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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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가 서서히 종식되고 있다.
머지않아 통일이 도래할 터.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쥔 조조가 천하를 장악했다는 소식은 머나먼 교주(交州)에도 널리 전해졌다.
이역만리에 위치한 변방들 중에서도 교주는 중원과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하지만 중원에서 들어온 상인과 난민들에게 소식을 계속 들었기에 천하의 흐름을 얼추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 난세가 끝나려는 모양이구나.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난세가 끝자락에 다다르다니….”
형주(荊州)가 굴복했다.
익주(益州) 또한 압도적인 힘에 굴복할 터.
백마지맹을 위반하여 위나라를 건국한 조조가 천하를 장악했다. 동맹이었던 손견군도 결국 종속을 받아들이면서 양주(揚州)도 위나라에 편입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교주뿐이다.
위나라에서 종속을 강압하는 사절단이 도착하겠지.
교주태수(交趾太守) 사섭은 그를 기다렸다.
“위왕으로 즉위한 조조는 가혹한 인물입니다. 혹시라도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까… 저는 그것이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익주마저 위나라에 복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섭은 급히 동생들을 용편현(龍編縣)으로 불러들였다.
합포태수(合浦太守) 사일.
구진태수(九眞太守) 사유.
남해태수(南海太守) 사무.
사섭의 동생들은 교주에서 권세를 휘두르면서 지방관을 역임하고 있었다.
창오사씨 가문은 후한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교주로 이주하여 막대한 세력을 구축했다. 그를 알기에 조정에서도 창오사씨 가문의 자제들을 지방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한나라의 모든 지역들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들도 마땅히 복종해야 합니다. 위대한 조상들께서 이룩하신 고토(故土)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구진태수 사유가 형제들을 바라보면서 투항을 진언했다.
6대에 걸쳐 이룩한 땅이다.
우리 세대에 평화를 무너트릴 순 없다.
난폭한 괴물처럼 사나웠던 난세를 단숨에 끝장내버린 위나라는 공포의 상징과도 같았다. 창오사씨 가문의 형제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했다.
“틀림없이 조세를 과중하게 거두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소모했던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고혈을 쥐어짤 게 분명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희생과 굴욕이 뒤따르더라도.
교주를 오랫동안 다스렸던 창오사씨 가문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사섭은 동생들과 함께 전전긍긍하며 위나라의 조서를 기다렸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을까. 마침내 위나라에서 조서가 도착했다.
“교주태수 사섭은 대장군의 명령을 받들라!”
사절이 당도했다.
대장군부에 소속된 장수와 무관들이었다.
익주를 정벌하고 있었을 때,
이성휘는 휘하의 장졸들을 교주의 사절단으로 파견했다. 최대한 신속하게 교주의 투항을 받아내고자 함이었다.
“대장군…?”
“이성휘가 사절을 보냈단 말인가?”
위왕을 대신하여 대장군이 사절을 보냈다.
예상을 벗어난 일이다.
하지만 창오사씨 가문의 형제들은 의아함을 드러내면서도 대장군의 사절단을 공손히 맞이했다.
대장군 이성휘는 위왕 조조의 부마였다.
또한 천하를 제패한 영웅이기도 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병권을 관장하는 대장군의 명령은 왕명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섭과 형제들은 예를 취하면서 교서를 받들었다.
“교주태수 사섭을 열후에 책봉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주 7개 군을 평온하게 다스렸던 전공을 깊이 참작하여 안남장군의 벼슬을 더할 것이다.”
위나라는 이역만리나 떨어진 교주를 직접적으로 다스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랫동안 교주를 통치했던 창오사씨 가문을 강제적으로 배제한다면 도리어 통치만 무너질 뿐이다. 그렇기에 사섭을 제후에 책봉하면서 통치를 인정했다.
조세만 꼬박꼬박 내라.
교주의 통치에는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위나라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였다.
“사, 삼가 받들겠소이다!”
사섭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주 7개 군의 통치를 허락받았다.
그리고 제후에 책봉됨으로서 지금까지 계속 승계되었던 권력의 정당성까지 받게 되었다.
더할 나위 없는 제안이었다.
위나라의 간섭을 우려했던 사섭은 위나라의 교서를 받듦으로서 걱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매년 교주의 특산물들을 보내시오. 대신에 조세는 기존의 3할로 탕감해주겠다고 하시었소.”
군비를 확충하기 위한 폭정을 우려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위나라는 조세를 대폭 줄이는 유화책을 펼쳤다.
한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난 교주를 위나라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함이었다. 천하통일의 완수를 대의명분으로 삼고 있는 위나라였기에 교주의 편입은 당연히 성사되어야 했다.
