳐 입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니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가니?”
“네. 집 앞에 잠시만 나갔다가 올게요.”
근 며칠동안 진솔한 대화로 인하여 서먹하던 부자지간은 매우 친밀해졌다.
진심으로 아들의 꿈을 응원해주는 아버지는 이제 별 다른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래. 조심하고 너무 늦게 들어오지는 말아라. 내일이지?”
“네.”
아버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라. 아빠는 먼저 잔다!”
“네 다녀올게요.”
아버지가 방에 들어감을 확인하고 나서야 두호는 현관문을 나섰다.
채호가 자신을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한 응원이나 하고자 부르는 거라면 전화로 해도 충분하다.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두호는 걸음을 세웠다.
집 앞을 나오는데 저 멀리 계단 아래 서 있는 채호를 발견했다.
두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두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걸어갔다.
채호가 뒤를 따른다.
“뭔데.”
채호는 망설이는 듯 했지만 마음을 다 잡은 듯 표정이 차가워졌다.
채호는 앞서 걸어가는 두호에게 말했다.
“형님의 실력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제 계획에 변수가 있으면 안되거든요.”
“계획에 변수라.”
채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호가 걸음을 멈췄다.
반대편 어둠 속을 눈을 찡그리며 바라본다.
20여미터 떨어진 은행나무 아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근처에 가로등이 없어 사람이 있다는 전제하에 살피지 않으면 발견되지 않을 만큼 티가 나지 않았다.
채호가 손을 흔들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 손짓에 한 사내가 다가온다.
두호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누구의 작품일까.
흘긋 채호를 바라 보았다.
채호가 장사꾼이긴 하지만 자신을 상대로 이런 얄팍한 처세를 할 그릇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라면.’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은 황석희였다.
“직원들이 선물을 받고 좋아하더군요.”
선물이란 수미를 찾아가며 전달한 술들을 말한다.
채호는 가만히 서 있는 두호를 천천히 지나쳐 황석희 앞으로 걸어갔다.
두호는 무표정하게 물끄러미 그런 채호를 바라보았다.
“형님에게 필린 10년이 달려 있습니다. 이해해주시죠.”
말을 마친 채호는 냉정하게 시선을 돌려 말없이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 어둠속으로 걸어가는 채호를 바라보던 두호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황석희도 천천히 두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작은 공터였다.
듬성듬성 자란 잡초가 사람들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인 듯 했다.
채호는 공터 중앙에 도착했다.
“이분 정도는 이겨주셔야 세계무대도 욕심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건 수미의 즉흥적인 제안이었다.
- 내 장기말의 능력을 나도 알아야지. 여기에 투자한 돈과 시간이 얼마인데-
아무리 투자자로써의 제안이라지만 당장 내일이 대회 시작이다.
‘악취미야.’
마인드 컨트롤만 하더라도 벅찬 시간에 굳이 이런 일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칫 우승권에서 멀어지기라도 하면 수미가 입어야 할 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다.
“너무 불쾌해하지 마십시오”
두호는 빙긋 웃었다.
불쾌할 것도 말 것도 없다.
어쨌든 황석희는 그녀의 오른팔이다.
오른팔을 보냈다는 건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최대한 배려했다는 뜻이다.
“그럼 시작합시다.”
그 말을 듣고는 황석희가 한 걸음 나섰다.
“직원들이 깔끔하게 청소해놓았습니다. 걱정하실 다른 일은 없습니다.”
“네. 고마워요.”
채호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두호는 눈을 좁히며 황석희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그와는 달리 흐트러진 옷 차림새, 그리고 셔츠 카라깃 옆에 묻은 피가 보였다.
두호는 넌지시 물었다.
“괜찮습니까?”
다친 듯한데 상관없겠냐는 질문이다.
“신경 써주실 만큼은 아닙니다.”
두호와 황석희는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외투를 벗어 던지며 황석희가 다가왔다.
두호 역시 외투를 벗어 옆에 던져놓았다.
황석희에 눈이 빛난다.
“그럼 대 PRIDE-K 우승후보 실력 좀 보겠습니다.”
서로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황석희가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주먹을 뻗었다.
잽처럼 뻗었는데 무게까지 실려 있었다.
-꽝
가드에 맞았지만 찌르르 팔이 울렸다.
두호 역시 마주 주먹을 냈다.
쉭!
황석희가 살짝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근소하게 피해내자 두호는 곧바로 그의 정강이를 노리고 킥을 날렸다.
깔끔한 연계.
황석희는 오히려 두호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허리를 껴안았다.
나오는 킥을 받으며 시도하는 테이크 다운.
변칙적이며 길거리 싸움의 도가 튼 황석희의 능력이 일견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두호의 중심이 무너지며 뒤로 넘어지려 했다.
자신보다 훨씬 큰 체급에서 나오는 힘.
그런 그에게 바닥에 깔린채 맞는 파운딩은 가드 위로 떨어져도 위험하다.
절대로 테이크 다운을 허용하면 안된다.
두호는 바닥에 등이 닿자마자 반동을 이용하여 황석희를 뒤로 차올렸다.
유도의 배대뒤치기를 응용한 두호였다.
뒤로 튕겨나갔지만 이내 몸을 돌려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한 황석희.
두호는 그의 대처에 크게 감탄했다.
‘역시.’
서 있던 위치만 바뀌어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둘.
단순히 길거리 싸움꾼이 아니었다.
수많은 실전과 경험이 녹아들지 않으면 보일 수 없는 황석희의 움직임이었다.
짧은 공방이었지만 그의 실력을 체감하기엔 충분했다.
비록 후다닥 헤치우듯 몇 수 나눈 것이지만 황석희 역시 두호의 실력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두호의 지금 동작은 방어와 견제 그리고 역습까지 담겨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대처를 두호가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얼굴 앞으로 스쳤던 그 주먹.
만약 자신의 얼굴에 적중했다면 아찔했을만한 궤적과 속도였다.
‘괜히 어르신이 밀어주는 게 아니었군.’
두호와 황석희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