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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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해낸 대장군 이성휘가 초췌해진 몰골로 왕복을 이어나갔다.
봉변이라도 당했는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안쓰러운 처지였다.
대체 어떻게 된 사건일까.
허도 백성들은 어렵게 고민하지 않았다.
천하제일검에게 치욕적인 봉변을 가할 정도의 담력을 가는 존재는 한 명뿐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빈번하게 그러했듯이 부부싸움의 일환일 터였다.
“아하핫! 참 격동적이네요, 항상 이런가요? 또 성휘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박장대소하며 오랜 벗에게 물었다.
대장군이 또 쫓겨났다.
초췌해진 몰골로 당당하게 돌아갔다.
원소는 조조가 방문하자마자 시녀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대해 물으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이성휘와 조조의 부부싸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나는 안 웃긴다만.”
원소가 한손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웃었다. 그에 조조는 심드렁한 반응을 고수했다.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더욱 깊어지자 조조의 얼굴에 수치심이 번져나갔다. 짓궂게 비웃는 벗에게 노여움을 느끼면서도 애써 태연한 모습을 연기했다.
“백성들이 실의를 이겨낼 수 있도록 익살스러운 연극을 보여주다니… 맹덕과 성휘는 진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는군요. 애민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흥.”
시답잖은 농담이다.
조조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쯤 용서해줄 생각이신가요?”
“내가 왜 용서를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원소가 물었다.
그에 날카로운 답변으로 받아쳤다.
“고집불통이시군요. 슬슬 유년기의 버릇을 고칠 때도 됐는데 말이에요.”
“난 잘못한 게 없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도 여전하네요.”
“시끄럽군.”
과연 화해가 가능할까.
위나라의 참모들은 표독스러운 면모를 일관하는 조조의 모습에 절망을 토로했다.
하지만 원소는 달랐다.
빙그레 웃으면서 계속 조조를 응시했다.
표독스러운 악처의 모습을 보이지만 진심으로 이성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원소는 머지않아 부부싸움이 종식되리라 예견했다.
“아빠, 언제 또 와? 또 보고 싶어!”
흑발을 늘어뜨린 유녀가 양손을 내저으면서 초롱초롱하게 두 눈을 빛냈다.
싸늘하게 정색하는 엄마.
물벼락을 맞고 쫓겨나는 아빠.
아이의 눈에는 장난으로 보였던 걸까.
조비는 꺄륵꺄륵 웃으면서 기뻐했다.
“아부지한테 내일 수건 드리자.”
“응!”
수려한 용모를 자랑하는 유년이 말괄량이 여동생에게 제안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됐는지 수건을 드리려 했다.
벌써부터 효성이 지극하다.
누구를 닮아 이렇게 명석하고 착한 걸까.
원소는 이성휘를 빼닮은 조앙을 양손으로 껴안으면서 뺨을 비볐다.
“우으으! 정말 귀엽네요! 성휘하고 똑 닮았어요!”
커다란 눈망울.
깃털처럼 부드러운 뺨.
정성스럽게 만든 인형처럼 작고 왜소한 어깨.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은 귀여운 유년에게 매료되었는지 그대로 번쩍 안아들었다. 사랑하는 사내를 빼닮았기 때문일까, 풍부한 모성애가 요동쳤다.
“주전부리라도 드릴까요?”
“네엡.”
조앙이 고개를 꾸벅이며 대답했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성에게 주전부리를 받아든 조앙은 곧바로 여동생에게 나눠주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고 했던가.
위나라의 세자에 책봉될 도련님은 벌써부터 성군의 자질을 보였다. 지극한 효성과 겸허한 성품을 겸비한 도련님은 분명 성군이 될 것이었다.
“세자 책봉이 언제라고 했죠?”
“1주일 뒤에 거행할 예정이다.”
예전부터 총애하는 장남을 위나라의 세자에 책봉하고자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성군의 자질을 타고난 도련님은 위나라의 개국공신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성휘의 처첩들이 조앙을 유독 총애했다.
이미 결정을 내렸다.
절세의 신동이 태어나더라도 장남만큼 총애하진 않으리라. 그렇게 판단한 조조는 벌써부터 조앙을 세자에 앉히려 했다.
“많이 이른데요. 이제 겨우 다섯 살이잖아요.”
“내가 정정하니 상관없다.”
누가 감히 불만을 품겠는가.
위왕 조조의 아들이다.
또한 대장군 이성휘의 아들이었다.