“창오사씨 가문과 교주 7개 군은 충성을 다해 위나라의 국은에 보답할 것이오. 위왕과 대장군의 명이라면 결코 노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외다.”
중원으로부터 독립하여 나라를 건국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교주를 장악한 지배권을 인정받기를 원할 뿐이었다.
사섭이 충성을 맹세했다.
뒤이어 사섭의 동생들도 위나라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창오사씨 가문의 투항으로 교주 7개 군이 위나라의 영토로 들어왔다. 마지막 남은 교주마저 투항을 선언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천하가 다시 통일되었다.
천하통일의 완수.
우여곡절 끝에 대업을 달성했다.
이제 남은 과정은 단 하나-.
위나라의 천하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 * *
조조가 이성휘의 삭탈관직과 유배를 요구하는 상소문을 황실에 올렸다.
아,
또 부부싸움이구나.
유협은 단번에 직감했다.
지금까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렇기에 부부싸움의 원인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분명 오라비께서 바람을 피웠겠지. 성격 더러운 여자가 길길이 날뛰는 것을 보아하니 여러 여자들과 동시에 불륜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일말조차도 예상을 빗나가질 않는군…. 매번 똑같은 이유로 싸우는가.”
그렇게 싸우고도 안 질리니?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지금까지 갈라서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다.
유협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위풍당당하게 입궁한 조조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품은 상태였음에도 사나운 위압감이 온몸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군말은 필요 없습니다. 재가를 내려주십시오.”
잔소리 들을 생각 없어.
삭탈관직과 유배를 윤허한다는 교서나 내놔.
조조는 유협의 말을 초지일관으로 무시하면서 윤허를 강요했다. 사랑스러운 아내를 매번 배신했던 천하의 난봉꾼을 향한 복수심이 느껴졌다.
“성급하게 결정내릴 문제가 아니다.”
“폐하는 옥새만 찍으시면 됩니다.”
“태중에 아이도 있지 않나?”
“아버지가 없는 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
묘하게 일리가 있다.
이성휘가 천하의 바람둥이라는 사실은 모든 백성들이 아는 사실이니까.
유협은 이성휘를 진심으로 경애하고 있었지만 천하의 바람둥이임은 부정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범한 전례들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아내의 사촌들을,
아내의 부하들까지,
수많은 사대부와 호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순욱과도 동침했다. 이미 아이까지 가졌다고 한다. 전광석화에 가까운 과속이 아닐 수 없었다.
화내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묵인하고 인내했던 조조가 자비로운 생불(生佛)처럼 느껴졌다.
“대장군이 형주를 정벌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익주를 정벌하고 있지 않은가.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공적을 참작해서라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합니다.”
“…….”
공적인 결정에 사적인 감정들을 마구잡이로 내세웠던 여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답변이었다.
그에 유협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한손으로 옥새를 들어올렸다.
꾸욱-.
교서에 옥새를 찍었다.
대장군 이성휘를 삭탈관직하고 척박한 변방으로 유배를 보낸다. 이성휘의 탄핵을 요구하는 조조의 상소문을 결국 윤허했다.
“부부싸움에 황명을 이용하다니…. 그대도 정말 어지간히 독종이로군.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만.”
“사족은 필요 없습니다.”
황제의 재가를 받아냈다.
이제 대장군의 삭탈관직과 유배를 선포하는 황명이 내려질 터.
토사구팽?
마음대로 지껄이라지.
결코 이번만큼은 그냥 못 넘어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개과천선을 약속하기 전까진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으니까.
“그리고 대장군을 허도로 불러들이겠다.”
“…뭐?”
유협이 말했다.
그에 조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대장군은 황실과 조정을 구원했던 영웅이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향후의 처우를 결정하려 한다.”
삭탈관직에 동의한다.
유배를 보내는 것 또한 허락한다.
하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친 이후에 시행할 것이다.
이혼 직전의 숙려기간.
남편을 불러들여 다시 숙고할 기회를 내렸다.
분명 이성휘는 천하의 바람둥이였지만 유협은 그런 덜떨어진 면모조차도 사랑했다. 그렇기에 오라버니를 불러들여 기사회생의 기회를 내린 것이었다.
‘짐은 결코 오라비를 포기하지 않겠다…! 천하의 파락호여도 오라비는 오라비니까! 그냥 성격 더러운 여자와 이혼하고 짐의 부마가 되어버리면 좋겠지만!’
이성휘를 향한 경애.
스멀스멀 솟구치는 욕망.
유협은 조조의 격노를 무릅쓰고 이성휘를 불러들였다. 경애하는 오라버니를 향한 일편단심이 물씬 느껴지는 과감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