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화: 끝까지 바라본 주먹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갖는 가족 식사였다.
처음 출소했던 때보다는 두호의 밥 먹는 모습은 훨씬 부드럽다.
집밥은 여전히 따듯했고 맛있었다.
비록 첫 날처럼 많은 음식은 없었지만 집밥은 언제나 풍요롭다.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몇 명의 리포터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람의 향기를 쫓아 취재를 나가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전기차에 이어 자율주행 버스가 곧 상용화되는 세상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 TV 프로지만 아버지에겐 이만한 게 없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사람 사는 맛이 없어.’
처음 그 말을 들은 어린 두호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요새야 TV 말고 다른 놀 거리 들이 많지만, 예전엔 TV 밖에 없었거든. 쉬면서 보는 프로그램이지만, 화면 속 저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에 내일을 준비할 활력을 얻지.’
두호는 아무 말 없이 아버지 옆에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리포터가 그 지역 특산물인 복숭아를 먹어보면서 너무 달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리포터의 연기가 실감났는지 아버지가 입맛을 다셨다.
두호는 그런 아버지를 슬쩍 살폈다.
얘길 꺼내야 한다.
‘아버지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말이 참 어렵다.
원인은 아니지만 가족이 이별함에 큰 요인이 운동이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더욱 가중처벌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운동을 다시 하길 원치 않았다.
운동같이 힘든 길 말고, 평범하게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랬다.
“말해? 할 말 있으면?”
아버지가 웃는다.
세월이 할 일 없이 이마에 주름을 얹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빠른 눈치다.
두호는 설거지 하는 부엌의 어머니를 살피더니 낮게 말했다
“아버지. 잠시 따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싱긋 웃어보이며 어머니에게 크게 말했다.
“나 두호랑 슈퍼 좀 다녀올게요.”
“어. 올때 세제 좀 사다줘요.”
“그래요.”
아들과 같이 외출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지 어머니는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이런 소소한 풍경을 다시 보게 되니 하루의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집 앞 슈퍼 행상에 두호와 아버지가 둘러앉았다.
아버지 옆에는 어머니가 부탁한 세제가 검은 비닐봉지에 든 채 놓여있었고 손에 700원하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었다.
두호를 좀 더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 행동을 이해한 듯 두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저 운동 했을 때 어떠셨어요?”
참 말 수 없는 아들이 오랜만에 꺼내는 속 이야기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아버지는 우드득 소리를 내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었다.
“운동할 때? 좋았지.”
두호는 멈칫했다.
사고를 치고 교도소를 다녀왔으므로 좋지 않았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좋았다면서 밝게 웃는다.
“네가 처음 권투를 한다고 했을 때 이놈은 나랑 참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지. 아빠는 옛날부터
마음이 약해서 뭘 남자답게 해본 기억이 없었거든.”
아버지는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다시 봉지 안으로 집어넣더니 곱게 접었다.
“너의 실력이 쑥쑥 자라고 대회에 나갈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자 어느 날부터 뭔가 보이더라.”
“뭔가 보여요?”
“금메달이랑 연금.”
아버지는 웃었다.
하지만 얼굴 한쪽으로 금방 찾아드는 그늘은 겨우 밀어냈던 안 좋은 기억들이다.
무력감과 절망감.
세상 모든 것이 나의 가족을 절벽으로 떠미는 것 같던 그 순간.
아버진 가볍게 몸서리를 치며 땅이 꺼져라 푹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결코 떨쳐 낼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매일 같이 부어오는 얼굴과 늘 땀에 절어오는 운동복. 그리고 아무런 힘이 될 수 없던 나의
무능함.”
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는다.
부모가 돈을 잘 벌었다면 두호가 주먹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린 모양이다.
“왜? 운동 다시 하고 싶니?”
아버지가 빤히 바라본다.
두호는 움찔했다.
“맞아?”
“네. 하고 싶어요.”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한참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아버지가 빙그레 웃었다.
“하고 싶으면 해야지.”
두호의 어깨에 아버지는 척 손을 올렸다.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두호에게 전하는 응원과 과거에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시작하지? 체육관을 등록해야 하나?”
두호는 자신이 가져온 서류를 꺼내들었다.
방 안에서 읽고 있던 PRIDE-K 홍보 책자와 배틀먼스 안내문을 건네주었다.
아버지는 신기한 듯 자료를 받아들었고 곧장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게 뭐니?”
“우리나라 유명 에이전시인 필린에서 주최하는 격투기 오디션 대회에요. 방송에도 나오구요.”
“근데 이게 왜?”
“저 여기 한번 나가보려고요.”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치를 보아하니 아마도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고 왔구나.
3개월 정도를 집을 비운 이유가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함이었구나.
두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내일이 예선이에요.”
“그렇구나.”
말이야 시원하게 허락했지만 마음 한켠에 있는 불안과 걱정은 걷어낼 수가 없다.
분에 넘치게 하늘은 자신에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들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자신은 이 아이를 단단히 받쳐줄 디딤목이 되어주지 못한다.
하지만 아비로서 자식이 다시 한번 꿈을 향해 힘껏 달리는 것을 보고 싶어졌다.
“두호야.”
“네.”
주방세제가 든 비닐봉지와 다 먹은 아이스크림 봉지를 챙겨 든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아버지 뒤를 두호가 따라 나섰다.
