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 전쟁의 신.
“자살 시도 했다며? 차라리 그때 죽는 게 나았을 텐데. 부모한테는 다음 생에 효도해야겠다.”
여섯 명의 사내들은 두호를 빙 둘러서기 시작했다.
두호의 시선이 우연히 사내들 너머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남성 한 명이 교도관에게 돈을 쥐여주고 있었는데 앞서갔던 박 교위라고 불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돈을 받으면서 고개를 돌린다는 것이 때마침 쳐다보던 두호와 마주친 것이다.
교도관은 화들짝 놀라며 후다닥 도망가버렸다.
보나 마나 패거리들에게 자신의 퇴원 날짜를 귀띔해 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애 목숨이나 팔아넘기고, 아까 그 교도관이랑은 영 딴판이네.’
두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애들아.”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은 눈빛을 보내는 사내들의 뒤로 돈을 쥐여준 사내가 걸어왔다.
‘어? 저놈은.’
가까이 다가오는 사내를 바라보는 두호의 눈이 커졌다.
직접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가게 앞에서 부모님을 폭행했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여기는 보는 시선이 많다. 조용한 데로 옮기자.”
“예!”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두호와 제일 가깝게 서 있던 남자가 손을 까딱거렸다.
“따라와 새끼야. 넌 뒤졌어.”
두호는 오히려 이놈들이 찾아와준 게 반가웠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치우려고 했는데, 이렇게 찾아와주니 고맙네,’
두호는 순순히 그 사내들을 따라 병원 근처 지하도로 이동했다.
지하도로 이동하자마자 모두 일곱 명의 사내는 품에서 칼을 꺼내 두호에게 겨눴다.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사내는 목소리를 깔고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너 때문에 우리 동생이 아직도 휠체어를 타요. 왜 말이 없어? 이제 뒤질 생각 하니까 오금이 저리지?”
두호는 주위를 가볍게 둘러봤다.
‘CCTV도 없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네. 지하도라 시끄러워도 상관없을 것 같고.’
생각이 끝난 듯. 옅은 미소를 띠며 맨 앞에 있는 우두머리 사내를 지긋이 쳐다보며 웃었다.
“저 새끼가 웃어? 저 새끼 아킬레스 하나 잘라.”
그의 지시에 바로 옆에 있던 민머리의 사내가 앞장 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를 뒤따라 걸어가던 다른 부하들이 두호의 조용한 목소리에 모두 멈춰섰다.
“너 칼 안 써봤지?”
지적받은 민머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칼 그렇게 잡고 찌르면 얼마 안 들어가. 하긴 죽이려고 써본 적이 없으니까. 모르겠구나?”
모두의 시선이 회칼을 쥔 민머리 사내의 손에 집중되었다.
“뭐 이 새끼야! 너도 똑같이 잡았구만.”
우두머리 사내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두호에게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꼈다.
민머리의 사내가 제 발 저린 듯 소리쳤다.
“어이가 없네 이 새끼가? 자살 도구로 나를 선택했구나? 배때지로 칼맛을 한번 봐야 정신을….”
두호는 민머리의 말을 무시하며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말고 뒤에 더 있지? 이왕지사 이렇게 됐으니 그놈들한테 안내해 줄 사람? 그 사람은 뼈 붙여 놓는다. 진짜야. 나 뱉은 말은 지켜.”
“아이씨!”
민머리가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빠르게 칼을 고쳐 잡고 달려들었다.
슉!
두호는 부드럽게 옆구리와 팔 사이로 칼을 뻗은 손을 감쌌고, 반대손으로는 민머리의 목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억!”
이윽고 재빨리 옆구리의 낀 팔을 강하게 내리쳐 팔꿈치를 부러뜨려 버렸다.
팔이 부러진 민머리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악! 내 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사내들은 모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상대 봐가면서 강해지는 애들을 뭐라 하는 줄 알아?”
사내들 쪽으로 한 걸음씩 움직이니 사내들도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쳤다.
