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0화 (10/204)

제 10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너가 그걸 어떻게?”

채호가 떨리는 한숨을 토해냈다.

한 사람이 있었다.

꼭 성공해서 찾고 싶었던 사람.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를 사람.

자신을 위해서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총탄 속으로 뛰어들던 그.

“믿기 싫으면 돌아가도 좋아. 대신 다시는 못 보겠지.”

채호는 수색하듯 두호의 얼굴을 보았다.

생긴 건 전혀 아니다.

신장, 체격 모든 것부터 분위기까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과거를 알고 있고, 말투가 자신이 아는 사람과 너무 똑같다.

“믿어줘. 그때처럼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하자.”

털썩!

채호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급기야 주저앉아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자기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잠시 떨던 채호의 손이 밑으로 축 늘어졌다.

무엇하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그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잘 지냈냐. 이렇게라도 보고 싶었다.”

“형님? 그런데?”

두호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예전 얼굴이 더 잘생기긴 했지?”

“형님!”

채호는 엎드린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의 채호를 감싸 안았다.

덩달아 이 모습을 지켜보던 준모의 눈 역시 붉어졌다.

현관문 번호를 누르는 채호의 손이 경쾌했다.

띠딕 띠딕 띠디딕!

덜컹!

채호와 함께 집으로 들어선 두호와 준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두호와 준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요. 형님?”

채호는 무슨 일 있냐는 듯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소나무 향이 코끝을 파고 든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대리석 바닥과 상반되게 집안의 향기는 숲 속에 들어온 듯 상쾌했다.

공간 배열에 따라 다양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화이트와 블랙 톤으로 꾸며진 집안은 안정과 세련됨을 보여주는 듯 했다.

집안 곳곳에 비치된 현대예술작품들은 마치 미술관에 온 듯 했다.

스포츠 회사의 오너답게 집 안 인테리어부터 굉장히 열정이 넘치고 도전적이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건 벽과 좌우 서랍 위에 가지런히 놓인 M사의 애니메이션 대표 히어로들의 피규어였다.

준모는 눈이 돌아간 듯 괴성을 지른다.

“아니... 이걸 어떻게 구하셨어요?”

두호는 피규어 몇 개를 만지며 미소를 짓는다.

트렌디한 채호답다.

“이런 취미도 있었네?”

피규어는 정말 실제 모델같이 디테일들이 살아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값이 상당해 보였다.

두호가 신기한 듯 살짝 건드려보았다.

“부럽나요?”

채호가 상의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 다가온다.

“부러워서 미치겠습니다. 우와...”

채호는 정신을 못 차리는 준모의 등을 살짝 밀어 거실의 소파로 안내했다.

두호는 채호의 어깨를 툭 치며 준모를 따라갔다.

채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주방으로 이동했다.

두호 역시 돈은 넘치도록 벌었다.

언젠가 은퇴한다면 시골로 내려가 평범한 삶을 살 생각에 돈을 모아뒀지만 써보지도 못하고 그 역시 죽어버렸다.

용병 시절 팀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이 직업은 돈 말고는 어떤 낭만도 없어. 많이 벌고 떠라. 이 바닥.’

그렇기에 모두 목숨 걸고 벌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렇게 살아남아 자신의 성공을 만끽하는 팀원이 나타났다.

채호가 부엌의 찬장에서 거꾸로 걸려 있는 와인 잔 세 개를 가져왔다.

탁자 위에 잔을 놓고 돌아서더니 이번에는 거실 진열장에 세워진 양주 한 병을 꺼낸다.

“마음에 안 들어요?”

두호가 잔을 살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채호가 다른 잔 하나를 들어 빛에 비춰보며 살폈다.

“그때처럼 반합에다가 먹을까요?”

딱!

채호가 마개를 딴다.

콸콸콸!

로얄살루트를 와인잔에 넘치도록 채웠다.

두호는 천천히 다가와 맞은 편에 앉았다.

“얼마나 하냐?”

“글쎄요. 38년산이니까 백, 백오십 하나요.”

“백...백오십이요?”

요즘 따라 충격받을 일이 많은 준모는 심장을 부여잡는다.

