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쟁의 신이 케이지 안으로-1화 (1/204)

제 1화 : 전쟁의 신은 죽었다.

이라크의 뜨거운 낮.

하지만 모래 폭풍으로 뒤덮인 이곳의 분위기는 한겨울처럼 차가웠다.

눈도 뜨기 힘든 곳에서 복면을 쓴 군인 네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사내가 튀어나와 맨 뒤에 선 군인의 목을 쥐어잡는다.

순식간에 목이 비틀어진 군인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사내는 물 흐르듯 쓰러지는 군인의 옆구리에 달린 권총을 뽑아들었다.

앞서 걷던 군인들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탕탕탕탕

딱 네 발.

제대로 된 자세도 잡지 않고 쏜 총은 머리와 가슴에 한 발씩 정확하게 맞았다.

경이로운 실력을 보여준 그의 표정은 왜인지 굉장히 답답해 보였다.

“끝도 없네 정말. 채호야!”

한 명이 남아있어도 그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다른 한 사내가 군인의 목에 칼을 찔러 넣고 있었다.

무심하게 칼을 뽑아낸 사내는 도혁과 달리 체구가 상당히 컸다.

채호라고 불린 사내는 칼을 군인의 옷에 문질러 닦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김도혁 캡틴! 저 여기 있습니다.”

도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도혁과 채호는 용병 회사 ‘옐로우 맘바’ 소속으로 임무 차 파견을 나온 캡틴과 팀원이었다.

옐로우 맘바에게 일을 맡긴 의뢰자들과 같은 용병 밥을 먹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

‘전쟁의 신’

또는

‘밤의 주인.’

소규모의 용병 회사.

팀 옐로우 맘바 (TEAM YELLOW MAMBA), 속칭 노란 뱀.

대규모의 전쟁 대행이라면 더 많은 용병을 보유한 다른 PMC들을 높게 쳐줄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교전과 요인 암살 그리고 비밀 분쟁의 해결을 원하는 고용주가 있다면 업계에서는 단연 옐로우 맘바를 일 순위로 꼽는다.

용병 개개인의 전투 능력은 어느 PMC로 가더라도 최고의 대우를 받을 것이며 그들을 이끄는 4명의 캡틴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인간 병기들.

수많은 임무를 성공해왔고, 어떠한 곳에 투입되어도 그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밤의 주인이 되었고 전쟁터의 신이라 불리었다.

옐로우 맘바의 대표인 L은 고용주와 금액 협상할 때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액수만 채워주시면, 우리가 신의 목이라도 따오죠.’

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오늘 옐로우 맘바의 팀원들은 쫓기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만을 바라보며 쫓아오는 복면인들에게.

“아까 한 놈 복면 벗겨 보니까 귀 뒤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해골 문신이 있더라고요. 촌스러운 놈들.”

“움직이려면 지금 움직여야 해. 그래야 놈들이 우릴 추적하기 힘들지.”

주변은 아직 거세게 모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남은 탄알집 하나를 꺼내 갈아 끼워 넣은 도혁은 채호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옆구리 옆쪽으로 총알이 스쳤는지 옷 위로 많은 피가 묻어나왔다.

“아프겠네.”

“겁나게 아픕니다. 살아서 돌아가면 이거 평생 술안주인데 아쉽네요.”

채호의 실 없는 농담에 도혁은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좀만 참아라.”

그러나 도혁은 채호의 상태가 심각함을 눈치챘다.

‘빌어먹을.’

이주 전.

동남아의 군수업체 ‘윈스턴’은 독자 개발 중인 무기들을 이송하는 중 해적들과 밀매조직의 기습으로 무기들을 탈취당했다.

자신들이 거액의 돈을 들여 개발한 무기들을 두 눈 뜨고 뺏길 수 없던 윈스턴은 무기를 회수하기 위하여 급하게 옐로우 맘바를 섭외하였다.

윈스턴이 옐로우 맘바에게 의뢰한 내용은 두 가지.

빼앗긴 무기 전량 회수와 무기 밀매업 조직의 소탕.

윈스턴과 계약을 체결한 옐로우 맘바는 이 임무의 적임자로 도혁이 이끄는 팀 브라보를 배정하였다.

회사 내에서도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옐로우 맘바의 시그니쳐 팀.

계약 내용과 명령은 브라보에 긴급으로 전달되었다.

‘동남아 군수업체 ‘윈스턴’의 탈취당한 무기 재탈환 그리고 무기 밀매조직 소탕’

-이라크 모술지역에서 72시간 후 무기 거래 예정-

그동안 해결해 왔던 작전들에 비한다면 비교적 쉬운 임무였다.