잠시 아무 말 없이 뒷짐을 진채 걸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특이하게 하얀 달이 밝게 떠 있었고 구름은 신비롭게 달을 감쌌다.
조용히 뒤따라오는 두호에게 늘 그렇듯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멋지게 한번 날아봐라. 엄마에겐 내가 나중에 따로 잘 말해보마.”
두호는 고마움을 가득 담아 허리를 숙였다.
고개 숙인 두호의 뒤통수를 매만지며 아버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따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날씨 좋네. 아들 가는 길 폼나게.”
밤은 점점 깊어져 갔다.
* * *
한 남자가 늦은 새벽 샌드백을 때리고 있었다.
샌드백이 터지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는 그가 체력의 한계점이 온 듯 느껴졌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발의 스텝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곧 이어 라운드를 마치는 종이 크게 울렸다.
-땡땡땡
그리고 그는 글러브를 벗어 바닥으로 툭 던졌고 뒤집어쓴 후드를 벗었다.
일준이었다.
일준은 복수심에 불타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샌드백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알아챘다.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차분하게 숨을 뱉었다.
“우리가 인연이 너무 길구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 당일.
각자가 응원하는 선수들의 승리를 바라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땡땡땡
“BOX!”
심판의 외침에 두호와 일준은 링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서로의 한 손씩 맞대었고 곧바로 경기는 시작되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쓰러지지 않은 일준.
그에 반해 땀을 많이 흘리지만 외관상 전혀 문제가 없어보이는 두호였다.
그렇지만 비춰지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두호는 일준에게 께름칙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지. 이 정도면 심판이 경기를 중지 해야 하는거 아닌가?’
복싱 국가대표.
엘리트 복서에게는 그보다 더 찬란한 영광은 없다.
4년 동안 누가 더 많은 피땀을 흘리며 연습했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는지로 태극마크를 달 주인공이 결정된다.
하지만 이 엄청난 대회의 무게감에 비해 경기의 긴장감은 애 저녁에 사라졌다.
상대 선수의 사후가 염려 될 정도로 두호의 압도적인 리드였다.
공식적으로 선언된 다운만 다섯 번.
반면 두호는 정타라고 해봤자 두세 번 허용한 것이 전부였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당히 많은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두호는 거침이 없었다.
두호의 스타일은 정통 인파이터.
두호의 고등학교 권투부 감독인 양성학은 두호를 한국에서 다시 없을 인파이터 복서의 재능이라고 평가했다.
유연하며 탄력 넘치는 몸, 그리고 집념에서 나오는 맷집까지.
상대적으로 서양인에 비해 작은 체구인 동양인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선수였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으면 세계에서도 먹힐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일준은 두호와 달리 전형적인 아웃복서.
포인트 복서로서 KO보단 판정승을 노리고 들어가는 아웃파이팅이 그의 주요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략과 운영은 두호의 압도적인 재능 앞에 의미가 없어졌다.
1라운드 시작 후 30초만에 그의 첫 번째 다운이 선언되었다.
쓰러진 일준을 뒤로하고 한쪽 코너에서 숨을 고르던 두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뭐지.’
첫 다운을 뺏어낸 펀치는 그림 같은 리버샷(오른쪽 복부를 때려 간에 직접 충격을 주는 펀치)이었다.
인간은 오른쪽 윗배에 간이 있어 강하게 충격을 받으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일반인이 때려도 아픈 위치이지만. 두호는 인파이터 중에서도 손에 꼽는 펀치력을 자랑한다.
더군다나 나오는 펀치를 피하며 찔러넣은 리버샷이기에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쓰러지는 순간 두호는 똑똑히 보았다.
다리가 풀려 쓰러졌지만 눈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걸.
견뎌냈다기 보다는 아예 충격을 체감 못한 느낌.
‘근성이 좋은 건가?’
거기다 결승전이라면 더욱 투지를 불태울 수도 있다.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자살행위.
즉 지금 일준의 눈빛은 상대의 주먹이 견딜만한 것처럼 보이기 위한 허세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결승전이라면 더욱 투지를 불태울 수도 있었다.
일준의 상태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심판은 곧 바로 다시 경기를 재개시켰다.
두호는 방심하지 않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경기를 풀어나갔다.
두호의 장기인 인앤아웃.
빠른 발을 이용하여 상대가 가진 거리감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상대는 자신의 발을 쫓아 주먹을 내다보면 어느샌가 본인의 리듬과 거리가 무너졌고, 그 순간에 거침없이 파고들어 근접전을 한다.
자신은 계산을 마치고 내지르는 주먹이지만 상대는 급급하게 내는 주먹.
주먹 하나 거리를 두고 싸우는 인파이팅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번에도 인앤아웃으로 상대의 대치 거리를 조금씩 무너뜨린 다음 순식간에 파고든다.
일준은 링에 등을 기댔다.
두호는 연타 중 가벼운 왼손 훅을 뻗었다.
날아오는 펀치를 확인한 일준은 방어를 위해 양손 모두 높게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것은 두호의 노림수였다.
일준의 가드가 높게 올라옴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왼발을 깊게 내딛었다.
곧바로 그는 자신이 정말로 노리던 텅 빈 턱 쪽을 향하는 경쾌한 왼손 숏 어퍼.
-퍽
엄청난 파열음이 들리며 깔끔하게 두호의 왼손 어퍼컷이 일준의 턱에 꽂혔다.
-털썩.
일준은 힘없이 쓰러지며 바닥에 널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