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한 쉰 초반 가량의 사내가 다가왔는데 로만칼라에 검정 긴 옷을 입은 신부였다.
근처 덕현 성당 주임신부 이형언 펠릭스 신부님이다.
“어서 오세요 신부님!”
장마철을 대비해 장갑을 끼고 보육원 앞 배수로를 손질하던 황성태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저 청년 뭐 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성당 입구에서 현란하게 줄넘기를 하는 두호를 가리켰다.
“우와. 지금 운동하는 것 맞죠?”
“맞습니다.”
“누구죠?”
“글쎄요. 오래전 이곳 보육원에서 저와 인연을 맺은 도혁이란 아이 소개로 왔다고 하는데 아주 묘합니다.”
“묘하다뇨?”
“그러게요. 사람인 듯 아닌 듯.”
“네?”
“헛헛! 저도 아직은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주 열심히 합니다.”
이형언 신부의 눈이 빛난다.
어찌나 줄넘기가 빠른지 두호의 발이 지면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줄넘기를 교차하면서 뛰기도 하고 공중에서 2~3회를 돌리고 내려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황성태의 표정은 무심해 보였다.
“목적과는 다른 훈련이구먼. 몸도 엉망진창이고.”
잠시 허릴 펴고 운동장을 보던 황성태는 다시 하던 일을 시작했다.
이형언 신부는 황성태를 돌아보았는데 자기 눈에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신비할 만큼 특출한 운동 능력을 보고도 인색한 평가를 하는 황성태가 이해되질 않았다.
하지만 늘 범상치 않다고 느끼게 하는 황성태이기에 신부는 그저 조용히 있었다.
황성태는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수도회 소속의 수사다.
(수사: 신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욱 철저히 따르게 위하여 가정과 친척과 고향을 떠나 특정한 수도회(修道會)에 소속하여 그 회의 일원으로 일생을 살아가기로 서약한 사람을 말함.)
그러던 그가 35년 전 갑자기 이 깊은 강원도 골짜기를 찾아온 것이다.
수사에게는 어떤 희생과 봉사를 해도 결코 인건비 의미의 월급 같은 건 지급되지 않는다.
설혹 지급된다고 해도 그가 속한 수도회로 들어가는데 자신이 아는 황성태 요셉 수사는 그마저도 없다.
그러니까 35년 동안 철저히 먹고 자는 걸 제외하고는 이곳 덕현 보육원으로부터 백 원 한 푼 받지 않고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 세상으로 내보냈다는 것이 자신이 아는 황성태에 대한 전부다.
후원조차 부족한 이곳에서 오히려 날이 갈수록 아이들의 때깔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 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언젠가 한 번 그가 이곳 일을 하기 전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물었지만, 그는 미소만 지을 뿐 따로 대답해 준 적이 없었다.
열정 있고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인생의 깊은 사정이 있는 것 같은 남자.
이형언 신부가 생각하는 황성태였다.
준모는 필린의 건물 옥상에서 커피믹스 한 잔을 들고 있었다.
때마침 떨어지는 석양이 준모의 얼굴을 붉게 덮었는데 어금니를 악물고 있다.
‘형님…!’
그동안 두호를 찾기 위해 무척 뛰었다.
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어째서 자신에게조차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일까.
예전과 달리 이제 자신은 어엿한 필린의 직원이다.
회사에 매이다 보니 움직이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미팅이 끝난 후 채호가 따로 자신을 찾아와 말했다.
“준모씨. 더는 기다릴 수 없어요. 당분간 휴가로 처리할 테니 두호 형님 좀 찾아보세요. 꼭 찾아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전달해야 합니다.”
꽈직!
종이컵이 으스러진다.
준모는 비장해졌다.
‘어디 계십니까?’
준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형님 찾으러 오른팔이 갑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필린의 건물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준모는 건널목을 앞에 두고 갑자기 걸음을 세웠다.
신호등이 초록색이므로 건너야 하는데 준모의 발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찾지.’
목적지가 없는 준모는 잠시 멍해졌다.
고심 끝에 두호의 부모님 가게를 찾았다.
