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28화 (28/204)

제 28화: 끝까지 바라본 주먹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체력테스트를 마친 두호는 벗어놓았던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준모는 곧바로 두호에게 다가가 페트병의 뚜껑을 열어 물을 건넸다.

“역시. 형님. 믿고 있었습니다.”

두호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화면에 띄워진 자신의 등수를 확인했다.

8등.

딱 좋다.

처음 태건의 이름을 확인하였을 때 그냥 일 등으로 통과해버려 한 방 먹일까 생각도 해봤지만, 벌써 힘 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말이 체력테스트이지 굳이 화면에 등수를 모두가 볼 수 있게 기재해 놓은 것부터가 이미 경기의 시작이었다.

목표가 높고 실력에 자신감도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통하여 서로의 기본 능력치를 파악할 것이다.

견제하기도 그렇다고 방치하기도 애매한 이 등수가 딱 알맞았다.

“근데 형님 아까 말씀은 무슨 뜻이었어요?”

두호는 준모가 건네준 물을 다시 벌컥벌컥 마시고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어?”

준모는 멍한 표정으로 두호를 쳐다봤다.

“아까 시험 보러 가시기 전에 서푼이 어디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두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닦았다.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단 뜻이야.”

“네?”

준모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승을 목표로 한 두호였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단다.

무슨 의미일까.

두호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짐이 든 가방을 챙겼다.

“나중에 얘기해줄게.”

“아 네. 저한테 주세요. 형님.”

두호의 짐을 뺏어 들다시피한 준모는 자신의 수첩을 보며 다음 시험에 관련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음 형님 다음 테스트는...”

다음 테스트 장소로 걸어가던 두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한 사람을 떠올린다.

-쾅

“찰리 간다, 출발하자!”

“네! 브라보 팀 출발하겠습니다! ”

맨 뒤에 앉은 사람이 뒷문을 두어 번 강하게 치자 옐로우 맘바의 팀원들을 태운 트럭이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갔다.

이라크 반군의 후방 교란 임무를 의뢰받은 그들은 어젯밤 동안 반군과 격렬한 시가전을 치렀다.

이번 임무는 회사에서도 몇 번 없던 큰 액수의 의뢰인지 팀원들의 임무 성공 보수도 평소보다 두 배다.

물론 옐로우 맘바의 수준이라면 이만한 임무는 한 팀 정도만 투입 되었어도 충분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번 임무의 중요도와 의뢰인의 입장을 고려해 특별히 브라보 팀 외에 찰리 팀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밤새 치뤄진 거친 전투는 결국 그들의 승리로 끝났으며 임무 또한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역시나 최고의 용병들답게 옐로우 맘바는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모두 무사 귀환 할 수 있었다.

도혁은 병력 이송 차량에 앉자마자 무표정한 얼굴로 총기 수입을 하기 시작했다.

총기를 해체하여 정리하던 중 옆을 쳐다 보니 박래진 캡틴은 회사로 임무 완수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보고를 마쳤는지 무전기를 툭 하고 내려놓았다.

아주 밝은 표정으로 그는 크게 외쳤다.

“어이. 이쁜이들 오늘 고생했다. 비행기 뜨기 전까지 술이나 밤새 퍼먹자고!”

다들 신나서 맞장구를 친다.

“그럼 캡틴이 쏘는 겁니까?”

“젠장. 먹을 입이나 줄일 겸 몇 명 뒤졌어야 했는데.”

“하하하. 캡틴한테 술 한잔 얻어먹는데 모가지까지 걸어야 한다 이겁니까?”

방금까지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활한 분위기였다.

업계 최고라 인정받는 베테랑들은 언제나 여유가 넘친다.

그때 캡틴이 그들과 달리 말없이 총기를 수입하고 있는 도혁의 어깨에 턱 하니 팔을 올렸다.

“너무 열심히 사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일찍 죽어. 인마.”

“총기는 사용 후 곧바로 수입해야 최상의 상태가 유지됩니다.”

그런 모습에 질린다는 시늉을 하는 박래진 캡틴이었다.

“어휴. 너 잘났다. 인마.”

문득 캡틴의 말에 도혁은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총기 수입을 멈추고 다시 돌아보았다.

“근데 왜 열심히 살면 일찍 죽습니까?”

“음….”

박래진 캡틴은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노력과 실력의 서푼은 숨겨야 하는 거야.”

“예?”

“인생이란 게 그래. 인생의 파도는 자기 키보다 항상 높게 온단 말이지.”

알 듯 말 듯 한 캡틴의 말에 도혁은 흥미로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든 더 대단해 보이려고 다들 까치발 들고 사는데. 그럴수록 파도에 휩쓸리기가 쉬워.”

도혁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문답 같지만 어떤 의미인지 쏙 들어온다.

“잘 웅크리고 살다가 위기의 순간에 딱! 전력을 다해야 살아남기 유리한거지. 생존 전략이랄까. 하하하!”

그리고는 별거 아니라는듯 허술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이리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지만, 전쟁터에서 그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하였고 내려진 명령을 완벽히 수행해내는 타고난 용병이자 군인이었다.

이런 말을 듣고도 달라짐 없이 곧바로 총기 수입을 재개한 도혁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박래진 캡틴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큰 목소리로 웃었다.

* * *

황성태는 책상에 앉아 이번 달 후원 들어온 품목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곧 여름이 다가올테니 아이들을 위해 새 에어컨이라도 한 대 들어왔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목록에는 적혀있지 않았다.

