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터미널의 넓은 자리에 앉아 있던 두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는 동안 두호는 잠시 먼 곳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어 채호야. 내가 당분간 자리 좀 비워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의 채호는 깜짝 놀란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 아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막 스탠바이 다 됐는데. 뭐하러 가시는데요?
두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채호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다.
기껏 판 다 깔아놓으니 사라질려고 한다니.
“큰일은 아니고 몸 좀 만들고 올까해서.”
채호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이 나왔다.
- 여기서 하시면 되잖아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알잖아. 나 주위에 사람 많으면 부담스러워서 못해. 봐야할 사람도 있고. 너무 늦지 않게 올게.”
잠시 채호는 말이 없어졌다.
몇 초간의 시간이 지나고 채호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 알겠습니다. 어딘지는 안 알려주실꺼죠?
“미안하다.”
- 형님 이제 큰일 앞두셨으니 항상 몸 조심하셔야 합니다.
“고맙다. 이해해줘서.”
채호는 두호를 잘 안다.
다른 일들도 중요하겠지만 누군가를 보러 간다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생사의 고비를 같이 넘기던 사이는 이런 게 좋다.
많은 말이 필요없다.
그저 신뢰한다.
-네. 형님.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셔야 합니다. 이만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두호는 잠시 멍하니 터미널에 앉아 있었다.
열 살 도혁은 이불을 덮고 방에 누워 있었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황성태가 나타났다.
“학교 안 가니? 인석아 아홉 시가 넘었어.”
“안 가요.”
그러면서 도혁은 더욱 이불을 뒤집어썼다.
“요놈 봐라. 갑자기 왜 그러는데? 어디 아픈 거니? 어제 저녁만 해도 멀쩡했잖아.”
벌떡!
도혁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그럼 어떡하라고요. 덩치도 작고 두 살이나 많은 형들인데다 그쪽은 네 명이나 된다고요. 벽돌이나 집어들어야 안 건들죠!”
황성태 눈이 커졌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 형들한테 맞을까 봐 학교를 안 가겠다는 것이냐?”
“학교에 가면 맞아 죽는데 왜 가요?”
화악!
도혁은 다시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다.
잠시 바라보던 황성태가 빙긋 웃었다.
어린 도혁이 말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맞아 죽을 줄 알면서 학교를 간다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지만 황성태는 마음이 짠해졌다.
이 아이가 하는 생각들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날은 황성태가 직접 버스로 데려다주고 하굣길에도 데려왔다.
하지만 그런 식의 등 하교는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걸 황성태도 도혁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보육원에 돌아왔을 때 황성태는 두호를 번쩍 안아들었다.
두호는 놀란 듯 황성태를 쳐다보았다.
황성태는 팔을 쭉 뻗어 풀숲 사이에 녹슨 철봉을 가리켰다.
“턱걸이라고 아니? 철봉에 매달려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거. 그거 딱 10개를 할 수 있을 만큼 연습해. 그럼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형들은 물론 네 또래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게!”
황성태의 말을 들은 그날부터 도혁은 죽어라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매달리는 것조차 힘들어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깨는 빠질 듯이 아프고 손아귀에는 물집이 잡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턱걸이의 개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싸움도 아니고 철봉을 올라갔다 내려왔다만 하는데 이게 뭐하는 거냐고 투정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가 시킨데로 이를 악물고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황성태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한 것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 하나가 있었다.
황성태가 새로운 원장으로 온지 십 일쯤 지났을 때였다.
보육원의 보일러가 고장 나 장작을 패서 물을 데웠어야 했다.
황성태가 웃옷을 벗고 도끼질을 하는 것을 우연히 훔쳐보았는데, 그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무수히 많은 흉터부터 있었다.
뭐에 다친 건지 알 수도 없는 처음 본 흉터까지.
어린 도혁의 눈으로도 그가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성격의 도혁이였지만, 10살 나이에 턱걸이를 10개 할 수 있을 만한 힘이 생기기에는 힘들었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엔 시커먼 굳은살이 배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날 때까지 도혁의 이마에서는 땀이 마른 적이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날. 황성태가 원장실에서 보육원 후원 품목을 살피던 중 도혁이 방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원장님! 이제 안 쉬고 10개를 할 수 있어요!”
볼은 이미 새빨개지고 얼굴에 온통 땀 범벅인 도혁을 보니 황성태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제 가르쳐주세요!”
저런 표정과 모양새로 들어온 아이에게 이제 와 싸우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황성태는 손짓하여 도혁을 불렀다.
그리고는 자기 무릎에 도혁을 앉혀 귓속말을 해주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도혁.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도혁을 벼르던 아이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항상 데리러 오던 황성태가 보이지 않자 재빨리 도혁에게 다가왔다.
“너 진짜 죽었어. 오늘.”
도혁의 머릿속에는 황성태가 해주었던 말만 계속해서 맴돌았다.
‘도혁아 딱 한 명. 그중에서 제일 힘 세 보이는 사람 있지? 그놈한테 달려들어서 이렇게 목을 콱 잡아.’
