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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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할거의 난세에 참담함을 느낀 황제가 천하통일을 완수한 위왕에게 황위를 선양하려 한다.
위나라의 관료들은 합법적인 선양이라 주장하며 여론을 주도했다. 패국조씨 가문을 따르는 사대부와 호족들은 그에 복종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나라는 끝났다.
이제 위나라의 천하가 시작되리라.
연이은 숙청과 토벌로 불온세력들을 모두 쓸어버리며 후환을 없앴다. 위나라는 유협이 선양을 선포하자마자 곧바로 준비에 돌입했다.
“한나라 부흥군의 잔당들이 다시 거병하겠지. 놈들이 중원 전역을 들쑤실 거야.”
“확산되지 않도록 조기에 진압해야 하옵니다.”
정위(廷尉) 진궁.
광록훈(光祿勳) 가후.
유배지에 구금된 이성휘를 대신하여 병권을 거머쥔 진궁과 가후가 대책을 의논했다.
전역을 휩쓸었던 한나라 부흥군은 위나라의 대대적인 토벌로 명맥이 끊어졌다. 하지만 한나라에 충성하는 모든 충의지사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역에서 들고 일어날 터.
짙은 피비린내가 다시금 진동하게 되리라.
4백 년 왕조를 끝장내는 일이다.
당연히 반발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리 제장들을 배치해뒀어요. 반란을 최대한 신속하게 진압해야 할 테니까요.”
“조정에서 좌천된 조정대신들도 경계해야 해요. 분명 절치부심하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겠죠. 분명 한나라 부흥군에 가세하려 할 거예요.”
역천(逆天)의 중심이 접어들었다.
거센 후폭풍에 직면할 터.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는 한나라의 충의지사들이 모두 거병하리라.
제갈량. 양수.
남방 정벌에서 귀환한 참모들이 입을 열었다.
“유배지에서 대장군을 불러들여야 되는 거 아님?”
사마의가 물었다.
대장군 이성휘.
병권을 관장하는 수장이 자리를 비웠다.
신속하게 이성휘를 불러들여 반란군을 경계해야 한다. 이성휘가 군세들을 호령하며 허도를 완강하게 사수한다면 한나라 부흥군은 감히 설치진 못할 테니.
“아니, 그건 안 돼.”
진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언했다.
명부께서 허락할 리 없다.
경애하는 남편이 위나라의 공신이자 한나라의 충신으로 남기를 원하시니까.
수많은 흉적들을 물리치고 황실과 조정을 구해냈던 천하제일검의 무명을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이성휘를 유배지로 보내면서까지 가세를 막으려고 했다.
“한나라 부흥군이 반란을 일으키겠지. 하지만 지금의 전력만으로도 충분해. 번거롭게 대장군을 부를 것도 없이 진압할 수 있어.”
위나라의 건국에 앞장섰던 제장들은 천하를 대표하는 맹장이다. 무략이 형편없는 충의지사 샌님들이 감히 위나라의 정예들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우리들끼리 해결한다.
진궁의 말에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유배라니…. 설마 대장군께서 유배를 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지금까지 저지른 업보가 깊잖아.”
양수가 우려하며 중얼거렸다.
그에 진궁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변방으로 유배를 보내다니.
아득하게 범위를 넘어선 부부싸움이었다.
바람둥이 남편을 응징하고자 변방으로 유배를 보내버린 여자는 명부가 유일하지 않을까? 진궁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유배생활을 보내고 있을 이성휘를 떠올렸다.
“유배지에서 많이 힘드시겠죠? 제가 유배를 떠나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지만 분명히 고단하실 거예요.”
“여러모로 척박한 곳일 테니까요.”
대장군부의 참모들은 유배지로 압송되던 주군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했다. 아내의 노여움을 직탄으로 맞고 끌려가는 모습이 실로 안쓰러웠다.
잘 지내고 계실까?
아니,
당연히 힘드시겠지.
완전히 보내버리는 진짜 유배는 아니다. 복직이 약속된 유배였기에 지방관들이 편의를 봐줄 터였다. 하지만 춥고 척박한 변방에서 지내는 것은 고단한 일이었기에 진심으로 그를 걱정했다.
“듣자하니 고을에 사내들 밖에 없다던데.”
“위왕께서 금녀를 선포한 장소이옵니다. 당연히 사내들만 득실거릴 것이옵니다.”
경국지색의 미녀들을 처첩으로 삼으면서 위세를 떨쳤던 호색한에게 가장 어울리는 형벌이라고 할까.
끔찍하다.
사내들 밖에 없는 장소라니.
지금쯤 이성휘는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
군사회의에 소집된 참모들은 씁쓸한 한탄을 흘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호색한에게 내려진 인과응보인 것을.
