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화: 전쟁의 신은 죽었다.
-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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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슬한 이불 촉감과 반복적으로 들리는 기계음 소리는 실내의 분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서서히 눈을 뜬 두호는 주위를 둘러보니 4인 병실이었다.
하지만 넓은 방 안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몸을 살짝 뒤척이니 왼 손목에서 강한 통증과 묵직한 두통이 느껴졌다.
이 삶을 살던 진짜 두호의 사인은 자살이라고 했다.
아마도 왼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자상으로 인한 통증일 것이다.
예전의 자신 또한 용병 일하다가 칼에 몇 번 베이거나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들이민 칼과 자신의 목숨을 끊는 칼의 깊이가 비슷했다.
이 아이의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잠시 마음이 무거워진 그때 병실 문이 활짝 열렸다.
간호사가 주사와 바늘이 담긴 작은 트레이를 하나 옆쪽에 대충 던져 놓더니 두호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때. 정신이 좀 드니 도혁아?”
깜짝 놀란 두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도혁이 아니라 두호다.
“어!”
간호사가 아닌 간호사복을 입고 있는 무였다.
“바빠 죽겠는데, 그래도 몇 가지 일은 얘기해주고 보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왔어.”
깜짝 놀란 마음을 추스르려 도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랐잖아요.”
혹시나 다시 가자고 할까 봐 가슴 졸였다.
“덩치는 산만한 애가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그 통으로 어떻게 총 질 해댔냐.”
“그거랑은 다른 얘기죠. 몇 시간 새 너무 놀라기만 해서 지금 심신미약이에요.”
무는 들고 온 트레이에서 주사기 하나를 집어 들어 두호가 맞고 있는 링거에 주입했다.
“이거 아무나 안 주는 건데. 그래도 내 일 대신 해주니까 하나 준다.”
주사를 주입하자마자 왼쪽 손목에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두통은 아예 없어졌다.
효과에 놀란 두호는 링거와 무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오. 이게 뭔가요?”
“무의 눈물.”
“예?”
두호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며 깔깔 웃은 무는 도혁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농담이야. 이거 그냥 내가 먹는 약 같은 거로 생각해. 굉장히 희석한 거지. 손목은 상처가 깊어서 회복되는 데 좀 걸릴 거야. 자 이제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지금 네가 궁금할 것들을 빨리 말해줄게.”
어느새 손목에 남은 약한 통증을 제외하고 몸의 모든 불편함은 사라졌다.
상체를 반쯤 일으킨 두호는 무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두호의 신상정보와 기억은 머릿속에 넣어놨는데. 말 안 해도 되겠지?”
정말 신기했다.
자신과 두호의 정보, 추억, 기억, 감정 등등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공존했다.
딱히 헷갈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도혁이었던 옛날 몇몇 순간들이 흐릿한 정도였다.
“네.”
무는 다리를 꼬아 무릎에 손을 얹었다.
생각만 해도 착잡해지는지 방금전과는 달리 굉장히 착 가라앉았다.
“원래 두호는 굉장히 유망한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어. 고등학생 신분에도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까지 올라갈 정도로. 그러나 협회 측 비리로 인하여 그 꿈은 좌절되었지.”
도혁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아이의 꿈이 저항할 수 없는 파도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감정은 정말 절망적일 것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소년의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 절망을 느낀 대회를 마치고 자신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아주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된 거야. 사채 업자들이 가게 앞에서 자신의 부모님을 폭행하는 광경을 보게 됐지.”
감정이 이입된 듯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한 도혁이였다.
머릿속에 들어온 두호의 기억들이 꿈틀댄다.
피를 흘리면서도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두호.
그 모습을 넋이 나간듯 바라보는 부모님.
절박함과 분노가 섞인 그날 두호의 감정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요?”
“두호는 충동적으로 그 사람들에게 손을 쓴 거지. 근데 그 아이에게 맞은 놈 중 몇 명이 아주 호되게 당했어. 그 무리의 대장 놈은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여 재판에 넘겨졌고, 큰 죗값을 치르게 된 거지. 그 아이의 부모에겐 그 죗값을 무마할 돈이 없었거든. 협회와 위원회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격정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소 하루 전 소년 교도소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
듣고 보니 이 아이의 운명이 참 기구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큰 파도를 맞기엔 너무 어린 것이 아닌가.
자신의 실수를 통감하는 무의 표정 역시 조금 무거워졌다.
“지금 시점은 네가 죽고 난 뒤 3년 후야. 3년 동안의 시간 흐름은 알아서 잘 배우도록 해. 알았지?”
두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옮겨 묵묵히 창밖을 보았다.
불과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어느새 3년이라니.
인생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출소 날짜는 3일이 지났어. 원래 대로라면 다시 소년 교도소에서 물품이랑 안내 교육받고 나가야 해. 하지만 지금은 예외적인 상황이니 병원 퇴원 절차만 하고 나가면 돼.”
그때 무의 앞치마에 전화기에서 아주 평화로운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찌르르릉!
무는 느긋한 표정과 애교 있는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뭅니당.”