황성태는 한쪽 팔을 굽혔고 그 팔의 손목 부분에 다른 한쪽 팔을 올려 단단히 잠그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도혁은 이게 뭐냐는 듯 바라보았다.
싸움을 알려 달랬더니 무슨 목을 잡고 잠그는 시늉만 계속하는 황성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로 있는 힘껏 졸라.’
그러자 도혁은 손가락 세 개를 내밀며 나머지 셋은 어쩌냐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황성태는 살짝 미소 지으며 도혁의 이마의 땀을 자기 옷 소매로 닦아주었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그 애가 툭 하고 힘이 풀릴 때까지 조르면 돼. 다른 애들이 널 떨어트리려 해도 절대! 절대!’
도혁은 네 명의 아이들 중 가장 큰 아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아이들은 손목과 어깨를 빙빙 돌리며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너 오늘 나한테 아주 죽….”
그 아이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혁은 가장 큰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그 아이는 뒷걸음질 치다 뒤로 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하지만 도혁은 넘어진 그 아이의 뒤로 돌아가 매미처럼 매달리며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놀란 그 아이는 도혁을 떨어트리며 몸을 뒹굴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조차 도혁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려보았지만, 도혁의 팔은 도저히 풀릴 생각이 없었다.
도혁의 팔은 힘줄이 터질 듯하였다.
10살 남짓한 아이들의 힘으로 턱걸이를 10개씩 하는 아이에 근력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제일 덩치가 큰 아이는 켁켁 소리를 내며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자신들 중 가장 큰 친구가 그런 모습을 보이자 아이들은 모두 겁을 먹고 행동이 멈춰버렸다.
힘이 풀림을 확인한 도혁은 그 아이를 내팽개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은 이미 커다란 멍이 크게 나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살짝 핏기가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도혁의 눈의 의지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천천히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모두가 울음을 터트리며 사방팔방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혁은 히죽 웃으며 흙먼지가 가득 묻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보육원을 향해 걸어갔다.
화천 터미널에 도착하여 곧장 버스를 갈아탔다.
예전 자신이 지냈던 보육원은 산 중턱에 있었다.
화천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조용한 시골 도로를 빠르게 달렸다.
차 안에는 두호와 기사 단 둘 뿐이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운전기사가 룸미러를 보며 물었다.
“덕현 갑니다.”
“아, 그러세요.”
기사는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런데 덕현은 무슨 일로 가십니까? 처음 보는 분 같기도 하고?”
시골에서 젊은 사람을 본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기사는 단번에 두호가 외지 사람이라는 걸 알아본 것이다.
“보육원 갑니다.”
“덕현 보육원?”
기사는 잘 안다는 듯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보육원 선생님이세요?”
두호는 가볍게 웃었다.
타고 내리는 손님이 없는 버스는 고속버스처럼 달려 잠깐 사이에 덕현 정류장에 멈췄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수고하셨습니다.”
힘찬 목소리로 인사하는 기사에게 두호 또한 가벼운 눈인사를 했다.
버스는 곧바로 회차하여 떠났고 정류장에 두호 홀로 남았다.
멀리 십자가 한 개가 눈에 들어온다.
덕현 보육원은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6.25때 생겨났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것이 없다.
시골 시설답게 운동장에 가까운 넓은 마당이 보인다.
왼쪽으로 붉은 벽돌을 경계석 쌓아 만든 화단 있고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다.
잠시 서 있던 두호는 걸음을 옮겼다.
가방을 들고 모래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던 두호는 보육원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 섰다.
싸악! 싸악!
한 노인이 싸리나무로 된 빗자루로 청소하고 있었다.
두호의 눈이 빛난다.
세월은 흘렀어도 금세 알아 볼 수 있다.
그 옛날 자신의 아버지이자 생존의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님.
살아남는 법과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가르쳤던 황성태였다.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이내 두호는 정신을 다 잡았다.
자신은 이제 김도혁이 아니고 백두호다.
뚝!
황성태도 계단 아래에 있는 두호를 발견하고 비질을 멈췄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부드러운 웃음이다.
오히려 정말 반가워하는 듯했다.
두호는 가방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김도혁 소개로 왔습니다.”
황성태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반가움에서 경계로 바뀐 그의 표정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김도혁?”
두호는 계단을 올라가 황성태와 마주 섰다.
잠시 두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
김도혁을 알기엔 너무 어리다.
하지만 김도혁을 알고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라면 단 한 가지다.
잠시 그를 살펴보던 황성태였다.
“들어오시죠.”
그는 휑하니 돌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짐을 챙기기 위해 다시 계단을 내려온 두호의 눈에는 바람 때문에 흙먼지가 가득 이는 운동장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죽었던 이라크의 모술을 떠올리게 했다.
잠시 말없이 그 모래바람이 이는 운동장을 지켜보던 두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비장한 눈빛으로 바뀐 두호는 맨땅에 침을 한번 뱉고는 짐을 챙겨 보육원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