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27화 (27/204)

제 27화 : 끝까지 바라본 주먹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1라운드가 끝나기 전 뺏어낸 두 번째 다운.

‘끝났다.’

두호는 자신의 펀치가 깔끔하게 들어갔음을 느꼈는지 오른손을 불끈 흔들어 보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두호의 코너 또한 큰 소리로 환호했다.

“그렇지!”

전 경기 KO승 이라는 대기록.

그것도 수 많은 엘리트들이 모이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다.

두호의 스승인 양성학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심판은 쓰러져있는 일준을 보며 천천히 카운트를 세었다.

“5! 6! 7!”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두호는 감독을 보며 손을 흔들었고, 감독 또한 내일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8!”

벌떡 일어나버린 일준.

화들짝 놀란 두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두호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이게 말이 돼?’

심판은 곧장 경기를 재개시켰고 얼마 되지 않아 1라운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땡땡땡

“감독님.”

양성학 감독은 두호의 이마를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왜?”

“저 사람 뭔가 이상해요. 눈이 풀린 것 같기도 하고.”

양성학은 개의치 말라는 듯 두호가 쓰고 있는 헤드기어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 건 신경쓰지마. 저기도 거의 한계일거야. 계속해서 몰아쳐. 남은 시간 동안 죽어라 펀치 내지르면 세계로 간다. 알겠지?”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데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오로지 링 위에서의 싸움에만 집중하면 되는 문제였다.

2라운드 시작종을 울렸고 두호는 마음을 다잡는 듯 우렁찬 기합을 넣었다.

“으아아!”

감독 또한 두호에게 힘을 주기 위해 같이 기합을 넣었다.

반대편에서 걸어나오는 일준은 차갑다.

어쩌면 섬뜩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만큼 퍼런 눈동자를 번들거린다.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그렇게 2라운드가 진행 되었고 두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의 다운을 더 뺏어냈다.

몇 번의 다운을 더 뺏어냈지만 심판의 선언이 없었기에 다운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이미 이 경기는 스포츠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저 일방적인 두호의 폭행일 뿐.

독한 훈련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내는 두호지만 아직은 마음 여린 17살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두호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헤드기어에서 줄줄 흐르는 피가 오히려 그를 어지럽힌다.

상대의 동공에는 초점이 없어졌고 피를 흘리는 양도 점점 많아졌다.

오히려 때리면 때릴수록 마음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제발. 제발. 일어나지마.’

선수의 경기 진행의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심판이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를 중단할 수도 있었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선수 보호 의사가 없어 보였다.

거의 외면하다 싶이 고개를 돌리는 심판은 계속해서 경기를 진행시켰다.

그렇게 3라운드 종이 시작되고 두호는 무거운 마음으로 링 중앙으로 걸어갔다.

일준의 얼굴 한쪽은 이미 내려앉았다.

군데군데 찢어져 얼굴은 피 칠갑을 했지만 어째서인지 일준은 계속해서 일어났을까.

일준 역시 다리를 절며 다시 경기를 위해 걸어나왔고 이 모습은 두 눈 뜨고 지켜 보기 힘들 정도였다.

관객들 또한 굉장히 혐오스러운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기는 끝났고 심판은 두호와 일준의 한 팔씩을 붙잡고 경기 중앙에 섰다.

그 곳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두호의 승리를 장담했다.

두호 역시 마음이 무거웠지만 자신의 승리를 예상하는 표정이었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69kg급 우승자는...”

두호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일준의 한쪽 팔이 번쩍 들렸다.

장내 아나운서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일준 선수입니다!”

잠시 경기장은 정적에 휩싸였고 두호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 * *

예선 접수 마지막 날.

두호는 전날보다 더욱 가벼운 복장이었다.

표정 역시 평소와 같이 무덤덤했다.

그 대신 준모가 긴장한 눈치였다.

예선 시험장에는 마지막 날 임을 말해주듯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접수만 기다리더라도 하루가 끝날 것 같은 인파.

다행히도 두호는 전날 접수를 마친 터라 기다림없이 곧바로 시험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준모는 침을 꼴깍 삼키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제보다 더 많아진 것 같네 씨발.’

준모는 자신이 긴장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침을 탁 뱉었다.

“딱 봐도 제 선에서 정리 될 놈들만 보이네요. 형님 어서 가시죠.”

건들거리며 앞장 서 걷는 준모는 계속해서 참가자들을 노려보았지만. 참가자들 누구도 준모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두호는 빙긋 웃었다.

시험장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직원에게 신청 접수를 간단하게 확인받았다.

준모는 문 입구를 활짝 열며 안 쪽 공간으로 공손하게 손짓했다.

두호는 어깨를 빙빙 돌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는 시험장은 더욱 뜨거워졌다.

체력 시험 안내원이 앉아있는 곳으로 두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내원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참가 신청서 보여 주시겠어요?”

두호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건넸다.

안내원은 노트북에 간단한 신상정보를 옮겨 적었고, 팔 한쪽에 종이 팔찌를 감아주었다.

두호는 팔찌를 감은 팔을 들어 올려 앞 뒤로 확인했다.

일반적인 종이는 아니었고 방수 코팅이 된 듯 굉장히 질겼다.

“이 종이 팔찌에 체력 테스트 결과를 직원들이 적어 주실 거예요.”

직원은 뒤이어 물 한 병과 수건을 건네주었다.

“체력테스트가 끝나시고 뒤에 계신 직원분에게 팔찌 건네주시면 됩니다!”

직원은 손을 들어 보였다.

“부상 조심하시고 시험 잘 보세요!”

