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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614화 (614/616)

<6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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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유배를 오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근육질의 사내들이 득실대는 고을로 보내진 이성휘는 한숨을 내쉬면서 한탄했다. 아직도 믿겨지지 않았는지 당혹감을 느끼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핫핫핫! 역시 천하제일검이군요!”

“능숙한 솜씨이십니다.”

괴랄한 모습으로 환대해준 근육질의 사내들은 모두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죄인의 신분으로 들어온 이성휘는 사냥꾼들을 따라 수렵에 종사했다. 그저 놀고먹을 수는 없었기에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여 산짐승을 잡았다.

“아직도 수렵을 생업으로 삼다니…. 상당히 위험할 텐데.”

이성휘가 도착한 유배지는 험준한 산등성이로 둘러싸인 예주의 고을이었다. 산중의 포악한 호랑이들 때문에 여러 피해를 입는 것으로 유명했다.

조정의 병사들을 파견하여 호랑이를 대대적으로 토벌해야 하지 않을까. 이성휘는 호환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걱정했다.

“과연 대단하십니다!”

“그런가.”

함께 사냥에 나섰던 장정이 말했다.

덜컹덜컹-.

수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근육질의 거한들이 수레를 끌었다. 수레 위에는 놀랍게도 거대한 호랑이의 사체가 있었다. 이성휘가 직접 잡은 산중의 대호(大虎)였다.

약초를 채집하는 심마니와 산길을 이용하는 행인들을 수차례 습격하여 잡아먹은 맹수. 그러나 천하제일검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가 박살나서 죽고 말았다.

“대장군, 저희들이 후한 값에 사겠습니다.”

“괜찮다. 마을을 위해 써라.”

대금을 치르겠노라 말했다.

하지만 이성휘는 사양하며 유배지의 백성들에게 겸허히 넘겨주었다.

더부살이하는 군식구가 늘지 않았는가.

밥값일 뿐이다.

난데없이 조정의 죄인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곤혹을 치렀을 백성들을 배려했다.

“가, 감사합니다…!”

“크흑!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우락부락한 거한들이 육중한 흉근을 꿈틀꿈틀 떨면서 감격을 토로했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나는 산적들의 우두머리가 된 게 아닐까.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에게 추앙받는 자신의 모습에 회한을 느꼈다. 이대로 무리들을 이끌고 거병한다면 나라를 뒤집을 대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만의 화가 풀리면 돌아가겠지….’

위왕의 노여움을 받아 삭탈관작과 유배에 처해졌지만 이성휘는 ‘머지않아 풀려날 몸’이었다.

잠시 반성하고 있어,

화가 다 풀리면 바로 풀어줄 테니까.

조조는 이번만큼은 바람둥이 남편을 순순히 용서해줄 수는 없었기에 조치를 취했을 뿐이었다. 진심으로 남편을 내치려는 목적은 아니었기에 머지않아 유배에서 풀려나게 될 터.

이성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우락부락한 거한들과 함께 고을로 돌아왔다.

“대장군 아저씨!”

“와, 호랑이다! 대장군 아저씨가 잡은 거야?!”

고을로 돌아오자 아이들이 달려왔다.

과연 금녀(禁女)의 구역.

몰려든 아이들도 모두 사내였다.

부친을 닮았는지 고을의 아이들은 대장부의 자질을 뽐내고 있었다. 척박한 시골 출신이기 때문일까. 어린아이였음에도 다부진 무골을 자랑했다.

“저녁을 푸짐하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아름다운 시녀들이 지어준 진수성찬만 먹었기 때문일까.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만든 밥을 먹는다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는 철저한 금녀의 구역인 것을.

실로 잔인한 형벌이 아닐 수 없었다.

절세의 미녀들을 모두 처첩으로 삼았던 바람둥이에게 있어 고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고을… 정신적인 고립감이 너무도 상당했다.

“돌아오셨습니까.”

“다음에는 소졸들도 따르겠습니다.”

배소(配所)로 규정된 저택에 도착했다.

그러자 인근의 관아에서 파견된 병사들이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죄인이 배소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자 병력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성휘는 머지않아 석방될 몸이었기에 엄격하게 감시하진 않았다.

부부싸움에 쫓겨난 남편을 위로하고자 파견된 인력이라고 할까. 이성휘는 병사들과 농담을 나누면서 저택에 발을 들였다.

“허도에서 도착한 기별은 없나?”

“예, 아직 없습니다.”

유배지에 도착한 이후-.

1개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별이 없었다.

나를 잊은 게 아닐까.

슬슬 조바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장군, 오늘도 배소에 예물들이 도착했습니다.”

