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화: 전쟁의 신은 죽었다.
들어온 사내들은 곧바로 그녀의 옆에 공손하게 섰다.
“다녀왔습니다. 어르신.”
앞서 걸어온 사내는 수미를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서류 몇 장을 건네주었다.
서류를 건네받은 수미는 목에 걸려 있던 안경을 다시 쓰며 자세히 훑어보았다.
앞서 걸어온 남성은 그녀의 최측근 황석희.
그는 그녀의 오른팔이자 모든 부하를 통솔하는 이였다.
예전 두호가 이곳을 처음 찾아왔을 때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워 보이지 않았었다.
그 사이 두호는 다른 사내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 역시 처음 보는 인물이다.
때마침 사내도 시선을 돌렸고 둘의 눈빛이 부딪쳤다.
이국적인 진한 생김새와 창백하다고 느껴지는 하얀 피부의 사내.
하지만 사내의 눈에서 어떤 힘이나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슬쩍 두호의 얼굴을 지나쳤다.
“내가 내일 연락한다고 하지.”
수미는 다시 서류를 황석희에게 건넸고 그는 두 손으로 받았다.
사내가 통로를 통해 주방 쪽으로 걸어갈 때 그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태건아 네가 손님들 좀 모셔야겠다.”
그러면서 이미 엎드려 퍼질러 있는 준모를 보았다.
운전기사가 술에 취했다는 뜻이다.
“네.”
태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곯아떨어진 준모를 부축해 일어났다.
텅 빈 국도를 달리는 차 안은 조용했다.
핸들을 쥔 사람은 태건이었다.
준모는 조수석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코를 골았다.
두호는 창문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채호는 누군가에 문자를 보내느라 손이 바쁘다.
정적을 깬 것은 태건이었다.
“저번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수미를 만나러 온 날을 뜻한 것이었다.
두호는 풍경을 감상하는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네.”
“그때 제가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달랐을 텐데요.”
그러면서 룸미러를 이용해 뒷좌석의 두호를 본다.
수미를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은 모양으로 자신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뜻이다.
도발성이 다분한 말이었지만 두호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달랐겠죠. 한 명 더 누워있었을 테니까.”
두호는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말했다.
태건이 웃는다.
그런데 창백한 얼굴색 때문인지 웃음이라는 것이 섬뜩했다.
“조만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호는 룸미러를 통해 웃는 태건과 시선을 맞췄다.
두 사람의 싸늘한 눈빛이 룸미러로 교환 되었다.
문자를 보내던 채호는 호기심 가득한 눈이었다.
눈은 문자를 보내지만, 귀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
태건이 파전집에 들어설 때부터 다른 사내들과 질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제법 기세가 있네.’
두호와 결이 다른 재목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 조미자는 곧바로 이만 닦은 후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마른 멸치와 쥐포(쥐치어)가 들어오는 날이다.
한동안 중국산 쥐포를 팔았는데 작년부터 남해안 일대 쥐치 떼가 나타나면서 국산 쥐포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마루의 문을 열고 나가려다 멈칫하더니 슬쩍 두호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는데 슬며시 들여다 본다.
마루를 밝히는 전등 빛에 방안 일부가 드러났지만 두호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다.
“나가는 거요?”
남편 백성일이 잠옷 바람으로 안방 문을 열고 나온다.
“더 자지 그래요.”
원래 아침 시장은 백성일 차지지만 오늘 오전 병원 예약이 있다.
“왜 또?”
아내의 어두운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어젯밤도 안 들어온 모양이에요.”
“내버려 둬, 이년을 넘게 갇혀 있었는데 정신없을 때 아니야.”
“그러게요. 낮에 가게에서 봐요.”
드르륵!
조미자는 마루 문을 열고 나갔다.
조미자는 좁은 마당을 순식간에 가로질러 사라졌고 백성일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탁!
마당의 불을 끈 백성일은 슬쩍 두호의 방으로 향했다.
불을 켜고 슬쩍 방안을 둘러봤지만 두호의 흔적은 없다.
“흐음!”
백성일은 길게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시장에 상인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과거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시장 안으로 들어서던 과일가게 사장 정우홍은 멈칫했다.
사방이 캄캄한데 딱 한 곳의 가게에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어, 형님이 벌써 나왔나?”