준모는 맞은편 골목에서 ‘소복상회’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두호의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흠. 이렇게 찾아뵈어도 되려나.’
저번 두호의 집 앞에서 아버지를 뵌 적이 있는데 눈치가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준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창문이 닫힌 채소 가게 앞에 섰다.
가게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머리를 만지며 옷을 턴다.
‘최대한 건실해 보이게. 부담스럽지 않게!’
준모는 자신감 넘치게 소복상회로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다가옴을 느낀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짧은 올백 머리에 검정 슈트를 입은 남성.
망설임 없이 이 가게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는 그녀의 안 좋은 기억을 들추기에 좋았다.
준모는 허리를 폴더처럼 접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침을 꼴깍 삼킨 어머니는 사슴 같은 눈을 끔뻑 거렸다.
“저…. 이번 달 이자는 입금했는데요.”
준모는 눈을 크게 뜨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네? 이자요?”
준모의 복장은 어머니를 긴장시키기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녀는 바짝 얼었다.
“확인해 보세요?”
준모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했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준모의 말에 어머니는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싶었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은 거두지 않았다.
“그럼 어쩐 일로 오셨나요?”
준모는 다시 재차 허리를 숙였다.
“두호 형님과 친한 사람입니다! 양준모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두호 형…님?’
지난 세월 아들의 일로 인하여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녀였다.
준모의 복장과 태도 그리고 두호를 부르는 호칭까지.
단지 차이라면 불량기가 그다지 없고 얼굴이 곱상이다.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연락이 끊긴 지 꽤 되었다.
불현듯 나타난 준모를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득!
어머니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명함 있으신가요?”
시장통에서 행패를 부리는 놈들이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건 못 봤다.
어머니의 말에 준모의 표정은 순식간에 환해졌다.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오죽하면 처음 명함을 만들고 나서 집 근처 편의점 아저씨에게도 하나 주었을까.
이제는 자기 동네에서 이 명함이 없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난 이제 대 필린의 로드 매니저지.’
준모는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건네드렸다.
“여기.”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명함을 살펴보았다.
‘필린(Feellin) 매니지먼트. 매니저 양준모.’
그제야 어머니는 밝게 미소 지으며 준모를 맞았다.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어머니는 가게 안에 있는 작은 책상으로 준모를 안내했다.
종이컵에는 현미녹차 티백이 담겨있었다.
“혹시 두호랑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요?”
준모는 가볍게 대답하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저번 두호와 아버지의 대화를 기억해냈다.
저 선한 눈에 거짓말하는 것이 마음에 찔리긴 하지만 그래도 두호가 생각이 있어서 한 것 일 테니 맞춰주기로 했다.
“예전 운동을 같이했던 사이입니다.”
그러자 이해가 된 듯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어머니!”
두호는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두호 형님이 어디 가셨는지 아십니까?”
“그러잖아도 연락이 되지 않은지 좀 됐어요. 혹시 아세요?”
준모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냥 떠난 모양이다.
워낙 자신과 다르게 속 깊은 생각을 하는 두호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무엇일까.
굳이 부모님에게까지 감추고 사라진 이유가.
준모는 걱정을 눈치채고는 대화의 주제를 옮겨갔다.
시장을 나선 준모는 한 손 가득 건어물을 들고 있었다.
두호의 가게를 들렀는데 맨손으로 나오기가 뭐해 괜히 몇 개 집어 들었다.
그냥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극구 거절하며 만 원짜리 5장을 놓고 나왔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이 형님은.”
그렇게 준모는 시장 근처를 투덜대며 걸었다.
왼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오른손은 오징어 한 축과 국물 우려내는 데 쓰는 굵직한 멸치 봉지가 들려 있었다.
땡!
그 순간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올려다보니 복싱 체육관이 하나 보였다.
그 소리를 듣고 준모는 잠시 멈춰 섰다.
갑자기 무언가 머릿속을 간지럽힌다.
떠오를 듯하면서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 뭐지, 아아.”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툭툭 쳐댔다.
그렇게 이마를 찡그리며 서 있던 준모의 눈이 번뜩였다.
얼마 전 두호는 뒷좌석에서 준모가 선물한 영양제를 재포장하고 있었다.
