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해는 점점 선홍빛으로 물들어가고 도로 위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뒷좌석에 앉은 두호는 오랜만에 사색에 잠겼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두호에 대한 온갖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어릴 적 기억부터 두호만이 알고 있는 생각들이나 감정 또한 자신은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억 속 부모님의 모습은 재판장에서 본 아버지의 허무한 표정과 어머니가 자신을 보며 울부짖는 것.
자신이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 기억에 자신 또한 빠져들고 있었다.
그분들은 오랜만에 본 자신에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혁은 부모와의 추억이 없었다.
반가워할 것이다.
거기에 맞춰 자신도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어떤 식으로 대처할까 고민하던 중 차는 두호가 살았던 동네에 들어섰다.
“형님. 형님이 알려주신 곳으로 도착한 것 같습니다. 맞으십니까?”
“어. 그래. 이번 골목에서 우회전해라.”
안내해준 대로 우회전을 한 차는 작은 언덕 계단 앞에서 멈춰 섰고, 차 문을 열고 나가려던 두호는 잠시 멈췄다.
“너는 어떡할래?”
“기다리겠습니다.”
두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편히 가족들 만나십시오.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으면 오늘은 돌아가고 내일 아침에 올까요?”
두호는 잠시 망설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천천히 기다리다 돌아가겠습니다.”
준모는 자신이라도 걸리적거리지 않아야겠다고 눈치를 챈 것이다.
“그럴래.”
“좋은 시간 되십시오.”
준모는 가는 미소를 짓더니 뭔가 생각 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조수석 서랍을 열고 볼펜과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볼펜으로 숫자 몇 개를 갈기더니 두호에게 건넸다.
“제 전화번호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고맙다.
차 문을 열고 나선 두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등 뒤로 준모의 차가 멀어지고 있었고 앞으로 집집마다 불빛들이 반짝였다.
‘처음 파견 임무 마치고 집 돌아가던 그 느낌이네.’
초행길이지만 익숙함을 느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적 벽색 주택이 나오면 그 앞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고, 마주 보이는 낡은 빌라가 우리 집이다’
계단을 오르고 골목으로 들어간 뒤 두호의 집 입구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춰 섰다.
“후!”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집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문 뒤에서 작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온 것 같은데.”
곧 이어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은 벌컥 열렸다.
“두호니?”
두호 아버지다.
초라한 늙은이가 우두커니 서서 두호를 바라보더니 힘껏 끌어안았다.
“와...왔구나! 내 아들.”
목소리가 떨린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이다.
“고생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문 뒤에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들…!”
두호는 3년하고도 3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오랜만에 모든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두호의 아버지 백성일.
두호의 어머니 조미자.
관악구 근처 시장에서 조그마한 건어물 가게를 하는 평범한 부부이다.
오랫동안 시장판을 굴렀지만 독하지 못한 천성은 두 사람을 늘 힘들게 했다.
나쁘게 말하면 무능했고 좋게 말하면 한 없이 선한 사람들.
타고난 성품은 두 사람을 평생 고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번처럼 아들을 멀리 떠나보냈었다.
하지만 그 괴로운 시간이 지난 후 어렵게 모인 세 가족의 표정은 밝았다.
식탁에는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많은 음식이 올라와 있었다.
원래의 두호가 좋아했던 족발과 어머니가 끓인 김치찌개, 계란말이에 윤기나는 잡채까지.
풍족한 식사와 오랜만에 나눈 온기 넘치는 대화는 자신이 생각했던 만큼 어색하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어느새 두호란 사람에게 완전히 동화된 자신을 보며 새삼 무의 능력이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멀어진 시간만큼 쌓인 이야기를 나누려 하니 이야기가 끊길 순간이 없었다.
아버지는 한창 대화의 열을 올리는 어머니를 말리며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 그만하지. 두호야 방 치워놨으니까. 가서 오늘은 푹 쉬어라.”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인 두호에게 얼른 들어가 보라며 아버지는 손짓했다.
“앞으로 얘기할 시간은 많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자.”
“쉬세요.”
식탁에서 일어난 두호는 기억 속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서던 두호의 눈이 커졌다.
기억 속 침대는 매우 낡아 있다.
복싱 훈련이 너무 힘들어 가끔은 씻지도 못하고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질 때가 많다.
두호에게 방은 잠깐 피로를 풀기 위해 눈만 붙이는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들어온 이곳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처음 보는 슈퍼 싱글사이즈의 침대가 들어와 있었다.