‘이거 한 병이면 소주가 몇 박스야?’

두호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집.”

집이라는 말에 채호가 고개를 쳐들었다.

두호가 왜 쳐다보냐는 듯 웃는다.

“왜?”

채호가 기억하는 도혁의 모습은 오로지 임무였다.

의뢰받은 임무를 반드시 성공하여 팀원들과 함께 몸 성히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던 사람이다.

그것 말고는 무언가에 관심을 두는 걸 보지 못했다.

지금 집 값을 물어보는 두호의 질문은 참으로 낯설었다.

두호의 몸이다.

양복을 입으면 신사가 되고 걸레를 입으면 거렁뱅이가 된다.

채호의 집을 보자 불현듯 두호의 부모님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가파른 계단, 녹이 슬어 곧 부서질 것 같은 낡은 대문, 삐그덕 거리는 마루 하며, 안방 천장과 구석은 곰팡이로 덮여 있다.

지금의 상황으로 집을 도와줘봤자 의미가 없다.

갓 교도소에서 나온 아이가 무슨 재주로 집을 도울만큼 큰 돈을 벌어다 준단 말인가.

“그 몸 정확히 몇 살입니까?”

“올해로 딱 스무 살이래.”

준모는 갑자기 호걸처럼 웃더니 잔을 들어 올렸다.

쨍!

“이렇게 모이니 예전 삼국지가 생각납니다. 저도 두호 형님을 모시기로 한 사람으로써...”

“준모야 쉿.”

채호는 준모의 소개를 바라는 듯 두호를 쳐다보았다.

“나랑 같이 지내는 친구야. 양준모라고.”

세 사람은 그렇게 건배를 하며 술을 비웠다.

준모는 비명을 지르며 목을 부여잡았다.

“아니 이게 뭡니까. 이걸 왜 먹는거에요!”

두호와 준모는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았다.

“준모씨도 드시다 보면 적응 될겁니다.”

“아. 이거 락스 아니죠?”

준모의 찡그러진 인상은 돌아올 줄을 몰랐고 결국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많이 먹지마라. 이거 훅가.”

비워진 준모와 채호의 잔을 다시 채워주는 두호였다.

“얘기 좀 해봐. 언제 그렇게 거물이 된거야.”

술잔은 계속해서 돌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세 사람의 공기는 훈훈했다.

듣는 사람은 대부분 두호였고 말은 채호 몫이었다.

채호 역시 외향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말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가족에게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가를 말하는 일은 언제나 끝을 모른다.

살아온 얘기, 살아갈 얘기 두서없이 떠들던 채호는 털썩하고 쓰러진 준모를 발견했다.

양주를 소주처럼 마시던 준모는 결국 쓰러져버렸다.

“형님 얘기 좀 해보시죠. 이게 무슨 일 입니까? 대체.”

두호는 반쯤 마신 술잔을 내려다보더니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진짜 끔찍했다.”

두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자신이 도망치다 폐공장에서 죽은 이야기, 그리고 죽고 일어나서 무를 만난 이야기.

무를 만나고 두호의 인생으로 살게 된 것과 자신이 채호를 찾아가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얘기가 끝났는데도 채호의 커진 눈은 원래로 돌아갈 줄 몰랐다.

“오늘은 간단하게 먹고 끝낼 자리가 아니네요.”

채호는 다시 두 잔 모두 가득 채우고 잔을 살짝 들어 올렸다.

두호 역시 자신의 잔을 들어 올려 가볍게 채호의 잔에 부딪혔다.

조금씩 빈 병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잠결에 누군가가 깨운다.

두호는 이마를 찡그리며 눈을 떴다.

거실이다.

불이 켜진 걸 보니 채호와 마시다 그대로 쓰러진 모양이다.

“나랑 얘기 좀 할까?”

귀에 익은 목소리다.

“어이구 화상아. 어이구 화상아!”

“어?”

두호는 놀랐다.

무다.

눈앞에 무가 있었다.

그녀가 어깨가 결리는 듯 자신의 어깨를 보았다.

흉측한 얼굴의 악귀가 무의 어깨를 물고 놔주질 않고 있었다.

