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버팅(머리로 들이받는 행위)과 깨물기 등등 너무나 당연한 반칙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두호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매력적이었다.
“좋네.”
“다른 투기 종목이 하향길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새로운 인기 종목이죠. 다른 종목의 선수들도 종합격투기로 많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게 요새 돈이 좀 되거든요.”
두호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뚫어져라 바라보던 두호가 말했다.
“하자.”
“네?”
다른 대안이 없긴 하지만 이렇게 쉽게 결정할 것이 아니었다.
두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한다.
“저거 하자고.”
“진짜요?”
너무 빠른 결정에 오히려 채호가 당황한 눈빛이다.
탁!
술병을 잡는 두호의 손동작이 가볍다.
콸콸!
채호의 잔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때려 붓는다.
자신의 잔 또한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따른다.
평생 목숨을 건 싸움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경쟁의 개념은 없어졌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죽이거나 죽거나.
하지만 저것은 달랐다.
목숨을 건 듯이 싸우지만, 여전히 스포츠의 영역이었다.
모든 것을 걸고 죽을 듯이 싸우고 조금의 힘이라도 남아있다면 달려든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쓰러지듯 서로를 껴안는 두 사람.
두호는 그런 점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본 채호는 싱긋 웃으며 두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는 그였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두호 역시 마주 웃어주었다.
“나도 널 봐서 기분 좋다.”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그 짧은 건배로 두 사람의 과거가 빠르게 흘러갔다.
둘 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곳을 찾았다.
MMA.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일대일의 승부.
공평하게 주어진 자기 몸 하나만으로 경쟁하는 곳.
마지막까지 케이지에 서 있는 사람이 그곳에 주인이 된다.
죽일 각오로 싸우지만 죽지 않는다.
두호가 마음껏 달릴 넓은 땅을 찾아내었다.
*
이른 아침 어머니가 두호의 방문을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아들이니 기별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두호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손에 작은 가방을 들고 서 있다.
허리에 차는 전대인데 보아하니 가게에 나가는 모양이었다.
“늦게 들어온 모양이구나?”
“죄송합니다. 앞으로 일찍 다닐게요.”
늦은 귀가는 과거의 사건들이 떠올라 잠 못 이루게 한다.
“상에 밥 차려 놨어. 국만 덥히면 될 거야.”
“예!”
“피곤할 텐데 어서 자거라. 아 참.”
어머니가 다시 돌아섰다.
어머니는 지갑을 꺼내더니 구겨진 오만원권 한 장을 꺼냈다.
“뭔데요?”
어머니가 오만 원권을 내밀었다.
“적지만 받아.”
“네 고맙습니다.”
거절하려다 받기로 했다.
두호의 교도소 생활이 자신들의 무능함으로 야기된 사건이라고 괴로워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뭔가라도 더 주고 더 배려하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나가자 대문까지 배웅할까 하는데 문까지 탁 소리가 나게 닫는다.
나가려던 두호는 멈추어 섰다.
그렇게 잠시 서 있던 두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깨어버린 잠은 더 이상 눈을 붙들지 못했다.
잠시 더 자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두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집은 조용했다.
단독이라고는 하나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지붕과 오래되어 부스러기가 되어 떨어지는 시멘트 기둥, 그리고 구석구석 누렇게 뜬 벽지는 차라리 처연하기까지 했다.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했다.
자신이 집을 크게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절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백두호.’
마루에 걸터앉은 두호는 나직이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제 백두호다.
그때 자기 방에 놔둔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호는 들어가 전화를 받았는데 채호였다.
“언제 가셨어요?”
“그냥 온 거야. 속은?”
“얼마나 마셨다고, 형님 오늘 회사로 잠시 오시겠어요?”
“그러지 뭐. 근데 왜?”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서요. 그럼 이따 회사에서 뵐게요.”
전화를 끊었다.
두호는 어머니가 준 오만원권을 쥔 채 마루에 앉아 있었다.
옷장을 열어 청바지에 검정 자켓을 걸쳤다.
대문을 잠그고 열쇠를 항상 놓아두는 곳에 넣는다.
우편함의 벌어진 틈 사이로 넣어 놓는 키가 티가 나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 계단을 내려서자 준모가 있다.
“아주 화끈한 아침입니다. 형님!”