서류를 덮은 황성태는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읍내를 나가서 선풍기라도 몇 대 더 구매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 순간 원장실의 문을 누군가 두 번 두드렸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방 안의 사람의 허락이 없어도 그저 열고 들어오려 했을 테지만 이 사람은 끝내 방 안의 반응을 기다렸다.

“네. 들어오세요.”

황성태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방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황성태도 놀랄 만큼 의외의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자넨?”

수미였다.

“들어와 얼른.”

“네. 실례하겠습니다.”

수미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성태는 놀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맞은편에 앉은 수미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게 얼마만이지?”

“10년 조금 넘었죠.”

수미는 무릎을 모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허허! 자네도 세월은 못 피했구만.”

“수사님은 그대론데요 뭘.”

“말이라도 고맙네. 잘 왔어.”

황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선반에 있는 커피포트에 물을 담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는 환기를 위하여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마음마저 편하게 해주는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멀리서 사람이 왔는데 그럴수가 있나.”

황성태는 다기들을 소파의 탁자에 가지런히 놓았다.

이어 끓는 물을 다관에 붓고 식힌다.

차는 기다림이다.

“드시게.”

“감사합니다.”

연분홍빛 녹차가 우러나왔다.

흐릅!

한 모금 마신다.

17년 전 마셨던 그때나 지금이나 쌉싸름 한 건 여전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황성태는 차를 끓여 주었다.

차의 종류는 다양했고 향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때까지 차 한잔 제대로 마셔보지 못한 수미에게 기상과 함께 마시는 차 한 잔은 특별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차에 대한 황성태의 태도였다.

무슨 차를 부처님 앞에 공덕을 쌓듯 엄숙하고 진중하게 끓였다.

찻잔에 차를 옮겨 담을 때는 신선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요새는 어떻게 지내는가?”

수미는 대답을 하지 않고 빙긋 웃어 넘겼다.

또르르!

황성태는 수미가 잔을 비우자 다시 채워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차를 마셨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우려낼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수미의 입이 열렸다.

“두호와.”

황성태는 네 번째 우려 낼 물을 다관에 붓기 시작했다.

“같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관의 뚜껑을 닫고 다시 우려내기 시작했다.

황성태는 무덤덤한 얼굴로 수미를 바라보았다.

“두호를 잘 아는가?”

“네. 얼마 전 도혁이의 후계인이라고 저를 찾아왔었어요.”

황성태는 후계인이라는 단어가 왜인지 맘에 걸렸다.

자신에게는 동생.

수미에게는 후계인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자신에 찻 잔에도 잔을 옮겨 닮았다.

“얼마전에 두호가 이곳을 찾아왔었네.”

“네 알고 있습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황성태였다.

무엇인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단 듯.

슬쩍 손을 내밀어 다관의 뚜껑을 닫고 다시 우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창문 밖에 먼 산을 바라보았다.

“소득 없이 돌아갈 자네였으면 이 깊은 산속까지 찾아오지 않았겠지.”

“죄송합니다.”

또르르!

다시 잔에 우러난 차를 따라준다.

“도혁이 얘기는 들었고?”

“네. 두호가 말해주었지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찻잔에 비치는 무언가를 바라보던 황성태는 조심히 찻잔을 들었다.

“올해 차가 좋아. 있다 갈 때 한 줌 줄테니 가져가게.”

황성태는 양손으로 찻잔을 받쳐들고 소리 없이 차를 마신다.

검정색 벤츠 승용차 한 대가 조용히 떠난다.

황성태는 보육원 마당을 빠져나가는 승용차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차가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황성태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흘끗!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본다.

방금까지 맑았던 하늘 저 멀리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온다.

“비가 올 모양이군.”

황성태는 몸을 돌렸다.

차 안은 조용했다.

핸들을 잡은 부하가 자꾸 룸미러를 흘긋 거렸다.

“어르신.”

수미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반가운지 그녀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조금 전 그 분, 뭐 하시는 분인지?”

헤어질 때 수미의 허리가 깊숙히 휘어졌다.

자신의 주인이 이렇게까지 저 자세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기업 총수를 만나도 당당했던 그녀 아닌가.

“은인.”

“예?”

부하의 눈이 커진다.

상상도 못한 정체다.

“나를 한 번 살려준.”

부우웅!

차는 국도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

* * *

준모는 자리에 앉아 수첩을 뒤척이며 테스트에 관한 정보를 살펴보고 있었다.

탁!

수첩을 덮고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다음은 스파링 테스트입니다. 총 3분간 진행이 된다네요.”

준모의 설명은 이러했다.

1분마다 룰을 변경하며 스파링을 진행한다.

순서는 복싱룰부터 시작해서 킥복싱룰.

그리고 마지막에는 종합룰로 마무리 짓는다.

이것은 킥복싱 대회나 레슬링 대회가 아니다.

말 그대로 종합격투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격투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겨루어 승부를 내는 것이다.

테스트를 진행하며 참가자의 장단점과 종합격투기에 대한 이해도를 확인하기 위함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아직 순서가 멀었기에 두호와 준모 또한 사람들과 같이 테스트 진행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렇게 스파링 테스트를 진행하는 곳에 도착했다.

총 9개의 링.

벨 소리와 함께 동시에 시작되는 스파링.

사람들 사이에 껴 링 안을 바라본 두호는 흥미로운 듯 미소 지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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