준모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형님. 고향이 서울이세요?”
두호는 영양제를 한 상자에 모두 채워 담고 싶어 하는 듯 이리저리 배치를 바꾸고 있었다.
“나 서울 출신 아니야.”
룸미러로 뒤를 보는 준모는 눈이 좁아졌다.
“어디신데요?”
“나 보육원.”
준모는 움찔했다.
두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든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두호는 포장을 마친 박스를 툭툭 치고는 자신의 옆자리로 옮겼다.
“굳이 고향 따지자면 화천.”
정말 개의치 않는 듯 두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아!”
준모는 시장 주차장에 세워 놓은 자신의 차를 향해 뛰어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두호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낮 운동을 준비하였다.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는 중 바로 앞에 황성태가 서 있었다.
두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무슨 일로?”
한 번도 문 앞에서 기다린 적이 없었기에 두호는 침을 삼켰다.
“자네 나 좀 보지.”
보육원 뒤뜰로 천천히 두호와 황성태는 걸어가고 있었다.
황성태는 아무 말이 없다.
지금은 잠깐의 침묵이 필요하기라도 하는 듯 걷기만 할 뿐이었다.
사실 두호는 이곳을 잘 알고 있다.
보육원 시절 처음 그에게 훈련받았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변한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풍경은 빠르게 익숙해진다.
한참 걷던 두호가 멈칫했다.
어른 두 명 정도는 팔을 뻗어야 닿을 것 같은 팽나무 아래 샌드백 하나가 걸려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듯 샌드백은 낡고 헤져있었다.
황성태는 샌드백을 살살 어루만졌다.
“자네를 가만 보아하니 운동신경이나 지능 하나만큼은 타고난 듯하군.”
무슨 말일까.
언뜻 칭찬인 듯하지만 결코 아니다.
칭찬하려면 운동신경 잘 타고 났다는 따위의 말 대신 하루가 다르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껍데기가 재능을 따라가질 못하는 거야. 그 이유는.”
두호의 눈이 빛난다.
어떤 메시지임은 틀림없는데 정확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잘 보게.”
황성태는 자기 팔뚝의 옷을 위로 살짝 걷어 올렸다.
주먹을 말아 쥔다.
“으흠!”
샌드백을 마주 선 황성태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퍼억!
주먹 하나가 샌드백에 틀어박힌다.
전광석화.
나이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속도와 힘이었다.
타악!
황성태는 앞뒤로 흔들거리는 샌드백을 조심히 멈춰 세웠다.
“이건 팔로 친 걸세.”
두호도 알고 있었다.
스윽!
황성태는 조금 전과는 달리 복싱 자세와 비슷하게 다리를 앞뒤로 벌렸다.
그러더니 샌드백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에 큰 소리가 들렸다.
펑!
출렁!
샌드백은 전보다 더 심하게 앞뒤로 흔들거렸다.
일반적인 타격처럼 끊어치지 않았다.
무엇인가 차이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별로 힘도 주지 않은 펀치이지만 그 박력은 상당했다.
“팔은 그저 다리의 무게를 전하는 역할일세.”
이미 두호는 놀라고 있었다.
샌드백은 앞서보다 훨씬 거칠게 흔들거렸다.
문제점과 극복 과정 그리고 결과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황성태는 굳은 두호를 보며 지나치게 긴장할 것 없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네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게 중요해 보이는군. 어떠한 충격을 받아도 굳건히 버티고, 어떠한 자세에서도 자네의 온전한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런 탄력있는 하체를 만들어야 할걸세.”
뒷주머니에 목장갑을 툭툭 털어 다시 손에 낀 황성태였다.
아직도 흔들리는 샌드백을 손으로 슬쩍 갖다 대니 이내 움직임이 멎었다.
“괜히 한마디 더 하자면 발차기도 마찬가지야. 손으로 만들어낸 무게 균형이 온전히 전달될 때 발에 힘이 실리는 거지. 그럼 수고하게나.”
자기 말을 마친 황성태는 뒷짐을 진 채 그대로 뒤뜰을 벗어났다.
두호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자신이 원한 정확한 분석과 해답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 훈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