준모가 넙죽 절을 하고 재빨리 뒷문을 열었다.
“준모야.”
준모가 고개를 들었다.
“나 손 있다.”
이제 이런 짓 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랫사람이 하는 예의일 수도 있지만 두호에겐 부담스럽기만 하다.
“왜요? 전 좋기만 한데.”
피식 웃으며 차에 타려는데 날카로운 꼬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공 좀 주세요.”
두호가 돌아섰다.
한참 전에 열린 월드컵에서 쓰던 무늬의 낡은 축구공 하나가 굴러왔다.
골목에서 초등학생도 채 안 돼 보이는 아이들 예닐곱이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다.
퍽!
두호는 공을 살짝 차 주었다.
공을 받은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축구를 했는데 두호는 한참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두호의 동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여기는 자기 집이고 고향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채소 가게, 김밥집 하며, 낯익은 대청상회 간판도 보인다.
대충 둘러보는데 누군가 불렀다.
두호는 돌아섰는데 낯익은 얼굴이 서 있다.
“아들!“
두호의 아버지였다.
두호는 뻘쭘하다 미소를 짓기 위해 애썼다.
“요새 보기 힘들구나. 많이 바쁘니?”
“어디 다녀오세요?”
아버지는 오른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를 자랑하듯 들어 보였다.
“옆 가게에서 새우를 좀 받았는데 저녁에 손질하면 늦다고 해서 오는 길이다.”
그때였다. 말릴 새도 없었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두호 형님 밑에서 일하는 양준모입니다!”
어느새 이마가 지면에 부딪힐까 놀랄 만큼 허리가 굽어진다.
두호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버지 표정이 순식간에 긴장으로 바뀌었다.
“저 누구시니…?”
아버지의 얼굴에서 다시 걱정이 보인다.
원인은 부모가 제공했지만, 두호가 소년 교도소를 간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날 아들의 처절한 싸움을 보고 나서는 건장한 남자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두호 옆에서 크게 허리를 숙이는 준모의 인사가 눈에 익다.
그건 과거 가게를 찾아온 폭력배들이 보여준 인사였다.
준모의 불량한 복장과 거친 인사는 아버지가 짐짓 오해하기에 충분하였다.
아버지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준모와 두호를 번갈아 본다.
“아는 사람이에요. 그런 쪽 아니에요.”
그러면서 한쪽 눈을 찡그리며 준모의 다리를 발로 툭 찼다.
“형님? 말로 하세요 말로. 제가 뭐 실수 했습니까.”
스스로 눈치 백 단이라고 자부하던 준모가 목청껏 외친다.
하지만 왜인지 오늘따라 전혀 감을 못 잡는 준모였다.
“다녀올게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어르신.”
준모는 완전히 상·하체가 붙는다.
도대체 누구를 보며 자라야 저런 예의가 나오는 것인가.
“아…. 예!”
아버지도 얼떨결에 꾸벅했다.
준모가 차에 오르고 시동을 걸었다.
“두호야…?”
아버지 얼굴은 굳어 있었다.
괜스레 준모를 한번 보고 나니 두호가 걱정되었다.
“알지? 항상 겸손하게.”
두호가 평소에 예의가 없거나 버릇이 없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조심하라는 부탁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참으라는 사정이다.
두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예.”
“들어가세요. 어르신.”
“우리 두호랑 잘 지내주세요. 나중에 시장 놀러 오시면 같이 밥 한 끼 해요.“
준모의 대답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힘찼다.
“영광입니다. 언젠가 모실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윽고 승용차는 아버지에게서 멀어졌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멀어지는 승용차를 보고 있었다.
‘오늘도 무탈하기를.’
나직이 중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차는 조심스럽게 골목을 내려갔다.
“왜요 형님!”
룸미러로 두호와 눈이 마주치자 준모가 물었다.
두호는 살짝 노려보았지만 이래서 뭐 하겠나 싶었다.
“아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하세요. 전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두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대로에 들어서자 정체에 걸리고 말았다.
“사고 났나?”
준모는 목을 빼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플을 통해 이 지역 정체가 무슨 이유인지 알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여기저기 뒤져봐도 관련된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스르르르!
준모는 답답한 듯 창문을 열어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사고 난 것 같은데.”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차 바로 앞쪽에서 차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을 보아하니 사고가 분명해 보였다.
