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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41화 (41/204)

제 41화 : 끝까지 바라본 주먹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약국.

약사가 약을 조제하거나 완제품 약을 파는 곳.

하지만 뒷골목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다.

마약을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곳.

쉽게 말해 어떻게든 마약과 연루가 되어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소문일 뿐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관련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 나오는 걸로 보아 정황상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황석희는 섣불리 단정 짓지 않았다.

그러나 두호의 생각은 달랐다.

정황은 정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때가되면 증거가 나타나고 시나리오가 밝혀지면서 전모가 드러난다.

자신의 인생이 한풀 꺾인 사건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몇 달 전의 기억.

“예전 정문우 사무실에서도 마약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수미는 두호가 그를 어떻게 아냐는 듯 놀라 쳐다보았다.

“그 구멍가게 정사장?”

“네. 아시나요?”

“몇 번 봤다. 약 장사에도 손 대다니 그치도 노랭이가 되버렸구만. 근데 너는 그 자를 어떻게 알아?”

“과거에 저와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두호의 말을 들은 수미는 큰 소리로 웃었다.

“홋홋홋! 정 사장 학교 갔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네가 한 짓이로군.”

두호가 그만 됐다는 듯 서류를 덮었다.

“감사합니다.”

“가려고?”

“저 모래부터 배틀 먼스 시작입니다. 준비 좀 해야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연락 주십시오.”

수미는 벌써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보였다.

“네가 예선에서 떨어질까?”

두호는 빙긋 웃었다.

“가보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만 다녀오겠습니다.”

황석희 역시 두호의 뒤를 따라갔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수미는 재밌는 생각이 나는지 옅은 미소를 띠었다.

* * *

퍼퍽!

덩치 좋은 사내 박형준이 부하 직원의 머리를 둘둘 만 잡지로 후려치고 있었다.

“야이 멍청한 시끼야! 내가 환전 신청하면 액수 찍히는거 보고 입금 해주라고 했냐 안 했냐.”

두들겨 맞는데도 사내는 인상을 쓴다거나 심각한 표정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건 둘 사이 관계가 뱉어낸 말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의미다.

“종수야?”

“예 형님!”

무릎을 꿇고 있는 사내가 대답했다.

“우리가 기부하려고 이 지랄 하니? 자선사업? 뭐 그냥 단체로 연탄이나 나르러 갈까?”

“아닙니다.”

박형준은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친하게 지내던 후배 몇 명과 따로 독립하여 대형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월매’를 운영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 뿌리 깊은 사업 도박.

외국인이야 호텔 카지노를 이용하면 되겠지만 한국에선 도박장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컴퓨터만 있으면 도박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방법과 종류조차 다양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도박 사업체는 날이 갈수록 호황이다.

단속 걱정은 안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걱정 없다.

일회용품처럼 사용하고 버리는 웹 사이트와 대포통장을 이용하다 보니 경찰조차 누가 운영하는 지도 모르고 수사를 접는 게 이 사업이다.

노동 적고 돈은 많이 벌고.

아마 그들 사이에선 최고의 사업이고 미래가 유망한 직종이다.

“이건 뭐 단순 노동도 제대로 못하고 정말 널 어찌해야겠니?”

“명심하겠습니다.”

“아이 진짜! 답답해 뒤지겠네.”

박형준이 쥐고 있던 잡지를 책상 위로 툭 던진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달 온 것 같은데요?”

“받아와라.”

사내는 저녁이 무척이나 반가웠는지 문으로 춤을 추듯 걸어갔다.

“아저씨 되게 빨리 오셨네요?”

말 소리와 함께 문을 연 순간.

-빡.

음식을 받으러 나간 사내, 김통수는 한참을 뒤로 굴렀다.

그리고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가버렸다.

수미의 부하들이었다.

부하들 사이를 황석희가 걸어왔다.

“말 좀 묻자.”

형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온다.

분노가 극에 이르면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오늘 진짜 왜 이러냐.”

형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심지어 자신의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자신들을 마치 벌레 보듯 하는 시선.

그 시선이 형준의 목에 탁하고 걸렸다.

“뭐야 이 새끼들. 너네 어디서 왔어?”

안쪽 사무실에서 도박사이트 일을 하고 있던 사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황석희는 안쪽 사무실에서 나온 사내들을 훑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뭔가 기대치에 밑도는 모양이다.

스윽!

다시 한 번 사무실을 훑어 보는데 사람을 찾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자가 없는 모양이다.

저벅!

황석희가 형준을 향해 다가갔다.

온다.

공격을 위해 다가오는 걸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형준은 가슴으로 싸한 찬바람 한줄기가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크게 숨을 들이 마신다.

싸움의 반은 기세다.

면전까지 다가오지만 형준은 물러난다거나 주먹을 쥐어 공격을 대비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척!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간 황석희는 품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우리가 이미 몇 군데 돌다 와서 피곤하다. 그러니까 우리 쉽게 가자. 이놈 알아?”

한 사내의 얼굴이다.

자세히 보면 사진이라기 보다는 몽타쥬를 작성하고 그걸 카메라로 찍었다.

순간 형준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태연하게 황석희를 바라보았다.

황석희는 찰나였지만 형준의 표정변화를 감지했다.

‘뭐가 있긴 있나보군.’

입가에 미소가 번진 그였다.

카악!

형준이 사무실 바닥에 침을 뱉고는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나가 황석희와 마주섰다.

“알아도 이렇게 밀고 들어온 새끼들한테 해줄 말 없다.”

그 말은 들은 황석희는 피식 웃어버렸다.

뒤에 있는 사내들 역시 가벼운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형준은 그 반응에 더욱 불쾌해졌다.

순간 싸늘하게 표정이 식은 황석희.