“뭐야. 너 절로 가. 언니 일 해야해.”

악귀는 그 말을 듣고 실망한 듯 조용히 내려오더니 곧 사라졌다.

두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당황한 얼굴로 무를 보았다.

“여기는?”

“어쩐 일이냐고?”

무의 눈이 사납게 찢어진다.

물론 워낙 고운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라 무섭진 않았지만 기세 만큼은 상당했다.

“너 진짜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매듭을 지어야 일이 수월할 테니까요.”

망설임 없이 두호를 향해 걸어갔고 이내 가까워졌다.

무는 두호의 머리를 콩 소리나게 두드렸다.

“아니. 매듭을 왜 네가 지어? 아이고 머리야. 넌 진짜 안 되겠다.”

“두호잖아요. 그러니까 두호의 문제이니 내 일.”

두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목숨을 쥐고 있는 무이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자신의 일을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방해 요소는 없애야 했다.

“언제든 문제가 생길 일이어서 먼저 처리한 거였습니다. 새로 출발할 때는 과거가 깔끔할수록 좋잖습니까”

스윽!

무가 다시 머리를 때리려 하자 두호는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나 피했다.

“어쭈?”

무는 쫓아가듯 두호를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이게 문제가 생길지 아닐지를 지금 니가 판단하면 어떡해?”

생각해보면 두호의 몸으로 들어온 이후 딱히 싸움을 쉰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두호가 만든 악연을 방치했다가 나중 예상 못한 화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후일 한창 중요할 시기에 걸림돌이 되어 나타난다?

그때 수습하기엔 정말로 늦다.

차라리 서둘러 청소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특히 자신이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찾아온 그 사내들은 자신을 해코지 하러 왔다.

이러한 일들만 보더라도 분명히 자신의 선택은 옳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무의 계획에는 없을 사고를 쳤으니 자세를 낮춰야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저 머리카락이 곤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대드는 것은 절대 불가능이다.

“이 세상에는 질서라는 게 있는 거야. 그걸 어기고 사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무의 눈이 빛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절대자가 내뱉는 말이다.

“다시는 이런 일 저지르지 마. 나한테 미리 말을 하던가.”

채호가 차고 있는 방을 턱으로 가리켰다.

“차라리 동네방네 난 두호 아니다 라고 떠들고 다니던지.”

“지금?”

무가 찾아온 건 너무 많은 싸움을 하고 다닌 것에 대해 주의를 시키기 위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눈치가 그게 아니다.

“싸움 때문이 아니면?”

무는 어이없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제가 정체를 밝혀서 그런 거였어요?”

“당연하지! 여태 뭘 들은 거야!”

두호가 씨익 웃었다.

“난 또 싸움 때문에 그러신 줄 알고.”

그 말을 들은 무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크게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격투기 하라고 내려보낸 건데 싸움이 왜. 그런 놈들은 좀 패줘야지. 잘했어.”

샤샥!

무는 자세를 낮추더니 섀도복싱을 하기 시작했다.

몇 초간 열심히 쉐도잉을 하다 숨이 찬 듯 헉헉거리며 말했다.

“이거 엄청나게 힘든 거였구나. 흠흠.”

무는 엄숙한 표정으로 다가와 두호의 머리에 손을 살포시 올리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라 반가웠을 거야. 하지만 더는 안 돼. 그 친구한테 입단속 잘 시키고.”

두호의 몸을 빌려 환생한 사실을 감추라는 것이다.

문득 궁금했다.

두호는 입을 열어 물었다.

“왜 말을 하면 안 됩니까?”

무는 두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뜻으로 질문을 던진 건지 이해했다는 얼굴이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떻게 하면 두호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고심하는 모양이 분명했다.

“너 역시 나의 존재를 미리 알았다면 용병 일을 하지 않았겠지?”

무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된 듯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두호는 자신의 실수를 더욱 크게 체감했다.

그런 두호를 보며 무는 두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는 그러면 안 돼. 채호의 기억은 살려둘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나한테 미리 말하고 의논하라고. 난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니까. 지금까지 일들은 넘어갈게.”

말을 마친 듯 곧장 뒷걸음치며 걸어가기 시작한 무는 손을 흔들었다.