“꽝 한 모양입니다.”
“이 차 얼마 줬냐?”
“아는 후배가 중고차 딜럽니다. 인상 한 번 썼더니 아주 합리적으로 주더라고요. 600 줬습니다. 600 치고는 괜찮죠. 형님!”
두호는 대충 그렇다고 대답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는데 한순간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내려!”
남자의 외침에 이어 튀어나오는 다른 목소리는 한 겨울바람처럼 매몰찼다.
“너도 내려 이 새끼야!”
차 문을 열고 내린 사십 대 중반 가량의 남자 체격은 컸다.
거기다 인상까지 험악했는데 입가에 물린 거품이 금방이라도 여자를 죽여버릴 것 같았다.
하얀 골프바지에 흰색의 발가락 양말을 신고 가죽 샌들을 신은 남자는 이미 흥분으로 인해 눈이 뒤집혔다.
“완전 양아치네.”
준모의 입가에 미소가 더 짙어진다.
사내의 복장에서 양아치 기질이 다분함을 간파한 것이다.
“야 이년아 조금 전에 뭐라고 했어. 그냥 콱!”
사내는 주먹을 쥐고 여자고 뭐고 한 대 갈길 기세였다.
“개나 소나 차를 끌고 나와 지랄들이야. 어제 뺏는데 아이 열받아.”
사내의 차는 유명 외제 차였다.
그에 비해 여자가 내린 차는 국산 아반떼이다.
벤츠 측면에 긁힘이 있는 걸 보아 살짝 부딪친 모양이었다.
“야 이것들아 싸움은 차 빼고 해!”
“병신들 지랄해요.”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인상을 쓰며 욕을 뱉었다.
여자의 나이는 스물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검은색 슬랙스 바지에 흰 블라우스를 걸쳤다.
여자는 거품을 물고 노려보는 사내를 표정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에 사내는 여자가 겁을 먹어 말을 못 하는 것으로 생각한 듯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왜 할 말이 없어? 운전할 때는 신났는데 얻어맞을 것 같으니까 겁이 나지? 진작 잘하지, 그랬어. 이 비싼걸 어쩔 거야.”
사내는 흠집이 생긴 차를 보며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야 어쩔 거냐고!?”
사내가 버럭 소릴 질렀다.
“꼬라지 하고는.”
한숨을 내쉰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꼭 별것도 없는 새끼들이 목소리는 우렁차요. 입 닫아 냄새나.”
여자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할 말을 했다.
하지만 할 말이라고 하기에 그녀의 입심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게 돈 많으면 네 머리에 잡초라도 심어 새끼야. 춥겠다.”
꾸울꺽!
여자의 발언에 모두가 남자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옆 머리로 억지로 가린 벗겨진 부분이 여자의 말을 듣고 보니 더욱 처량하게 보였다.
길이 막혀 답답해하던 운전자들도 킥킥대며 웃는다.
말싸움에서 완전히 압도당한 남자는 표정이 심하게 우그러졌다.
“이 년이 죽을라고!”
하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파리를 쫓는 듯 손을 휘이 저었다.
“차 수리 맡기고 병원 가서 네 머리도 수리 맡겨봐. 머리는 보험 안 되지 참.”
여자가 돌아서 자신의 차로 걸어가려는데 사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번쩍 들어 휘둘렀다.
확!
하지만 여자는 가볍게 피하며 돌아서더니 그녀의 하이힐이 사내의 정강이에 박혔다.
빡!
“아이고!”
하이힐의 뾰족한 부분이 정확히 정강이뼈를 찍은 것이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크게 벌리며 눈을 찡그렸다.
사내는 정강이를 감싼 채 펄쩍 뛰었다.
“사람한테 손 먼저 처 올리는 습관은 네 아빠한테 배운 거야?”
여자는 쓰러진 남자를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말에 사내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했다.
사내는 독이 바짝 오른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이번엔 주먹을 뻗었다.
부우웅!
여자는 또다시 한 발짝 물러서며 가볍게 피해냈다.
그리고 들고 있던 핸드백으로 남자의 턱을 가격했다.
뻑!
스포츠뉴스 마지막을 장식할만한 그림 같은 카운터였다.
이 싸움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두호와 준모는 동시에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