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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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장남을 왕세자에 책봉하여 후계구도를 확립하려 했다. 일찍부터 후계자로 임명하면서 견고한 지지기반을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왕세자(王世子) 조앙.
다섯 살 아들을 후계자로 내정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유년이 화려한 예복을 입었다. 가문의 시녀들은 왕세자의 위엄이 넘치는 도련님을 바라보면서 꺅꺅 환호성을 내질렀다.
“너무 귀여우세요, 도련님!”
“이제 우리들의 저하가 되시는 거예요!”
친자식처럼 조앙을 양육했던 시녀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기뻐했다. 부모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쑥쑥 자라준 도련님을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백옥처럼 새하얀 얼굴.
꽃봉오리가 피는 듯한 순진무구한 미소.
과연 왕세자에 어울리는 품격이다.
위나라의 중신들을 단번에 열렬한 지지자로 만들었을 정도로 귀엽고 깜찍했다. 조앙이 아장아장 걸으면서 다가올 때마다 시녀들은 얼굴을 붉혔다.
“나, 멋있어요?”
“네! 물론이에요, 저하!”
“얼마만큼요?
“하늘만큼 땅만큼… 너무 멋지세요, 세자 저하!”
와아아-.
조앙이 손뼉 치며 기뻐했다.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다.
사랑스러운 도련님의 모습에 시녀들은 감격에 벅차올랐다. 정말 올바르게 자라주었다. 매번 불륜으로 인한 부부싸움을 반복하는 부모님의 악영향을 이겨내고서 쑥쑥 자라준 도련님에게 경의를 표했다.
“바깥이 시끌벅적하군.”
가문의 시녀들이 도련님의 아기자기한 귀여움에 흠뻑 빠졌을 때,
조조는 내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녀를 초청해주셔서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살포시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낙양제일미.
대장군의 안주인.
시녀들을 모두 통솔하는 시녀장.
화려한 예복을 차려입은 초선이 백조처럼 아름다운 기품을 뽐내면서 차를 우려냈다.
달그락-.
우아한 손길로 찻주전자를 들어올렸다.
향긋한 냄새와 함께 벚꽃차를 찻잔에 담아냈다.
“초봄에 피어난 벚꽃을 넣었사옵니다. 두통과 기침에 좋다고 하옵니다.”
“흠, 그런가.”
말린 벚꽃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딱 좋은 온도였다.
찻물에 떠오른 벚꽃잎도 아름다웠다.
과연 훌륭한 실력이다.
조조는 이따금씩 낙양제일미를 저택에 초대하여 차를 주문했다. 초선이 정성스럽게 우려낸 차는 무엇보다 풍미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먹겠느냐?”
“…….”
조조가 화과자를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니를 빼닮은 유년이 고개를 꾸벅였다.
우물우물-.
앙증맞은 입으로 화과자를 물었다.
마치 산에서 내려온 토끼를 보는 듯했다.
조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화과자에 집중하는 유년을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장래가 촉망될 정도로 외모가 출중했다.
“이것도 맛있을 게다.”
“…네.”
아름다운 용모와는 반대로 매우 과묵했다.
타고난 성격일까,
속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무뚝뚝하다.
얼굴은 낙양제일미인데 성격은 이성휘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무뚝뚝한 유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조조는 이성휘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정말 소녀와 현이가 세자 책봉식에 참석해도 되겠사옵니까?”
“물론이다. 누가 뭐라고 할까.”
조조는 초선과 이현을 책봉식에 초대했다.
초선은 남편의 첩이다.
또한 이현은 사랑하는 아들의 이복동생이었다.
처음에는 껄끄럽게 여겼지만 지금은 가족처럼 챙겨주었다. 초선은 이성휘에게 총애를 받고 있음에도 결코 정실의 위치를 넘보지 않았기에 조조는 겸허한 성품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럼… 상공도 참석하시는 것이옵니까?”
“안타깝게도.”
초선이 물었다.
그에 조조가 헛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분명 상공께선 도련님의 책봉을 크게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위나라의 세자가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
당연히 기뻐해주겠지.
금지옥엽처럼 키운 아들이니까.
매번 아내를 배신하는 바람둥이 주제에 아들만큼은 끔찍이도 아꼈다. 세자의 예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할 테지.
초선의 물음에 조조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자 책봉식이 거행되었다.
위나라의 후계자.
장차 무소불위의 권력을 승계할 2세대.
천하를 제패하면서 쌓아올린 권력의 후계는 조조와 이성휘의 장남에게 주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장남 조앙은 정통성을 계승한 적자(嫡子)였으니까.
“앙아, 교서를 받들어라.”
“네엡.”
어머니가 명령했다.
그에 다섯 살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랑한 뺨.
백옥처럼 새하얀 얼굴.
아기자기한 양손으로 교서를 거머쥐는 조앙의 모습에 위나라의 중신들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라도 조앙이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언젠가는 네가 위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그때까진 어미가 최선을 다해 기반을 마련해두마.”