“그런데… 언제 돌아오시죠?”
“…….”
양수가 물었다.
그에 진궁과 가후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 * *
위나라의 관료들이 연약한 황제를 겁박하여 양위를 강요했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졌다.
한나라에 충성하는 충의지사들은 피눈물을 뚝뚝 흘리는 심정으로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결코 반역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혈기를 토해냈다.
거병하라.
한나라의 충신들이여.
중원 전역이 한나라 부흥의 혈기로 들끓었다.
“패국조씨 가문을 주살하라!”
“한나라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위나라의 강경한 진압으로 쇠퇴했던 한나라 부흥의 불길이 다시금 치솟았다.
강압에 시달리는 가련한 황제를 구해내고자 충의지사들이 나섰다. 도시들을 모두 함락시키고 허도로 진격하겠다며 충성을 불태웠다.
하지만-.
혈기만으로는 부족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위나라의 전력은 무적에 가까웠다. 숙련이 부족한 사병들 따위로는 결코 거병에 성공할 수 없었다.
“역도들이 온다. 창검을 들어라.”
“숫자는 많아도 오합지졸이다. 단숨에 예봉을 격파하여 전장을 정리한다.”
위나라의 숙련된 장수들은 능숙하게 병력을 통솔하면서 창검을 들어올렸다.
뒤이어 돌격을 명령하면서 한나라 부흥을 부르짖던 반란군을 격파했다. 수많은 기병들이 성난 울음을 토해내면서 달려들자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반란군은 금세 와해되고 말았다.
“크아악!”
“노, 놈들이 온다! 응전하라!!”
말발굽이 지축을 흔들었다.
거대한 그림자에 휩쓸린 반란군은 흔적을 알아보기 어려운 어육이 되어 짓밟혔다.
한나라는 멸망한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그것을 일깨워주었다.
어떻게든 멸망을 저지하고자 한나라 부흥군이 용전을 벌였지만 대세를 뒤바꾸진 못했다. 오히려 위나라의 압도적인 전력을 만천하에 보여줬을 뿐이다.
부흥은 없다.
오직 멸망만이 존재할 뿐.
중원 전역에서 벌어진 거병이 실패했다. 결국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결연한 충성심이 짓밟혔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반란을 모두 진압한 위나라는 선양식을 준비했다. 한나라를 대신할 새로운 왕조를 열어젖히기 위한 최종적인 단계였다.
* * *
그로부터 2개월 뒤-.
마침내 이성휘는 돌아오게 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났다.
찬연하게 빛나는 햇볕이 이성휘를 환영해주었다.
이성휘는 고단했음을 알려주듯 제법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수염을 늘어트린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 그렇게 많이 힘들었는가…?”
창백한 낯빛.
퀭하게 변해버린 눈가.
거칠어진 피부와 수척한 얼굴.
적진에서 특수작전이라도 펼친 걸까.
수척해진 남편의 몰골을 목격한 아내는 대경실색하며 목소리를 떨었다. 인근의 지방관들이 여러 편의를 봐줬을 텐데도 저리 변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감히 물어보기 두려울 지경이었다.
“벌써 만삭으로 접어든 겁니까?”
“아직은 아닐세.”
잘록했던 조조의 배가 크게 솟아난 상태였다.
만월(滿月)이 된 걸까.
출산일이 머지않은 듯 보였다.
이성휘의 물음에 조조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대답했다. 만월이 가깝지만 아직 멀었다. 먼저 임신했던 여인들이 만삭에 접어들었으니까.
“원양과 문약의 산월이 머지않았네. 아마 시녀들도 만삭에 접어들었겠지.”
하후돈. 순욱. 여포. 장료.
동월에 임신했던 여인들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곧 아이가 태어날 테지.
한나라 부흥군을 모두 진압했다는 승전보를 받자마자 이성휘를 불러들였다. 아이가 태어나는 소중한 순간을 놓치게 할 순 없었으니까.
“앙이와 비아를 낳았을 때도 성휘가 곁을 지켜주지 않았는가? 그때 얼마나 든든했는지…. 계속 안절부절못하며 떠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네만.”
아이를 낳으면서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아연실색하며 떨었다고 들었다. 산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산월을 앞둔 아내들의 곁을 지켜주길 바란다.
조조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속삭였다.
“남편이 천하의 바람둥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남편이라도 사랑스러운 것을. 여느 여인들처럼 나도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모양일세.”
보고 싶었다.
항상 그대가 보고 싶었다.
2개월,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그리움에 사무쳤다.
바람둥이 남편을 용서하기로 결정한 조조는 샐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주했다. 수차례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난봉꾼임에도 사랑스럽게 보이다니… 조조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애정을 확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