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일 층 로비는 다른 건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두호는 오른쪽 벽면에 설치된 우편함을 보았다.
건물에 입주한 회사 간판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우편함이 보인다.
‘화용건설’
3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나 두호는 계단을 이용했다.
좁은 공간은 위험하다.
3층에 도착하자 화용 건설이라고 쓰인 나무 간판을 보며 두호는 실소했다.
‘촌스럽긴.’
콱!
손을 뻗어 손잡이를 돌리고 당겼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안에서 걸어 잠근 듯 보였다.
제대로 된 사업체가 아니란 것이 이런 데서 티가 난다.
쾅쾅!
점잖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쇼?”
굉장히 불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게 할 그럴싸한 핑계가?
“대출 상담하러 왔는데요?”
“아. 예. 문 열어드려라.”
우당탕 소리가 들리며 안에서 네가 열어, 난 지금 라면 먹고 있잖아 하며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 안 되어 문이 살짝 열리더니 험상궂게 생긴 남자 한 명이 슬쩍 얼굴을 내민다.
“아 에. 어서 오쇼. 저희가 요새 공식적으론 대부업을 하지 않아서.”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안심한 듯 그제야 문을 활짝 열었다.
“연락은 하고 오신 겁니까? 사장님이 잠시 외출 중이라.”
두호는 천천히 사무실 내부를 확인하며 들어왔다.
용병 생활 중 가장 먼저 생긴 버릇은 어딜 들어가던지 퇴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도망칠 일은 없으니 이놈들을 못 도망가게 하려는 의도였다.
‘출구가 여기밖에 없네. 귀찮은 일은 덜었다.’
두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뇨. 연락은 못 드렸고, 급전이 필요해서 찾아오게 된 겁니다.”
복도가 쭈욱 안쪽으로 이어졌고 좌우로 사무실 겸 숙소로 쓰는 듯 세 곳의 공간이 있었다.
두호는 조금씩 열린 문틈으로 방들을 훔쳐봤다.
침대와 널려있는 빨래들이 화용건설 직원들이 지내는 숙소인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준 사내가 다가오더니 두호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근데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대출을?”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아하니 눈치가 없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아. 가족들은 이미 한도가 꽉 차서, 저라도 하려고.”
일부로 기죽은 듯한 말투로 작게 대답한 두호를 보며 사내는 히죽 웃었다.
“아, 그러면 또 우리를 찾아오는 게 맞죠.”
본인은 영업용 미소라고 생각했겠지만 불편할 만큼 불쾌한 웃음이었다.
사내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또 인생 조지는 놈 하나 찾아왔네,‘
그리 길지 않은 복도 끝 방으로 들어가니 평범한 사무실이다.
큰 원목 책상과 검은색 가죽 소파.
사장 정문우라고 써진 유행 지난 자개 명패가 책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비키니 차림의 외국 여자들 사진이 있는 달력이 걸려 있고, 한쪽 구석에 설치된 홀 퍼팅 트랙과 골프채, 그 위로 걸린 도깨비 그림은 사무실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었다.
“사장님 곧 오실 겁니다. 여기서 잠시만 앉아 계세요.”
사내는 곧장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두호는 손바닥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문우. 사무실에서 구린내가 폴폴 나네.”
사무실 한쪽 벽으로 작은 책장이 있었는데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다.
스윽!
한 권을 뽑아 제목을 보던 두호가 활짝 웃는다.
‘무소유.’
책을 제자리에 꽂아 놓고 다른 걸 뽑아 들었다.
‘청춘. 아파하지 말라.’
탁!
다시 꽂아 넣은 두호는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이왕 청소하러 온 거.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단순히 힘에 의한 제압은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용병때처럼 모두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꽤 많은 숫자의 직원들을 거느리는데 용역 일과 소규모 대부업으로는 인건비도 충당이 안 될 것이다.
분명히 다른 범죄를 겸업할 테니 그것을 찾아야 했다.
그래야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있었다.
두호는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져도 의심 가는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멈칫!
몸을 돌리던 두호가 섰다.
시선은 벽에 걸린 도깨비 그림에 고정됐다.
이상하게 처음부터 도깨비 그림에 눈이 갔다.
다가간 두호는 조심스럽게 그림을 위로 들췄는데 뒤에 큰 서랍이 하나 나타났다.
수상함을 느낀 두호는 서랍을 당겨 열었다.
서랍에는 높이 15센티 전후는 되어 보일 것 같은 고무화분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씨앗을 심어 놓고 싹이 트는 온도를 맞춰주기 위해 넣어놓은 듯 보인다.
다시 넣어 놓으려다 잠시 멈칫했다.
씨앗을 심었고 싹을 틔울 목적이라면 온도도 중요하지만, 공기가 통해야 한다.
벽 속 서랍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다.
더군다나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화분은 굉장히 수상했다.
두호는 화분을 거꾸로 하여 바닥에 엎었다.
툭!
흙과 함께 투명한 가루가 든 작은 비닐 뭉치 하나가 떨어졌다.
‘빙고.’
설탕을 여기다가 둘 이유도 없으니 분명히 마약일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두호는 옅은 웃음을 띠었다.
‘오케이. 이거면 충분하지.’
준모의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곤, 다시 제자리에 넣어 뒀다.
여유롭게 사장을 기다리던 중 문밖으로 번잡한 소리가 들렸다.
“오셨습니까?”
“야 이 새끼들아. 입구 좀 치워놓으라 그랬지. 이게 돼지우리지. 사람 사는데 맞냐?”
“죄송합니다. 형님.”
“형님?”
-짜악
정장 차림으로 들어서던 사장 정문우가 직원의 뺨을 세게 때렸다.