곧 바로 품 속에서 회칼을 꺼내 기습적으로 형준의 왼 무릎을 베었다.

서걱-

눈 깜빡할 사이에 베인 무릎을 감싸 쥐고 쓰러진 형준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악!”

“형님!”

다행히 상처는 깊게 베이지는 않은 듯 했지만 무릎 부분이 점점 축축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손으로 땅을 짚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다시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는 황석희였다.

“다음엔 자를 거야. 니들도 아는거 있으면 빨리 말해. 몸 상한다.”

천천히 형준의 부하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

악에 받친 형준은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 개새끼들 싹 다 죽여!”

명령과 함께 도박장 사내들은 물건을 집어 던지며 수미의 부하들에게 죽일듯이 달려 들었다.

그러나 수미의 부하들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문 옆에 스위치를 눌러 사무실의 전등을 껐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조그만한 빛에 번쩍인 칼은 이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시각, 쨍그랑 소리와 함께 재떨이가 산산조각이 났다.

모영배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흥분한 얼굴로 담배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래서 그 세 놈은 어딨어?”

“그것이, 행방불명입니다.”

“행방불명!”

모영배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상무는 모영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잡힌 것 같습니다.”

“이런 한심한.”

“죄송합니다.”

“결국 꼬리가 잡혔다는 것 아냐?”

“아무래도 그렇게 봐야 할 듯 싶습니다.”

“에이!”

모영배는 피우던 담배를 사정없이 팽개쳤다.

모영배는 쉽사리 화를 가라 앉히지 못하고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감시가 발각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계획에 큰 장애가 생기지는 않는다.

발각이 되었다고 하여 중도에 멈춘다거나 포기할 것 같았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조용히 진행해야 하는데 상대가 경계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

수미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이런.”

뾰쪽한 대안을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왔다갔다 하며 혀를 차고 욕설을 뱉어내지만 속시원한 대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계획은 어때. 정리 좀 됐어?”

조상무는 아주 비열한 웃음을 띄우며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모영배를 쳐다보았다.

“당연하죠.”

조상무는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였다.

모영배는 자신이 앉아 있는 소파 앞 유리곽을 열었다.

유리곽 안에는 담배가 깔끔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담배 하나를 꺼내물고 옆에 있는 성냥곽으로 불을 켜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톡하고 재를 턴 다음 조상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말 해.”

“약물과 스포츠 도박 사이트입니다.”

모영배는 계속해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했다.

“스포츠 산업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소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제일을 뽑으라면 약물과 도박일 겁니다.”

어떤 스포츠 종목이든 불법 약물을 꺼려한다.

하지만 투기 종목에서의 약물은 단순히 자신의 몸을 헤쳐가며 기량을 늘리는 것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기록을 우선으로 삼는 종목이야 적어도 상대방 신체에 상해를 주지 않지만, 서로가 부딪히며 무력화를 시키는 것이 목적인 투기 종목의 특성상 그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다.

실제 해외에서도 약물 사용자와의 경기로 인하여 재기불능에 심각한 부상을 얻은 사람들이 많다.

선수 생명의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에 격투기는 약물에 굉장히 민감하다.

무기로 친다면 비대칭 전력.

해외 단체에서조차 최근 반도핑기구 ‘USADA’와 협약을 맺어 엄밀하게 확인하고 있다.

“근데 약물은 어쩌자고. 괜히 약물 같은 것으로 장난질 치다 걸리면 우리 모양새 빠진다. 아무리 막 가는 바닥이지만 약물은 조금 그렇지 않아?”

조상무는 단호했다.

“약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잠깐만 사용한다는 것이죠.”

조상무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모영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듯 처음보다 표정이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꺼림칙한 그늘을 지우지는 못했다.

조상무 미소가 짙어진다.

느와르 영화 따위로 자신들이 미화되긴 했지만, 남에게 해악을 끼치며 번 돈으로 먹고 사는 건달이다.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몇몇 선수에게 전해줄 정도로만 구하면 되니까요.”

모영배는 조상무의 말을 드디어 이해한 듯 손가락을 소리 나게 튕겼다.

PRIDE-K 의 메인 이벤트.

토너먼트 대회.

조상무의 계획은 16강 토너먼트때 이 약물을 뿌리는 것이다.

대상은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받는 인물들에게.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고 선별 과정중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은 약물 사용에 회의적일 겁니다. 하지만 턱걸이로 진출했거나, 약체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이런 유혹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죠.”

우승이라는 목표가 아예 넘보지도 못할 꿈이 아닌 약간 희망이 보이는 목표쯤으로 바뀔테니까.

“몇 명도 필요 없습니다. 딱 한 선수라도 받는다면 맥 빠지게 대회 중반에 기자에게 흘리면 됩니다.”

이번 PRIDE-K를 관통하는 가치는 꿈과 도전이다.

젊은 청춘들이 뜨겁게 도전하는 프로그램이 약물로 얼룩진다.

필린은 물론이고 대중들의 관심이 쏟아진 대회니 파급은 엄청날 것이다.

모영배는 그의 계획이 만족스러운 듯 표정이 밝아졌다.

“도박 사이트는 이제 곧 시작할 배틀먼스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수미가 만들어 놓은 밥상에 우리가 숟가락이나 올리는 거죠.”

“근데. 토너먼트는 우리가 유리하게 판을 만들기가 어렵지 않나? 아무래도 누가 이길지는 아무도 모르는거 아냐.”

“마지막까지 판을 키워 결승전 때 먹고 튀면 끝입니다. 정 걸리면 직원 몇 명 매수하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친 모영배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모두가 아직도 건달티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조상무 만큼은 사업가의 기질이 다분하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되받아칠 궁리를 할 줄 아는 남자.

그의 계획과 함께 모영배는 더욱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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