그러면서 핸드폰 시계를 봤는데 5시 5분이다.
새벽시장의 수송은 과일이 가장 빠르다.
그래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정우홍이 여기 태평시장에서는 가장 빨리 나오는 것이다.
“넌 두호 아니냐?”
가까이 다가간 정우홍이 깜짝 놀란다.
두호가 가게 안에 쌓아둔 건어물들을 하나둘 꺼내 넓은 매대 위에 진열하고 있다.
이마의 땀을 닦은 두호가 그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정우홍, 저 위쪽에 있는 백과 상회 사장으로 기억이 난다.
아버지 백성일 보다 두 살 아래며 여기 시장에서는 가장 가깝게 소통하는 사이다.
“어쩐 일로 네가 이 새벽같이.”
두호는 아무 말 않고 빙긋 웃었다.
“허어! 우리 형님 이제 두 다리 뻗겠네. 그래 그래야지. 두호야.”
보기만 해도 기특한지 두어 번 어깨를 토닥였다.
정우홍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걸어갔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래.”
정우홍이 사라지고 곧바로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황태 상자를 꺼내 들고 나오던 두호의 시선이 가게 앞에 있는 어머니 조미자를 발견했다.
탁!
각을 맞춰 황태 상자를 놓고 웃는다.
“벌써 오세요.”
좀 더 주무시지 그러느냐는 뜻이다.
“두호야. 너가 왜?”
조미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자식의 돌발적인 행동은 어머니의 가슴을 가끔은 뜨겁게 만든다.
“그냥요.”
“그냥?”
“며칠 전에 오늘 사천에서 쥐포 올라온다고 하셨잖아요. 완전 건조가 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받아서 곧바로 냉장실로 옮겨야 한다고.”
“그래서 나온 거라고?”
“쥐포 상자는 무겁잖아요. 거기다 완전히 건조된 것도 아니면 뻔하죠.”
어머니 힘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나왔다.
두호는 다시 상자 하나를 들춰메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그녀는 그저 말없이 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새벽차로 올라온 멸치와 쥐포를 냉장고에 쌓고 나자 아침이 훤해졌다.
그리고 시장에는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하기 위해 가게 맞은편 백반집을 찾아 들어갔다.
식당은 늦은 아침을 먹는 시장 상인들로 가득했다.
두호를 발견한 상인들 눈이 커졌다.
“어머, 웬일로 아들이랑?”
“똑 닮았네!”
“뭐하니.”
어머니가 팔꿈치로 슬쩍 쳤는데 인사하라는 뜻이다.
두호는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어쩌면 저렇게 잘생겼대 그래.”
두호는 쑥스러운 듯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는 두호를 보며 자식 잘뒀네, 우리 아들놈은 뭐하는지 몰라 하는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내내 싱글벙글한다.
먼저 식사를 마친 두호는 창밖 풍경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넌지시 두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들, 고마워, 도와줘서.”
두호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조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어머니 얼굴에서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원래 말수가 없고 무뚝뚝하지만, 교도소를 다녀온 뒤로 더욱 말이 없었다.
교도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국처럼 한국 교도소에서 나이 어린아이들이 들어가면 신고식으로 맞는다 한다.
깡패 건달들의 추행에 시달리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마다치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아들!”
계산을 치르고 나오는데 어머니가 불러 세운다.
돌아보는 두호를 향해 어머니는 깊은 시선을 던졌다.
“안 피곤해?”
“네.”
“가끔!”
손가락 하나를 펼쳐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처럼 한 번씩 도와 달라는 뜻이다.
정말로 도움을 받고 싶어 그런 건 아니다.
자신과 같이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한 모양이다.
두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출근 시간이 지나면서 도로는 조금 한가해졌다.
두호는 천천히 걸어갔다.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걷는다.
인도는 어느새 채소와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로 꽉 들어찼다.
바지에 양손을 찔러 넣고 한참 걸어가는데 갑자기 귀에 익숙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땡!
두호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건물 2층에 복싱 체육관이 있다.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관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거칠게 흘러나온다.
“팔로만 치니까 주먹이 종잇장이지. 임마!”
관장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이해가 간다.
하체가 개입되지 않는다는 뜻.
하체가 튼튼하게 뒷받침되지 않는 주먹은 결코 상대를 쓰러트릴 타격을 주지 못한다.
