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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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벌군이 성도(成都)에 당도했다.
익주를 거머쥐었다.
천하통일의 완수를 명분으로 거병했던 위나라는 마침내 파촉(巴蜀)에 군기를 꽂았다.
지배권의 상실로 혼란기에 접어들었던 파촉을 점령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해방시켰다. 위나라의 군세들이 성도에 입성하자 열렬한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조정군이다!”
“이제 살았다! 조정군이 왔다!”
불에 그슬린 성벽.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시가지.
참화에 휩쓸린 성도의 풍경이 실로 참혹했다.
유장이 부하들과 도망쳤다.
군현들을 휩쓸면서 성도로 진격했던 반란군은 유장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약탈을 벌였다. 그로 인해 파촉의 도읍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만승천자의 꿈이… 허망하게도 짓밟혔군.”
친위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성도에 입성한 이성휘가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덧없는 결과였다.
이것이 바로 야망의 말로란 말인가.
지금의 참상을 유언이 목격했다면 피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했으리라. 익주를 발판으로 천하를 향해 포효하려 했던 유언의 꿈은 처참하게 종식되었다.
“크흑!”
“서, 성도가 이리도 무참히…!”
유장을 뒤따라 위나라에 투항했던 익주의 장수들이 통한의 서러움을 쏟아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성도의 시가지는 몰락을 상징하는 폐허로 변모했다. 상인과 행인들로 북적였던 장소는 오로지 죽음의 냄새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장졸들은 성도의 치안을 서둘러 확보하라! 역도들이 동태를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란군의 참화에 휩쓸렸던 성도는 도적들이 들끓을 정도로 치안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법이 무너졌다.
규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무주공산의 비참함이었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유장마저 부하들과 함께 도주하면서 일말의 희망조차 무너졌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혼란의 여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성문을 사수하고 시가지를 통제하라!”
“지금부터 일벌백계하여 다스릴 것이다! 성도의 백성들은 모두 따르도록 하라!”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익주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섰음을 알리고자 지배와 통치를 시작했다.
익주를 제패했던 유언은 죽었다.
세력을 계승한 유장은 익주를 버렸다.
이제 익주는 위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리라.
대장군부의 장수들은 시가지에 벽보를 붙이면서 위나라의 영토가 되었음을 알렸다. 또한 장졸들을 보내어 치안을 단속하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역도들의 수급을 베어왔습니다.”
장합과 고람이 승전보와 함께 전리품을 진상했다.
심미. 누발.
반란을 주도했던 수괴들의 목이었다.
과격파 호족들을 대표하는 심미와 누발이 참수되면서 반란의 불길이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위나라에 투항하는 호족들이 더욱 늘어났다.
“수고했다. 과연 하북사정주로군.”
하북의 항장들은 선봉장으로 활약하며 익주 정벌에 막역한 전공을 세웠다.
전장을 거침없이 누비면서 반란군 세력들을 정벌했다. 과연 하북을 대표했던 맹장답게 수많은 군세들을 단번에 궤멸시켰다.
“한중군의 오두미교 세력은 어떻게 할까요?”
승전보를 알렸던 장합과 고람이 물러나자 제갈량이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한중군(漢中郡)의 장로.
오두미교를 추앙하는 세력이 여전히 한중군을 점거하고 있었다.
종교를 이용하여 무리들을 규합하는 장로의 행동에 제갈량은 경계심을 느꼈다. 그들의 행동이 마치 황건적을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일단 공세를 멈추고 영토들을 수습한다. 한중군은 일단 투항을 요구하는 서한만 보내볼 생각이다.”
익주를 정벌하기 위한 강행군을 거듭하느라 장졸들이 크게 지친 상태였다.
장로군은 한중군의 방비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방치했다. 당장 싸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장로의 심중을 알아보고자 서한만 보냈다.
“유비군이 있었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조금은 아쉽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만큼 형주도 중요하니.”
이성휘는 유비군을 물자들이 가득 비축된 강릉성에 주둔시킨 이후에 파촉으로 진입했다.
후방의 방위와 보급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일당백을 자랑하는 유비군에게 일임했다.
하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이다.
유비군에게 입촉(入蜀)을 명령해도 되는 걸까.
반신반의하며 고민을 거듭했던 이성휘는 결국 유비군을 편제에서 제외했다. 연이어 선봉을 도맡은 유비군을 대신하여 하북의 항장들을 내세웠다.
‘그나저나 유장이 백제성에서 투항하다니…. 얄궂은 인과로군. 흐름이 뒤틀리면서 인과도 무너진 건가.’
백제성(白帝城).
이릉대전에서 대패한 유비가 사망한 지역이다.
익주의 명운이 끊어졌다.
성도에서 도망쳐온 유장이 무리들을 이끌고 투항함으로서 백제성은 파촉의 몰락을 상징하게 되었다.
참으로 절묘한 인과가 아닌가.
결국 백제성에서 익주의 운명이 결정되다니.