계획한 대로 무기 거래 현장을 빠르게 급습하였고, 밀매조직 소탕과 무기 회수까지도 손쉽게 해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무기 회수를 마치고 최종 도착지점으로 이송하던 중, 알 수 없는 사내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급하게 펼친 교란작전이 운 좋게 성공하여 무기를 실은 차들은 안전하게 빠져나갔지만, 미끼가 되어 흩어졌던 브라보 팀은 차례대로 제거되었다.

자신들의 몇 배가 넘는 숫자의 적들을 사살하여도 몰려온 적들의 숫자는 극복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무기는 놓치더라도 뱀 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들은 집요했다.

담벼락의 몸을 숨겨 탈출 계획을 고민하던 그때, 끊어진 줄 알았던 통신기로 작은 음성이 들렸다.

‘지지직. 화이트 화이트. 생존자 응답 바란다. 이상’

모래 폭풍 때문인지 수신상태는 잡음이 조금 섞였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여기는 글러브 하나. 글러브 하나. 글러브 하나와 글러브 삼을 제외한 전원 사망이다. 지원팀과 응급팀 요청한다. 이상”

‘여기는 화이트. 약 15분 후 D 포인트로 차량 대기 시켜놓겠다. 글러브 하나와 글러브 삼의 상태는 어떠한가?’

도혁은 차분하게 채호를 살폈다.

어느새 안색이 더욱 창백해진 채호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글러브 하나. 글러브 하나는 상태 양호하고 글러브 삼은 위독한 상태다. 서둘러주길 바란다.”

‘알겠다. 신속히 D 포인트로 집결 바란다. 이상’

채호는 바람에 날리던 수건 하나를 주워들어 자신의 상처 부위를 동여매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시간을 더 지체했다가는 탈출은커녕 채호의 상태만 점점 악화할 것이니까.

“지금부터 모래 폭풍을 뚫고 탈출지점으로 이동한다. 차량이 올 거야. 정신 바짝 차려.”

“포인트는 어디랍니까?”

“D 포인트.”

“다행히 가깝네요.”

거세게 몰아치는 모래 폭풍을 둘은 결연하게 바라보았다.

“모래 폭풍이 언제 멎을 줄 몰라. 빠르게 이동하자.”

“네”

마지막으로 장비 점검을 마친 도혁과 채호는 신속히 이동을 감행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왜 옐로우 맘바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모래 폭풍 속 주위 환경과 완벽히 녹아드는 은 엄폐, 그리고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교묘하고 조용하게 적들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막이란 환경에서 노란 뱀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한 듯 D 포인트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모래 폭풍은 점점 멎어 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폭풍은 어느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이라크의 날씨로 바뀌었다.

도혁과 채호에게는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무너진 작은 벽으로 두 사람은 급하게 숨어 들어갔다.

총에 달린 스코프로 D 포인트 너머를 확인하니 아주 멀리 차량 하나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자신들과 같이 출발했었던 무기 회수팀의 차량.

이 정도 거리는 빠르게 달려 차를 타고 탈출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던 그 순간.

자신들이 숨어 있던 구조물 옆으로 탄 한발이 날아와 박혔다.

-탕!

황급히 몸을 집어넣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젠장.”

그리고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한 놈 여기 있습니다!”

곧바로 날카로운 총성들과 함께 도혁과 채호가 숨어있는 담벼락으로 탄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 탕탕탕

순식간에 주위로 쏟아지는 탄으로 인하여 둘은 벽에 더욱 가깝게 붙어 자세를 낮춰야 했다.

몸을 숨긴 벽에 탄이 맞아 떨어지는 모래를 뒤집어쓰는 순간에도 도혁의 눈은 또렷했다.

총성 소리는 점점 늘어나 어느새 훨씬 더 많은 숫자로 늘어났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 순간 문뜩 도혁은 처음 자신을 발견했던 사내가 외친 그 말을 기억해냈다.

‘잠깐. 한 명이라고? 아직 나밖에 확인을 못 한 건가?’

그렇다면 채호는 살릴 수 있었다.

도혁은 이내 결심한 듯 담담하게 채호를 불렀다.

“채호야.”

점점 심해지는 고통과 주위의 시끄러운 총성들로 인하여 자신을 부르는 말을 듣지 못한 채호의 목덜미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이채호!”

“예!?”

“지금 저쪽에서는 나밖에 발견을 못 한 것 같다. 내가 반대쪽으로 유인해낼게. 시선이 나에게 쏠리면 그때 D 포인트로 뛰어가! 알았나?”

채호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닙니다. 캡틴. 제가 하겠습니다.”

“뭘 들은 거야 임마. 날 확인했다니까. 네 몸 상태로는 도움이 안 돼.”

자신의 총기를 집어 든 도혁은 곧 뛰쳐나갈 준비를 하였다.

“시간 없다. 이제 시작해야 해.”

채호는 일어서려는 도혁의 손을 꽉 붙잡으며 울먹였다.

“꼭. 꼭 사셔야 합니다. 형님.”