지금은 부부싸움으로 곤혹을 겪고 있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세자의 정통성으로 이어지리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성휘와 화해하길 바라요. 벗으로서 올리는 부탁이에요. 나를 구해주었던 당신들이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니까.”
“…….”
알고 있다.
어찌 그것을 모를까.
화해를 해야겠지.
머지않아 세자 책봉식이 열리니까.
정성스러운 충고가 들불처럼 격앙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조조는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제 혼례는 어떻게 됐죠? 빨리 약조를 지켜주세요, 맹덕. 어물쩍 넘길 생각은 말아요.”
“큭! 얌전히 기다려라!”
원소가 팔짱을 끼며 쏘아붙였다.
그에 조조는 침음을 삼키면서 대꾸했다.
‘지금 당장… 성휘의 아이를 품고 싶어졌어요.’
의젓한 도련님을 바라보면서 따스한 모성애에 차오른 원소는 출산과 육아에 흥미를 내비쳤다.
남편을 빼닮은 아들.
아들을 대할 때마다 얼마나 행복할까.
그 행복은 이루 표현할 수 없겠지.
원소는 조조에게 약조의 이행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모성애를 키워나갔다. 아름다운 미소를 배시시 흘리면서 사랑하는 사내와의 신혼생활을 상상했다.
“…….”
이 년은 나를 설득할 셈인가.
아니면 울화통을 자극하려는 것이 목적인가.
사방이 온통 불여우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향연이었다.
* * *
삭탈관직과 유배,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마땅히 감수해야 마땅한 응분이었으니까.
진심으로 아내와 화해하고 싶다.
오늘도 물벼락을 맞고 돌아온 이성휘는 심사숙고하며 방도를 고민했다. 새로운 방도가 필요하다. 이성휘는 물벼락을 며칠 동안 맞고서야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감기 걸리겠어, 주인님.”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부자연스러운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다가왔다.
물에 흠뻑 젖은 이성휘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이성휘는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주인님도 정말 미련스럽다니까…. 그냥 놔두면 알아서 화가 풀릴 텐데 말이야.”
여포는 임신하면서 부쩍 무거워진 몸을 추스르면서 이성휘의 옆에 앉았다. 혹시라도 뒤로 넘어질까 이성휘는 여포를 부축해주었다.
배려심 깊은 행동에 여포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주인님은 천하를 대표하는 영웅이잖아. 당연히 삼처사첩은 기본이지. 우리 본처께선 작고 납작한 가슴처럼 아량과 배포도 얄팍하다니까?”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남편의 삼처사첩을 허락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여전히 질투와 독점욕을 과시하는 조조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 체념할 만도 한데….
어째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내가 본처였다면 좀 더 관대했을 것 같은데.
천하를 대표하는 영웅의 정실부인이 되었으면 조금쯤은 관대함을 베풀어도 좋지 않을까. 여포는 성격머리 더러운 빈유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믿음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해버렸어…. 마음이 돌아서는 것도 당연해.”
숙연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미움 받아 마땅했다.
믿음을 배신한 것으로도 모자라 기만까지 해버렸으니까.
이성휘는 자신에게 기댄 여포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메마른 손바닥으로 턱을 쓰다듬자 여포는 갸르릉 소리를 내며 매달렸다.
“싸웠으면 당연히 화해를 해야겠죠. 화해와 다툼을 반복하면서 다들 성숙해지는 법이잖아요?”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속삭였다.
양손을 뻗었다.
실의에 빠진 남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이성휘는 탐스럽게 솟은 장료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면서 생명의 고동을 느꼈다. 여포가 옆에서 재촉하자 그녀의 아랫배 또한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다들 고맙다, 한심한 남편을 위로해줘서.”
임신한 아내들을 성심성의껏 보살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위로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정말 과분한 현모양처들이었다.
언젠가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여포와 장료의 위로에 이성휘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결연한 눈빛을 드러냈다.
“도련님께서 세자에 책봉되실 거예요. 세자 책봉식에서 마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위나라의 세자에 책봉된다.
당연히 모두 책봉식에 참석할 터.
그때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적어도 책봉식에서는 일방적인 축객령을 내리진 않을 테니까.
“응원하고 있을게요.”
“주인님이라면 당연히 잘해낼 테니까.”
본처를 쳐내고 총애를 독차지하려는 야심을 품었다면 결코 화해를 종용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총애를 독차지하고 싶다.
그런 욕심을 은연중에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여포와 장료는 경애하는 주인님의 행복만을 염원하는 충성스러운 시녀들이었다. 그렇기에 여포와 장료는 이성휘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