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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2화 (2/204)

제 2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도혁의 눈이 떠졌다.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빛이 없는 이곳에서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 순간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들리는 감정 없는 목소리.

-이름 김도혁. 1978년 경기도 벽제에서 외동으로 출생. 출생 신고 후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이 모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곧바로 보육원으로 보내졌구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한 사람의 도움으로 군인의 꿈을 가짐. 특수 부대로 자원입대. 제대 후 옐로우 맘바라는 용병 회사에 정착. 15년간 근무하다가 작전 수행 중 사망.-

도혁은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일들조차 알고 있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둠 속에 있지만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도 굉장히 뚜렷하게.

굉장히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는 흰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

방금전 폐공장 안으로 들어왔던 사내였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그는 무표정했다.

“결정해. 나랑 일 하나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들어갈지.”

일을 하자니.

그리고 그대로 들어간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도혁은 사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

“네?”

도혁이 되묻자마자 어딘가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다.

“너가 죽인 사람만 1931명. 저곳 제일 밑바닥이 너가 갈 곳이야.”

순간 주위가 환해졌다.

녹슨 철문을 여는 것처럼 듣기 싫은 소음이 들리더니 느껴지는 열기가 더욱 강해졌다.

열기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뒤를 돌아보자 누군가가 도혁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꺼내줘!”

“제발 제발! 부탁이야.”

“으아악!”

도혁은 뒷걸음질을 치며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사람의 그 너머를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어서 문밖으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문 안은 방금전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어둠이었다.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지 사람들은 열린 문틈을 잡고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손은 이미 피칠갑을 했고 피부는 뜨겁게 화상을 데인 듯 거무튀튀해져 있었다.

하지만 문 밖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얼굴은 절망과 후회로 가득 차 있었고.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되어 지켜보기조차 힘들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함 그 자체.

멍한 표정에 도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았다.

손 하나가 튀어나와 도혁의 다리를 잡아챘다.

절실한 눈빛으로 자신을 붙잡은 사람을 차버리듯 발을 빼냈다.

그리고 방금 전 사내의 말을 기억해냈다.

“하...하겠습니다!”

그제야 중년의 사내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사실 저길 들어가는건 좀 멍청하잖아?”

중년 사내의 손짓 한 번에 비명과 함께 사람들은 문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엄청난 열기를 내뿜던 문 또한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다녔지만 이 순간만큼 긴장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죽다 살아난 도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하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도혁과는 달리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이제 일도 같이 하는데 내 소개는 해야겠지. 나는 무야. 반가워.”

아직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아 정신이 없던 도혁이었다.

“뭐라고요?”

“무 맞아.”

“네?”

어찌어찌 이름을 알아들은 도혁은 내밀어 온 손을 정중하게 받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당최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도혁의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태평하게 소개를 이어갔다.

“여기는 무의 영역이야. 아무것도 없다. 라는 무(無)의 뜻이기도 하고, 내 공간이라는 뜻에서 무의 영역이라고도 해.”

무가 뒤를 돌아 천천히 걸어가니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책상과 의자 하나가 생겨났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앉아서 하자고.”

무가 손가락을 튕기니 책상 앞에 조그마한 의자 하나가 더 놓였다.

겨우겨우 땅을 짚으며 일어난 도혁이 힘겹게 걸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다시 맞은편을 보니 어느새 무의 얼굴은 바뀌어 있었다.

옷의 색깔은 여전히 변함없는 흰색이었지만, 아주 젊고 긴 생머리의 여성으로 바뀌어있었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

청아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일이란 게 뭡니까?”

자신의 책상에 깍지를 끼며 몸을 가깝게 붙인 무는 느긋한 표정이었다.

“죗값을 깎을 수 있는 일.”

도혁의 눈이 강하게 빛났다.

‘죗값을 깎을 수 있는 일?’

무는 도혁의 뒤를 가르켰다.

“네 죄는 당장 저기로 보내버려도 이상할 게 없지만. 마침 너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할거지?”

방금 붉게 타오르는 철문을 보고 나니 느껴졌다.

말로만 듣던 지옥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 소린 두 번 다시는 듣기 싫은 것이었다.

도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다.

뭐든 한다.

“무슨 일인데요?”

“땜빵이랄까.”

도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음.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 인간인 거 알지?”

도혁도 인정하는 말이었다.

자신이 살아있을 적에도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분명하게 그들의 영향을 받았으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전파하기 위해 가끔 능력이 출중하고 마음이 선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지. 세상이 너무 험해지기만 하고 희망이 없다면, 점점 악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까. 일종의 조율이야. 대다수의 사람이 그 영향을 받아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의 이야기를 들은 도혁은 매우 놀랐다.

단순히 생명을 관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전반적인 모습을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 뭐야. 너랑 같은 국적에도 몇 명 있어. 축구 선수랑 남자 댄스 가수 이런 애들 있잖아. 걔들 처음엔 엄청나게 힘들었는데 죽을 듯이 노력해서 결국 성공한 이야기. 그런 사람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지. 사람들은 자신의 우상을 닮고 싶어 해. 노력이나 배려, 팀워크, 건강한 해소를 하는 법 이런 것들은 걔네들이 말해야 더 크게 느껴지거든.”

