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30화 (30/204)

제 30화 : 끝까지 바라본 주먹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두호 또한 잠시 멀어진 틈을 타 숨을 몰아쉬었다.

‘제법 감이 좋네.’

보통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해 계속해서 몰아붙일 것이다.

이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게 하기 위해 두호는 일부러 몇 대 정도 맞아주었다.

데미지가 들어 올 만한 펀치는 가볍게 걷어내었고 약한 펀치들만 골라 맞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오히려 때리는 쪽만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감하게 밀고 나온 경욱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수준 높은 공방을 알아챌 리가 없었다.

그저 모두가 입이 벌린 채 있었다.

대회 지원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몇 없었기에 더욱 놀랐다.

일 분이 지나 심판이 손을 들었다.

“킥복싱룰로 변경 되었습니다!”

총 세 번 룰이 바뀐다.

한쪽에 세워진 시계의 빨간 불이 들어오며 킥복싱 룰로 변경됨을 알려주었다.

방금 복싱룰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멀어진 거리로 대치중인 두 사람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짧은 탐색전을 시작했다.

두호의 운동신경이 보통이 아님을 확인한 경욱은 처음과는 달리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신중하게 한 발씩 내밀며 빈틈을 찾는다.

두호 또한 킥복싱에 맞춰 자세를 바꿨다.

이번엔 두호가 먼저 경욱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기본적인 킥복싱 콤비네이션.

원투 로우.

가벼운 원투 펀치로 상대의 가드를 얼굴 위로 끌어올린 다음 상대의 허벅지 바깥쪽을 킥으로 노리는 콤비네이션이었다.

하지만 경욱 또한 잔뼈가 굵은 파이터.

두호의 첫 운영을 편하게 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에게 이 스파링은 테스트가 아닌 자존심을 건 싸움이다.

두호의 콤비네이션을 오히려 가까이 달라 붙어 위력을 잃게 만들었다.

바싹 붙은 채 서로의 머리와 팔이 엉켜 붙은 클린치 (상대 선수를 한쪽 팔이나 양 팔로 붙잡는 것으로, 공격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 상황.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힘을 주고 있는 경욱의 표정과는 달리 두호의 표정에서 여유가 스침을 확인했다.

경욱은 독이 바짝 올랐다.

‘어쭈 여유 있다. 이거지.’

서로가 붙어있는 근거리다 보니 둘은 함부로 서로에게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경욱은 고개를 한쪽으로 빠르게 내밀어 거리를 잡은 다음 두호에게 펀치를 내기 시작했다.

두호 또한 조금씩 거리를 잡아가며 곧바로 무자비한 난타전으로 이어졌다.

-쾅

상체에서 하체로 다시 안면으로 올라오는 속도는 감히 눈으로 쫓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펀치 몇 대 허용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공격 일변도의 두 사람.

정신을 쏙 빼놓는 둘의 공방은 구경꾼들을 광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와. 예선에서 이런 경기를 보게되네!”

“미쳤다! 이건 프로수준인데?”

채수와 탁현은 흐뭇한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괴물은 괴물이야.”

“두호씨는 경욱이가 누군지는 알까. 하하.”

설사 서로가 전력을 다하는 공방이 아니더라도 이 수준은 이미 아마추어의 영역을 한참 뛰어넘은 기량이었다.

몇십 초 동안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둘은 마치 뒤가 없는 사람처럼 잠시의 쉴 틈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파는 순간 무방비한 상태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야 한다.

심판은 시간을 확인하려는 듯 잠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은 1분 57초.

58.

59.

00.

2분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려주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삐잉

그 순간 경욱의 시야에서 두호가 사라졌다.

‘어?’

경욱의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코치진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쿵!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 경욱의 상체 위로 올라타 있는 두호.

그림 같은 테이크 다운(그래플링의 기술을 사용하여 상대를 넘어뜨린 행위)이었다.

두호가 종소리의 시작과 동시에 더블렉 태클( 상대의 하체로 파고들어 중심을 무너뜨리는 행위. 한쪽 다리는 싱글렉. 양 다리를 공략하면 더블렉이라고 한다)을 걸어버린 것.

이 모습은 정말 많은 것을 의미했다.

첫 번째는 프로에게 태클을 성공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을 성공했음이 왜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할 수 있다.

종합격투기 그래플링 상황에서 공격과 방어 연습을 수 없이 하는 프로들.

설사 타격을 주 무기로 가진 선수라 할지라도 테이크 다운의 방어는 생각이 아닌 본능적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혹독하게 연습해야 했다.

그만큼 MMA는 다양한 싸움 방식을 가지고 있고 그라운드 상황의 시작점인 테이크 다운을 방어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그걸 뚫어내고 성공해버린 것.

두 번째는 그 태클의 순간과 타이밍이었다.

많은 볼륨의 타격들이 서로를 노리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한눈을 판다면 엄청난 속도의 공격들이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쏟아질 것이 자명했다.

난전 상황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두호는 분명히 2분이 되자마자 곧바로 태클을 시도했다.

