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7화 (7/204)

제 7화; 전쟁의 신은 죽었다.

“네. 감사합니다.”

두호 역시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건물 뒤쪽으로 돌아 자재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에는 겨울에 떼기 위한 장작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사내가 쌓여있는 작은 나무 묶음 중 한 덩이를 치우자 철문 하나가 나왔다.

문에는 잠금장치가 걸려있다.

사내는 빠르게 비밀번호로 잠금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마치 전시 상황의 방공호 같았다.

1층 정도 되는 길이의 계단을 내려가고 다시 문이 있다.

덜컹!

앞선 사내가 문을 열었고 두호는 따라 들어섰다.

제법 넓은 실내였다.

불까지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건장한 사내 셋이 여기저기 퍼져 앉아 있었다.

화투패를 띠는 사내, 기보를 보며 바둑을 두는 사내, 대자로 누워 부지런히 하품만 하는 사내뒤로 두호의 시선이 향했다.

맨 안쪽에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여자 한 명이 뜨개질하며 앉아 있었다.

두호를 안내한 사내는 여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놈이야?”

여자는 인사를 받지도 않고 뜨개질에 집중하며 묻는다.

사내는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네.”

두호는 뜨개질하는 여자를 잠시 바라보다 사내 옆에 있는 다른 의자에 앉았다.

여자의 이름은 조수미.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과거 한국 최대의 폭력조직 ‘현성회’의 안주인이었다.

어느 날 불쑥 뒷골목에서 자취를 감췄는데 지금 불법 재화 보관업을 하는 지하 은행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뒤가 구린 사람들의 비자금, 값비싼 골동품과 고가의 그림을 은닉해준다.

과거 도혁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그의 돈도 함께 보관을 해주고 있었다.

“이런 핏덩이가 여기 찾아온 것도 놀라운데, 예금 코드가 김도혁이다? 이걸 뭐라고 받아들여야 해?”

뜨개질을 멈추고 두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두호는 그런 수미의 날카로운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넘겼다.

“어이. 핏덩아. 김도혁이랑 무슨 관계야? 요새 그놈이 안 온 지도 한 3년 된 것 같은데?”

“김도혁은 죽었고, 내가 그 후계인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수미는 이마를 슬쩍 찡그리더니 갑자기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김도혁이가 죽어?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너는 모르지?”

“정말 죽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죽음을 확인을 해주자 수미가 정색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떻게 김도혁이 코드를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돈 쉽게 내주면 내가 나중에 김도혁이를 볼 낯이 없어. 얘들아.”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각자 볼일을 보고 있던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 몇 군데 부러뜨려.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수미의 명령을 들은 사내들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근처에 놓여진 연장들을 집어 들었다.

퍼억!

무표정하게 연장을 늘어뜨린채 천천히 다가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 자신을 데리고 왔던 좋은 인상의 사내 역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정말인데.”

두호는 아쉽다는 표정을 하며 사내들을 보았다.

저번 화용 건설 때의 놈들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경험이 많은 듯 곧바로 출구 쪽 방향과 수미를 향한 길을 막아섰다.

자세 또한 어디서 제대로 배운 놈들인 것으로 느껴졌다.

길거리 싸움 같지만, 베이스는 격투기인 듯 보이는 연장을 쥔 앞 손.

그때처럼 중구난방으로 달려든 놈들과는 달리 서로 간의 거리를 벌려 한 명씩 시간의 차이를 두어 달려들었다.

두호는 드라이버를 들고 자신을 찔러오던 사내를 옆으로 한 발짝 옮겨 피해냈다.

그리고는 달려든 사내의 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쳐 정신을 살짝 끊어놓았다.

‘이제 다음 들어오는 놈으로.’

두호는 시간차를 두어 들어온 사내의 주먹질을 허리를 바짝 숙여 피해낸 다음 한 손으론 허벅지를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 안았다.

화악!

두호는 한 손도 허리로 옮겨가 사내를 뽑아 올리듯 들어 바로 자신의 뒤쪽 바닥으로 찍어버렸다.

꽈당!

흡사 레슬링의 ‘안아 던지기’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내가 지른 주먹을 거리를 벌리며 가드를 했다.

잠시 멀어진 틈을 타 호흡을 가다듬고 이번엔 두호가 먼저 달려들었다.

푸욱!

상대의 앞 손을 왼손으로 누른 다음 오른손으로 강하게 얼굴을 때렸다.

쫙!

자세가 무너져 뒤로 넘어지는 원 찬스.

두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따라 들어가 쓰러지는 사내의 얼굴에 강하게 주먹을 한 방 꽂아 넣었다.

퍼억!

사내는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잠깐 사이에 싸움은 정리되었지만, 지켜보던 수미의 눈빛은 더욱 매서워졌다.

두호는 넘어져 있던 의자를 일으켜 세워 들어 수미의 앞으로 가져갔다.

탁!

적당한 거리에 의자를 놓고 앉는다.

“됐죠?”

안경을 천천히 벗어 책상에 내려놓은 수미는 입술 사이로 가늘게 숨을 뱉었다.

“이건 닮은 수준이 아니라, 빼다 박았네. 쌈박질하는 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두호는 억지로 참았다.

두호는 책상으로 바싹 기대앉으며 말했다.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가게로 돌아온 두호를 준모는 반갑게 맞이했다.

준모는 한입 가득 파전을 씹으며 물었다.

“형님. 어디 다녀오셨어요? 형님이 안 오셔서. 먼저 먹고 있었습니다. 드세요. 맛있습니다.”