부드러운 모성애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왕세자에 책봉된 아들에게 속삭였다.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순진무구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불안감을 느꼈다.
본인의 이기심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중압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무서웠다. 조조는 두려움에 떨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잘해내겠슙니다.”
그에 조앙이 웃으면서 말했다.
말뜻을 이해한 걸까?
아니,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겠지.
몹시 슬퍼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자 어설프게 대답했을 뿐이다. 하지만 비록 어설픈 위로라고 할지라도 조조에게는 따스한 구원과도 같았다.
“고맙구나.”
사랑하는 아들의 손을 꾹 붙잡으며 말했다.
* * *
책봉식이 끝나자 관복을 걸친 사내가 다가왔다.
이성휘였다.
남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불편한 마음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결국에는 왔군.”
“아만이 저를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바람둥이 남편이 아무리 밉더라도 아들의 책봉식에 불참시킬 정도로 매정하진 않았다.
위나라는 자신과 이성휘가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이룩한 유산과 같았다. 권력을 승계할 왕세자를 책봉하는 자리에 이성휘를 빼놓을 수 없었다.
“앙이는 잘해낼 겁니다. 장성할 때까지… 충성스러운 중신들이 앙이를 보필할 테니까요.”
“그렇겠지.”
위나라의 개국공신들은 성군의 자질을 갖춘 조앙을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마치 삼촌과 이모처럼 조앙을 귀여워하며 불변의 충성을 맹세했다.
왕세자의 지위와 정통성 또한 건재할 터.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벌써부터 미지의 두려움에 떨 이유는 없었다.
이성휘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조조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껴안았다. 조조는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사랑하는 남편의 품에 기대었다.
“아만, 미안합니다.”
“흥…. 매번 그렇게 넘어가놓고선.”
불만을 토로하며 적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격렬하게 거부하진 않았다.
품에 매달렸다.
너무도 그리웠던 사내의 온기를 느꼈다.
어째서일까.
마음껏 미워하기로 다짐했음에도 결국 마음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사내의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일편단심을 추구하던 옛날의 모습을 돌아갔다.
“앙이가… 나에게 위로를 해줬네. 잘해내겠다고, 못난 어미에게 그리 말해주었어.”
울음기가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옷소매를 꾹 움켜잡았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위태롭게 바르르 떨렸다.
조조는 이성휘에게 불안한 속마음을 그대로 밝히면서 격정을 토해냈다.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는 사내에게 계속 매달렸다.
“저희들이 있지 않습니까. 앙이가 장성하여 훌륭한 성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니까요.”
“파락호가 할 말은 아닐세.”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내연녀들을 끌어들인 바람둥이가 할 말이 아니긴 했다. 조조의 일침에 이성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반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침묵해야 했다.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처럼 끙끙 앓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웃음을 터트렸다. 물벼락을 맞고 쫓겨났던 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일단 용서해주겠네. 하지만 넘겨짚진 말게. 어디까지나 앙이를 위해서이니. 계속 불화를 이어나가면 앙이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감사합니다.”
또다.
또 용서하고 말았다.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남편을 노려보았다.
이성휘가 늘씬한 허리를 껴안으며 아내와 입맞춤을 했다. 조조는 거부하지 않았다. 애증의 대상에게 온몸을 맡기면서 농밀한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 * *
이제 그만 용서하겠다.
그러나,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황명이 발동되면서 이성휘에게 삭탈관직과 함께 유배가 내려졌다. 이미 유협이 조조의 상소문을 윤허했기에 속전속결로 끌려가게 되었다.
“잠깐 요양을 떠난다고 생각하면서 다녀오게. 그렇게 오래 유배가 이어지진 않을 걸세.”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유배지로 떠나는 남편을 직접 배웅해주었다.
무섭다.
대체 어디로 끌려가는 걸까.
대장군의 관인을 내려놓은 이성휘는 위병들에게 붙잡힌 채 유배지로 끌려갔다. 허도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어느 작은 고을이었다.
“그핫핫!”
“오신다는 말씀을 들었소!”
“천하제일검께서 우리 고을에 왕림하시다니… 참으로 영광이외다!”
온통 남자들이다.
우락부락한 근육의 향연이다.
고을이 온통 웃통을 벗은 사내들로 가득했다.
노파와 유녀조차 존재하지 않는 철저한 금녀(禁女).
근육질의 거한들로 가득한 고을에 도착한 이성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여기는 정녕 지옥인가. 결국 천벌을 받아 지옥으로 끌려온 게 틀림없었다.
“천하제일검께서도 좋은 몸을 가지고 계시구려.”
“우리들도 앞으로 더욱 정진해야겠소!”
근육-. 근육-.
살아있는 근육들을 보는 듯하다.
여기는 대체 어디지.
백정들이 사는 고을로 끌려온 건가.
병권을 관장하는 대장군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한 이성휘는 지옥에 떨어졌다. 여인들이 아무도 없는 금녀의 고을에서 유배를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