밝게 인사를 건넨 안내원의 인사에 두호는 가볍게 목례했다. 그리고 바로 옆 체력 시험의 대기 인원 맨 뒤로 이동하였다.

준모는 자신의 뒷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줄을 서 있는 두호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전날 이번 시험 내용에 대한 조사를 해온 것인지 수첩 안은 새까맣다.

초등학생처럼 흐트러진 글씨체라 다른 사람은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역시 쓴 사람은 알아보는 듯 하다.

“형님. 체력테스트는 세 가지를 본다고 합니다. 팔 굽혀펴기랑 턱걸이 그리고 윗몸 일으키기라네요.”

필린은 이번 예선 시험을 통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사람을 뽑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맨몸운동의 가장 대표 격인 이 세 가지 운동으로 체력 시험을 진행한 것이 그러했다.

격투기 선수의 근육은 보디빌딩 선수들의 근육과는 쓰임새와 모습이 다르다.

큰 근육은 체내의 산소를 많이 잡아먹는다.

체내의 산소를 많이 소모하면 폭발적인 근력을 낼 수는 있지만, 근지구력과 체력이 떨어진다.

격투기 시합의 특성상 폭발적인 힘을 끌어내는 능력만큼 7할의 힘을 오랫동안 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격투기 선수들은 몸을 키우는 고중량의 운동보다는 저 중량 고반복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근육기능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종목과 같은 체중의 사람이더라도 격투기 선수들의 몸이 대체로 얇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맨 몸 운동은 그 기능을 훈련하는 아주 기본적인 운동이기에 세 가지의 운동 수행능력을 측정하여 참가자의 신체적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세 종목 다 상대평가로 진행한답니다. 저쪽 전광판에 개수가 나오네요.”

준모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두호는 준모의 손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한쪽 벽면 큰 전광판에 체력 시험 상위 100명의 기록이 나와 있었다.

두호가 그것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준모는 상위 기록을 보며 어이가 없는 듯 혼잣말로 궁시렁거렸다.

“뭔 팔굽혀펴기를 2분에 120개씩 하냐. 평소에 발 대신 팔로 걸어 다니나.”

뒤이어 턱걸이와 윗몸일으키기의 기록을 보고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전광판을 보며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양손을 불끈 쥐고 두호를 응원했다.

“형님. 저 새끼들한테 와! 팔은 이렇게 굽혀 펴는 거구나 라는 걸 한번 보여주시죠!”

준모의 거친 응원을 듣고도 두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전광판을 보며 눈을 좁게 떴다.

이번에는 손바닥을 눕혀 전광판을 향해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보였다.

준모는 두호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자신도 두호를 따라 손을 이리저리 틀어보지만 의도를 당최 모르겠는 눈치였다.

“뭐 보십니까?”

두호는 그제야 준모의 어깨를 툭 치며 가볍게 웃어 주었다.

“서푼이 어느 쯤이려나. 그거 보고 있었다.”

“네?”

대답 없이 두호는 윗옷을 벗어던졌다.

그 순간 두호의 몸을 본 주위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두호의 몸은 완벽이라 칭해도 아쉬움이 없었다.

두터운 몸의 두께와 선명한 굴곡과 아찔한 데피니션.

아마 격투 스포츠 종목 몸의 표본을 뽑는다면 이 몸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그리고 몸 곳곳에 자상들이 그의 거친 삶을 증명하는 명함인듯 느껴졌다.

침을 꿀꺽 삼키며 두호의 몸을 감상했다.

두호는 물 한 모금을 입만 살짝 적실 정도로 삼키고 준모에게 건넸다.

“다녀올게.”

준모는 자신이 더욱 끓어오르는지 힘차게 대답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요!”

두호는 느릿하게 걸어갔다.

예선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 갔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거기서 옆구리를 쳐야지!”

“빨리 빠져나와! 거참.”

“뭐하는 거야. 포기하지마!”

응원차 따라 나온 친구들이 링 위를 향해 외친다.

프로 선수 하체에 참가자 허리가 감겨있어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쳐보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참가자는 프로선수의 팔에 탭아웃 (TAP OUT : 서브미션에서 자신의 항복을 표현하는 의사. 팔이나 바닥을 손으로 2~3번 치는 것으로 표현한다)을 쳤다.

응원 온 친구들은 참가자만큼이나 아쉬워하며 열심히 싸운 친구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쉽다!”

“잘했는데! 최선을 다했으니 됐어.”

기진맥진한 참가자와는 달리 테스트를 진행한 프로선수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목례로 상대에게 존중을 표현하였다.

“하하 고생하셨습니다.”

사내도 마주 꾸벅했는데 프로의 높고 견고한 벽을 인정하는 표정도 보인다.

이 스파링 테스트는 단순히 프로를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참가자의 격투 기량을 확인함과 동시에 스파링에 임하는 태도를 보기 위함이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해야 할 텐데 이런 곳에서 조차 긴장을 하여 겁을 먹는 담력이라면 아쉽지만 탈락이다.

프로는 글러브를 벗어 툭툭 털더니 품에 안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구경꾼 중 한 명이 눈을 찡그리며 체력테스트 상위 100명이 적힌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오. 바뀌었다. 바뀌었어.”

그 사내의 반응과 목소리에 스파링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화면을 쳐다보았다.

“어디?”

“오늘 처음 바뀐거지?”

모두의 시선이 전광판에 몰려들었다.

1. 조태건

2. 김준훈

3. 유서영

4. 오재민

5. 김형철

6. 최구열

7. 박민수

8. 백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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