처음 가게에 들어와 앉았던 자리에 차지한 두호는 준모를 보며 웃었다.

“많이 먹어.”

준모는 파전 하나를 잘라 두호에게 권했다.

“형님도 드시죠. 여기 맛있게 잘하는 것 같습니다.”

두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난 아까 집에서 저녁 많이 먹었다. 술은 안 먹었지?”

준모의 가득 부풀어 올라 있는 볼이 위아래로 과하게 흔들렸다.

“네. 그럼요. 운전해야죠. 전,”

두호는 다리를 꼬아 앉았다.

“먹으면서 들어. 이제 매일 아침 9시에 우리 집 앞으로 날 데리러 와.”

준모의 손과 입은 쉬지 않고 있었다.

귀는 활짝 열어 뒀으니 걱정 말라는 듯 싱긋 웃기까지 한다.

“그리고 운동할 만한 넓은 곳 좀 알아봐. 한 100평 정도 되는 곳으로.”

“100평이요? 체육관 하시게요?”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바로 알아봐 줘.”

준모는 눈을 좁혔다.

“돈은 있으세요?”

“걱정돼?”

두호는 문제없다는 듯 자신의 컵에 물을 채웠다.

“그러니까. 지금 돈을 다 가져가겠다?”

두호는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어 앉아서 수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물론 그놈 돈이고 후계인이니, 꺼내 가는 거야 자유지만. 혼자선 힘들 텐데?”

“한 명 더 있습니다. 차도 가져왔고.”

두호는 손가락으로 천장 쪽을 가리켰다.

수미는 부하들 중 한 명에게 지시했다.

“도혁이놈 이름으로 되어있는 돈 있지? 그거 되는대로 준비해둬.”

“네.”

두호에게 메쳐진 사내는 허리를 다친 듯 오른손으로 허리를 받치며 걸었다.

그걸 본 수미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도 이름 좀 날린 애들인데. 그렇게 쉽게 상대하면 쟤네가 뭐가 되나.”

“어쩐지. 쉽지 않았습니다.”

수미는 안경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눈을 얇게 떠 두호를 바라보았다.

“질문이 두 개가 있는데 그걸 답해줄 수 있나?”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돈으로 뭐 할 거냐?”

잠시 고민을 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수미를 보며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격투기 할 겁니다.”

“격투기? 그 경기장에서 아옹다옹하는 거?”

“네.”

잠시 생각을 깊게 하던 수미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두호를 쳐다보았다.

“네놈 실력이야 알겠다만. 이런 데서 그 재능 발휘하면 더 잘 벌 텐데?”

이런 데서란 말은 아마 음지의 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합법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만약에 너한테 투자한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한 번 더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두호였다.

“불법적인 돈은 안 됩니다.”

“홋홋홋!”

가게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웃은 수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질문?”

수미가 정색했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데 분을 칠한 듯 하얗다.

오싹할 만큼 냉담한 인상으로 바뀌는 수미를 보며 두호는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너 도혁이 놈이랑 무슨 관계야?”

도혁의 코드 번호 말고 다른 것도 보여달라는 뜻이었다.

두호는 오히려 물었다.

“굉장히 친했나 봅니다?”

“연이 깊지. 그놈 쌈박질하는 걸 자주 봤거든. 근데 너무 닮아있어. 닮아도 너무. 그놈 성격에 뭘 키울 놈은 아니고.”

수미는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하여간 할멈 눈치는.’

두호는 부드럽게 말했다

“차차, 서둘 것 없잖습니까?”

“하긴 모든 건 때라는 것이 있지. 서둘 것이 있고 늦출 것이 있어. 알겠네. 조금만 기다리면 돈이 올 거야.”

두호는 등을 폈다.

수미의 말뜻을 알아챘는지 씨익 미소 지었다.

두호는 흘긋 수미를 살폈다.

자신은 두호다.

사람들은 몸을 인정하지, 영혼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즉 두호의 신분으로 여러 일을 하려면 수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수미의 사업적 감각이나 위기관리 능력은 대단하다.

현성회가 전국 최대조직으로 성장하는 데는 수미의 노련한 안목과 수완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인맥을 중시한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웬만해서는 단절시키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관리하는 자금도 웬만한 기업들과 비교될만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전에 싸웠던 사내 한 명이 파전을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파전을 접시 위에 놓는 사내를 보며 준모의 눈이 커졌다.

“아저씨. 얼굴에 상처 났는데요?”

사내는 당황하며 상처를 만졌다.

“주방에서 긁힌 모양입니다.”

슬쩍 두호를 일별하고 돌아섰다.

부우욱!

준모는 젓가락으로 길게 찢어 입에 넣었다.

히죽!

입이 터지게 씹던 준모는 두호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는다.

그때 다른 사내 한 명이 다가왔다.

“준비되었습니다. 보시죠.”

“그래요.”

두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모가 두리번거리는 데 따라가는 것이냐고 묻는다.

“같이 가자.”

준모는 재빨리 두호를 따라 일어섰다.

사내를 따라 주방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캐리어 가방 몇 개가 서 있었다.

종이 한 장을 두호에게 건네주며 가방을 손으로 툭 쳤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으신 돈으로 준비해뒀습니다. 잔액은 나중에 따로 연락해 주시면 저희가 기한 맞춰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사내는 가방 한 개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가방 안에는 5만원 권 다발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일반인들이 보았다면 정말 놀라 자빠질만한 박력이 있었다.

“우와!”

준모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꿈인가 싶은 듯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진짜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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