옷장도 바뀌었고 녹이 슬었던 철제 책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는 원목 냄새가 풍기는 황토색 책상이 놓여 있었다.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라는 부모님의 배려에 고마우면서도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스윽!
침대와 옷장, 책상을 쓰다듬으며 두호는 의자에 앉았다.
두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벽을 바라보았다.
차분히 과거와 미래의 삶을 정리할 시간이다.
‘선한 영향력.’
무가 강조하던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
이 사회를 빛내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아름다운 인간이 되라는 말임에는 분명하지만, 방법은 모른다.
툭!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컴퓨터까지 갖춰놓기는 무리였는 듯 당시 것 그대로였다.
윈도우가 열리는 과정에서 한참을 멈춰있었다.
‘일단 컴퓨터부터 들여야겠군.’
마우스를 잡은 두호는 문득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채호의 삶이 궁금해졌다.
자신의 소원으로 무는 채호의 목숨을 살려주었을 것이다.
혹시나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이면 어찌해야 하나란 걱정이 들었다.
자신들 같이 험한 임무를 많이 수행한 용병들이나 이라크 같은 곳으로 오랫동안 파견된 군인들은 대체로 말로가 비슷하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하여 보통은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일상생활의 적응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잘 살려나….’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하지만 그중 유독 아픈 손가락이 채호였다.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안 해본 고생이 없다고 했다.
지금 몸으로는 근황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SNS라도 뒤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채호의 흔적을 찾기 위해 구글에 이채호를 검색했다.
한참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한 번에 채호의 사진들과 정보가 나왔다.
모니터 화면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채호의 사진들과 관련된 기사들이 빼곡했다.
- 이채호 대표. 필린 스포츠에이전시 설립-
- 에이전시 필린. 유명 스포츠 브랜드‘A’와 거대 MOU 체결 -
- 자기계발서 부문 베스트셀러 -
- 필린의 고속 성장 비결은 무엇인가? -
- 아시아 NO.1 에이전시 필린. 그들의 행보에 모두가 주목한다. -
두호의 눈이 커졌다.
사진을 보면 짧은 돌격 머리가 아닌 멋지게 넘긴 머리 정도만 달라졌을 뿐, 자신이 목숨을 바쳐 살려냈던 채호가 분명하다.
인터넷을 가득 채운 이채호에 관한 기사는 차라리 유명 연예인이다.
심지어 포털사이트 인물 등록이 기업인으로 되어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꿀꺽!
두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말 잘 살고 있었구나.’
두호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채호의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읽을수록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엄청난 인물이 되어있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아시아의 거물.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자랑스러웠고 아름다웠다.
극한의 비극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명이 이렇게 잘 살아 준다니 근심의 체증이 내려간다.
문득 좋은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시작’의 방법.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우상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힘든 출발은 필수였다.
단순히 체육관을 다니며 선수를 준비한다.
이것은 너무나 평범하다.
‘운동.’
운동은 자신 있다.
자신에게는 제갈량처럼 자신을 도와줄 참모가 필요했다.
만약 채호가 도움을 준다면 더욱 완벽한 계획을 만들 수 있었다.
채호를 찾아가 자신임을 설명하면 도움이 가능할까.
탁!
볼펜꽂이에서 볼펜을 꺼냈다.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지만 일단 운동을 시작한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팟!
몇 글자 적더니 다급하게 방을 나갔다.
TV 옆에 놓여 있던 집 전화로 준모에게 받은 번호를 눌렀다.
뚜두뚜두!
몇 번의 신호가 가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는데 준모였다.
- 여보세요?
“어디쯤이야?”
-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일이 하나 생각나서 그러는데, 갔지?”
-멀지는 않습니다. 차 돌릴까요?”
“그래.”
전화 끊고 일어설 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버지는 다시 웃는다.
오랜만에 보는 자식이니 보기만 해도 좋은 모양이다.
“어디 나가려고?”
“네. 너무 늦지 않게 다녀올게요.”
다가온 아버지는 두호의 양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오고, 항상 겸손하게 다녀야 한다. 알았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라는 걸 알기에 걱정을 하는 것이다.
말로는 누구든 한때 실수 할 수 있다는 너그러움을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과자는 무서운 낙인이 되어 앞길을 막는 경우가 허다하다.
“네!”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잠시 후 준모의 차가 올라왔다.