무는 전화기를 귀에 대며 무엇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시계를 발견한 무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자신의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늦어진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지금 갈게.”
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아쉽다는 듯 자신의 옷차림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옷 맘에 들었는데 아쉽네.”
하지만 그런 무와는 달리 두호는 생각이 많아진 듯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는 그런 두호의 어깨에 조심히 손을 올렸다.
몸을 조금 낮춰 두호를 나긋하게 올려다보았다.
“멋진 드라마 한 편 부탁한다. 알았지? 나 당분간 신경 못 쓰니까 잘해!”
“네.”
“그럼 나 갈게. 도혁. 아니 두호야. 가끔 보러 올게?”
애교가 가득 담긴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무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이 아이, 두호의 삶이라.’
아직 방법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잘 해내야 했다.
그 무서운 곳으로 안 떨어지기 위해서, 또 아쉽게 세상을 떠난 두호의 넋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무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교도관 두 명이 병실 안으로 함께 들어왔다.
“백 두호씨? 몸 상태는 어떠세요?”
“네. 지금은 좀 괜찮습니다.”
의사는 진료 차트와 도혁을 번갈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볼펜과 비슷하게 생긴 소형 후레쉬로 도혁의 눈을 비춰 보았다.
“어지러움이나 이명 같은 건 없으세요?”
“네. 이상 없는 것 같아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이 보던 진료 차트를 툭 덮었다.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두호씨 아직 어리잖아요. 이제라도 나쁜 생각 하지 말고 착실히 잘 살면 됩니다. 진심으로 건승을 빌어요. 퇴원 절차 잘 밟으시고 조심히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두호의 팔에 꽂혀 있던 링거 바늘을 뽑아 정리하였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병원 측 사람들이 나가고 난 뒤 교도관 두 명이 누워있는 두호에게 다가왔다.
한 명의 교도관은 자신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다른 한 명은 뭐가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었다.
미소인데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자신은 위기를 감지해내는 촉이 좋다.
자신의 촉은 지금 이 사람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두호 군. 몸은 좀 괜찮나요?”
“네.”
“출소예정일이 3일 정도 지났어요. 원래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서 물품을 받고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저희도 유례없는 일이라 여기서 물품을 돌려드릴게요.”
교도관은 종이 가방을 하나 꺼내 두호의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저희는 퇴원 절차 밟고 있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서류에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밖에 있을게요.”
말이 끝난 교도관들은 서로 눈짓 후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고 방 안에는 혼자 남게 되었다.
갈색 종이가방 제일 위에는 여러 서류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곳마다 골라서 사인을 하고 종이 가방을 크게 펼쳐 보았다.
처음 본 트레이닝 복이 있었지만, 자신이 교도소로 들어갈 때 입은 옷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두호는 무의 기억 편집 능력을 감탄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윗옷을 벗고 옷장을 여니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거울 안에 비친 도혁이 아닌 두호의 모습이 보였다.
순하게 생긴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대충 보아도 반듯한 호감상의 미남이었다.
몸을 살펴보니 교도소 안에서도 운동은 착실히 했던 것 같았다.
며칠 누워있어서 그런지 몸은 약간 말랐지만, 골격과 몸 상태는 그런대로 잘 관리되어 있었다.
‘이 녀석도 참. 그런 곳에서도 운동하고 기특하네.’
하지만 몸 곳곳에 남아있는 흉터들은 굉장히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받은 옷으로 갈아입고 병실을 나서니 저 멀리서 교도관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 수납절차 끝났습니다. 같이 내려가시죠.”
그렇게 두 교도관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원무과가 있는 현관을 가로질렀다.
밖으로 나온 두호는 이마를 찡그렸다.
오른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흘긋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쉰다.
저만치 앞서 걷던 교도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교위. 급히 일 좀 보고 온다고?”
“네. 선배님.”
“그래. 그러면 얼른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상부에 보고 하고.”
“예 선배님! 이따가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박 교위란 교도관은 재빨리 병원 밖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그는 깊은 시선으로 두호를 보았다.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두호의 어깨를 툭 쳤다.
“두호 군. 분명히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실수를 딛고 일어서면서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거지.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두 번 다시 그런 일 저지르지 말고 새 출발을 잘하라는 격려였다.
슥!
교도관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부모님이 안 오셨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고. 집에 갈 때 꽃이라도 사서 들어가 알았지? 잘 살아라. 기죽지 말고!”
자신에 대한 걱정을 듣고는 가슴이 뭉클해진 두호는 교도관의 명찰을 보았다.
‘오정배.’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교도관 두 명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고 이제 두호는 혼자가 되었다.
손을 들어 천천히 살펴보았다.
도혁의 삶은 끝났고 두호의 삶은 이어지게 되었다.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삶. 죽이는 삶이 아닌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
두호는 힘차게 밝은 다짐을 하고 병원의 정문에서 한 발자국을 내밀었다.
밝은 햇살은 그의 새 출발을 응원하듯 따사롭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한 무리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야 이 씨발 두호야. 너 잡아다 젓갈 만들라고 내가 2년 하고 3일을 기다렸다. 씹 새끼야.”
두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