“양아치.”
그 말을 듣고 있던 우두머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뭐해? 붙어서 쳐! 빨리!”
사내들은 고함을 지르며 모두 달려들었다.
두호는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매일같이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쏟아지는 곳에서 살아왔다.
총에 맞더라도 급소에 맞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일을 했다.
그런 그에게 이런 양아치 몇 명의 칼질은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제일 먼저 찔러오는 사내의 칼을 왼쪽으로 몸을 돌려 가볍게 어깨너머로 흘렸다.
휘이이!
곧바로 찌른 사내를 지나쳐 뒤따라오는 사내의 목과 팔을 감싸 안아 그대로 땅에 메다꽂았다.
“억.”
지나쳤던 사내가 방향을 돌려 다시 자신에게 달려들자 가볍게 턱에 주먹 한 방을 찔러넣었다.
상대는 소리를 낼 틈도 없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쿵!
사내들은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감지했고, 두호는 자신의 몸에 감탄하고 있었다.
‘몸이 아주 탄력 있고 부드러워. 이대로만 컸다면. 아깝다. 정말.’
타악!
다시 한 사내를 찍어 넘긴다.
‘아주 좋네, 괜히 무가 점 찍어놓은 사람이 아니네.’
다만 아직 손목은 낫지 않았는지 조금 욱신거렸다.
순식간에 세 명을 해치운 두호는 그대로 사내들을 다시 노려보았다.
“자. 누가 제일 네비게이션 노릇을 잘하게 생겼나 한번 볼까?”
사내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양준모는 건달 밥을 먹은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여러 사정이 있어 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보수도 괜찮았고 나름 만족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이지만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쓰러져 있는 식구들의 모습과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듯한 저 녀석의 표정은 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눈빛을 보면 정말 죽이려면 죽일 것 같은 놈이었다.
정확하게 급소만 골라 치거나 팔다리를 망설임 없이 꺾는 모습을 보면 심성까지 잔혹해 보인다.
자신들의 대장인 형님은 이미 땅바닥에 쓰러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분명히 얘기 들을 때는 좀 잘 치는 수준이라 했는데?’
준모는 침을 삼켰다.
교도소를 들락이며 별을 쌓아 위상을 올려야 하는데, 이런 새파란 놈한테 두들겨 맞았다고 소문이 나는 순간 이 바닥 생활도 끝이다.
슬슬 자신의 밑으로 후배들이 생기고 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맞아 죽을 수는 없다.
스으으!
조용히 뒤를 돌아 도망가려고 하는 준모를 두호가 실실 웃으면서 불렀다.
“도망가도 찾아서 죽일 거야. 대한민국 땅 어디든 뒤져서 찾은 다음에 죽일 거야. 당신 사진 들고 길거리에서 너 봤다고 하는 사람 전부다. 다 죽일 거야.”
“허걱!”
준모는 얼어붙었다.
“날 데려가, 나와 같이 가자고.”
두호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준모에게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일대일.
사나이로써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
자신 또한 험한 밥 좀 먹어본 남자.
준모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고 큰 결심을 한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빙글!
준모는 멋지게 돌아서서 두호에게 90도로 인사했다.
“양준모입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모시겠습니다. 형님.”
가다 말면 아니 간만 못하다고 했다.
굽힐 땐 인정사정 없을수록 효과는 크다.
따악!
두호는 준모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치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차 어디 있냐?”
인원이 많아 자신의 차도 동원되어 왔었다.
“넵, 이쪽으로”
준모는 두호를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타시죠!”
준모는 재빠르게 뒷문을 열어 주었다.
탁!
두호가 올라타고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부우웅!
차가 떠났지만 쓰러진 사내들은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양준모는 룸미러를 보며 흘긋거렸다.
차 뒷자리에 앉은 두호는 마치 회장님같이 다리를 꼬고는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두호는 방금까지 모셨던 형님이 남긴 음료를 한입에 털어 넣고는 무사태평하게 트림까지 하고 있었다.
