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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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군 참모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유장이 구사일생으로 성도(成都)에 입성하여 2대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매우 절망적이었다.
수습할 방법이 없다.
반란의 불길이 계속해서 치솟고 있었다.
진나라의 폭정에 반대하여 거병을 일으켰던 오광과 진승의 반란이 이러했을까. 유언의 사망과 함께 거병한 반란군의 존재는 새로 옹립된 군주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성도로 진격하라!”
“약해빠진 장졸들 밖에 없다! 밀어붙여라!!”
파군(巴郡)과 광한군(廣漢郡)을 빼앗겼다.
성도가 위치한 촉군(蜀郡) 또한 중과부적이나 다름없었다.
익주 전역이 혼란에 휩싸였다.
반역에 동참하지 않은 호족들이 없을 정도였다.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유장군의 제장들은 결국 패색이 농후함을 깨닫고 성도에서 도망쳤다. 휘하의 병사들 또한 무기를 버리고 고향으로 달아나버렸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머지않아 파촉(巴蜀)은 멸망하리라.
유장군의 모든 장수들이 그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강건하게 버티셔야 합니다!”
“소장들이 기필코 반란을 진압하겠나이다!”
노도처럼 몰아치는 반란군의 기세에 유장군은 후퇴를 반복했다.
전선이 밀렸다.
후퇴와 퇴각을 반복하게 되었다.
장졸들의 사기가 꺾이면서 연전연패를 이어나간 유장군은 마지막 보루였던 성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반란을 진압하겠단 말이오! 그렇게나 내가 어리석은 필부로 보이시오? 연전연패를 계속 반복한 끝에 성도만을 남겨두고 있지 않소!!”
옥좌에 앉은 청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제장들을 향해 소리쳤다.
익주를 대표하는 맹장들이 연전연패를 거듭하자 마음이 초조해진 걸까. 유약한 성정이었던 유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장수들을 꾸짖었다.
적들의 기세가 강성했다.
반면 아군의 기세는 바닥을 치는 형편이었다.
병력이 부족했고 물자 또한 바닥을 드러냈다.
연이어 무력충돌이 벌어졌을 정도로 최후의 보루였던 성도도 매우 불안했다. 성도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어지러운 내분에 휩싸이게 되리라.
“고정하십시오, 주군. 장졸들이 사력을 다해 분전하고 있으니….”
“대체 언제까지 그 말을 믿으란 거요!”
주부(主簿) 황권이 말했다.
그에 유장이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믿지 않겠다.
도무지 신용할 수가 없다.
촉군을 제외한 모든 군현들을 빼앗겼다.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근거 없는 희망일 뿐이다. 유장은 더 이상 신하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고패 장군이 죽었소. 양회 장군도 적의 매복에 대패하여 전사하지 않았소? 익주를 호령했던 용맹한 장수들이 모두 당했는데… 내가 어찌 그 말을 믿겠소.”
고패와 양패가 죽었다.
아버지를 보필하여 익주를 제패했던 장수들이 결국 반란의 불길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머지않아 방란의 불길은 본인마저 삼킬 터.
유장은 벌벌 떨면서 죽음의 두려움을 호소했다.
“나, 나는 일말의 잘못도 범하지 않았소…! 그저 그대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옥좌에 앉았을 뿐이오.”
혼란과 내분으로 뒤섞인 각축장.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익주였다.
중원에서 들어온 유입세력.
익주의 호족들로 결성된 토착세력.
한중군을 중심으로 거병한 오두미교 세력.
무도군의 저족과 강족, 그리고 운남의 남만족.
수많은 세력들이 난립하며 쟁탈전을 벌였다.
익주는 기회의 땅이다.
모든 군현들을 장악하고서 힘을 비축한다면 천하를 거머쥘 수도 있을 터.
풍요롭고 기름진 익주는 당연히 승냥이처럼 몰려든 군벌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그를 보여주듯 유언이 사망하면서 무주공산이 되자마자 반란이 우후죽순처럼 이어졌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소.”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했다.
군주로서의 중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혹시라도 밤중에 자객들이 들이닥칠까 매번 경계하면서 뜬눈으로 지새웠다. 흉악한 반란군이 승전을 반복할 때마다 비명을 토해내야 했다.
“성도를 버리겠소! 익주를 버리겠소! 부친에게 물려받은 지위를 포기하겠소!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오!”
도망치고 싶다.
이대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싶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유장은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아버지의 측근들을 바라보았다.
불상사로 인해 하루아침에 세력을 대표하는 군주로 옹립되었다. 겨우 한 달도 안 된 군주에게 대체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주, 주군!”
“어찌 포기하겠단 말씀입니까!”
황권과 초주를 비롯한 수많은 신하들이 자포자기하며 물러나려는 유장을 만류했다.
세력을 포기하겠다니…!
어떤 군주도 세력을 포기했던 적은 없었다.
익주의 신하들이 대경실색하며 무릎을 꿇었지만 유장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익주를 탈출하여 위나라에 의탁하려 했다.