“술 적당히 마시고. 쟤 목 돌아가겠다.”

시선을 돌리니 준모의 귀가 왼쪽 어깨에 붙어있었다.

“또 올게. 또 이러면 죽어 아주.”

무는 떠났다.

두호는 잠시 앉아 있다 주위를 살폈다.

어지럽혀진 술자리다.

아무리 채호의 집이라고 하지만 대충은 치워야 할 것 같았다.

준모의 어깨를 툭툭 쳤다.

“준모야 일어나자.”

“일경 양준모. 그런 사실 없습니다.... 하음...”

잠꼬대를 하는 준모는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두호는 준모는 계속 자게 내버려 두었다.

술병과 잔을 깨끗이 설거지까지 하여 제 자리에 놓고 옷을 들고나왔다.

밤이 깊은 도로는 빈 택시들만 다녔다.

택시 한 대가 두호 앞에 선다.

택시에 올라탄 두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염리동이요.”

“예!”

기사는 미터기를 누르고 차를 출발시켰다.

부우웅!

두호는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제 채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두호라는 아이도 참 안됐습니다. 지금 그 몸이 두호라는 아이다. 이거죠?”

채호의 물음에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네요. 정말. 이 나이대에 이 정도로 몸을 만들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 알잖아요.”

비록 옷이 가려진 몸이지만 운동을 달고 사는 사람의 눈은 얼마든지 안을 들여다본다.

몸의 크기와 힘의 세기가 전부는 아니다.

탄력과 유연성 그리고 근질의 상태가 운동 선수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너를 찾아온 거야. 이 아이의 꿈을 이뤄주고 싶거든.”

채호는 두 손으로 두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종목은 복싱으로 하실 겁니까? 복싱 선수였다면서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제가 협회 측에 로비 좀 한다면 자격정지야 풀리겠지만, 그놈들이 너무 괘씸하기도 하단 말이죠?”

돌연 채호가 눈을 빛냈다.

“형님 MMA (Mixed Martial Arts.)는 어떠세요?”

두호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기는 이런 자격 면에서는 조금 자유로운데 말이죠? 형님 재능이 더욱 잘 먹히실 것 같기도 하구요.”

“MMA? 그게 뭔데?”

“잠깐만요.”

채호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빠르게 화면이 바뀌는 걸 보아 스포츠 채널을 찾는 모양이다.

“복싱이나 무에타이는 타격으로만 하잖아요. 유도나 레슬링은 그래플링으로만 하구요.”

탁!

채널이 멈췄다.

화면에 경기 영상이 나왔는데 과거 경기의 녹화중계였다.

“이겁니다. 타격과 그래플링을 모두 허용하는 것. 그 형님 XFC라고 아시죠?”

과거 자신도 신입이었고 XFC가 초창기였던 시절 몇 경기 본 것이 다였다.

물론 캡틴으로 진급 후 업무가 많아 챙겨 보지는 못했었다.

“동네 개 싸움 보는 것 같아 재미는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채호는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초창기에는 지금과는 달리 수준이 낮았지만, 지금은 아예 다르죠.”

두호의 눈에 들어온 XFC는 과거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졌다.

몇십만 명은 되어보이는 경기장.

그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

관중들은 모두 광기 어린 표정으로 케이지 안 두 사람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잠시 TV를 바라보던 두호가 침을 삼켰다.

올림픽 같은 단일 종목 승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스포츠 경기라면서 저 얇은 글러브는 무엇인가.

선수들의 자세 역시 과거와는 달리 굉장히 안정되고 세련되었다.

복싱의 자세와 비슷한 듯 싶지만 무게 중심의 변화가 쉼 없이 이어졌다.

킥과 펀치를 섞으며 공격을 주고받더니 한 선수가 레슬링처럼 하단태클로 상대편 선수의 다리를 잡아 넘어뜨렸다.

군더더기 없이 아주 능숙한 두 사람의 싸움.

상대를 깔고 앉은 한 선수가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내리꽂는다.

이내 한 선수의 길게 찢어진 눈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채호가 두호를 보며 말했다.

“이제는 제법 자세가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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