과거 감독님은 매일같이 하체 운동을 강조했다.
복싱 선수라 하면은 샌드백과 미트 훈련을 제일 많이 할 것 같았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훈련의 반은 로드워크와 줄넘기였다.
매일 천 개는 가볍게 넘기던 바벨 스쿼트.
끔찍한 훈련량에 지쳐 엎드려 있으면 감독님은 툭 뱉는다.
‘마지막까지 서 있으려면 다리 힘이 좋아야지.’
신체 능력의 부족함을 느꼈다.
특히 하체에서.
지금이야 경험과 능력으로 신체적 부족함을 메꿔왔지만, 진짜배기들을 만나기 시작하면 이 문제점은 더욱 부각 될 것이다.
성장이 필요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아직 이 두호의 몸은 너무나 부족했다.
그때 만약 채호와 제대로 붙었다면 이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있을 만큼의 성장이 필요했다.
이런 드라마틱한 성장을 만들어줄 사람은 자신의 기억 속에는 한 명밖에 없었다.
과거 자신을 군인으로서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맡아준 사람.
자신에게 전쟁의 신이라는 별명을 붙게 해준 그.
하지만 두 번 다시는 겪기 싫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자 가볍게 몸서리가 쳐졌다.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러나 방금전 질린다는 듯 뱉은 말과는 달리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두호의 마음 아니 도혁의 마음 한 켠에는 그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린 듯 쓴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다시 한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문득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났다.
교실을 나온 어린 도혁은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보육원 원장님이 새로 오는 날이다.
원장님이 오면 기쁨잔치가 벌어진다.
자주 먹지 못하는 배달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새로 부임해 오는 원장님들은 늘 원생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온다.
이번 원장님은 뭘 선물로 가지고 올까.
며칠 전 보육원 축구공이 펑크가 났는데 축구공 하나 가져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도혁의 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야! 보육원!”
들려오는 소리에 도혁을 걸음을 멈췄다.
교문 앞에 두 살 많은 오 학년 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 너 진짜 엄마 없냐? 거기 있는 애들은 모두 고아래매?”
누군가 그랬다.
어린아이는 죄의식이 없는 악마라고.
아이들의 입에서는 절제된 언어라는 것이 없었다.
병신, 고아, 거지새끼 등등.
놀리는 것도 부족했는지 한 아이는 가까이 다가와 침까지 뱉는다.
면전에서 뱉었으므로 피할 수도 없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침을 보며 아이들은 소리 내 웃더니 돌아섰다.
그런데 네 아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오른손을 들어 올렸는데 하나같이 중지를 펴 올렸다.
보육원 선생님 말씀을 빌리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왜 나만 이런 세상에 남기고 죽었는지.
아니면 사고로 죽었다는 것 말고는 부모님에 대한 어떤 기억도 추억도 없다.
도혁이 주저함 없이 교문 앞 화단을 쌓아 올린 붉은 벽돌 한 장을 뽑아 들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빠악!
가장 오른쪽에 가는 아이의 등짝을 찍었다.
두 번째 아이 역시 등을 노리고 찍었다.
그런데 옆에 아이가 맞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가슴팍에 맞았다.
만약 잘못 맞았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
콱!
두 살이 많다고는 해도 아직은 아이들이다.
어른들 같았다면 마주 달려들어 싸웠을 테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꽈당!
그중 한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도혁의 다시 서둘러 뛰어갔다.
하지만 도혁의 작은 손은 그만 벽돌을 놓치고 말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아이들은 모두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다급하게 줄행랑을 치는 아이를 바라보던 도혁은 몸을 돌렸다.
흠칫!
돌아서는 도혁의 면전에 낡은 정장 차림의 사내가 서 있었다.
낡은 여행용 가방을 어깨에 맨 사십 대 가량의 사내가 빙긋 웃었다.
“눈빛이 좋구나!”
사내는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라도 발버둥을 친다는 게 중요한 거야.”
분명 칭찬받을 일은 아니기에 도혁은 당황했다.
“애야 길 좀 묻자. 덕현 보육원이 어디니?”
도혁의 눈이 커졌다.
“내가 사는 곳인데요?”
“오오! 이거 정말 잘됐구나. 나 좀 데려다줄래.”
“저 따라와요.”
도혁은 사내와 나란히 보육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새로 부임한 원장 황성태와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