과정이 험난하며 결과가 위대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아주 큰 울림을 준다.

더욱이 그런 사람들이 뿜어내는 선한 영향력은 엄청난 흐름을 만들어 낸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 사람처럼 살아보자.

“그래서 우리가 이 시대의 필요한 우상 같은 사람을 만드는 중 아랫놈들 실수로 그 아이가 죽어버렸어.”

신이 점찍어 놓은 아이는 누굴까.

도혁은 약간의 질투심과 호기심이 생겼다.

“그 아이는 누굽니까?”

“이름 백두호. 2005년 8월 12일생. 사인은 자살.”

“자살? 이 어린 나이에요?”

그러자 무는 한숨을 내쉬며 아련한 눈빛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아깝고 미안한 죽음이지.”

천천히 턱을 괸 무는 아주 나긋하게 도혁을 쳐다보았다.

턱을 괴며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은 실로 매력적이었다.

청순함이라는 단어 그 자체인 무의 지금 모습과 이 눈빛은 남자들이라면 마음이 흔들릴만한 행동이었다.

도혁 또한 그 매력적인 눈빛에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문제에 집중했다.

“그 두호라는 친구가 이뤘어야 할 일이 뭐였습니까?”

무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잘하는 거 있잖아. 쌈박질.”

그 말을 들은 도혁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싸움이요?”

“정확히는 격투기.”

무는 두호를 보고는 만족한 듯 말을 이어갔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못 하겠지. 매일같이 피땀을 흘리고 자기 자신과 싸우는 놈 중에서도 가장 강해져야 하니까. 하지만 전쟁의 신이라고 불린 너라면 다르겠지? 싸우고, 견디고, 쟁취해내고 이런 건 너에겐 일상이었잖아. 어때?”

절대자의 앞에서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는 칭찬이 과연 좋은 것인가.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만약에 방금 그 문으로 다시 걸어가라고 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할거지?”

두 번 다시 겪기 싫은 상황이니 답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도혁의 머릿속은 재빠르게 돌아갔다.

이 사람은 지금 나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본능이 말한다.

목숨을 건 베팅을 한번 해야 한다면 지금이라고.

“싫습니다.”

“엉? 싫어?”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해도 얻을 것이 있어야 했다.

죗값을 줄여준다는 말이지 없앤다는 말이 아니다.

저기는 잠시라도 들어가기 싫은 곳이니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내야 한다.

“세 가지 부탁을 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자신있는 척 질렀지만 도혁의 몸은 떨고 있었다.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무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고 말하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채호는 살아있습니까?”

“채호?”

누구인지 모르는 듯 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혁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저랑 마지막까지 같이 있던 동료입니다.”

“아~ 걔? 살아있어 지금은.”

지금은 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도혁의 표정은 긴장되었다.

“지금은?”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긴 했는데. 병원으로 이송 중. 목숨은 아슬아슬해.”

“그럼 채호를 살려주십시오.”

“의외네?”

옐로우 맘바의 입사 이후 제일 친하게 지내던 동료이자 부하였다.

무뚝뚝한 자신을 많은 사람이 어렵게 생각하여 다가오기 힘들어했지만, 채호는 그러지 않았다.

나이 차이는 조금 났어도 단둘이 술자리를 가질 때는 호형호제하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살았으면 하니까요.”

아끼는 동생이기도 했지만, 브라보 팀 모두가 죽었다.

팀원들의 죽음을 기억해줄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다음?”

도혁은 잠시 머뭇거리다 먼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 생에서 정말 열심히 살면. 혹시 훗날에 받을 죄를 아예 없애주실 수 있나요?”

첫 번째 질문과는 다르게 무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분명히 도혁의 죗값은 무겁다.

하지만 자기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또 새로운 기회를 주어 속죄하게 하는 것도 절대자의 역할이었다.

“지켜보지. 대신, 너 하기 나름이다? 마지막은 뭐야.”

도혁은 방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긴장한 표정을 띠며 말했다.

“면죄부를 주십시오. 한 번의 죄를 용서받는.”

그 말을 듣자마자 무는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안돼.”

역시나 단칼에 거절 당했다.

무는 이번만큼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표정이었다.

“무조건적인 면죄부는 안돼. 하지만 너 하는 거 봐서 조건적인 면죄부는 주지. 근데 그건 뭐하게.”

“뭐 나중에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요.”

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혁 또한 따라 일어섰다.

“이제 너는 백두호의 삶을 살 거야. 자세한 건 네가 눈 뜨자마자 머릿속으로 집어 넣어줄 테니까. 알겠지?”

“네.”

무는 도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명심해. 단순한 듯 보이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아. 네가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확히 구별해 내야 해.”

단순히 하나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죄를 씻어낼 기회와 모든 상황을 돌릴 기회가 될 것이다.

전쟁의 신은 결심한 듯 표정은 진지했고, 그의 굳은 결의로 눈은 별처럼 밝게 빛났다.

“잘 해. 자주 보러 갈 테니까. 김도혁 캡틴.”

무의 손짓 한 번에 김도혁은 그대로 뒤로 쓰러졌고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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