“이제 익주도 거머쥐셨네요. 관서의 이민족과 남만이 걱정이지만… 별다른 위험은 되지 못할 거예요.”
농서(隴西)에 숨어든 강족과 저족.
영창(永昌)과 월수(越嶲)에 숨은 남만족들.
후환들이 도처에 존재했다.
위나라의 공세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난 변방의 오랑캐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제갈량은 이성휘에게 서역과 남만까지 모조리 정벌할 것을 권유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정벌군을 일으켜야 할 테니까.
“대장군! 대장군!! 큰일, 큰일 났음! 막막 다급한 일이 벌어졌음!!”
제갈량과 향후를 의논하고 있었을 때,
작은 다람쥐처럼 생긴 소녀가 전력질주를 자랑하듯이 달려왔다.
어디 불이라도 났나?
이성휘와 제갈량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군더러 빨리 허도로 올라오라고 함! 무시무시한 여자가 드디어 대장군을 족치려는 거임!”
“…지금?”
정벌군의 지휘를 휘하의 장수들에게 위임하고 서둘러 허도로 상경하라. 황제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조조의 엄명이 분명했다.
유협이 돌발적인 명령을 내릴 리가 없었으니까.
내가 그렇게나 미우신가.
당연하겠지.
지금까지 수차례 실망시켰으니까.
이성휘는 쓴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돌아가야겠지.”
대장군부의 유능한 제장들이라면 분명 정벌군을 훌륭하게 지휘할 터.
문제될 것은 없다.
급한 불들은 모두 진압했으니.
지금 우려스러운 것은-.
노발대발하고 있을 아내의 노여움이었다.
* * *
성휘가 돌아온다.
몇 달 뒤에 허도로 돌아올 터.
뭐라고 말할까.
일단 화부터 내야겠지.
현모양처를 매번 배신했으니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야 마땅했다.
“후우….”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숙연해진 마음을 내쉬면서 창가를 바라보았다.
가만 안 둬.
뻔뻔하게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번에야말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이를 빠득 갈면서 노여움을 담아냈다.
유황불처럼 선명한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기필코 외딴 고을로 유배를 보내겠다며 다짐했다.
“그래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네, 성휘.”
남편이 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했다.
증오는 사랑의 대척점에 선 감정이 아니다.
애증(愛憎)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조조의 마음속에서 증오와 사랑은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도 편중되지 않고서 증오와 사랑은 공존을 이뤄냈다.
“비아야, 아부지께서 돌아오신대!”
“진짜?! 아빠아!”
어디서 들은 걸까.
촉새처럼 수다스러운 시녀들이 일렀겠지.
산뜻하게 꾸며진 화원에서 뛰어놀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그에 조조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문약에게…!”
원양?
이해한다.
첩으로 인정해준 사촌이니까.
여포와 장료?
그 또한 이해한다.
결국 첩으로 인정해줬으니까.
하지만 순욱은 아니었다.
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연인으로 인정해준 적도 없다.
왕좌지재의 재상을 하북에 파견했더니 쌍둥이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쌍둥이라니! 대체 얼마나 오붓하게 밤을 보냈으면 쌍둥이를 임신한단 말인가…!
마땅히 형벌이 필요하다.
궁형(宮刑)이라도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짜 태교만 아니었어도 욕을 해줄 텐데!”
혹시라도 뱃속의 아이가 들을까봐 언행에 신중함을 기울였다. 당장이라도 ‘나쁜 새끼! 씹새끼!’를 크게 외치면서 분기를 토해내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소중한 아이였으니까.
그 사람의,
미우면서도 사랑하는 남편의 아이였으니까.
“지금쯤이면 교서가 도착했겠군요.”
조용히 대기하던 진궁이 말했다.
그에 조조가 코웃음을 쳤다.
“흥, 설왕설래하며 허둥대고 있을 테지.”
바람둥이.
천하의 난봉꾼.
여전히 부아가 치밀었다.
도망을 쳐?
감히 이 조맹덕에게 잔꾀를 부리다니….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면죄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 실로 조악한 잔꾀였다. 조조는 두 눈을 부릅뜨며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을 힐난했다.
“이제는 어린 계집까지도 잔꾀를 부리는군. 화해를 주선해보려는 모양인데…! 흥, 내가 모를 줄 알고.”
화해?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빌어먹을 남편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개과천선을 약속한다면 모를까. 연민과 동정이 느껴질 정도로 굴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용서를 못 해줄 것도 없었다.
물론 진심어린 사죄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황제의 명을 받아들이셨군요.”
“흥.”
진심으로 이성휘가 미웠다면 화해를 주선하려는 황제의 명령을 즉석에서 뿌리쳤을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다.
어린 황제의 명령 따위는 한낱 휴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조조는 황명을 받아들였다.
남편을 만나고 싶다.
그의 무사함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길길이 날뛰면서 미워하면서도 이역만리로 떠난 남편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진궁의 말에 조조는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면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