“형님이 뭐야 임마. 캡틴이지. 나 쉽게 안 죽어 걱정하지 마. 너는 무조건 D 포인트로 죽어라 뛰는 거야.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실시.”

“실시.”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대답한 채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도혁은 크게 심호흡했다.

‘하나, 둘, 셋!’

마치 치타처럼 담벼락을 박차고 나간 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렸다.

자신을 따라오며 무섭게 쏟아지는 총알들이 채호가 아닌 자신에게 향한 것에 안도하며.

만약 한 명도 살아나가지 못한다면 이 사태의 내막을 회사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도혁은 재빠르게 채호와 있던 지역을 벗어났고, 주위에 있던 사내들은 모두 도혁을 쫓기 시작했다.

도혁은 좁은 도로 하나를 가로질러 뛰어가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고함 소리가 셀 수 없이 많음을 느꼈다.

‘됐다. 이제 채호만 잘 빠져나가면 된다.’

도혁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쉴새 없이 분비되었고, 지칠새도 없이 5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 제 법 먼 곳까지 이동한 뒤에야 멈춰섰다.

주위를 조심히 살펴보니 딱히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다.

“채호 이놈이 잘 빠져나가야 할 텐데.”

작전 이후 쉬지 않고 도망쳐다닌 도혁의 몸 상태는 한계치에 도달했다.

옷은 이미 군데군데 찢어져 상처들이 보였고, 다리엔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잠시라도 숨어 몸을 돌볼 장소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자신의 바로 맞은편 쪽 큰 폐 공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폐공장 앞으로 이동하여 조심스럽게 작은 철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

반대쪽 출구에서 번쩍하고 터지는 섬광과 총성이 들려왔다.

-탕!

도혁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랫배 쪽에서 올라오는 화끈한 느낌으로 자신이 총에 맞았음을 자각했다.

천천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사람.

반다나를 둘렀으며 스카프를 눈 바로 아래까지 가리게 쓴 남자가 멀리서 천천히 걸어왔다.

“귀찮게. 한참 쫓아왔잖아.”

걸걸한 목소리로 비꼬며 다가오던 사내는 도혁의 앞에 멈춰 서 자기 입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벗어 던졌다.

어두운 폐공장 안으로 들어오는 빛에 젊은 흑인 남성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떡 벌어진 어깨와 큰 체구는 가만히 서 있어도 위압적이었으며, 길게 찢어진 오른쪽 눈 옆에는 아주 긴 흉터가 있었다.

귀 뒤부터 뒷목까지 이어지는 해골 문신을 보니 자신들을 쫓았던 놈들 중 하나 임을 알 수 있었다,

“뭐 업계 최고인건 인정. 700명이 와서 100명도 못 돌아가게 됐으니.”

입으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온 도혁은 자신의 아랫배를 부여잡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쿨럭. 뭐야 니 들. 어디서 보냈어.”

사내는 한쪽 무릎을 땅에 댄 자세로 도혁의 앞에 앉았다.

“왜 이래. 알 만한 사람이 하하. 그건 그렇고.”

이어 천천히 총구를 도혁의 머리를 향해 겨눴고 작지만,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총 14명이라던데. 아직 한 명이 남았어. 걔는 어디 있을까? 말해주면 그냥 갈게.”

그리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도혁은 오히려 안심했다.

‘아직 채호를 발견하지는 못했나 보구나. 제발. 제발. 살아서 돌아가라.’

겨우 상체를 일으켜 힘겹게 상대를 바라본 도혁은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살려준단 말을 믿을 수도 없거니와 살려준들 얼마 버티지도 못할 몸 상태.

마음의 결심이 선 듯 도혁은 갑자기 사내를 쳐다보며 실성한 듯 크게 웃었다.

미친 듯 웃는 도혁을 보며 사내는 의아해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순간 도혁은 웃음을 거두었고 가운뎃손가락을 펴 보였다.

“좆 까. 이 덩어리야. 너희 엄마한테나 가서 물어보든가. 낄낄”

자기 바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일어선 사내는 옅은 웃음을 띠었다.

“그래, 오히려 편하네. 악감정이 없었는데 살짝 생겼어. 너무 원망하지는 마. 우리도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니까. 당신도. 나도. 항상 이런 상황을 각오했잖아.”

그 말을 끝으로 망설임 없이 곧바로 권총을 장전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 탕탕

힘겹게 일으킨 도혁의 상체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그런 도혁의 귀에 들린 마지막 한 마디는 차가운 냉소였다.

“전쟁의 신은 죽었다. 뭐 이런거야?”

사내는 곧바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 우던 도혁은 이라크 모술에서 숨이 끊어졌다.

그리고 적막한 폐공장 안으로 한 중년의 사내가 들어왔다.

보통 사람 같으면 기겁을 하고 밖으로 뛰쳐나가겠지만 사내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도혁에게 다가갔다.

“나랑 일 하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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