준모는 그 모습이 아주 기가 막혔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모르는 건가?’
“준모야”
“네 형님!”
“너희 회사에 대해 싹 다 읊어봐.”
준모는 어금니를 물었다.
‘어린놈의 새끼 싸가지 하고는.’
그러나 표정은 속마음과 달리 싱글벙글하다.
“저희 회사의 정식 명칭은 화용 건설입니다. 말이 건설회사지 실제로는 용역 일과 소규모 대부업을 하는 회사죠. 제가 듣기로는 형님과 직접 마찰이 있었던 사람은 정문우 사장님이실 겁니다.”
이어 준모는 묻지 않는 말까지 쉬지 않고 토해냈다.
조금만 더 가만 놔뒀다간 필요도 없는 사장의 취미까지 말할 것 같았으므로 두호는 준모의 말을 툭 끊었다.
“지금 가면 있냐?”
“네. 보통 출근하시면 사무실에만 계십니다.”
“그래. 그 앞까지만 데려다줘.”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준모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삭초제근이라는 말이 있다.
화근은 뿌리째 없애야 뒤탈이 없다는 뜻이다.
이대로 넘어가면 사채업자들의 기질로 보아 끝없이 두호의 부모님을 괴롭힐 것이다.
이왕 하게 된 김에 말끔히 치우는 것이 훨씬 더 이롭다.
문득 두호는 준모가 궁금해졌다.
“너는 왜 이런 일을 하냐? 나이도 어린놈이.”
‘이런 씹새끼가 진짜 해도 너무 하네.’
그러나 준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친한 옆집 형과 얘길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저 말입니까? 제가 동생만 여섯입니다. 막냇동생이 많이 아프죠. 웬만한 벌이로는 병원비 감당이 안 되다 보니.”
나쁜 일이지만 벌이가 되므로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두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각자의 사정은 역시나 다양하다.
부우웅!
차는 도심 속으로 사라졌다.
차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편의점 앞에 중학생 셋이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떠들고, 생수 배달 트럭이 비키라고 악을 썼다.
“여깁니다.”
회색빛 건물을 바로 앞에 두고 차가 멈췄다.
두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두호는 운전석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손등으로 툭 쳤다.
딱딱!
스르르!
준모가 유리를 내렸다.
찌그러졌던 표정은 어느새 반듯하게 펴졌고, 싱글벙글 얼굴 가득 미소가 넘쳤다.
“무슨 일이십니까?”
“준모라고 했지? 오늘 너희 회사 정리할 거야. 그러니까 딴 일 찾아봐. 내가 보기엔 넌 이 일이 안 어울린다.”
“네?”
준모는 당황했다.
“회사를 지켜야겠다. 뭐 이런 충성심으로 실수하는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그게 아니고.”
잘 돌아가던 머리가 갑자기 멈춘다.
천천히 화용 건설의 건물로 걸어가는 두호의 뒤를 준모는 말없이 지켜봤다.
저만치 가던 두호가 걸음을 세우고 돌아섰다.
“핸드폰 있으면 줘봐.”
준모는 차에서 내려 자신의 핸드폰을 공손히 내밀었다.
“잠깐 쓰고 줄게.”
안 줘도 상관없다.
핸드폰이야 또 사면 된다.
지금 핸드폰이 문제가 아니다.
나중 일이 잘못되면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
즉 적이 쳐들어오는 걸 알면서도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분명한 배신은 없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형님.”
절체절명의 상황과는 다르게 엉뚱한 말이 흘러나온다.
준모는 마지막까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그냥 한숨만 내 쉬었다.
두호는 5층의 회색 건물 앞에 섰다.
잠시 건물을 올려다보던 두호는 히죽 웃었다.
“우리 문우. 얼굴 좀 보자?”
그리고는 어깨를 한쪽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푸는 시늉을 했다.
두호는 계단을 밟고 올라 미닫이문을 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