“돌려!”
두호는 차를 보며 오른손을 빙빙 돌렸다.
“출발하자.”
“어디로 모실까요?”
“마트를 갈 건데, 은행을 먼저 가자.”
“네!”
차는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국도는 차량 통행이 뜸해졌다.
커브 길에서 자동차 라이트가 나타나며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달려갔다.
“형님 마트랑 은행 간다면서요?”
빠져나온 동네에서 마트와 은행 ATM기가 있었지만, 두호의 멈추라는 말이 없어 그냥 달렸다.
두호의 안내대로 차를 몰자 어느새 한적한 시외였다.
“형님?”
준모는 룸미러로 두호를 보았다.
“은행 가는 길 맞아.”
걱정말라는 투다.
“은행이요? 이런 곳에 은행이 있어요?”
두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준모는 이해를 못 했다.
은행은 주로 도시의 건물 일 층에 있지 이런 시골 논밭 한가운데 있지 않다.
차는 서울을 빠져나가 경기도 과천 인근 백평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가팔라 수도권에서 북한산 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붐빈다.
평일도 적지 않은 등산객들이 찾지만 늦은 시간이다 보니 백평산 가는 길은 조용했다.
입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음식점들도 거의 문을 닫았고 백평산 등산로를 안내하는 지도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준모의 차가 주차장에 멈췄다.
“산인데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역시나 은행은 없다.
물론 ATM기도 없다.
“여기야.”
급기야 준모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 어디에 은행이 있느냐는 질문인데 두호는 대답없이 차 문을 열었다.
“형님, 저도 갑니까?”
“같이 가자.”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준모는 흘긋 두호 눈치를 살핀다.
“형님 진짜 여기에 은행 있어요?”
두호는 조용히 웃었다.
옐로우 맘바는 공식적으로 PMC(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 군사 기업)이긴 하지만 일 년에 몇 번씩 불법적인 일에 손대기도 한다.
회사의 기록으로도 남길 수 없는 PMC 대표와 의뢰인만이 아는 개인적인 비즈니스.
두호와 같은 캡틴 급의 인물들은 대표의 개인적인 명령을 받아 의뢰를 해결해주고 보너스의 개념으로 큰돈을 받는다.
돈 자체가 불법적인데다 규모가 크다 보니 은행 예치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지금 가는 곳이다.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은행이 있다.
지하 은행.
현금을 포함한 여러 재화가 비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음성 시장이다.
탈법과 불법으로 생산된 돈이 모이기 때문에 아무나 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철저한 신용과 얼굴 거래가 전부다.
“내가 일반적인 은행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이런 곳을 이용하지. 넌 길이나 제대로 외워둬.”
“네.”
다른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한곳이 아직 열려 있었다.
‘백평 파전.’
두호는 망설임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두호와 준모는 주방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먹을래? 저녁 안 먹었지?.”
“네. 형님은 뭘 드실래요?”
“여기. 주문!”
조용하던 주방에 사람이 나타났다.
마흔 가량의 살집 좋은 중년의 사내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선하게 웃었다.
“아이고. 늦은 시간에 오셨네요. 뭐 드릴까요?”
“태평 막걸리 제조 일자 4일 안 넘은 걸로 이모랑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알 수 없는 주문을 하는 두호를 준모는 이상하게 쳐다봤다.
다른 건 몰라도 태평 막걸리는 장수 막걸리에 비해 뒷맛이 텁텁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막걸리는 장수가 으뜸이다.
형님 이왕이면 장수로 시키죠 하려다 입을 눌러 닫았다.
“아 참, YMC 2012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내가 멈칫했다.
얼굴의 웃음기가 사라졌고 잠시 두호를 살피는 듯하더니 묵례를 하였다.
“네. 알겠습니다.”
사내는 그대로 돌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와 달리 조금은 찬바람을 풍기며 들어가자 준모의 눈이 커졌다.
“주문을 받다 그냥 가버리네요?”
“글쎄다.”
두호는 빙긋 웃었다.
궁금증을 풀지 못하면 답답하다.
준모는 뭔가 가게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걸 간파하고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준모를 두호는 웃으며 바라보았다.
준모가 냉수를 마실 때 두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이동하였다.
화장실을 가기 위하여 가게 밖으로 나와야 한다.
바깥으로 나온 두호는 조금 전 자신의 주문을 받았던 중년의 사내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중년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정중하게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