“또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으려는 사대부와 호족들이 이성휘에게 각종 진귀한 예물들을 보내왔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다.

부디 총애를 내려달라는 뇌물이겠지.

사대부와 호족뿐만이 아니었다. 지방관들까지 배소로 달려와서 알랑방귀를 끼었다. 혹시 불편한 점들이 없냐며 최대한 이성휘에게 편의를 봐주려 했다.

“대장군!”

“맹호를 잡으셨다고 들었사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사대부와 호족들이 몰려들었다.

벌써 소식이 알려졌단 말인가.

사대부와 호족들이 너스레를 떨면서 이성휘에게 온갖 아첨을 일삼았다. 어떻게든 권력에 기생하려는 사특한 의도였다.

“소인에게 참한 여식이 있사옵니다. 부디 대장군께서 첩으로 삼아주신다면 크나큰 영예일 것이옵니다.”

달콤한 아첨을 일삼았다.

눈부신 금은보화를 진상했다.

심지어 여식들까지 첩으로 바치려 했다.

참으로 지독한 권력욕이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으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꼴사납게 느껴졌다. 아무리 부귀영화가 좋다지만 어떻게 딸을 첩으로 바칠 수 있단 말인가.

유배에 처해진 상황에서도 미녀들과 놀아났다간 거센 후폭풍에 휩쓸릴 터. 현모양처를 주장하는 아내에게 이번에야말로 중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과연 다음은 어떻게 될까.

교주(交州)의 일남군(日南郡).

혹은 익주(益州)의 익주군(益州郡).

끔찍한 기후와 풍토병들이 넘쳐나는 죽음의 땅으로 보내지겠지. 스스로를 현모양처라고 주장하는 아내가 극대노하여 남편을 머나먼 이역만리까지 내쫓으리라.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비참한 악화일로의 종착역은 여기서 끝나야 했다.

“당장 내쫓아라. 아첨을 일삼는 역신들이다!”

“예, 예!”

어여쁜 여식들을 바치겠다니.

나를 정녕 죽일 셈인가.

실로 무시무시한 중상모략이 아닐 수 없다.

이성휘는 아연실색하며 유혹을 뿌리쳤다.

* * *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대의명분을 거머쥔 조조는 본격적으로 역천(逆天)에 돌입했다.

한나라를 멸망시킬 때가 왔다.

4백 년 사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리라.

패국조씨 가문에 충성하는 관료들이 연이어 유협에게 양위를 재촉했다. 천하를 통일하였으니 이제 그만 위나라에 천하를 넘기라는 압박이었다.

“순리에 따르셔야 합니다.”

“한나라의 명맥은 이미 쇠퇴했습니다. 부디 천명에 따라 위나라에 선위하십시오!”

역천의 대의명분이 충분했다.

이것은 찬탈(簒奪)이 아니다.

순리대로 물려받은 선양(禪讓)으로 기록되리라.

그렇기에 위나라의 신하들은 한나라의 조정에 몰려들어 격앙된 목소리로 일갈했다. 실로 천인공노할 위나라의 만행에 한나라의 신하들은 비분강개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가당치도 않다!”

“선양이라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한나라를 무력한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빈껍데기로나마 남은 사직마저 지워버릴 셈인가.

선양.

그것은 한나라의 멸망을 의미했다.

중원을 오랫동안 다스렸던 한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연이은 난세로 쇠락을 거듭했던 한나라는 이윽고 멸망을 코앞에 두게 되었다.

“역적이라니! 만약 위왕께서 천하를 통일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황실과 조정이 존재할 수 있었겠소?”

“얌전히 순리에 받아들이시오! 이제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하여 새로운 사직을 열 것이니!”

치려와 화흠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한나라의 신하들을 꾸짖었다. 뒤이어 바깥에서 대기하던 장졸들이 몰려들어 좌중을 통제했다.

허락을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만 퇴장하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옥좌를 비워라.

새로운 주인께서 들어오실 것이니.

한나라의 신하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이미 대세는 결정된 뒤였다. 위왕에게 선양하겠다는 황제의 재가만을 앞두고 있을 뿐이었다.

“좋다. 위왕에게… 선양하겠다.”

옥좌에 앉은 소녀가 입을 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목소리로 선양을 윤허했다.

황위를 넘기겠다.

난세가 종결되고 천하가 통일되었으니.

유협은 중신들의 요구대로 조조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운이 쇠락한 한나라는 이제 백성들을 이끌 힘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오라비를 잠시 물러나게 했구나.’

한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지독한 악명은 영원토록 후세에 이어지겠지. 그렇기에 조조는 이성휘를 잠시 변방으로 보낸 것이었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옥좌에서 내려오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경애하는 오라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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