“위나라에 투항하여 일신을 보존하려 하오. 따르려는 자들은 따르시오. 불응하려는 자들은 계속 성도에 남으시오. 결코 강제하지 않겠소.”
유장은 반란군이 장악한 익주를 탈출하고자 친위대를 급히 소집했다.
동주병(東州兵)이 투입되었다.
철저히 하명에 복종하는 정예병단답게 익주를 떠나겠다는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무리들을 이끌고 백제성(白帝城)으로 향하려 했다.
꽤나 거친 강행군이 될 터.
그럼에도 유장은 고난을 받아들였다.
제아무리 강행군이 거칠더라도 목숨이 위태로운 지옥보다는 나을 테니까. 유장에게 있어 익주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땅이었다.
유장은 격렬한 결사반대를 외면하고서 식솔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했다. 성도를 벗어난 유장의 무리들은 형주와 인접한 백제성까지 강행군을 이어나갔다.
* * *
강행군을 거듭했던 유장은 거느리던 무리들과 함께 백제성에 당도하게 되었다.
뒤이어 양양성에 주둔하던 조조군에게 전령을 파견하여 투항을 알렸다. 반란군의 맹습을 우려한 유장은 이성휘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요청을 수락하겠다.
이성휘는 기꺼이 유장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잔병들과 함께 투항하겠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받아주신다면… 충성을 다해 봉행하겠습니다, 대장군.”
수많은 풍파들에 휩쓸렸던 유약한 군주는 굴종적인 투항을 선언하면서 발치에 엎드렸다.
이성휘가 강성한 정예들을 이끌고 백제성에 당도하자 아연실색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포에 잠긴 곁눈질로 이성휘를 쳐다보면서 전전긍긍했다.
“익주의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
“사, 사방에서 반란이 벌어졌습니다.”
“그것 참 골치가 아프게 됐군.”
“…예.”
유장은 혹시라도 자신의 유약함을 힐책할까 두려워하며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이성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할 뿐이었다.
힐책은 없었다.
무력함을 나무라는 행동 또한 없었다.
한나라와 위나라를 대표하여 투항을 받아들인 이성휘는 유장을 공손하게 예우했다. 유장을 뒤따라온 신하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정도였다.
“소장들이 지키겠습니다.”
“부디 익주목께선 안심하소서.”
대장군부의 장수들이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면서 유장에게 말했다. 반란군의 맹습을 걱정하는 유장을 배려하여 호위를 붙여주었다.
물론 호위는 명분일 뿐이었다. 투항해온 유장을 경계하고자 배치한 감시였다.
그를 유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주변을 감시하려는 의도임을 알면서도 유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들었다. 투항해온 군주가 인질로 부려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였기에.
“투항해온 공적을 참작하여 열후에 책봉하겠다. 또한 대장군의 이름으로 지위를 약속할 것이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역적의 아들이다.
또한 세력을 포기하고 도망친 패주(敗主)였다.
그럼에도 이성휘는 유장을 제후의 예우로 맞이하면서 편의를 베풀었다. 반란군에게 점거된 익주를 탈환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 * *
유종에 이어 유장마저 투항했다.
형주를 굴복시켰다.
뒤이어 익주의 무리들까지 받아들였다.
만승천자의 옥좌를 노렸던 거두들이 연이어 쓰러지면서 세력이 몰락했다. 이성휘는 연이어 대승을 거두면서 남방 정벌을 일사천리처럼 이어나갔다.
‘좋은 명분이 들어왔다. 유장을 앞세워서 진군을 거듭한다면 익주를 수월하게 정복할 수 있을 터.’
익주 전역에서 반란이 연쇄적으로 몰아치고 있었지만 유언의 영향력은 그럼에도 건재했다.
드넓은 군현들을 제압하여 익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유언은 틀림없이 훌륭한 군주였다. 그렇기에 유언을 흠모하는 호족들은 여전히 많았다.
대의명분은 차고 넘쳤다.
병력을 동원하여 성도를 탈환한다면 익주의 호족들이 사방에서 귀의해올 것이었다.
“형주 다음에 익주…. 그리고 교주.”
눈앞에 다가왔다.
사실상 달성한 것과 다름없었다.
익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호족들은 권력을 호시탐탐 노리는 승냥이에 불과했다. 또한 교주를 다스리는 사섭은 직접적인 충돌을 기피하는 인물이었다. 분명 사절단을 보내면 위나라에 투항해올 터였다.
“일단 서신을 보내봐야겠지.”
질투의 화신으로 변모한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붓을 들어올렸다.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
어떻게든 화를 진정시킬 수 있도록….
겉으로는 사납게 역정을 내면서도 속으로는 이역만리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그녀는 무척이나 자상한 성품의 여인이니까.
* * *
한 달 뒤.
허도에서 답신이 도착했다.
이성휘는 반신반의하는 기분으로 서한을 열었다.
『교주로 꺼져. 돌아올 생각하지 마.』
“…….”
예상이 빗나갔다.
그것도 한참이나.
진짜 화났다.
분명 단단히 삐친 게 틀림없었다.
아내에게서 도착한 답신을 읽은 이성휘는 무력하게 주저앉고 말았다.