어지러운 상황속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여유와 분명한 기점이 있는 노림수.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는 관중들과는 달리 코치진들은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까지 사람 놀라게 할 거야.”

“사라진 기간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온거야 두호씨는...”

잠시지만 프로에게 유효한 공격을 한 두호에게 사람들은 더욱더 열광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두호의 밑에 깔린 경욱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스포츠 경기 중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한낱 아마추어에게 테이크 다운을 당한 것도 모자라 상위 포지션을 순순히 내줬다는 생각에 그는 냉정함을 잃었다.

냉정함을 잃은 순간 머리는 하얘지고 그저 힘만 쓸 뿐이다.

유리한 포지션을 잡고 있었지만 왜인지 두호는 그저 버티기만 할 심산인냥 경욱의 목과 등을 끌어 안은 채 꼼짝 않는다.

이쯤 되니 경욱 입장에서도 딱히 해볼 것이 없는 상황.

그렇게 남은 시간이 모두 소요되었고 테스트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땡

심판은 빠르게 다가가 두 선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양 쪽에 별 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심판은 스파링을 종료시켰고 두호는 곧바로 돌아서 준모에게로 향했다.

스파링을 구경하던 수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두호에게 향했다.

이 광경을 촬영하던 카메라들 역시 모두 두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마추어의 신분으로 프로를 압도한 신인의 등장.

쏟아지는 관심에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나가는 두호를 경욱은 말없이 쳐다보았다.

싸늘하게 식은 표정속에 타오르는 눈빛은 그가 굉장히 분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빨로 글러브를 물어뜯듯 벗은 경욱은 터벅터벅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선수 대기실로 들어간 경욱은 거울을 향해 글러브를 내던지며 크게 분노했다.

거울은 큰 소리와 함께 깨지며 바닥으로 쏟아졌고, 주위 다른 선수들은 유리조각을 피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씨발!”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에게 자신은 고전했다.

콧대 높은 프로파이터 커리어에 뜻하지 않은 생채기가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시합은 아니었지만 경기 내용만 보면 자신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경욱은 이를 갈았다.

“이게 뭔 개 쪽이야. 씨발.”

이 광경을 주의깊게 보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태건은 난간에 팔을 걸치고 입꼬리를 올린 채 스파링 테스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호의 실력이 기대만 못한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러면 너무 김빠지는데.”

태건 또한 스파링 테스트에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심지어 타격 부분에서는 프로선수를 압도하기까지 하였다.

자리를 빠져나가는 두호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끝났습니다.”

-어때?

수미였다.

“그냥. 좀 치는 정도인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 없을텐데. 알겠다 일단 들어와서 보자.

“네.”

간결하게 전화 통화를 마친 태건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같은 순간에 태건의 뒤를 돌아가던 한 사람과 어깨가 크게 부딪쳤다.

일준이었다.

그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고 태건은 그저 무표정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서로 눈인사로라도 사과를 한다면 아무 일도 없겠지만 일준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씨발. 사과 해야지.”

태건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일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벙어리야? 말 못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일준은 자신에게 태건이 겁을 먹은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태건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죽일까.’

하지만 태건 역시 이 대회에서 말썽을 일으키면 안 됨을 알기에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손이라도 올리면 곧바로 싸움으로 이어질 듯한 일촉즉발에 상황.

그 순간 일준의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이 멀리서 소리쳤다.

저번 당구장에 일준을 데리러 온 사내였다.

“일준아 빨리 와라! 차 대놨어!”

사내의 부름에 일준은 김이 빠진 듯 태건을 쳐다보며 훈계하듯 말했다.

“눈깔 착하게 뜨고 다녀. 확 죽여버리기 전에. 꼭 태국인처럼 생겨가지고.”

일준은 그대로 훽하니 몸을 돌렸고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태건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다가 꺼내 들었다.

대회장 입구에서 참가서 작성을 위해 나눠주었던 볼펜이었다.

볼펜의 심을 넣었다 뺏다 하며 일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태건은 입 꼬리를 희미하게 올렸다.

태건에게 볼펜은 글을 쓰는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 차에 탑승한 일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아 벨트를 매던 기사는 일준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차에 시동을 걸며 넌지시 물어보았다.

“왜. 뭔 일 있어?”

일준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말없이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 두호의 스파링을 복기중이었다.

잠시 눈을 감은 채 있는 일준.

계산을 마쳤는지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떠진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쉽게 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그렇다고 너무 힘 빠지게 먼저 떨어지지 말고.’

매일 대회장을 찾아오는 이유는 정보 수집을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제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주위를 둘러보던 중 두호가 있었다.

불현 듯 과거의 일들이 생생하게 눈에 보였다.

우승은 했지만 우승자 대접은 받지 못했다.

자신 또한 두호와 같이 얼마 안 있어 협회에서 제명을 당했다.

물론 자신의 사유는 더욱 비참했지만.

그날 대회에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속이 쓰린 듯 계속해서 인상을 찡그린 일준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야. 지금 애들 싹 다 모아봐. 그리고 너는 거기 남아서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아마도 운명은 자신에게 질문을 한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대답은 정해져 있었고 이유가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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