“똑바로 해 새끼야.”
별 것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호칭에 민감하다.
정문우 자신은 뒷골목 건달이 아니라 어엿한 사장으로 불리길 원한다.
괜히 앞서나가 인사를 하다 한 대 맞은 사내는 뺨을 어루만지며 더듬거렸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런데 안에 손님이 와 있습니다.”
“누군데? 오늘 예약된 건 없는데?”
“아. 예약된 분은 아니고. 로드로 오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래? 알겠어. 여기 치워놔라.”
벌컹!
문을 열고 들어온 정문우는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두호는 서재에서 꺼낸 맥신 11월 호를 읽고 있었다.
정문우는 옷걸이 쪽으로 걸어가 상의를 벗어 걸고 돌아섰다.
“아이 반갑습니다. 제가 잠시 일이 있어서. 오래 기다리셨나요?”
맞은편 소파에 기대듯 주저앉는다.
두호는 고개를 들었다.
움찔!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던 정문우 사장의 얼굴은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고 누군지 알아차린 표정이다.
“너…. 너는?”
“반가워. 직접 올 줄 알았는데, 아니라 실망했잖아.”
두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쳐 입구의 철문을 흔들어보았다.
그러더니 신발장 위쪽에 걸려 있던 자전거 자물쇠를 꺼내 출입구인 철문을 걸어 잠갔다.
덜컹!
철렁!
“야 이 새끼들아, 싹 다 튀어나와!”
정문우의 고함소리를 듣고 부하들이 문을 열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복도를 가득 메운 부하들을 비집고 정문우는 앞으로 다가섰다.
“네가 여기 어떻게 있냐? 우리 애들은?”
“내가 치웠어. 너무 고마워 하진말고.”
두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애들 어디 있냐고, 이 새끼야!”
정문우는 화가 잔뜩 난듯 악을 썼다.
덩달아 둘러싼 사내들까지 기세가 흉흉해졌다.
하지만 두호는 그 모습을 보고도 오히려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누가 보면 내가 나쁜 사람인 줄 알겠어. 그만해.”
정문우는 좌우로 서 있는 부하들에게 악을 썼다.
“저 새끼 숨만 붙여서 내 앞으로 데려다 놔.”
화를 삭이려는 듯 뒤를 돌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우르르!
사내들이 각자 무기 하나씩을 집어들고는 몰려온다.
“내가 갈께 걱정마.”
휙!
두호는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 상의를 벗어서 한쪽에 던졌다.
“얼마 안 걸려.”
두호 역시 사내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준모는 핸들에 턱을 괸채 건물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형님은 언제 오시는 거지? 시간이 좀 걸리시네.”
어느새 형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버린 준모는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사실은 떠나려고 했다.
누가 이기든 간에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 자릴 도망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두호가 보여준 엄청난 실력과 특히 자신에게 해주고 간 말이 가슴에 걸렸다.
‘딴 일 찾아봐. 내가 보기엔 넌 이 일이 안 어울린다.’
이 바닥에 수많은 사내들을 겪었다.
하지만 그들과 두호는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자신이 겪고 모셨던 어떤 사내보다도 여유롭고, 안정됐다.
누아르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보스의 분위기.
이 바닥 일이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위험한 일들이긴 하지만 수입이 괜찮다.
먹고 사는 데 큰 불만은 그에겐 없었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는 고민 역시 끊이지 않았다.
물론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두호.
그의 등장은 확실히 좋은 계기였다.
“으음!”
준모는 닫힌 건물의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 정문우 사장이면 자신은 오늘 죽을 것이다.
하지만 두호가 문을 열고 나온다면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뀔 것 같았다.
‘씨발.’
각오는 했지만,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정문우 사장한테는 안되는 건가. 하긴 저 안에 애들이 몇 명인데...’
불안한 생각은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불길해진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점점 판단력이 흐려진다.
‘보스는 개뿔. 그냥 싸가지 없는 어린놈이었어.’
일부러 두호를 깎아내려 본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지 모른다.
해는 조금씩 저물어간다.
‘아무래도!’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더욱 많아진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뺨을 치며 바로잡는다.
‘아니야. 난 두호 형님을 믿어야 해. 돌이킬 수가 없어.’
바로 그때였다. 한 사내가 닫힌 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나온다.
두호였다.
처음 건물을 들어갈 때 와는 행색이 매우 달랐지만, 두호임은 틀림없다.
입고 들어갔던 외투는 어느새 벗어서 어깨춤에 걸치고 있었고 머리도 땀으로 인해 많이 헝클어져 있었다.
벌컥!
재빨리 뒷문을 열었다.
들어갈 때 와는 사뭇 달라진 행색이었지만 여유로운 모습은 그대로였다.
“간 줄 알았는데?”
“형님을 모셔야 하니까요.”
걸어 나왔다는 건 어떤 이유를 들어도 이겼다는 증거다.
더 이상 충성에 대한 갈등은 없다.
무조건 두호를 향해 일관되고 반듯한 충성만이 전부다.
후회는 말끔히 사라졌고 마음속에서는 두호에 대한 엄청난 존경심이 스멀스멀 끓어 올랐다.
탁!
두호가 뒷좌석에 오르자 문을 닫았다.
준모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두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일인 듯 물었다.
“너. 나 따라다닐래?”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두호는 피식 웃었다.
“그래. 저런 데서 일하지 말고. 나 따라와. 내가 밥은 먹여줄게.”
“네 감사합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잠시 말없이 가만히 있던 두호는 창밖을 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집으로 가자.”
차가 출발했다.
잠시 후 건물 앞에는 경찰차들이 거칠게 밀어닥쳤고, 수많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